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leased pitcher returns as a diamond RAW novel - Chapter (18)
방출당한 투수가 금강불괴로 돌아옴-18화(18/172)
18화. 봄이 찾아왔어요
봄…
봄의 사전적 의미는 겨우내 최저점에 도달했던 태양의 남중고도가 동지(冬至)를 기점으로 다시 서서히 상승하기 시작하며 기온이 올라가는 시기를 뜻하며, 우리나라의 경우 양력 3월에서 5월 사이가 여기에 해당된다.
물론 이상기후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며 이제 3월은 겨울에 가깝고, 5월은 여름에 가까운 취급을 받고 있지만 어쨌든 봄은 봄이다.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해변가 카페들이 북적거리고, 가지만 앙상하던 남천동 벚꽃나무에 몽글몽글 꽃망울이 피기 시작하면 부산에도 봄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런 봄이 되면 프로야구 시범경기가 시작된다.
“미친 새끼들아! 똑바로 해! 할 거면 제대로 하라고!”
“정신 안 차리면 마! 내가 죽이삔다!”
“해체해! 해체해! 해체해!”
2027 KBO 시범경기 개막전이 열리는 사직야구장,
영상 7도의 다소 차가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구장에 몰려든 1만 명이 넘는 타이탄스 팬들이 경기 시작 전부터 팀 해체를 외치고 있다.
부산 야구팬들에게 봄은 여러모로 복잡한 계절이다.
매년 최하위 권을 전전하는 주제에 봄만 되면 이상할 정도로 힘을 내는 팀이 타이탄스이기 때문이다.
날이 더워지기 전까지는 상위권에 얼굴을 내밀며 헛된 희망을 품게 하고, 여름이 시작되면 귀신같이 성적이 꼬라박으며 제 자리를 찾아가는 구단.
“올해는 다르다 그런 개소리는 하지 마. 이 새끼들아!”
“차라리 그냥 봄에도 대충… 아니, 시발! 너흰 그냥 암 것도 하지 마!”
그렇기에 부산 팬들에게 봄은 희망이자 아픔의 계절이다.
봄을 맞은 응원팀이 승승장구를 하면 저러다 언제 또 꼬꾸라질지 몰라 불안하고, 그렇다고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 벌써부터 저러면 나중에는 또 얼마나 개판을 치려고 저러나 아찔한 생각이 밀려온다.
한마디로 말해 타이탄스가 뭘 하든 팬들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거다.
거기에 올해부터 KBO 프로야구 중계권을 가져가게 된 플랫폼 업체에서는 하나의 플레이를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주는, 일명 다각도 중계를 새로운 상품으로 내놓았다.
자신들이 응원하는 팀의 삽질 모습을 다각도로 관찰하며 다각도로 빡칠 일만 남은 것이다.
“집어 쳐!”
“시발! 그냥 매각해버리라고!”
그것이 지금 사직구장에 모인 팬들이 구단 해체를 부르짖는 이유다.
지난 가을, 그리고 겨울,
타이탄스는 많은 변화를 가졌다.
무능하고 탐욕스러운 코칭스태프와 팀장급을 포함한 프런트 직원들의 모가지를 사정없이 날려버렸고, 음주운전 사고를 낸 주전 3루수 박만수와 인터넷 도박으로 검거된 백업포수 안진철을 방출시켰다. 거기에 FA자격을 취득한 베테랑 투수 최영석에게는 아예 오퍼조차 넣지 않았다. 팀 분위기를 해친다는 이유였다.
심지어 스프링캠프 기간에는 이 팀의 덕아웃 분위기를 좌지우지하던 주류 중의 주류인 오경식과 이재석까지 다른 팀으로 보내버렸다.
결과론적으로 지난 시즌 주전 중 다섯 명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물론 나간 선수만 있는 건 아니었다.
성실하기로 유명한 중간계투 박태민을 FA로 영입했고, 젊은 선발투수 강정우와 힘 있고 선구안 좋은 외야수 신현석을 트레이드로 데려왔다.
외국인 용병도 완전히 물갈이했다. 전문가들은 올 시즌 부산이 데려온 용병 3명에 대해 한결같이 긍정적인 예측을 내놓고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게 하나 남아 있었다.
도준우,
당초 메이저리그 직행이 확실시 되었던 최고 구속 165km/h 투수.
그가 난데없이 타이탄스를 선택한 것이다.
물론 투수가 아닌 타자로 시작하겠다는 말에 많은 팬들이 뒷목을 잡았지만,
<애리조나 피닉스 캠프를 뒤흔든 도준우 열풍, 쳤다 하면 장타… 고교시절과는 완전히 달라진 타자 도준우의 모습>
<다섯 번의 연습경기에서 홈런 네 개, 2루타 세 개를 날린 도준우… 상대팀 감독들 “배팅 파워만 놓고 보면 용병 타자들보다 더 강해보였다. 도준우에 대한 집중 분석에 들어가야 할 것 같다”>
<연습경기를 찾은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 “우리가 타자 도준우에 대해 너무 가볍게 생각한 것 같다. 배팅 파워 만큼은 빅리그에서도 최상급이다”>
<익명을 요구한 빅리그 구단 스카우터 “망할 놈의 단장만 아니었으면 도준우를 데려올 수 있었을 텐데… 그는 분명 KBO를 폭파시키고 메이저리그로 건너올 것”>
미국에서 보여준 도준우의 모습은 팬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193cm의 키에 비해 조금 왜소했던 체구가 웨이트를 통해 104kg까지 체중을 늘리며 몰라보게 크고 단단해졌다.
그런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장타력은 힘 하면 떠오르는 과거의 이름들, 애런 저지, 카를로스 스탠튼을 소환시킬 정도였다.
그렇기에 지금 이 시점 타이탄스 팬들의 유일한 희망은 도준우였다.
강속구 투수에서 홈런 타자로 변신한 올 시즌 최고 유망주,
전광판에 불이 켜지고,
선발 라인업 한 가운데 5번 타자 도준우의 이름이 새겨지는 순간,
사직 구장을 찾은 타이탄스 팬들이 미친 듯이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도준우! 도준우! 도준우!”
“마! 잘 해라! 내가 네 유니폼 다 사버릴 테니까 잘 하라고!”
“너만 믿는다! 도준우!”
**
1번 좌익수 신현석
2번 3루수 문승우
3번 중견수 강재호
4번 1루수 그레고리 라미레스
5번 우익수 도준우
6번 지명타자 권재욱
7번 유격수 유정혁
8번 포수 김종배
9번 2루수 강영수
선발투수 라이언 에반스
“뭘 그렇게 계속 쳐다보냐?”
“호석아, 넌 안 아프고 야구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르지?”
“그건 또 뭔 소리야. 누가 들으면 크게 다쳐본 놈인 줄 알겠네.”
“쯧, 내가 어린 놈 붙잡고 뭔 소리를 하는 거냐. 됐고, 가서 몸이나 풀어라.”
“뭐라는 거야…”
저 멀리 전광판에 새겨진 내 이름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오래 전, 정확히 말하면 회귀 전 현역 시절,
내 소원은 아프지 않은 상태에서 시즌을 시작하는 거였다.
병원에 드러누워 맞았던 첫 시즌, 불안한 어깨를 갖고 시작했던 두 번째 시즌, 재활이 채 끝나지 않아 그냥 건너뛰었던 세 번째 시즌, 부상과 재활로 너덜너덜해진 몸을 이끌고 맞았던 타자 전향 시즌…
나는 항상 아팠고 어딘가 한 군데는 꼭 이상이 있는 상태로 시즌을 맞았다.
지금보다는 훨씬 적지만 그래도 3억이나 되는 계약금을 받은 신인이 단 한 순간도 제대로 경기를 뛰지 못했으니 지켜보는 팬들도 가슴이 터져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니, 회귀를 했으니 두 번의 삶을 살며 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지.
아무튼 난생 처음 아픈 곳 하나 없이 시즌 개막을 준비하고 있다.
목표했던 193cm에 105kg, 체지방률 19%에 거의 근접한 완벽에 가까운 피지컬이 어디 하나 삐걱거리는 곳 없이 유연하게 동작한다.
가볍다, 상쾌하다.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잠시 상념에 빠져 있는데 감독이 선수들을 불러 모았다.
“자, 오늘은 우리가 팬들에게 지난겨울 동안 어떤 준비를 했는지 보여줄 수 있는 시간이다. 엔트리를 보고 의문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 내 머릿속에 있는 우리 팀의 최상 라인업이 바로 저거다. 하지만 저기에 이름이 들어있다 해서 방심하거나, 혹은 이름이 없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앞으로 14경기, 시범경기를 치루는 동안 얼마든지 명단이 교체될 수 있으니까. 내 말 알아들었나?”
“네, 보스!”
“좋아, 더 이상 길게 말할 필요는 없겠지. 가라, 가서 너희들이 얼마나 준비된 투사인지 입증해라. 나를 만족시켜라!”
감독의 말이 끝나자 비장한 표정이 된 선수들이 자리로 돌아가 경기를 준비했다.
오늘 선발 라인업은 당사자인 선수들이나 지켜보는 팬들 모두 깜짝 놀랄 만큼 파격적이었다.
1번 좌익수로 나선 신현석은 얼마 전 파이터즈로부터 트레이드되어 온 선수다. 2번 문승우는 지난 시즌까지 1, 2군을 오가는 백업 멤버였고, 나는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신인이다.
거기에 6번 권재욱과 7번 유정혁 역시 오랜 시간 백업에 머물러 있던 선수들이다. 결론적으로 지난 시즌 주전이었던 선수는 중견수 강재호와 포수 김종배, 2루수 강영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제는 완전히 몰락해버린 진산고, 경서고 라인의 생존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 쳐다보는데 마침 감독이 통역과 강영수를 자기 옆으로 불렀다.
근처에 있던 내 귀에 감독의 거친 영어가 쏙쏙 날아와 박혔다.
“이봐, 강.”
“네? 네, 보스.”
“지금 이 팀이 어느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는 충분히 깨달았을 거야.”
마음에 안 드는 놈들을 하나하나 쳐내고 새 얼굴들로 그 자리를 메워나가고 있다는 뜻이다.
“솔직히 말하지. 지금까지 우리 팀에서 내보낸 놈들은 폐기물이야. 그것도 핵폐기물. 단장이 묻더군. 아직도 트레이드가 더 필요할 것 같냐고. 하지만 난 아직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어. 그리고 오늘 자네를 선발 라인업에 올렸지. 자,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했나?”
“아… 알, 알겠습니다. 보스!”
“좋아, 이해했다니 다행이군. 유격수에서 2루수로 자리를 옮겼지만 난 자네가 새로운 임무를 잘 수행할 거라 믿어. 그리고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팀 분위기에도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물론입니다, 보스!”
“좋아, 나가봐. 가서 네 능력을 보여 달라고. 나를 납득시켜달란 말이야.”
음,
방금 감독이 한 말을 종합해볼 때 아무 미련 없이 다른 팀으로 보낸 선수들과 달리 강영수나 김종배는 한 번 더 기회를 부여받은 듯하다. 원래 파벌싸움 같은 것에는 관심 없던 강재호 선배야 뭐 이번 일에서 열외겠지만.
어쨌든 팀 분위기가 참 재미있게 돌아간다.
날 영입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 썩어빠진 구단을 개혁하기로 마음먹은 구단주, 그 구단주로부터 전권을 받아 칼춤을 추고 있는 단장, 그리고 깡패 두목같은 얼굴과 카리스마로 선수단을 장악해나가고 있는 감독까지.
어영부영 대충 경기나 뛰고 연봉이나 받아가려던 기존 선수들에게는 이곳이 바로 지옥이겠지.
그라운드라는 이름의 지옥.
**
“무조건 이겨! 아니, 해체해! 아니, 시발 이겨! 이기라고!”
“시범경기라고 대충했다간 죽여버릴 거다! 창원 놈들에게 지면 오늘 너희는 끝장이야!”
“아우! 안 오려고 했는데 내가 또 이 좆같은 곳에 와 있다니, 시발, 시이이발!”
홈팀 부산 타이탄스와 원정팀 창원 랩터스 간의 시범경기 개막전이 준비 중인 사직야구장, 1루 내야 응원석에 앉은 이다은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말했다.
“오늘은 유난하네요.”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지. 뭔가 이것저것 하긴 했는데 막상 눈에 보이는 결과물은 없고, 머저리 같은 놈들이긴 하지만 어쨌든 주전이었던 놈들은 다 사라졌고, 사람들이 불안해할 수밖에 없는 거란다, 딸.”
“그나저나… 저 오늘 괜히 온 거 같아요. 저 때문에 게임 지면 어떻게 해요? 준우도 선발로 나왔는데.”
고등학교 1학년 여름 이후 아버지와 함께 총 열 다섯 번 사직구장을 찾은 이다은은 아직까지 타이탄스가 이기는 경기를 단 한 번도 직관하지 못했다.
15전 14패 1무. 그것이 이다은의 사직구장 직관 기록이었다.
“그렇다고 우리 준우가 선발로 나오는데 집에서 TV로 볼 수는 없잖아, 그리고 오늘은 이길 거야.”
“꼭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나저나 아빠, 맥주 너무 많이 드시는 거 아니에요? 그거 몇 캔째에요?”
“아직 다섯 캔 밖에 안 마셨단다, 딸아.”
“경기 시작도 안 했는데 다섯 캔이나 드신 거예요? 세상에… 이제 그만 드세요.”
“아냐, 딸도 하나 알아둘 게 있는데 저눔 새끼들 경기 보려면 이 정도는 마셔둬야 한단다. 마음의 준비 없이 그냥 보면 충격이 너무 클 수도 있거든.”
“…방금은 이길 거라면서요?”
“내가 그랬나? 하하, 뭐 시범경기인데 지면 어때? 준우 안타나 쳤음 좋겠구나.”
“흐으음…”
벌써 반쯤 비어버린 아이스박스를 보며 이다은이 한숨을 쉬던 그때,
갑자기 함성이 터져 나오며 관중들 일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깜짝 놀란 이다은이 그라운드로 시선을 돌렸다.
덕아웃에 있던 타이탄스의 선수들이 수비를 위해 뛰어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선수들의 맨 앞에 자신에게 야구를 알게 해준, 아니, 야구라는 스포츠를 좋아하게 만든 커다란 체구의 남자가 있었다.
NO.18 도준우,
저 애 등이 언제 저렇게 넓어진 걸까.
이다은은 몰라보게 듬직해진 남자친구의 뒷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관중 여러분! 긴긴 겨울, 혹독한 훈련을 마치고 우리 곁으로 돌아온 타이탄스 선수들을 향해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응원단장의 힘찬 함성과 함께 부산 타이탄스와 창원 랩터스 간의 시범경기 개막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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