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leased pitcher returns as a diamond RAW novel - Chapter (152)
방출당한 투수가 금강불괴로 돌아옴-94화(152/172)
94화. 시즌 최종전 (2)
벌컥벌컥
“아빠… 이제 그만 드세요. 괜찮으신 거 맞죠?”
“딸아, 이해 좀 해다오. 도저히 맨 정신으로는 못 보겠구나.”
“아무리 그래도…”
“아냐, 진짜 괜찮아. 그러니까 넌 내 걱정 말고 네 남자친구 걱정이나 하면 된단다.”
5회 말 부산 타이탄스의 공격이 또 득점 없이 끝났다.
투아웃 이후 자동고의사구로 걸어 나간 도준우가 오늘 경기 세 번째 도루를 성공시켰지만 강재호가 친 타구가 중견수의 호수비에 걸리며 득점에는 실패했다.
여전히 스코어는 0대 0,
데뷔와 함께 KBO를 폭격한 슈퍼루키와 리그를 대표하는 베테랑 좌완투수의 맞대결은 5회까지도 우열을 가리지 못하고 있었다.
타이탄스 선발 도준우, 5이닝 투구 수 64개, 삼진 10개, 피안타, 볼넷 각각 0개.
매지션스 선발 이동준, 5이닝 투구 수 85개, 삼진 3개, 피안타 3개, 볼넷 5개.
지켜보는 팬들의 가슴을 졸이게 하는 엄청난 투수전이었다.
물론 이 상황이 가장 힘든 건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홀로 마운드를 지키고 있는 도준우가 받는 압박감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준우야…’
그 모습을 보며 이다은이 안타까운 한숨을 흘렸다.
왜 저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너무 힘들어 보이지 않나, 혹시 저러다 다치는 건 아닐까? 별의 별 생각들이 다 떠올랐다.
그런 딸의 옆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아버지 이정석이 들고 있던 맥주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딸아.”
“……”
“이다은.”
“네? 아, 네 죄송해요, 아빠.”
“괜찮아. 그보다 말이다. 지난번에 그 얘기, 결정은 한 거니?”
“얘기요? 무슨 얘기? 아, 그거요?”
“그래. 미국 가는 거.”
“음…”
이다은이 잽싸게 주변을 돌아보았다. 혹시나 누가 듣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해서.
그리곤 안심했다. 지금 사직구장에 있는 관중들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 같은 것에는 아무 관심도 없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하나,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이 오래된 저주의 고리를 끊고 첫 우승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다은이 낮은 목소리로 아버지에게 대답했다.
“솔직히 모르겠어요… 제가 외국에서 혼자 살 수 있을까요?”
“혼자? 왜 혼자야? 도 서방… 아니, 준우가 있는데.”
“아빠, 그 이름은 빼고.”
“음, 그렇지. 조심해야지. 아무튼 나랑 네 엄마는 말이다.”
“네.”
“무조건 찬성이다. 성적이 안 되면 모를까, 그쪽에서도 편입에 아무 문제도 없다며? 그럼 가야지. 기왕 하는 거 제대로 배워야지.”
“그렇기는 한데…”
“왜? 혹시 돈 걱정 하는 건 아니지? 딸아, 아빠가 이래 뵈도 여기저기 숨겨놓은 돈이 꽤 돼요. 그 정도 돈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으니까 걱정 말고.”
“돈도 돈이지만… 뭐랄까, 좀 그래요.”
“딸아.”
“네, 아빠.”
아버지의 다정한 시선이 이다은에게로 향했다. 눈동자에 차 있던 술기운이 물러나고 대신 딸에 대한 애정이 들어찼다.
“너도, 그리고 저기 저 녀석도, 잘 하고 있어, 열여덟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게 말이야. 하지만 결국 자신이 어디까지 갈 수 있냐를 확인하려면 더 넓은 무대로 갈 수밖에 없는 거란다. 그러니까 가. 아무 걱정 말고. 나머지는 이 아빠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아빠…”
“왜, 감격스러워? 아빠가 좀 달라 보이고 그래? 타이탄스에 미친 꼴빠인줄 알았는데 존경할 수 있는 어른이다 싶고, 막 그렇지?”
“아뇨, 아니,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한데… 다른 걸 떠나서 제가 남자랑 단 둘이 그 멀리 간다는데… 걱정 안 되세요?”
“걱정? 걱정은 무슨, 그냥 간 김에 거기서 둘이 애도 만들고, 앜! 아파! 딸아! 아프다! 아프다고! 거기 얼마 전에 엄마한테 꼬집힌 데란 말이야!”
**
도준우와 이동준 간의 치열했던 투수전이 서서히 종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투구 수가 109개에 다다른 이동준이 먼저 마운드를 내려갔다.
6이닝 투구 수 109개, 삼진 5개, 피안타 4개, 볼넷 6개, 무실점.
지난 10년 간 매지션스의 마운드를 책임진 에이스다운 호투였다.
그리고 그 반대편, 이동준과 함께 숨 막히는 투수전을 펼친 도준우는 여전히 마운드를 지키고 있었다.
파앙
“스트라이크!”
상대 선발투수가 물러났지만 도준우는 조금도 방심하지 않았다.
아마도 다음 이닝 매지션스에서는 용병 1선발 개럿 토마스가 올라올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올 시즌 매지션스를 지탱한 주축 투수들 대부분이 불펜에서 대기 중이다.
반면 타이탄스에서 내세울 수 있는 카드라고는 최도윤과 강정우, 최기혁 정도가 전부였다. 선발전환한 도준우를 대신해 다시 마무리로 돌아간 박태민은 지난 경기 등판 여파로 인해 제 컨디션이 아니다.
물러서면 안 된다는 절박함, 그리고 긴장감.
그것이 도준우의 잠재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파앙
“스트라이크! 아웃!”
“우오오오오오!”
“시발! 진짜 최고다!”
“도준우! 도준우! 도준우!”
국가대표 유격수 김근영이 또다시 삼진으로 물러났다. 1루 응원석 바로 앞 안전망에 K라고 쓰인 피켓이 또 하나 추가되었다. 13개째 탈삼진이었다.
– 대단합니다! 이번에는 167km/h였습니다. 투구 수가 80개를 넘어간 상황에서 여전히 165km/h가 넘는 구속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 데이터를 한 번 볼까요? 올 시즌 선발 등판 경기에서 도준우 선수의 포심 평균 구속이 163km/h였습니다. 마무리로 등판했던 전반기에는 165.5km/h였고요
– 엄청나네요. 그럼 지금 도준우 선수가 선발 투수로 등판해 마무리 투수처럼 던지고 있다고 봐야겠군요
– 맞습니다. 정말 놀라운 건 말이죠. 올해는 WBC 때문에 리그 전체 일정이 보름 정도 뒤로 밀렸거든요. 며칠 후면 11월입니다. 날이 추워지고 있다는 뜻이에요. 그런데도 이런 스피드라니… 정말 강철같은 피지컬입니다
– 경기 전에 만난 메이저리그 스카우터 한 분이 그런 걸 물으시더라고요. 혹시 그 쪽으로 의심해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래서 대답해드렸죠. 거의 일주일마다 한 번씩 머리카락을 뽑고, 소변을 받아가고 있다고 말이죠
– 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충분히 이해는 갑니다. 시즌 내내 투타 겸업을 유지하면서 저런 페이스를 보인다는 게 정말… 아무튼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 그게 뭐죠?
– 지금 우리가 언젠가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야구선수가 될 지도 모를 선수의 데뷔시즌을 보고 있다는 것 말이죠. 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
촤아악
“세이프!”
7회 초 매지션스의 공격을 삼진 2개와 범타 1개로 막아낸 도준우가 다음 공격 이닝, 볼넷으로 걸어나가자마자 2루를 향해 질주했다.
오늘 경기 네 번째 자동고의사구, 그리고 네 번째 도루.
그 네 번의 기회 동안 단 한 번도 도루를 저지하지 못한 최진수의 안색이 돌덩이처럼 굳었고, 이동준을 대신해 마운드에 오른 용병 1선발 개럿 토마스의 입에서 짙은 욕설이 터져 나왔다.
“허억, 허억…”
“야, 너 괜찮냐?”
“……”
2루 베이스 위에서 도준우가 거친 숨소리를 토해냈다. 그 모습이 얼마나 힘들어 보이는지 매지션스 2루수가 걱정을 할 정도였다.
하지만 도준우는 대답할 기운조차 없었다.
어쩌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 지도 모른다.
그까짓 우승이 뭐라고, 엄밀히 따지면 자신은 이 팀의 팬도 아니지 않은가.
해외진출? 까짓 1년만 참고 기다리면 된다. 이정도 성적을 냈으니 구단에서 알아서 연봉도 올려줄 거고, 어쩌면 그렇게 1년 동안 국내에 더 머물면서 몸값을 높이는 게 나을 수도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지기 싫은 걸까.
내가 이렇게까지 승부욕이 강한 놈이던가.
모르겠다. 지금 나는 예전 그 패배의식 가득했던 서른 살 백업 선수가 아니니까. 얼마 전 열아홉 생일을 지낸 전혀 다른 존재니까.
파앙
“볼. 베이스 온 볼스.”
도준우가 숨을 고르는 사이, 강재호가 볼넷을 골라 1루로 진출했다. 그렇게 2사 주자 1, 2루 찬스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따악!
“아웃!”
“Fuck!”
그레고리가 때려낸 잘 맞은 타구가 몸을 날린 3루수의 글러브로 빨려 들어갔다.
공을 잡은 3루수가 관중석을 향해 포효하고, 또다시 찬스를 날린 그레고리가 방망이를 부러뜨리며 분노했다.
일반적인 야구팬들은 투수전보다는 타격전을 좋아한다. 홈런이 펑펑 터져 나오는 타격전이야말로 팬들을 흥분시키는 가장 이상적인 경기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오늘 사직구장을 찾은 팬들은 그런 타격전을 뛰어넘는, 공 하나하나에 희비가 엇갈리는 진짜 투수전의 재미를 맛보고 있었다. 어쩌면 투수전이 재미없다는 건 진정한 투수전을 못 봐서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이런 시이이발! 어떻게 좀 해봐! 다 좋은 데 이러다 진짜 심장마비로 죽을 거 같단 말이야!”
그에 따른 부작용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네 번째 도루를 성공시키고도 결국 홈을 밟는 데는 실패한 도준우가 투수 글러브를 건네받고 마운드로 향했다.
어느새 경기는 8회 초로 접어들고 있었다.
**
파앙!
“스트라이크! 아웃!”
점수를 내야 하는 건 매지션스 쪽도 마찬가지였다.
4번 타자부터 시작되는 매지션스의 8회 초 공격,
배트를 짧게 잡은 타자들이 이를 악물고 도준우에게 덤벼들었다.
오직 포심 하나만 노리고 달려들던 국가대표 3루수 지채민이 포크볼 3개에 허무하게 삼진으로 물러났다. 이에 역으로 포크볼을 예상하고 초구부터 과감하게 배트를 돌린 최진수가 내야 플라이로 물러났다.
그리고 마지막 타자마저 또 삼진으로 물러나며 허무하게 쓰리 아웃.
“…지금 몇 개째지?”
“정확히 107개째입니다. 팀장님.”
“정신 나갔군. 107번째 공이 102마일이 나왔다 이거지? 회전수는?”
“조금 떨어지긴 했습니다. 방금 던진 공은 2,495였습니다.”
“그게… 떨어진 거다 이거지?”
팀원이 내민 태블릿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던 스카우터 팀장이 결심을 굳힌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더 이상 시간 끌 필요 없겠군. 단장실에서 요구한 보고서, 지금 바로 보내. 거기에 코멘트 한 줄만 추가해서.”
“뭐라고 추가할까요?”
“무엇을 원하든, 무엇을 바라든 다 들어주고서라도 무조건 데려와야 하는 선수, 그래, 그렇게 쓰면 되겠군.”
**
“준우야, 여기 음료수.”
“……”
“도준우?”
“…어, 그래. 고맙다. 음료수는 됐고, 방금 내 공 어땠어?”
“공? 좋았지. 아직도 손바닥이 저릿저릿한데.”
“그래? 다행이네. 아, 이거 생각보다 더 힘드네.”
친구의 말에 뭐라 한 마디를 덧붙이려던 최호석이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경기 내내 베이스 위를 뛰어다닌 걸로 모자라 100개가 넘는 공을 던진 놈이 안 힘들면 그게 정상이겠냐고,
그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정말 간신히 참아 눌렀다.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은 그런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었다.
점점 한계에 도달하고 있는 친구를 돕는 게 그가 해야 할 일이었다.
파앙
“스트라이크!”
무거운 포수 장비를 벗고 헬멧과 배트를 집어 들었다. 덕아웃 난간에 기댄 채 대기타석으로 나갈 준비를 시작했다.
그라운드에서는 타이탄스 4번 타자 유승택과 매지션스 마무리 투수 손승범의 대결이 진행되고 있었다.
따악!
“파울!”
정말 미친 듯이 힘든 경기였다. 지난 2년 연속 최하위이던 팀이 2위까지 치고 올라왔으니 당연히 매 경기가 치열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오늘 경기는 엄청났다.
정규시즌 1위를 놓고 펼쳐지는 1, 2위 팀 간의 맞대결, 시즌 144경기의 대미를 장식할 최종전, 올 시즌 최고 루키와 국가대표 베테랑 투수 간의 맞대결.
하나하나 떼어놓고 봐도 가슴이 두근거릴 요소들이 한 게임에 모두 집약되어 있었다.
부웅
“스윙! 아웃!”
“나이스!”
“손승범! 손승범! 손승범!”
6구까지 가는 승부는 결국 투수의 승리로 끝났다. 출루에 실패한 유승택이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덕아웃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최호석이 그 옆을 스쳐 대기타석으로 걸어 나갔다.
얼마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최호석 뿐만 아니라 야구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똑같이 생각했다.
야구에서 가장 힘든 포지션은 단연 포수라고.
하지만,
지금 덕아웃에 앉아 숨을 헐떡이고 있는 도준우를 보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투타 겸업이란 선수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파앙
“스트라이크!”
대기타석에서 손승범의 공을 지켜보았다. 빠르고, 강하고, 정교하다.
올 시즌 최호석은 손승범을 상대로 8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삼진도 6개나 당했다. 프로 무대에서 닳고 닳은 마무리 투수의 공은 신인 타자에게 너무나도 버거웠다.
부웅
“스윙!”
그럼에도 지금 최호석의 머릿속에 있는 건 손승범의 공에 대한 걱정이 아니었다.
오늘 경기 전 친구에게 들은 충격적인 이야기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어쩌면 이번 시즌이 끝나고 곧바로 해외로 나갈 수도 있다는 말, 한국시리즈 우승만 하면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모두 사라질 거라는 그 말.
‘시발, 차라리 그냥 모르는 게 나을 뻔 했잖아’
그 말을 처음 듣는 순간 떠오른 건 아쉬움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계속 야구를 같이 해온 친구가 떠날 수도 있다는 말에 가슴 속 어딘가가 간질거렸다.
그 뒤를 이어 약간의 부러움, 동경심 같은 감정들이 뒤를 이었고, 결국 단 하나의 감정만이 남게 되었다.
책임감,
보다 큰 무대를 위해 떠나려는 친구를 도와야한다는, 돕고 싶다는 책임감.
파앙
“스트라이크! 아웃!”
역시 손승범의 공은 위력적이었다.
유승택에 이어 신현석까지 삼진으로 물러나고, 드디어 최호석의 타석이 돌아왔다.
투 아웃 주자 없는 상황, 이번 주말이면 열아홉 생일을 맞게 될 1년차 신인 포수가 마지막 타석을 준비했다.
“호석아, 준우도 슬슬 내려가야지? 응? 힘들어 보이는데?”
“네, 저도 쉬게 해주고 싶습니다. 선배님.”
“그래, 그나저나 저번에 보니까 여기 사직구장 앞에 쭈삼 기가 막히게 하는 집이 생겼…”
상대 포수가 집중력을 흐트러뜨리기 위해 아무 말 잔치를 시작했지만 이상할 정도로 거슬리지 않았다. 그냥 한쪽 귀로 들어왔다가 다른 한쪽 귀로 흘러나가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그 순간, 최호석에게 알 수 없는 감각이 찾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