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leased pitcher returns as a diamond RAW novel - Chapter (44)
방출당한 투수가 금강불괴로 돌아옴-44화(44/172)
44화. 쓰레기
“야, 도준우, 갑자기 공을 던지겠다고? 아니, 그건 둘째 치고 너 아까 등 부딪힌 건 괜찮아? 정말 다친 데 없는 거야? 불편한데 억지로 참는 거 아니지?”
“괜찮아. 그보다 빨리 홈플레이트로 돌아가. 심판이 노려본다.”
“어, 그래. 시발. 이게 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 어쨌든 기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해보자. 대신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바로 말 하고.”
경기 전 들었던 불길한 예감처럼,
온갖 안 좋은 일들이 다 벌어지고 있는 오늘 경기에서,
정확히는 지난 수비이닝에서,
나는 깨달았다.
아니,
마침내 알게 되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쾅!
– 아아! 도준우 선수가 불펜 게이트에 충돌했습니다! 상당히 큰 소리가 났는데요,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 사직 구장 구조변경을 하면서 저 부분에 안전망이 설치되지 않았는데요. 아, 저거 진짜 여러 번 지적을 했는데 결국 사고가 터지고 마네요
– 그나마 다행입니다. 큰 부상은 아닌 것 같습니다. 도준우 선수가 괜찮다는 듯 손을 들어 보입니다
파울 타구를 잡기 위해 너무 집중한 나머지 외야 불펜으로 이어지는 철제 게이트에 등을 부딪히고 말았다. 충돌 순간 바로 부상을 떠올릴 정도로 느낌이 좋지 않았다. 정상적이라면 거기서 나는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음… 아무 이상 없는데요? 도준우 선수, 혹시 작게라도 통증이 느껴지는 곳이 있습니까?’
‘…아뇨, 전혀’
‘그게 말이 돼? 그렇게 큰 소리를 내면서 부딪혔는데?’
‘글쎄요… 운이 좋았던 걸까요. 아무튼 예방 차원에서 교체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트레이너로서 제 의견을 묻는다면 아무 이상도 없다입니다. 확인 차원에서 영상은 한 번 찍어보는 게 좋겠지만요’
‘허어… 이것 참… 준, 정말 괜찮은 건가?’
‘네, 아무 문제 없습니다. 계속 뛰겠습니다’
누가 봐도 큰 부상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나는 아무런 부상도 입지 않았다.
순간, 마치 머리에 번개를 맞은 것처럼 뭔가가 번쩍하고 지나갔다.
회귀 후 지금까지 내게 벌어졌던 일,
그러니까 갑자기 타격 파워가 엄청나게 늘어난 일이라든지, 원래대로라면 고장 일보직전이었을 오른팔이 마치 새것처럼 멀쩡했던 일, 그리고 방금 벌어진 일까지,
그 모든 퍼즐조각들이 머릿속에서 해체되고 조합되어 결국 하나의 결론을 향해 나아갔다.
‘맙소사…’
‘야, 도준우, 너 갑자기 왜 그래?’
그래, 그거였구나.
허름한 음식점에서 다은이와 마지막으로 나눴던 이야기, 그리고 회귀,
바로 그게 원인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겪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의 원인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이다은, 너 대체 나한테…
“준우야! 시작하자!”
끄덕
파앙!
파아앙!
내 생각이 맞다면,
나는 회귀와 함께 부상을 거의 당하지 않는, 99%의 확률로 부상을 피할 수 있는 몸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음, 이게 그러니까…
미친, 이거 정말 끝내주는데?
“공 좋다! 몇 개만 더!”
파앙!
파아앙!
오랜 시간 내 몸과 마음을 옥죄던, 단단하고 억센 족쇄 하나가 방금 풀려버렸다.
14년이라는 시간을 건너 나는 처음으로 부상에 대한 공포 없이 공을 던질 수 있게 되었다.
그 사실이 내 몸과 마음을 날아갈 것처럼 가볍게 만든다.
“플레이!”
연습투구가 끝나고 경기가 재개되었다.
갑작스러운 상황변화에 놀란 홈팬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본다.
무사 주자 1, 3루, 타석에는 오늘 이런 상황을 만든 주범 중 하나인 오경식.
저 멍청이들은 모를 것이다.
자신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그 짓거리로 인해 방금 무엇이 풀려났는지.
내가 가진 투구 폼 중 가장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는, 하지만 부상의 위협으로 인해 봉인해야했던 그 폼을 꺼내들었다.
오랜 속박에서 벗어난 내 팔이 힘차게 위에서 아래로 뻗어져나갔다.
그리고,
쒜에에에에엑
뻐어어어어어엉!
**
– 배, 배, 백육십구! 백육십구 키로미터가 나왔습니다! 방금 도준우 선수가 던진 공이 한국 프로야구 최고구속인 169.1km/h를 기록했습니다! 으아! 정말 대단합니다!
– 이게 대체… 대체 무슨 일인가요! 느닷없이 여기서 최고구속 경신이라니!
– 아! 오경식 선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도준우 선수가 미안하다는 듯 손을 들어 보입니다! 하마터면 169km/h짜리 공에 맞을 뻔 했어요!
– 네, 제가 보기엔 오랜만에 마운드에 오른 도준우 선수가 빠른 공을 던지려다보니 손에서 공이…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고 허어, 정말 저 선수는 사람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네요. 여기서 갑자기 최고구속이라니요!
└ 아무래도 오경식 쟤 지린 거 같은데…
└ 오경식은 모르겠고 난 확실히 지린 듯 ㅅㅂ 진짜 개쩌네
└ 169면 세계기록인가?
└ 아니, 아롤디스 채프먼 170.3이 최고기록임. 비공인은 그보다 좀 더 높지만 어쨌든 공식은 그럼
└ ㅅㅂ… 미친… 쟤 고등학교 때 165 던졌다며, 그런데 갑자기 169가 나온다고?
└ 됐고, 그딴 거 다 필요 없고 ㅋㅋ 시발, 진짜 가슴이 웅장해진다. 꼴빠 생활 21년 만에 이런 기분은 처음이다
└ 그래 시발 다 필요 없고 죽여! 저 개새끼들 박살을 내라고!
한 점 차 뒤진 가운데 맞이한 무사 1, 3루 절호의 찬스.
동점, 혹은 역전을 기대하던 파이터즈의 기세가 공 하나에 완벽하게 잠재워졌다.
169.1km/h, 마일로 환산하면 105.1마일, KBO 레벨에서는 볼 수도 없고, 볼 일도 없으리라 여겨졌던 광속구.
생명의 위협을 느낀 오경식이 얼굴을 붉히고 심판에게 소리쳤다.
“시발! 이거 누가 봐도 빈볼이잖아요! 보복구잖아!”
“보복구? 그럼 아까 이재석이 던진 게 빈볼이라는 걸 인정하는 거야?”
“……”
“판단은 내가 한다. 지금은 누가 봐도 오랜만에 마운드에 올라 어깨가 안 풀린 거였어. 그리고 오경식, 잖아는 반말이다. 나 너 10년 선배야. 그걸 잊지 말라고.”
싸늘한 심판의 목소리에 오경식의 항의가 사그러들었다. 할 말이 없어진 그가 다시 타격자세를 취했다.
순간 오경식과 도준우의 눈빛이 한 점에서 만났다.
오경식은 생각했다.
‘시발, 무슨 어린놈 새끼 눈깔이…’
이제 열여덟 밖에 안 된 놈이 어떻게 저런 분위기를 풍긴단 말인가. 가뜩이나 움츠러들었던 그의 어깨가 더욱 더 쪼그라들었다.
결국
뻐어어어엉!
“스트라이크!”
뻐어어어엉!
“스트라이크!”
부웅
“스윙! 아웃!”
165에서 168km/h를 오가는 포심 세 개에 속절없이 삼진,
파이터즈 응원석이 침묵에 잠겨들었다. 야유조차 보낼 수 없는 압도적인 힘 앞에 그들 모두가 침묵했다.
그리고 계속되는 삼진 행렬
뻐어어엉!
“스트라이크! 아웃!”
부웅
“스윙! 아웃!”
5회 초 파이터즈가 맞았던 무사 1, 3루 황금 같은 역전 찬스가 삼진 세 개로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
따아아아아아아악!
– 아아! 큽니다! 큽니다! 큽니다! 넘어갑니다! 오늘 경기 두 번째 홈런! 3회 말 투런 홈런을 때려낸 도준우 선수가 5회 말, 연타석 홈런을 쏘아 올립니다! 스코어 3대 1! 타이탄스가 두 점 차로 앞서갑니다!
– 와… 진짜 야구 혼자 한다는 말이 저렇게 잘 어울릴 수 있을까요? 무사 1, 3루 위기에 등판해 세 타자 연속 삼진을 잡아낸 투수가 이어진 공격에서 바로 홈런을 때리다뇨. 대단합니다! 아니, 대단하다는 말로는 도저히 표현이 안 됩니다!
5회 초 구원 등판해 오경식을 시작으로 세 타자 연속 삼진을 잡아낸 도준우가 다음 타석, 한 점을 달아나는 솔로 홈런을 쏘아 올렸다.
정규시즌 1위 등극, 도준우의 활약에 고무된 부산 팬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쓰레기봉투를 머리에 쓴 팬들이 입을 모아 ‘마!’를 외쳐댔고, 경기장 여기저기에서 감격에 젖은 부산 갈매기가 울려 퍼졌다. 너무 흥분해 안전망을 타고 넘으려던 여성 팬 하나가 관리요원에 의해 어디론가 끌려갔고, 대체 어떻게 숨겨 들어온 것인지 관중석 여기저기서 폭죽이 발사되었다. 그리고 백발이 성성한 노인 팬 하나가 안전망에 찰싹 달라붙어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도준아! 마! 니 어데갔다 나 죽을 때 다 돼가니 나타났노!”
지금 사직구장은 그야말로 축제, 혹은 광란의 도가니였다.
그런 경기장의 분위기가 타이탄스 선수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따악!
따아악!
따아아아악!
6회 말, 최호석이 때려낸 큼지막한 타구가 좌중간 펜스를 직격하며 두 점,
7회 말, 도준우의 안타에 이은 강재호와 그레고리의 백투백 홈런이 터지며 다시 석 점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그 사이 파이터즈의 타자들은 도준우에게 삼진 7개를 헌납하며 완벽하게 짓눌렸다.
원정 응원석에 앉아 있던 몇 안 되는 파이터즈 팬들이 우르르 경기장을 빠져나갔고, TV와 스마트폰으로 경기를 지켜보던 이들이 한숨을 푹 쉬며 중계를 꺼버렸다.
8회 초 8대 1,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갖기엔 너무나도 일방적인 경기 분위기, 모든 것을 포기한 파이터즈 덕아웃이 주전들을 빼고 백업들을 대거 투입한 가운데,
오늘 이 사단을 만든 주인공 중 하나인 오경식이 마지막 타석에 들어섰다.
**
“준, 어깨 상태는 어때? 투구 수가 45개를 넘겼는데, 조금이라도 이상 있으면 바로 말하라고. 젠장,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리는군. 자넨 정말 최고야. 그리고 난 최고의 투수에게 어떤 문제도 일어나지 않길 바라.”
“코치, 저 원래 선발투수였습니다. 100개 넘게 던지고 이틀 쉬고 바로 마운드에 오른 적도 있고요. 이 정도는 아무 문제없습니다. 이번 이닝까지는 충분합니다.”
“그래, 음, 물론 그렇긴 한데… 좋아, 자네가 이번 이닝까지 막아준다면 박태민을 아끼고도 경기를 마무리할 수 있겠지. 알았어, 그럼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을 거 같으면 바로 얘기하라고.”
“알겠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아니, 어쩌면 난생 처음,
부상에 대한 걱정 없이 신나게 공을 던졌다. 그 기분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최고다. 이 말 외에는 뭐라 표현할 말이 없다.
“플레이!”
코치의 말처럼 벌써 50개 가까운 공을 던졌다. 부상을 당할 확률이 낮다 해서 스테미나가 무한인 건 아니다. 꽤나 오래 공을 안 던진 내 어깨에 조금씩 피로감이 쌓여가고 있었다. 하지만 예전에 비해 훨씬 강해진 악력이 그것을 커버해준다.
그렇기에 나는 아직 마운드를 내려갈 생각이 없다.
오늘 경기를 확실히 잡아내기 위해, 그리고 저기 타석에서 입술을 꽉 깨물고 있는 쓰레기 같은 자식에게 또 한 번의 지옥을 보여주기 위해.
스륵
생각해보면 지난 삶에서 나는 패배자이며 방관자였다.
선수로서의 커리어는 어디 하나 내세울 것이 없었고, 그런 성적으로 밥벌이를 하기 위해 팀 내에서 벌어지는 온갖 부조리를 못 본 척, 눈과 귀를 닫고 지냈다. 지난 삶에서 타이탄스라는 팀이 막장 중의 막장으로 치달은 데는 작게나마 내 책임도 있었다.
그때는 그렇게 스스로를 위안했다.
먹고 살려면 그냥 못 본 척 참아 넘기자, 내가 이 구단의 주인도 아닌데 굳이 열 낼 필요 없다, 이건 그냥 직장일 뿐이고 나는 거기서 월급을 받는 고용자에 불과하다.
시발,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바로 그게 문제였다.
아무리 투수로서의 재능을 잃었다 해도, 여기저기 망가진 몸을 이끌고 타자로 전향했어야 했다 해도,
그래서는 안 됐다. 야구를 단순한 의무나 직업으로 생각해서는 안 됐다.
팀을 위해서가 아니라 도준우라는 선수의 발전을 위해,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러기 위해서는,
좀 더 적극적이어야 했다. 팀 분위기를 좀먹는 쓰레기들을 그냥 두고 봐서는 안 됐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조차 그냥 못 본 척해서는 안 됐다. 그런 소극적이고 무사안일했던 태도가 결국 팀, 그리고 나를 동시에 망가뜨린 것이다.
내가 좀 더 노력했다면, 회귀 전 그 허름한 음식점에서 다은이가 그런 말을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최고는 못 되었더라도 적어도 야구선수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어 나와 다른 사람들 앞에 당당히 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땐, 그땐 그걸 몰랐다.
슈우우우우웅
뻐어어엉!
“스트라이크!”
회귀 전, 오경식이라는 저 쓰레기가 동료들에게 했던 짓들이 다시 한 번 떠오른다. 데뷔 첫 등판을 앞둔 신인 투수에게 신고식이라는 명목으로 술을 처먹이고, 자신과 친한 타 팀 타자에게 일부러 안타를 맞아주라고 시키고,
다른 지역 출신 선배의 조언에 고개를 끄덕였다는 이유로 후배를 왕따 시키고, 그 후배 앞으로 들어온 팬들의 선물과 스폰서의 야구용품을 자기 앞으로 빼돌리고,
10연패를 당한 후에도 부끄러운 기색 하나 없이 따까리들을 주렁주렁 달고 부산 밤거리를 왕처럼 배회하던 오경식의 모습. 그리고 한 발 뒤로 물러나 아무 말 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
슈우우우웅
뻐어어어어엉!
“스트라이크!”
저기 홈플레이트에 앉아 있는 내 가장 친한 친구에게, 응원석에 앉아 내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여자친구에게, 소중한 가족들에게,
오늘 경기 내내 내 이름을 외쳐주는 팬들에게,
그리고 누구보다 당당한 야구 선수가 되고 싶은 나 자신에게,
맹세한다. 앞으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나는 절대 비겁하게 살지 않을 것이다.
절대.
그 마음을 담아 글러브 속 마지막 포심의 그립을 잡았다.
오경식의 두 눈에 독기가 줄줄 흐르고 있지만,
상관없다. 저런 쓰레기의 독기 따위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승리를 확신하며 마지막 공을 던지기 위한 투구동작에 들어갔다.
여전히 힘이 살아 있는 하체에서 에너지가 쏟아져 나온다. 그 에너지를 이어받아 허리로, 어깨로, 다시 손끝으로,
파앗
하얀 공 하나가 오경식의 몸 쪽을 향해 힘차게 쏘아져나갔다.
그리고,
부웅
뻐어어억!
공에서 한참 벗어난 허공에 휘둘려진 오경식의 배트 끝이 내 친구의 헬멧 뒤편을 가격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