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leased pitcher returns as a diamond RAW novel - Chapter (25)
방출당한 투수가 금강불괴로 돌아옴-25화(25/172)
25화. 제가 던지겠습니다
야구선수로서 내가 승부에 가장 집중했던 때는 언제였던가.
다시 한 번 곰곰이 과거, 혹은 미래의 기억을 되짚어본다.
첫 번째 수술과 재활을 마치고 투수 데뷔전을 가졌던 그 순간이었을까?
아니면 투수를 포기하고 타자로서 첫 타석에 섰던 바로 그때였을까.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둘 다 아닌 듯하다.
당시 내가 느낀 감정은 승부에 대한 집중 혹은 집념이 아닌, 그저 내가 다시 야구선수로서 기능할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감과 초조함이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아마도 내가 야구선수로서 가장 집중력 있는 승부를 펼쳤던 건…
그래, 이 몸을 기준으로 하면 바로 작년, 하지만 내 의식을 기준으로는 십 수 년 전 있었던 청룡기 결승전이었던 것 같다.
지난 드래프트에서 내 바로 뒤를 이어 대전 팔콘스의 지명을 받은, 고교시절 내내 나와 라이벌로 묶여 있던 대석 고등학교 강시원.
나와 마찬가지로 투수와 타자를 겸했던 그 녀석과 청룡기 우승트로피를 놓고 정면으로 출동했다.
나란히 선발로 등판해 8회 말까지 0대 0 접전이 이어졌었다.
9회 초, 내가 던진 공이 165.2km/h를 기록했을 때, 그 공에 삼진을 먹은 녀석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리고 이어진 9회 말,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극도의 집중력 속에 마지막 타석에 나섰고, 녀석이 던진 152km/h 포심을 잡아당겨 담장 밖으로 날려버릴 수 있었다.
그 순간을 생각하니 다시 손에 땀이 차오른다.
“플레이!”
아이러니하게도 난 지금 이 순간, 메이저리그 최강 팀과 KBO리그 꼴찌 팀 간의 평가전 경기에서 그때의 긴장감을 떠올리고 있다.
오기가 발동한다. 정말 지기 싫다.
그저 평가전에 불과하건만, 여기서 진다해도 누구 하나 나나 우리 팀을 욕할 사람도 없건만, 앞으로 내 야구인생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을 경기이건만,
이기고 싶다. 너무나.
파앙
“볼.”
세 개 연속 바깥쪽 공이 들어왔다. 그 중 하나는 스트라이크로, 나머지 두 개는 볼로 선언되었지만, 만약 AI가 아닌 인간이 심판이었다면 모두 스트라이크가 되었어도 이상할 게 하나 없는 멋진 공들이었다.
저런 투수조차 퇴물 취급을 받는 게 메이저리그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헛웃음이 나온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마운드로 돌아가 빅리그 무대에 섰을 때 과연 내 공은 어디까지 통할 수 있을까?
이곳에서는 내가 던진 165km/h의 공이 매우 특별하지만, 그곳에는 165를 넘어 170을 던지는 괴물도 존재한다.
그 생각으로 하니 조금은 두렵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기대가 든다.
빠르면 1년, 늦어도 3년 후 나는 그곳에 도전하게 될 것이다.
그때 내가 어떤 투수일지, 아니, 어떤 선수일지 아직 정해진 건 아무 것도 없다.
나는 젊다. 아니, 어리다.
성한 곳 하나 없는 몸을 이끌고 하루하루를 전전하던 30대 선수가 아닌, 더블헤더 경기를 뛰고도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펄펄 날아다닐 수 있는 신인이다.
그렇기에 난 멈추지 않을 것이다. 괴물들이 기다리고 있는 그곳으로 넘어가 나 자신을 증명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눈앞의 장애물부터 뛰어 넘어야 한다.
타이탄스의 가을야구, 그리고 우승,
어쩌면 내가 선수로서 빅리그에 데뷔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목표일지도 모른다. 아니, 확실히 그럴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나는 그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에도 야구공을 놓지 않았던 사람이다.
포기는 없다. 나는 무슨 수를 쓰던 이 팀을 가을야구로 데려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우리가 만난 최강의 적을 박살내야 한다. 동료들의 마음속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줘야 한다.
반드시 이 투수의 공을 때려내야 한다.
파앙
“스트라이크!”
노 아웃 주자 1루, 볼 카운트 투 볼 투 스트라이크.
어쩌면 유인구가 하나 더 날아올 수도 있다.
하지만 저 투수가 세계 최강팀의 선발, 나아가 한때 다저스의 에이스라 불렸던 남자였다는 걸 생각하면 생각이 조금 달라질 수밖에 없다.
온다, 반드시 올 것이다.
스륵
뒷발을 단단히 고정하고 타격을 준비한다.
지난겨울 동안 코치에게 수없이 지적당한 내 단점,
나도 모르게 자꾸 움츠러드는 습관, 어떻게든 배트에 맞추는데 급급한 소극적인 태도.
지금은 그걸 버려야 할 때다. 구속이 많이 떨어졌음에도 필요할 때마다 150km/h를 던질 수 있는, 그런 위력적인 공들을 공 반개 차이로 존안에 넣고 뺄 수 있는 투수를 상대해야 하나까.
1루를 한 번 슬쩍 돌아본 애덤 콜린스가 투구 동작에 들어갔다.
스리쿼터에 가까운 그의 폼에서 하얀 공 하나가 떠올랐다.
꿈틀
순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 공에 탑 스핀이 걸려 있다는 걸, 이유는 설명할 수 없지만 그냥 알 수 있었다.
저 투수가 던지는 구종 중 탑 스핀이 걸릴 공은 단 하나뿐.
커브다, 애덤 콜린스라는 투수가 마흔 가까운 나이까지 빅리그 선발 투수로 살아남게 해준 위력적인 커브.
“흐읍!”
포심에 맞춰져 있던 배트 타이밍에 억지로 제동을 건다.
어깨와 허리에 가해지는 하중에 나도 모르게 ‘흡’ 하는 소리가 튀어 나왔다.
투수가 던지는 모든 공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다. 그리고 커브는 그 모든 공들 중 유일하게 중력의 힘보다 더 큰 각도로 떨어지는 구종이다.
배트의 궤도를 수정했다. 보다 아래에서 출발해 조금 더 위로 향할 수 있도록,
거의 골프 스윙에 가까운 극단적인 어퍼 스윙.
부웅
그리고 마침내 오늘 애덤 콜린스가 던진 최고의 커브와 내 배트가 한 점에서 만났다.
따아아아아아아아아악!
“우아아아아아아아”
“간다아아아아아!”
“제대로 맞았다! 제대로 맞았어!”
“이게 바로 부산싸나이의 기백이다! 마! 다들 봤나!”
엄청난 함성소리와 함께 내가 친 타구가 멀리, 아주 멀리 날아갔다.
천정을 거의 스칠 듯 날아간 타구가 정중앙 펜스를 넘어 전광판 한 가운데를 직격했다.
콰아앙!
모르겠다.
더블A 취급을 받는, 명백한 하위리그인 KBO의 꼴찌 팀이 세계 최강 팀에 도전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 오늘 우리가 이 경기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
아무리 나라 해도 그것까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오늘 경기가 끝난 후에는 더 이상 그 누구도 타이탄스라는 팀을 쉽게 볼 수 없을 거라는 거다.
아니, 내가 꼭 그렇게 만들고 말 것이다.
“도준우! 도준우! 도준우!”
“준우야! 네가 최고다! 시발 최고라고!”
**
따아악!
“아웃!”
따악!
“와아아아아!”
따악!
따아악!
– 아! 정말 엄청납니다! 대단합니다! 개막전을 앞두고 치러지는 그냥 평가전일 거라 생각했던 경기가 양 팀의 자존심을 건 혈투가 되고 말았습니다. 8회까지 다저스가 투수 5명, 타이탄스가 11명을 등판시킨 가운데 오늘 경기 처음으로 타이탄스가 승기를 잡았습니다! 그레고리 선수의 2타점 2루타가 터지며 스코어 11대 10! 경기 내내 끌려가던 타이탄스가 마침내 경기를 뒤집었습니다!
– …아, 이거 참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아나운서 님 멘트처럼 처음에는 분명 가볍게 시작한 경기였습니다. 저희도 그만큼 가벼운 마음으로 중계에 나섰고요. 1회 초에 다저스가 석 점을 선취했을 때만 해도 역시나 했던 게 사실입니다. 메이저리그와 KBO리그 사이에는 분명 커다란 격차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 도준우 선수의 석 점 홈런이 모든 걸 바꿔놨죠
– 맞습니다. 그 홈런으로 인해 3대 3 동점이 되었고, 다저스가 다시 6대 3으로 도망가던 3회 말, 신현석 선수의 솔로 홈런과 도준우 선수의 홈런이 터지며 다시 동점이 되어버렸죠. 한 마디로 말해 오늘 이런 분위기를 만든 건 도준우 선수라 할 수 있겠습니다
– 사실 경기 전 알버트 킹 감독이 전력을 다하겠다고 밝히긴 했지만 이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더더욱 의외인 건 다저스죠. 내일 모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개막전을 치를 팀이 이렇게 평가전에 진심일 줄은 몰랐습니다.
– 뭐랄까, 제 생각에는… 역시 KBO 팀에는 질 수 없다는 자존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타이탄스가 수를 내놓을 때마다 피하지 않고 맞받아쳤고,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게 아닐까 싶네요. 양 팀 모두 개막전이 얼마 남지 않은 걸 감안하면 정말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한 그런 경기다, 이렇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 네, 어쨌든 부산 타이탄스가 11대 10으로 앞선 상황에서 9회 초, LA 다저스의 정규이닝 마지막 공격만이 남았습니다. 하위타선이기는 하지만 안심할 수 없죠
– 물론이죠. 말이 하위타선이지, 저 선수들 모두 KBO에서 뛰었으면 무조건 중심타선에 섰을, 아니, 그걸 넘어 역대급 성적을 기록했을 진짜 메이저리거들이니까요
– 한 가지 아쉬운 건… 타이탄스에 동원 가능한 투수가 다 나왔다는 점입니다. 평가전이니 만큼 투수 엔트리를 넉넉하게 준비했음에도 개막전에 등판할 선수들을 제외한 기용 가능한 모든 투수가 다 나왔습니다. 이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8회 마운드에 올라온 김승민 선수가 9회를 마무리지어야 합니다
– 맞습니다. 뭐,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조금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만에 하나 이번 이닝을 못 막고 경기가 뒤집힌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정말 잘 싸웠어요. 타이탄스가 다저스를 상대로 이렇게 선전할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습니까? 대단합니다. 오늘 경기가 올 시즌 탈꼴찌에 도전하는 타이탄스에게 큰 재산이 될 거라 확신합니다
– 그래도 오랜 시간 경기를 지켜본 팬들을 위해 이겨줬으면 좋겠는데요. 말씀드리는 순간, 다저스의 정규이닝 마지막 공격이 시작됩니다. 김승민 선수가 한 이닝을 무사히 막아낼 수 있길 기대해봅니다. 여기는 고척돔입니다
**
따악!
“아웃!”
“좋아!”
“잘했어! 조금만 더! 힘내라!”
“김승민! 할 수 있어!”
“타~이탄스! 타~이탄스!”
“김승민! 김승민! 김승민!”
데뷔 후 5년 간 2군에만 머물던 우완투수 김승민.
웬만한 골수팬 아니면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무명의 투수가 세계 최강팀 LA 다저스의 마지막 파상공세를 막기 위해 마운드에 섰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설마 하던 경기가 뒤집히고, 이러다가 정말 망신을 당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은 다저스 타자들을 상대로 김승민의 유인구가 빛을 발했다.
공은 그리 빠르지 않지만 제구력에는 나름 자신이 있는 24세의 젊은 투수.
결과가 어찌 되든 오늘 타이탄스의 마지막 투수는 그가 될 것이다.
그렇기에 김승민은 공 하나하나에 전력을 다해 던졌다.
잘 던지고 싶다. 이기고 싶다. 감독의 믿음에 보답하고 싶다.
전력을 다한 김승민이 다저스의 7, 8번 타자를 범타로 처리해냈다. 그 두 타자를 잡기 위해 공을 22개나 던져야 했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하지만,
따악
9번 타자가 때려낸 공이 좌측 담장을 직격한 2루타가 되고,
절대 점수를 주면 안 된다는 생각에 김승민의 몸이 잔뜩 굳으며 두 타자 연속 볼넷을 내주는 순간,
“아…”
고척돔이 관중들이 내뿜는 한숨으로 가득 찼다.
이미 비어버린 불펜, 굳은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있는 알버트 킹 감독. 2사 만루 위기에 완전히 넋이 빠져버린 팀의 마지막 투수.
“김승민! 김승민! 김승민!”
“괜찮아! 고개 들어! 잘 했어!”
“아직 끝난 거 아니야! 이길 수 있다고!”
설상가상, 다저스 벤치에서 대타를 요청했다.
컨디션 조절 차원에서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되었던 내셔널리그 최강의 타자이자 다저스의 캡틴 미구엘 로드리게스가 침착한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
“타임! 타임!”
결국 타임이 요청되고 타이탄스의 수석코치가 마운드에 올랐다.
내외야에 있던 모든 수비수들이 그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킴, 괜찮아? 더 던질 수 있겠어?”
“네, 괜찮습니다. 코치님.”
“그래? 그럼… 음, 잠시만. 그 손 좀 이리 줘봐.”
“아뇨, 진짜 던질 수 있습니다.”
“다른 말 말고 손 내놔 보라고!”
코치의 말에 김승민의 고개가 툭 떨어졌다.
투수의 손을 확인한 코치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이러고도 괜찮다고? 손가락 피부가 벗겨지고 있는데? 안 돼. 오늘만 야구하고 말 거야? 이제 곧 개막인데 시즌은 안치를 거야?”
“하지만 코치님! 저 아니면 던질 수 있는 투수도 없습니다. 이 경기 제가 마무리할 수 있게 해주십쇼.”
“헛소리! 잔 말 말고 이제 그만 마운드에서 내려와. 경기중단을 요청할 테니까.”
“코치님!”
두 사람 간에 오가는 대화를 들은 타이탄스 선수들의 고개가 동시에 땅으로 툭 떨어졌다.
딱 한 걸음, 딱 한 걸음 남았을 뿐이다.
비록 그 마지막 상대가 내셔널리그 최강의 타자라는 게 문제이긴 했지만 저 타자만 잡아낼 수 있다면 오늘 타이탄스는 자신감이라는 엄청난 트로피를 받아 든 채 부산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팀에 마지막 남은 투수의 손가락이 벗겨지다니.
낙담한 투수가 아무 말도 못하고, 마침내 결론을 내린 수석코치가 감독을 향해 경기중단 사인을 보내려던 그때,
“제가 던지겠습니다.”
누군가의 입에서 그 말이 나왔고,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도준우였다.
오늘 경기 두 개의 홈런과 다섯 개의 타점을 올린,
침몰하는 타이탄스를 여기까지 이끌고 온,
165.2km/h라는 아시아 최고구속 기록을 보유한 투수가 말했다.
“연습투구를 할 시간만 조금 벌어주시면 나머지 한 타자 제가 상대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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