The released pitcher returns as a diamond RAW novel - Chapter (142)
방출당한 투수가 금강불괴로 돌아옴-84화(142/172)
84화. 세계 최강
전 세계 최고 무대에서 뛴다는 것,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선수들과 한 그라운드에 설 수 있다는 것,
단 43일만 선수로 등록돼도 평생 연금을 받을 수 있는, 나아가 제대로 자리를 잡으면 년간 천만 달러 이상을 우습게 벌 수 있는 메이저리거가 된다는 것,
그건 글러브와 배트를 잡은 모든 선수들의 꿈이다. 모두가 원하지만 극히 일부 선수들에게만 허용되는 환상의 기회다.
“플레이!”
오늘 대한민국과 미국의 결승전에 선발로 등판하게 된 조진우는 그런 꿈을 이룬 선수였다.
인천 레인저스에서 화려한 커리어를 쌓아올리고, FA를 통해 LA 에인절스 유니폼을 입은, 그리고 1년간의 적응기를 거쳐 5선발이나마 메이저리그 선발투수로 자리 잡은,
이번 대회 한국 대표팀 내 유일한 빅리그 투수인 조진우.
그가 침중한 표정으로 미국 팀의 리드오프를 바라보았다.
조슈아 마틴, 별다른 부상이 없는 한 매년 홈런 30개, 도루 30개가 보장되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유격수 중 하나.
너무나 잘 아는 선수다.
그럴 수밖에, 같은 에인절스 소속이니까.
‘초구는 한 번 빼보자’
‘아뇨, 형. 얘는 그렇게 상대하면 안 돼요’
‘그럼 몸 쪽 체인지업?’
‘같은 코스 슬라이더로’
‘오케이’
포수와 사인을 주고받은 조진우가 천천히 와인드업을 시작했다.
장타력과 스피드라는 요소에 가려 있지만, 사실 조슈아 저놈의 진짜 강점은 무서울 만큼 정교한 선구안이다. 유인구를 던져봐야 씨도 먹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어쩔 수 없다. 배트에 맞는 걸 각오하되, 최대한 정타가 되지 않도록 신경 쓸 수밖에 없다. 구속을 조금 낮추더라도 최대한 보더라인 구석에 붙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파앙
“볼.”
볼이 되긴 했지만 괜찮은 공이었다. 저 조슈아 마틴이 움찔할 정도로 말이다.
눈이 마주치자 녀석이 슬쩍 윙크를 해온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같은 팀에서 뛸 때는 그렇게 든든하던 놈이 다른 유니폼을 입자 최악의 적이 되어버렸다.
문제는 이 놈 뒤에 그보다 더 무서운 타자, 더더 무서운 타자, 더더더 무서운 타자가 연달아 등장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별 수 있겠는가. 이번 대표팀의 에이스는 바로 자신이다. 도준우의 활약에 가려버리긴 했지만 어쨌든 조진우는 에이스 역할을 해내겠다는 마음으로 이번 대표팀에 합류했다.
그러니 싸운다, 그리고 이겨낸다.
스륵
그런 조진우의 의지를 담은 두 번째 공이 발사되었다.
하지만,
따악!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총알같은 타구가 내야를 빠져나갔다. 선두 타자 안타를 때려낸 조슈아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1루 베이스 위에 발을 얹었다.
힘이 쭉 빠졌다.
타석에 서 있을 때도 최악이지만 저렇게 1루에 보내놓으면 더 최악이 되는 게 바로 조슈아 마틴이라는 선수다. 매년 30, 40개의 도루를 마치 기계로 찍어내듯 만들어내는 최강의 주자다.
조진우의 안색이 점점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마음가짐이 공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따아악!
존 밖으로 빼려던 공이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초구가 존안으로 들어오자 윌리엄 타일러의 배트가 무섭게 돌았다. 앞선 조슈아가 빠른 발과 적당한 컨택력, 적당한 파워를 갖춘 타자라면 이 타자는 주력을 제외한 모든 면에서 완벽한 밸런스를 자랑하는 그런 선수다.
매년 30개의 홈런을 밥 먹듯 쳐대는 윌리엄의 타구가 좌익수 쪽을 향해 힘차게 날아갔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도저히 잡을 수 없는 타구.
하지만,
터억
지난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 엄청난 다이빙 캐치를 선보였던 강시원이 또 한 번 타구를 향해 몸을 날렸다.
부상 따위는 두렵지 않다는 듯, 온 힘을 다해 슬라이딩하며 뻗은 글러브 안으로 타구가 빨려 들어갔다. 1루에 있던 조슈아가 2루로 태그업을 시도하려 했지만, 백업을 위해 달려온 중견수를 보고는 스타트를 포기했다.
그렇게 무사 1, 3루가 될 뻔한 상황이 1사 1루로 바뀌었다.
위기를 벗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가슴이 벌렁거린다. 저 멀리 강시원을 향해 모자를 한 번 벗어준 조진우가 다시 다음 타자와의 승부를 준비했다.
미구엘 로드리게스, LA 다저스의 캡틴이자 메이저리그의 살아있는 전설이라 불리는, 초호화 군단으로 구성된 미국 라인업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타자.
“하아…”
조슈아, 윌리엄, 미구엘…
리그에서도 상대했던 타자들이지만, 그런 타자들이 드문드문 나올 때랑 이렇게 연달아 나올 때의 압박감은 차원이 달랐다. 엄청난 압박감을 이겨내기 위해 조진우가 이를 꽉 깨물었다.
파앙
“볼.”
파앙
“볼.”
따악!
“파울!”
미구엘의 스윙이 조진우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서른 중반을 넘긴 타자의 선구안, 배트 스피드가 저 정도라니, 진짜 전성기 때는 얼마나 괴물이었던 걸까.
보더라인을 놓고 펼쳐지는 조진우와 미구엘 로드리게스의 진검승부, 9구까지 간 그 승부의 승자는 미구엘이었다.
“볼. 베이스 온 볼스.”
“좋았어!”
“자! 한 방 날려! 다니엘! 미국의 위대함을 보여주라고!”
그렇게 1사 주자 1, 2루가 되고, 타석에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의 중심타자 다니엘 화이트가 들어섰다. 지난 시즌 0.250의 타율에 50홈런, WRC 178을 기록한 거포 중의 거포다.
정신이 번쩍 든다. 주자가 두 명이나 나가있다. 큰 것 한 방이면 바로 석 점이다.
오늘 미국의 투수진을 감안하면, 어쩌면 그 석 점으로 바로 승부가 결정될 지도 모른다.
‘낮게, 최대한 낮게’
끄덕
원론적이지만 결국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다. 낮게 던져 땅볼 타구를 유도해 병살을 잡아내는 것.
쉬운 일은 아니지만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일이다.
고개를 돌려 덕아웃을 바라보았다. 감독과 코치, 누구 하나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경기 전 말한 것처럼 오늘 경기 초반,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신을 믿겠다는 뜻이다.
좋다, 해보자. 나 역시 빅리그에서 뛰고 있는 현역 메이저리거 아닌가.
“후우…”
크게 심호흡을 하고,
스윽
2루 주자와 1루 주자를 한 번씩 바라본 조진우가 초구를 발사했다.
파앙
“볼.”
아쉽게도 제구가 빗나갔다. 이번에는 반대쪽 낮은 코스로 하나 더,
파앙
“볼.”
억울하다. 보더라인에 거의 걸친 것 같은데 심판의 손이 올라가지 않았다.
파앙
“볼.”
너무 조심스럽게 던지려다 보니 오히려 더 제구가 흔들린다. 1사 주자 1, 2루에서 4번 타자에게 쓰리 볼이라니.
조진우의 멘탈에 쩍 금이 갔다.
마운드 위의 불안이 홈플레이트에까지 전해졌다.
포수 마스크를 쓴 최진수가 고민했다. 한 번 끊어줄까? 아니, 괜히 그랬다가 오히려 집중력만 더 떨어지지 않을까? 지금 공 자체는 괜찮은데?
그런 고민이 계속되는 사이, 조진우가 네 번째 공을 뿌렸고,
파앙
“볼. 베이스 온 볼스.”
결국 연속 볼넷이 되며 베이스가 꽉 들어찼다.
1사 주자 만루, 보다 못한 투수 코치가 마운드 위로 올라오고,
타석에 LA 다저스의 신성이자, 현 시점 메이저리그 유일의 투웨이를 시도 중인 브랜든 워커가 들어섰다.
**
“플레이!”
한국 팀 투수코치의 마운드 방문이 끝나고 경기가 재개되었다.
1회 시작과 함께 찾아온 만루 찬스, 2년차 시즌을 맞이하고 있는 LA 다저스의 신성 브랜든 워커의 시간이 돌아왔다.
금발머리에 하얀 피부, 야구선수보다는 영화배우가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외모,
그런 뛰어난 외모 때문에 오히려 저평가를 받는 감이 있을 정도로 브랜든은 좋은 선수였다.
100마일에 가까운 구속과 안정적인 제구력을 바탕으로 올 시즌 전반기 평균자책점 3.51, WHIP 1.35, 9승 5패라는 호성적을 기록한, 거기에 시즌 막판 투웨이를 선언하며 타자로서도 좋은 모습을 보인 메이저리그 최고의 신성(新星) 브랜든 워커.
오늘 좌익수 겸 5번 타자로 출전한 그가 그라운드 위 한국 선수들을 하나하나 둘러보았다. 그런 브랜든의 시선이 어느 한 점에서 멈췄다.
‘도준우…’
고교 시절 세계 U-18 대회에서 만나 자신에게 생애 첫 참패의 기억을 안겼던, 부상으로 출전할 수 없었던 MLB 월드 투어 서울 평가전에서 그 악몽을 떠올리게 만든, 그리고 지난 일본과의 경기에서 눈이 부실 정도의 활약을 펼친,
본인은 모르겠지만 브랜든 워커의 마음속에는 이미 라이벌로 자리 잡은 선수,
도준우.
그런 녀석과 드디어 다시 만났다. 성인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맞부딪히게 되었다.
비록 녀석이 오늘 마운드에 오를 일은 없게 되었지만,
상관없다. 이렇게 간접적으로나마 대결을 하게 된 것만으로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리고 만약 운이 따른다면 경기 후반 자신이 마운드로 올라가 저 녀석과 투타 대결을 벌일 수도 있을 것이다.
파앙
“스트라이크!”
상대 투수의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일단 초구를 지켜보았다. 구속을 줄인 공이 존안으로 들어왔다.
솔직히 말해 치기 딱 좋은 공이다. 자신감이 용솟음친다.
더 이상 두고 볼 필요 없다. 승부다.
스륵
조진우, LA 에인절스 소속의 한국인 투수. 인터리그에서 딱 한 번 상대한 기억이 난다. 바깥 쪽 낮은 코스로 형성되는 포심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오늘 심판은 그 코스의 공을 거의 잡아주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저 투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가끔은 문제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던져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니까. 이런 상황에서 큰 걸 피하고, 동시에 병살타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바깥 쪽 공을 던질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러니 노릴 공은 바로 그 코스의 공이다.
그립을 느슨하게 잡고, 바깥 쪽 코스 쪽으로 온 신경을 집중했다. 만약 다른 코스로 공이 들어오면 그냥 지켜볼 생각으로.
그와 동시에 조진우의 투구가 시작되었다. 조금 느리지만 안정적인 세트 포지션을 거쳐 공이 발사되었다.
역시,
“흡!”
바깥 쪽 공이다.
노리던 코스로 공이 날아오자 브랜든의 배트가 망설임 없이 튀어나갔다. 배트 스피드에 있어 메이저리그 전체 세 손가락에 든다는 브랜든의 스윙이 바깥쪽 낮은 코스의 포심을 제대로 걷어냈다.
따아악!
소름이 돋을 정도로 경쾌한 타격음이다.
안타임을 직감한 브랜든이 자기도 모르게 씨익 미소를 지었다. 이어 루상의 모든 주자가 타구에 시선을 고정한 채 다음 베이스로 뛰쳐나갈 준비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터억
“What?”
전력질주로 달려온 도준우가 또 한 번 믿기지 않는 플레이를 만들어냈다.
열 중 아홉은 안타가 되었을 타구가 도준우의 글러브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타구를 건지느라 앞으로 두 바퀴를 굴렀음에도 3루 주자가 태그업 시도조차 못했다. 저런 상황에서 도준우가 던진 송구에 얼마나 많은 주자가 죽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이게 대체 말이 돼?”
“좀 더 멀리 쳤어야지! 브랜든! 이 멍청아!”
“저딴 놈을 신성이라고 받들 때부터 알아봤지! 젠장!”
관중석을 가득 메운 양키스 팬들이 라이벌 구단 소속의 브랜든을 향해 야유를 쏟아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최소 두 명의 주자를 불러들일 수 있었던 기회가 무산되었다. 미국 쪽으로 넘어왔어야 할 경기 분위기가 다시 한국 쪽으로 넘어가버렸다.
그리고 결국,
따악!
“아웃!”
도준우의 슈퍼플레이에 간신히 정신을 차린 조진우가 다음 타자를 1루수 파울 플라이로 잡아내며 길었던 미국의 1회 초 공격이 아무 소득 없이 끝나고 말았다.
타점과 안타를 눈앞에서 도둑맞은, 지금 이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브랜든 워커가 멍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에게 누군가 글러브를 내밀었다.
소속팀의 캡틴이자 그가 가장 믿고 따르는 미구엘 로드리게스였다.
“정신 놓지 마. 경기는 이제 시작이니까.”
“…네, 캡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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