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leased pitcher returns as a diamond RAW novel - Chapter (80)
방출당한 투수가 금강불괴로 돌아옴-102화(80/172)
102화. 한국시리즈 (5)
투수가 던지는 모든 공에는 노림수가 담겨 있다. 삼진을 잡기 위한 공, 땅볼을 유도하기 위한 공, 뜬 공을 유도하기 위한 공.
물론 그 노림수가 매번 효과를 발휘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투수는 그렇게 생각하고 던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가끔은 같은 땅볼이라고 해도 타구의 방향까지 유도하려는 투수들이 종종 있다. 제구력이 좋고 맞춰 잡는 유형의 투수들이 여기에 속한다.
‘흠…’
그런 면에서 볼 때 오늘 타이탄스의 선발인 라이언 에반스는 그렇게까지 제구력이 정교한 투수는 아니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몰라도 KBO 레벨에서는 오히려 파워피처에 속하는 선수였다.
하지만 포심과 커터, 투심이라는 구종의 조합은 어느 정도 그걸 가능하게 해주었다. 포심처럼 보이는 공이 하나는 변화 없이, 또 하나는 타자 반대 방향으로, 마지막 하나는 역 방향으로 휘어 들어가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도준우…’
2회 초 수비, 라이언 에반스가 유격수 쪽으로 타구를 유도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다.
올 시즌 그가 15승을 올리기까지 타석에서, 그리고 외야에서 엄청난 도우미 역할을 한 1년차 신인, 당장 메이저리그에 던져놔도 주전을 먹을 게 분명한 슈퍼루키 도준우.
아무리 승리라는 지표가 예전에 비해 큰 대접을 받지 못한다 해도 15승 투수라는 타이틀은 연봉협상에 있어 분명 큰 무기다. 그렇기에 라이언은 도준우가 하는 일이라면 그게 뭐든 손을 들고 환영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유격수? 유격수라고?
도준우가 선발 유격수로 이름을 올렸을 때 라이언은 불안했다. 아무리 뛰어난 야구센스와 운동능력을 가진 선수라 해도, 과연 저 덩치로, 시즌 내내 한 번도 뛰어보지 못한 유격수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
물론 그런 걱정은 1회 수비와 함께 깨끗하게 날아갔다.
천재는 어디에 서든 역시 천재였다.
‘커터? 아니, 투심으로 가자고 친구’
‘그래? 오케이’
최호석의 커터 사인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신 투심을 선택했다.
라이언 에반스가 던진 공이 매지션스의 4번 타자 지채민의 몸 쪽을 향해 파고 들었다. 의도했던 것보다 살짝 중앙으로 몰린 느낌이 있지만 그래도 납득할 수 있는 공이었다.
이번 시리즈에서 꽤 괜찮은 타격감을 유지하고 있는 지채민이 망설임 없이 배트를 돌렸다.
딱!
공이 타자 몸 쪽으로 역회전하며 배트 안쪽에 맞았다. 하지만 지채민의 파워가 타구에 힘을 더했다. 강한 땅볼 타구가 3루수와 유격수 사이 공간을 향해 날아갔다. 누가 봐도 안타가 될 것 같은 그런 코스였다.
하지만,
턱
“아웃!”
“우아아아아아!”
“뭐야? 언제 저기 가 있었는데?”
정상 수비위치보다 한 발 뒤로 물러나 있던 도준우가 다이빙 캐치로 타구를 낚아챘다. 그리고 그라운드에 무릎을 댄 상태에서 그대로 앉아 쏴. 그 화려하고 파워풀한 플레이에 타이탄스 팬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 가장 미치겠는 건 그 타구를 친 타자였다.
“…하, 시발. 진짜 이게 뭐지?”
다음으로 미치는 건 방금 전 앉아 쏴 상태로 던진 송구를 본 빅리그 스카우터들이었고,
“방금… 송구속도가 몇 마일이나 나왔을까?”
“진짜 신체능력 하나는 타고났군. 괴물이야.”
“저 정도면 정말 유격수를 시켜도 될지도…”
마지막으로 미친 건 자신의 뜻대로 타자를 잡아낸 라이언 에반스였다.
“퍼킹! 바로 이거지! 이봐! 준! 빨리 이기고 근사한데 가서 밥이나 먹자고! 내가 쏘지! 제일 비싼 걸로!”
**
프로야구 창단 후 45년 간 부산 타이탄스는 두 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맛봤다. 그리고 그 두 번의 우승은 팀의 에이스를 말 그대로 갈아 넣어 만든 우승이었다.
첫 우승이던 1984년에는 팀의 운명을 책임진 안경 쓴 에이스가 1, 3, 5, 7차전에 선발로 등판했다. 하루걸러 하루 선발이라는, 현대 야구시점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정이었다. 심지어 그 투수는 6차전에 구원으로 등판해 5이닝을 던지기도 했다.
1차전 9이닝, 3차전 9이닝, 5차전 8이닝, 6차전 구원등판 5이닝, 7차전 다시 9이닝.
그는 한국시리즈 7경기 중 5경기에 등판해 홀로 4승을 따냈고 전설이 되었다.
그렇게 에이스의 어깨를 갈아 넣어 만든 첫 우승으로부터 8년 후 타이탄스는 대전 팔콘스를 상대로 두 번째 우승에 도전했다.
당시 타이탄스에는 옛 전설의 뒤를 잇는 또 다른 안경 에이스가 있었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그는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평균자책점 2.33, 17승 9패 6세이브를 기록했다.
아직 스물도 안 된 신인이었던 그는 정규시즌과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 한국시리즈까지 235이닝을 던지며 팀을 한국시리즈 챔피언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혹사의 후유증으로 에이스에서 그냥 평범한 투수로 전락하고 말았다.
“플레이!”
이런 과거를 가졌기에, 부산에는 이런 말이 있다. 타이탄스를 우승시키기 위해서는 안경 쓴 에이스의 희생이 필요하다고.
현 시점 부산의 에이스는 누가 뭐래도 도준우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부산의 프런트나 코칭스태프는 도준우를 혹사시킬 생각이 전혀 없었다. 설사 그럴 의도가 있다 해도 팬들이 그걸 용납하지 않을 것이고 말이다.
때문에 도준우는 과거 타이탄스의 에이스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팀을 이끄는 중이다.
따아아악!
– 쳤습니다! 잘 맞은 타구가 좌중간으로! 중견수가 몸을 날… 잡지 못합니다! 뒤로 빠졌습니다! 그 사이 1루 주자 강재호가 홈까지! 도준우 선수는 2루를 돌아, 3루! 3루! 세이프! 세이프입니다! 3대 0으로 달아나는 1타점 3루타!
– 아, 이동준 선수가 정말 괴로워하는군요. 오늘 경기에서 어떻게든 승리해 우승트로피를 가져오겠다던 매지션스의 에이스가 3이닝 동안 석 점을 내주고 맙니다
– 이렇게 되면 괜히 승부를 했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는데요?
– 아뇨, 방금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도준우 선수를 거르면 무사 1, 2루가 되는데 그 뒤 그레고리와 유승택 선수의 타격감이 정말 좋거든요. 자칫하면 초반에 경기가 터질 수도 있어요. 결과적으로는 잘못되었을지 몰라도 방금 전 상황에서는 최선이었습니다
– 자… 이렇게 되면 이번 한국시리즈의 향방이 또 바뀔 것 같습니다. 2승 3패로 몰려 있긴 하지만 타이탄스의 분위기가 활활 타오르는 느낌이네요
– 맞습니다. 지난 2, 3, 4차전을 모두 내줄 때만 해도 어렵지 않나 하는 느낌이었는데 5차전을 도준우 선수가 잡아내고, 다시 6차전에서 혼자 3타점을 올려줬잖아요? 진짜 에이스네요! 도준우 선수가 마운드에서, 그리고 타석에서, 팀을 이끌고 있습니다!
도준우는, 그리고 그가 선택한 투타 겸업의 길은,
과거의 에이스들을 뛰어넘는 공헌을 가능케 했다.
1선발로서, 그리고 중심타자로서, 이제는 수비의 핵으로서,
팀의 취약점을 혼자 몸으로 막아내는 현대 야구의 에이스가 되게 해주었다.
어쩌면 한 선수가 그런 무게를 짊어진다는 게 가혹할 수도 있지만,
경기장에 있는 누구도 그런 생각을 떠올리지 못했다.
그건 도준우의 얼굴에 떠오른 밝은 웃음 때문이었다.
지금 도준우는 진심으로 야구를 즐기고 있었다.
**
<벼랑 끝에 몰렸던 부산 타이탄스, 6차전을 잡아내며 기사회생하다>
<에이스 이동준을 내세우고도 승리를 가져오지 못한 매지션스 선수단, 허탈감에 쌓인 채 경기장을 빠져나가>
<투런 홈런 포함 2안타 2볼넷 3타점 2득점을 올리며 팀의 공격을 이끈 도준우>
<올 시즌 첫 유격수 수비를 선보인 도준우, 전문가들 “더 이상 놀랄 일은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도준우가 우릴 또 놀라게 했다. 오늘 그는 완벽한 유격수였다”>
<메이저리그에 정통한 국내 관계자 “타격 능력이 같다고 볼 때 코너 외야수와 유격수의 몸값은 하늘과 땅 차이다. 만약 도준우가 유격수로 자리를 잡고 FA로 빅리그 진출을 노린다면… 몸값이 얼마나 될지 상상조차 안 될 지경이다”>
<경기장을 찾은 빅리그 전문가들 “기본적인 수비 스킬부터 시작해서 풋워크, 반사 신경, 송구, 타구 판단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났다. 거대한 체구 때문에 부상이 우려되긴 하지만 실력만 놓고 보면 충분히 빅리그 유격수가 될 재능이 있다”>
<시리즈 전적 3승 3패, 우승트로피의 주인공이 가려질 마지막 7차전, 서울 매지션스 개럿 토마스 VS 부산 타이탄스 저스틴 파커, 용병 선발들 간의 맞대결>
└ 뭐지, 분명 평상시처럼 꼴빠 모드인데 이상하게 논리적으로 들리는데?
└ 당연히 논리적이지. 마치 지구는 둥글다랑 같은 급인데?
└ 꼴빠는 꺼지고
└ 나 매지션스 팬인데… 이건 인정 안 할 수가 없네. 진짜 도준우 저 미친놈 때문에 여기까지 와버렸으니
└ 유격수 수비까지 가능한 투타 겸업… 개 무섭네 ㄷㄷㄷ
└ 암만 봐도 이상함. 저렇게 구르는데 부상 한 번 안 당한다고?
└ 내구성이 인간 수준을 벗어남. 다른 것보다 그게 제일 부러움. 저런 실력을 가진 놈이 한 시즌 내내 풀 출장을 한다는 게. 우리 팀 1지명은 시발 겨우 여덟 경기 뛰고 팔꿈치 나가서 수술대 올라갔는데
└ 하아… 내년에는 강시원도 저렇게 좀 터져줬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한국시리즈 나가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네
└ 그나저나 내일이면 이 망할 야구도 끝이네. 하, 진짜 좆같은 1년이었다
└ 그래서 내년에는 야구 안 보게?
└ 되겠냐? 그게?
**
“오! 도준우다!”
“오늘은 걸어서 출근하나보네? 가서 사인해달라고 하면 민폐이려나?”
“민폐지. 사인은 경기 끝나고 받아야지. 괜히 부정 타면 어쩌려고.”
한국시리즈 7차전이 열리는 토요일 주말 아침, 가벼운 트레이닝 복장을 한 도준우가 야구장으로 향하는 인도를 걸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사직구장 주변에는 텐트의 행렬이 늘어서 있었다. 올해부터 포스트시즌에서도 5%의 티켓을 현장에서 의무 발매하도록 변경되었기에 이를 노린 타이탄스 팬들이 줄서기에 들어간 것이다.
도준우의 발걸음이 구장 쪽으로 향하자 줄을 서 있던 팬들이, 주변을 지나던 시민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국시리즈 최종전을 앞둔 선수의 멘탈을 건드릴까 아무도 나서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도준우가 먼저 그들 쪽으로 다가갔다.
“여기서 밤 새신 거예요?”
“어! 도준우 선수? 밤 샜냐고? 그럼! 이렇게라도 들어가서 야구 봐야죠.”
“어휴, 안 힘드세요?”
“전혀! 오랜만에 밖에서 자니까 상쾌하고 좋은데? 그보다 도준우 선수, 컨디션은 어때요? 안 피곤해요?”
“저요? 음… 아주 좋은 거 같은데요?”
“다행이다. 어휴, 진짜 다행이야.”
장년(長年)으로 보이는 남자 팬이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도준우를 바라보았다. 그들에게 있어 도준우는 팀의 기둥이며, 에이스이자, 또한 과거의 아픔을 떠올리게 만드는 존재였다.
지난 45년 동안 딱 2번뿐인 한국시리즈 우승, 그 우승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옛 에이스와 여기 눈앞 18세 신인 도준우의 모습이 오버랩되었기 때문이다.
평소 같으면 사인을 해 달라, 사진 찍어 달라 난리가 났었을 팬들이 오늘따라 눈치만 보고 있는 걸 본 도준우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큰 목소리로 외쳤다.
“여러분! 제가 출근이 늦어서 다 사인해드리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대신! 여기 주변에 계신 분들, 다 같이 사진이라도 한 장 찍을까요?”
“사진? 오! 진짜?”
“자! 여러분 도준우 선수가 사진 찍어준답니다. 다들 이리 모이세요!”
“오… 그럼 첫 번째는 제가 찍을게요. 혹시 저랑 교대로 사진 찍을 분? 처음은 내가 누를 테니, 다음 사진 찍어주실 분?”
“제가 할게요! 해서 제 SNS에 올리면 되죠?”
“네, 감사. 그럼 찍습니다! 최대한 뒤로 가서 눌러볼게요! 혹시나 짤려도 저 원망 말고 좀만 더 밀착하시고! 좋아요! 갑니다! 치즈!”
“치즈!”
아주 많은 수는 아니었지만 100명이 넘는 인원들이 도준우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누군가의 SNS에 올려진 사진을 공유 받으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팬들, 그런 팬들을 향해 도준우가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이기고 돌아오겠습니다. 경기 끝나고 기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가실 수 있도록, 오늘 하루 즐거운 마음으로 잠 드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경기장에서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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