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leased pitcher returns as a diamond RAW novel - Chapter (48)
방출당한 투수가 금강불괴로 돌아옴-48화(48/172)
48화. 첫번째 세이브
“설사 실패해도 괜찮아. 모든 건 감독인 내 책임이니까. 그러니 자네는 그냥 자네가 할 수 있는 것만 하면 돼.”
“준우야. 편하게 던져, 편하게. 형들이 어떻게든 잡아줄 테니까.”
“야, 도준우. 괜찮은 거지? 우리 고등학교 때 생각해봐. 이보다 더 심한 적도 많았잖아. 안 그래?”
데뷔 후 첫 세이브 기회에 등판하게 된 나를 걱정하는 동료들.
“자! 관중 여러분,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더 힘차게 도준우 선수의 이름을 외쳐야 합니다!”
“도준우! 도준우! 도준우!”
4연패를 당하며 역시 이 팀은 안 되는구나 시름에 빠져 있던 부산 팬들.
“준우야! 준우야! 나 여기 있어! 도준우!”
그리고 이 엄청난 소음을 뚫고 기적처럼 내 귓가에 들려오는 다은이의 목소리.
그 모든 소리들을 차곡차곡 마음속에 눌러 담으며 연습투구를 시작했다.
파앙
파아앙
파아아앙
지난 파이터즈 전 때와는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그때는 점수 차가 크게 나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가 너무 열이 받아 무아지경에 빠진 상태였으니까.
한 방이면 동점, 혹은 역전까지도 허용할 수 있는 이런 위기 상황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래서 떨리냐고? 긴장되냐고?
“풋.”
아니, 그냥 웃음이 나올 뿐이다.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지금 내 머릿속에 있는 건 잘 안 되면 어쩌지 하는 부담감, 혹은 공포같은 게 아니다.
기쁨, 전율, 기대감, 혹은 환희.
이런 순간을 얼마나 고대했던가.
세상 자기가 제일 잘났다 생각하던 까까머리 야구선수가 프로 입단도 전에 어깨부상을 당하고, 재활과 복귀를 수차례 반복하며 결국 마운드를 떠나야했던 회귀 전의 기억.
제발 단 하루라도 부상 걱정 없이, 예전 그 때로 돌아가 공을 던질 수 있길 얼마나 바래왔던가.
나는 지금, 지난 십 수 년 간 기다려온 그 기회를 마침내 잡게 되었다.
파앙
파아앙
가볍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가볍다. 준비 기간이라 봐야 겨우 닷새뿐이었건만, 투구 코디네이터 톰 워커는 내 몸을 투수 비슷한 것으로 만들어주었다.
아직 투구 폼 조정은 멀고도 멀었고, 제대로 된 세컨 피치와 서드 피치를 장착하는 건 멀고도 먼 일이겠지만, 그렇기에 오직 포심 하나에 모든 걸 걸어야 하지만,
파앙
파아앙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이렇게 부상 걱정 없이 공을 던질 수 있는 것만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파앙
심판의 재량에 따라 조금 넉넉히 주어졌던 연습투구 시간이 끝나고,
“준, 부탁한 게 이게 맞나? 자네 배트 있는 곳에 있던데.”
“네, 맞네요. 감사합니다. 코치.”
다급히 뛰어나온 코치에게서 부탁한 물건을 건네받았다.
부산의 에이스라면 무조건 착용해야 한다는 전설의 물건,
안경알이 없는 금테 안경,
그것을 얼굴에 걸치고 본격적인 투구 준비를 시작했다.
**
– 오… 저것은…
– 원래 도준우 선수가… 안경을 썼던가요? 전 처음 보는 거 같네요?
– 아뇨, 그런 건 아니고, 보세요. 렌즈가 없네요. 아아, 이건 팬서비스군요! 혹은 오늘 경기를 어떻게든 잡아내겠다는 의지일 수도 있구요
– 아아, 그렇군요! 이야, 부산 관중들이 정말 좋아합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서 도준우의 이름을 외치고 있습니다!
– 그럴 수밖에요. 안경 쓴 에이스가 등장할 때마다 한국시리즈를 우승했던 팀이 바로 부산 타이탄스잖습니까? 하하, 어쩌면 정말 도준우 선수로 인해 이 팀이 다시 그때의 영광을 되찾을 수도 있을 거 같네요
└ 야 지금 우는 거 나 혼자냐?
└ 난 티슈 한 통 다 쓰고 두 통째다 걱정마라 동지
└ …내 살아생전에 이런 모습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하;;;
└ 진짜 많은 생각이 든다. 시발 야구 보다가 울컥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 왜 이 팀은 안경 에이스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거냐, 응?
└ 설마 우리 준우 올 시즌 내내 불려 다니는 거 아니겠지? 아무 때나 등판해서 어깨 다 갈리는 건 아니겠지?
└ 여까지 왔는데 우짜겠노 이딴 소리 하는 인간 또 나오면 이번에는 진짜 갈아 마셔버릴 거다
└ 그나저나… 잘 막을 수 있을까? 공 하나만 잘못 던지면 바로… 하, 나 같으면 심장 떨려서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거 같은데
└ 쉿, 부정 탈 소리 그만하고 그냥 야구나 봐라. 어차피 도준우가 못 막으면 아무도 못 막는 거니까
**
“플레이!”
심판의 콜 사인과 함께 중단되었던 경기가 재개되었다.
팀의 3연승이 걸린 중요한 경기, 결정적인 역전 찬스에 타석에 서게 된 유승택이 마운드 위 렌즈 없는 안경을 치켜 올리는 후배를 바라보았다.
시즌 초반 리그 최강의 타격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 나아가 지난 파이터즈 전에서 KBO 역대 최고 구속인 169km/h를 기록한 괴물 신인 도준우.
두 말 할 것 없이 대단한 녀석이다. 아마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올 시즌 신인왕은 무조건 저 녀석 차지가 될 것이다. 레인저스에도 꽤 쓸 만한 신인들이 입단했지만 도준우와는 차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이다.
유승택이 정말 놀란 건 아직 열아홉 살도 안 된 핏덩어리같은 녀석이 이 절체절명의 위기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떻게 아냐고?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다. 저건 난생 처음 세이브 상황에 등판한 열여덟 애송이의 얼굴이 절대 아니다.
방금 전 감독이 말했다. 그래봐야 신인이라고, 그러니 최대한 공을 지켜보면서 스스로 무너지도록 유도하라고.
헛소리.
아무래도 감독이 그라운드를 떠난 지 너무 오래 되어 감을 잃은 것 같다. 매일 모니터로 야구를 보며 데이터에 집착한 나머지 진짜 중요한 게 뭔지 잊은 것 같다.
마운드 위 녀석의 눈을 보라. 렌즈 없는 안경테 뒤에 숨은 저 강렬한 눈빛을 보란 말이다. 저 녀석은 호랑이다. 타고난 맹수다. 존재만으로 모든 동물들을 얼어붙게 만드는 밀림의 제왕이다.
그렇기에 선공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기다린다고 해서 해결되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저런 맹수를 사냥할 때는 절대 틈을 줘서는 안 된다. 녀석이 아직 제 자리를 잡지 못했을 때 가장 크고 강력한 총을 발사해 단숨에 처리해야 한다.
KBO 타자 중 통산 득점권 타율이 가장 높은 유승택이 배트를 꾹 쥐고 도준우를 노려보았다.
스륵
저 녀석의 고교 시절 영상, 그리고 지난 파이터즈와의 경기에서 던진 투구 영상은 충분히 돌려보았다. 올드 스쿨과 뉴 스쿨 사이 중간 어디쯤에 걸쳐 있는 오버핸드 투구 폼. 고교시절보다 팔각도가 더 올라가서 그런지 타점이 더욱 높아졌다.
일단 큰 것 욕심은 버린다. 저런 공을 어퍼 스윙으로 쳐낸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최대한 가볍게, 여전히 어설픈 타이탄스 내야진 사이로 타구를 보낸다는 생각으로.
슈웅
생각이 정리되고,
마침내 도준우의 손에서 공이 떠났다.
“흡!”
자기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기합성과 함께 유승택이 배트를 내밀려는 순간,
뻐어어어엉!
“스트라이크!”
“으응?”
도준우가 던진 공이 굉음을 내며 포수 미트에 틀어박혔다. 유승택이 내민 배트는 아직 채 반도 돌아가지 못한 상태였다.
“이게 대체…”
유승택이 얼빠진 표정으로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 도준우가 던진 공의 구속이 표기되어 있었다.
167.9km/h, 2,790RPM.
유승택은 몰랐다. 아니, 설사 미리 알았다 해도 큰 차이는 없었을 것이다.
포심 구속이 145km/h만 넘어도 강속구 소리를 듣고, 150km/h가 넘으면 언터처블 취급을 받는 KBO에서 170km/h에 가까운 공이 어떤 의미인지.
애초에 140에서 150 사이 공에 길들여진 KBO 타자들에게 170에 가까운 도준우의 공은 그야말로 마구 그 자체였다.
뻐어어어엉!
“스트라이크!”
또 하나의 마구가 존안으로 파고 들고,
부웅
“스윙! 아웃!”
에라 모르겠다 하고 돌린 스윙이 허공을 가르며,
“우아아아아아아!”
“마! 다들 봤나! 부산 에이스가 바로 저 녀석이다!”
“오늘부터 네가 부산 시장, 아니, 대통령이다!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해라!”
“도준우! 도준우! 도준우!”
순식간에 삼진 아웃.
그리고 다음에 등장한 6번 타자 역시,
뻐어어어엉!
“스트라이크!”
부웅
“스윙!
뻐어어어어엉!
“스트라이크! 아웃!”
유인구도, 견제구도, 변화구도, 그 어떤 것도 필요치 않았다.
그저 포심 세 개를 존안에 넣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8회 초 찾아왔던 1사 만루 위기가 도준우의 공 여섯 개에 말끔히 해소되었다.
**
뻐어어어엉!
“스트라이크 아웃!”
부웅
“스윙! 아웃!”
“우아아아아아아아!”
8회 말 부산이 추가점 없이 공격을 마무리한 가운데 인천의 정규이닝 마지막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8회에 이어 다시 마운드에 오른 도준우가 인천의 7번, 8번 타자를 연속 삼진으로 잡아냈다.
한줌 밖에 안 되는 인천 원정 응원석이 침묵에 잠겼고, 몇몇 관중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이미 패배는 기정사실이었다.
하지만,
“타임! 대타!”
오직 한 사람, 인천 감독 홍명선 만큼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야구는 컴퓨터 게임이 아니다. 야구 선수 역시 게임 속 캐릭터가 아니다. 아무리 엄청난 피지컬과 대단한 실력을 갖고 있다 해도 실전에서 그걸 백 프로 발휘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이다.
그렇기에 홍명선은 도준우가 170km/h에 가까운 광속구를 뿌려대는 걸 보면서도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조금 못 미치지만 KBO 역사에서도 160km/h가 넘는 공을 보유하고도 별다른 성과 없이 은퇴한 투수들이 한 둘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뻐어어엉
“스트라이크!”
도준우는 달랐다. 저 녀석은, 저 녀석은 그냥 공만 빠른 애송이가 아니었다.
그는, 그는…
“젠장, 그 녀석 말이 맞았군. 내가 야구를 너무 데이터로만 봤어. 세상에는 저런 괴물도 존재하는 법인데.”
지난 8회 초 공격, 1사 만루 상황에서 삼진을 먹은 유승택이 했던 말, 세이버매트릭스도 좋지만 가끔은 그 많은 데이터들이 오히려 본질을 흐릴 수도 있다는, 선수가 감독에게 하기엔 조금 주제넘을 수도 있지만 어딘가 마음에 남았던 그 말이 다시 떠올랐다.
그래, 인정해야겠다.
도준우라는 녀석은 얄팍한 커리어, 부족한 경험, 어린 나이, 그런 것으로는 도저히 측량할 수 없는, 누군가의 말처럼 오직 야구를 위해 태어난 그런 생명체일지도 몰랐다.
“후…”
한숨을 푹 내쉰 홍명선 감독이 팔짱을 낀 채 입을 닫았다.
마지막까지 아껴둔 대타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기적은 없었다.
부웅
“스윙!”
타자의 배트가 허공을 가르고,
뻐어어어어엉!
“스트라이크! 아웃! 게임 셋!”
오늘 도준우가 던진 공 중 가장 빠른, 168.1km/h라는 말도 안 되는 구속의 공이 포수 미트에 틀어박히며,
그렇게 인천의 3연승 도전은 실패했고, 도준우가 빠진 경기에서 전패를 당한 부산 타이탄스의 4연패도 마침내 막을 내렸다.
도준우 프로 세이브 상황 첫 등판,
1과 2/3이닝 투구 수 19개 5K 무실점 세이브.
그의 커리어에 첫번째 세이브의 기록이 새겨졌고,
“도준우! 도준우! 도준우!”
“오늘 우리 집에 안 갈거다! 도준우! 최고다!”
“으아아아! 진짜 최고다! 시발! 도준우! 으아아아!”
부산 팬들의 마음속에 도준우라는 이름이 선명히, 아주 선명히 새겨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