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leased pitcher returns as a diamond RAW novel - Chapter (83)
방출당한 투수가 금강불괴로 돌아옴-105화(83/172)
105화. Hero
‘준우야, 우리 결혼하자. 내가 행복하게 해줄게’
‘같이 부모님한테 가자. 가서 박력있게 말할 거야. 이 집 아들,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허락해주세요!’
‘결혼하면 뭐하냐고? 뭐하긴 뭐해? 쉬어야지. 그동안 야구하느라 고생했잖아!’
회귀 후 나를 움직이게 만든 건 다은이의 저 세 마디였다. 다시는 다은이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지 않게 만들고 싶었다. 상처뿐인 내 야구인생을 제자리로 돌리는 것이 내 유일한 희망이자 목표였다.
그리고 나는 결국, 이 자리에 서게 되었다.
“도준우! 도준우! 도준우!”
“한 방 날려줘!”
“아! 제발 좀! 제발!”
“더 이상 심장 아파서 못 보겠다고!”
8회 초 2사 만루, 한 점차 뒤진 상황. 마운드 위에는 올 시즌 KBO 리그에서 최고의 성적을 기록한 마무리 투수 중 하나가 서 있다.
강재호 선배가 저 투수에게 볼넷을 얻어낸 건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우승에 대한 집념과 주장으로서의 책임감이 만들어낸 작은 드라마였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드라마를 이어받아 완성시키기 위해 여기 섰다.
“플레이!”
투수코치가 내려가고, 경기가 재개되었다.
거를 생각일까? 밀어내기를 감수할 생각일까?
아니, 상대 덕아웃의 분위기, 투수의 눈빛을 종합해볼 때 그건 아닌 것 같다. 이번 시즌 나를 상대로 꽤나 강한 모습을 보였던 게 바로 최재상이다. 사이드암에서 흘러나오는 슬라이더에 꽤 애를 먹었다.
반대로 다음 타자인 그레고리는 최재상에게 꽤 강하다. 여기서 밀어내기를 주고 그레고리에게 한 방을 맞으면 바로 게임오버다.
어쨌든 모두 확률에 대한 이야기다. 어느 쪽을 고를 지는 저 팀 감독의 몫이겠지.
그리고,
파앙
“스트라이크!”
몸 쪽에 맞을 듯 들어오던 공이 큰 궤적을 그리며 존안으로 말려드는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좋다. 승부구나.
“타임.”
타임을 요청하고 배터박스에서 발을 뺐다. 살짝 헐거워진 스파이크 끈을 조이는데 머리가 살짝 핑 도는 것을 느꼈다.
꽤나 힘든 여정이었다. 2번의 선발 등판, 타자로서 7경기 풀 출전, 지난 두 경기에서는 유격수 수비까지.
“플레이!”
이번 시즌 나는 0.383의 타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최재상을 상대로 한 타율은 0.247로, 내 평균 타율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세이버 스탯에 밀려 구시대적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긴 했지만 지금처럼 안타 한 방으로 모든 게 결정되는 순간에 이 타율만큼 직관적인 스탯은 없다.
한 마디로 말해 그런 거다. 별다른 일이 없는 한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저 투수의 공을 때려낼 확률은 1,000번 중 247번에 불과하다. 반대로 나머지 753번은 저 투수와 매지션스가 웃게 될 거라는 이야기다.
파앙
“볼.”
등 뒤에서 공이 날아오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기에 디셉션까지 완벽해 손끝에서 공이 떠나기 전까지 전혀 궤도와 구종을 예측할 수 없는 투구 폼.
그리고 그 폼에서 튀어나오는 각도 큰 슬라이더, 어떻게 보면 이동준 선배의 우완 버전이라 할 수 있는 투수다. 심지어 단순 구속과 슬라이더 각만 놓고 보면 그 선배보다도 위력적이다. 내가 괜히 저 투수에게 고전한 게 아니다.
하지만,
피식
이상하게 질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다. 이유를 들 수는 없지만 그냥 그렇다.
팔꿈치 각도를 조절해 슬라이더에 대비했다. 지금까지 패턴을 보건데 매지션스 덕아웃과 저 투수는 저 각도 큰 슬라이더에 모든 걸 걸기로 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나도 포심은 버린다.
파앙
“스트라이크!”
바깥쪽 높은 코스에 형성된 하이 패스트볼. 미리 대비했다면 쳐볼만한 코스였지만 그냥 흘려버렸다. 지금 저공을 쫓다가는 슬라이더에 타이밍을 맞출 수 없다.
다만 볼 카운트가 원 볼 투 스트라이크가 되었으니 이제부터는 비슷한 공에는 모두 배트를 내야 한다. 포심과 슬라이더의 중간쯤에 타이밍을 두고, 포심이 들어오면 걷어내고 슬라이더가 들어오면 배트 스피드를 살짝 늦춰 정타를 만들어 내야 한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내 집중력과 투쟁심이 극한까지 올라온 지금이라면.
파앙
“볼.”
슬라이더를 노린다는 걸 눈치 챈 것인지 연달아 포심이 날아들었다. 이번에는 존 바깥으로 한참 빠진 공. 투수의 얼굴에 약간의 실망감이 떠올랐다.
투 볼 투 스트라이크,
딱!
“파울!”
바깥쪽으로 공 한 개 반 정도 빠지는 공을 커트로 걷어냈다. 역시나 저 투수는 풀카운트까지 갈 생각인 듯하다.
조금 더 집중해야 한다. 이미 극한까지 다다른 집중력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렸다.
파앙
“볼.”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슬라이더에 배트가 나갈 뻔했다. 1루심이 노 스윙 판정을 내리는 순간 타이탄스 응원석에서는 함성이, 매지션스 응원석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한 점차 뒤진 상황, 투아웃 주자 만루, 풀 카운트,
야구가 이래서 재미있다. 한 스텝, 한 스텝 차근차근 빌드업을 쌓아가야 하는 다른 구기종목과 달리 야구에는 단 한 번에 모든 걸 뒤집을 수 있는 빅찬스가 존재한다.
꾸욱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회귀 전부터 지금까지, 20년 가까운 시간을 그라운드에서 보냈지만 이제야 비로소 이 야구라는 스포츠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는 생각.
스륵
한참 동안 사인을 주고받은 최재상이 투구 동작에 들어갔다.
그의 손끝에서 이번 시리즈의 운명을 좌우할 마지막 공이 발사되었다.
슈웅
공이 떠나는 순간 포심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공이 피칭터널에 돌입하는 순간 슬라이더라는 걸 알게 되었다.
당황할 필요 없다. 미리 생각해둔 대로 움직이면 된다. 내게는 머릿속 생각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구현해줄 완벽한 육체가 있으니까.
“흡!”
스윙 속도를 늦추되 멈춰서는 안 된다. 허리에 제동을 걸어 강제로 배트 타이밍을 뒤로 미뤘다. 예상대로 바깥쪽으로 흘러 나가는 슬라이더다. 그냥 치기에는 너무나 먼 코스다. 밀어내기를 각오하고 던진 공이다.
하체를 낮추고, 허리를 더 굽혀 배트의 스윙궤적을 조절했다. 그와 동시에 오른 손을 놓아 배트의 길이를 최대한 늘였다.
그 일련의 작업이 끝남과 동시에 강렬한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따아아아아아악!
놀라우리만큼 아무런 손맛도 느껴지지 않은 타구였다. 하지만 저 멀리 날아가고 있는 하얀 점은 내가 제대로 스윙을 했다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사직 구장 조명 아래 145g의 야구공이 힘차게 비행했다. 경기장 내 모두의 시선이 그 타구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 너, 너, 넘어 갔습니다! 도준우 선수가 친 타구가 사직구장 우측 외벽을 넘어 경기장 밖으로 사라졌습니다! 만루 홈런! 만루 홈런! 단숨에 승부를 뒤집는 장외 역전 만루홈런!
“우아아아아아!
“이거 진짜지? 꿈 아니지? 시발!”
“홈런이다! 홈런이야! 홈런이라고!”
경기장 주변을 오가던 시민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거대한, 23,000 관중들의 한이 가득 담긴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들이 쏟아낸 함성이 사직구장을 울림통 삼아 부산시내 전체로 퍼져 나갔다.
1루를 돌아 2루로, 3루로,
다이아몬드를 도는 것이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그라운드로 뛰어들 것 같은 관중들, 눈이 붉게 달아오른 동료들을 보며 마지막 발걸음을 옮겼다.
턱
“도준우우우!”
“준우야아아아아!”
**
– 아, 결국 볼넷입니다! 임건희 선수가 볼넷으로 출루합니다! 10대 7로 석 점 뒤진 매지션스가 2사 후긴 하지만 주자 1, 2루 찬스를 만들어냈습니다!
– 결과적으로는 아쉽지만 최도윤 선수도 잘 던졌어요. 지난 7시즌 동안 단 한 번도 계투로 등판한 적 없음에도 불구하고 9회 올라와 두 타자를 잘 처리했거든요. 마지막 한 발을 딛는 게 이렇게 어렵습니다
– 네, 아직 경기는 끝난 게 아닙니다. 전 이닝에서 타이탄스가 만루 홈런 한 방으로 경기를 뒤집었듯, 여기서 큰 게 터지면 다시 동점이 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 맞습니다. 아마도 오성철 선수가 대타로 나설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 선수 올해 순장타율이 0.259입니다. 일단 맞추기만 하면 큰 타구를 만들 수 있는 타자거든요. 타이탄스로서는 안심할 수 없습니다
– 음, 아무래도 투수가 교체될 것 같은데… 누가 나올까요?
– 현재 불펜에 있는 투수들 중에서는… 강정우 선수나 최기혁 선수가 올라올 것 같네요. 성적도 그렇고, 컨디션도 그렇고 그 둘이 가장 좋습니다
– 그렇군요. 창단 후 첫 통합우승이냐, 4년 만의 트로피 탈환이냐, 많은 것이 걸린 2027 한국시리즈 최종전, 석 점 뒤진 매지션스가 마지막 반격의 기회를 잡은 가운데 타이탄스의 마지막 투수… 어? 도준우… 선수가 글러브를 바꿔 끼는데요?
– 네?
**
“준우야, 딱 한 타자다. 결과와 상관없이 다음에는 바로 정우가 올라올 거야.”
“네, 코치님. 이해했습니다.”
“좋아, 그럼 기왕 올라간 거, 부탁한다.”
대화를 마친 투수코치가 마운드에서 내려갔다.
다들 당황한 얼굴이지만 사실 경기 전에 이미 결정된 일이다. 감독과 투수코치, 그리고 나, 셋 사이에 말이다.
그런 순간이 오지 않는 게 최선이지만 만약 마지막 순간, 팀에 위기가 닥치면 내가 마운드에 오르기로 약속했다. 이 약속을 받아내기 위해 어젯밤에 급하게 메디컬 체크까지 받아야 했다.
우리 감독도 참 바보 같은 양반이다. 타지에 건너와 첫해 우승트로피가 걸린 상황에서 투수의 어깨를 걱정하다니.
나도 좋아하고 존경하는 이 팀의 에이스들은 감독의 손에 떠밀려 마운드에 올랐고, 자신의 선수생명을 바쳐 이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나는 안 된다는 감독을 설득해 여기 이 자리에 올랐다.
내 손으로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리기 위해.
“플레이!”
“우아아아!”
“도준우! 도준우! 도준우!”
“끝내버려! 다 죽여 버려!”
과열되다 못해 당장이라도 분출될 것 같은 열기 속에 연습투구를 시작했다.
파앙
파아앙
예상했던 일이지만 확실히 백 프로 컨디션은 아니다. 선발 등판 후 이틀밖에 못 쉰 상태인 지라 몸 여기저기에 피로도가 쌓여 있다. 본래의 루틴대로라면 오늘은 연습투구 30개 정도만 하고 푹 쉬어야 하는 날이다.
하지만,
그런 게 뭐 중요할까?
어차피 오늘이 지나면, 지금 이 순간이 지나면 모든 게 끝난다. 치열했던 이번 시리즈도, 여기까지 오기 위해 거쳐야 했던 그 모든 여정도,
모든 게 끝날 것이다.
“플레이!”
석 점 차, 투 아웃 주자 1, 2루.
당연한 말이지만 작전 따위는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지금 타석에 선 저 타자, 4년 전 매지션스 통합 우승당시 중심타자였던, 나이를 먹어 정교함은 조금 떨어졌지만 장타력 하나만큼은 여전히 살아 있는 오성철에게 모든 걸 맡길 것이다.
나이를 먹었음에도 여전히 빠른 공에 강점이 있는 타자다. 평소보다 구속이 살짝 떨어진 현 상황에서는 최악의 상대일 수도 있다.
그런데 왜일까. 조금도 걱정이 들지 않는 건.
뻐어엉!
“스트라이크!”
– 167km/h! 167km/h입니다! 도준우 선수가 던진 광속구가 존 한복판에 틀어박혔습니다! 오성철 선수가 배트를 내밀 엄두조차 내지 못합니다!
– 솔직히 말씀드리면 약간 무리수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3일 전 선발 등판한 투수를 계투로 내는 것 말이죠. 그런데 아니네요. 도준우 선수는… 정말 대단합니다. 대단해요. 저게 이틀 밖에 못 쉰 투수의 공인가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회귀 전 내게 누군가 다가와 네가 다시 과거로 돌아가 WBC 우승 멤버가 될 거라고, 그리고 타이탄스를 우승시키고 챔피언 반지를 끼게 될 거라고 말한다면?
나는 아마 그놈의 멱살을 붙잡고 이렇게 소리 질렀을 것이다.
개소리 하지 말고 저리 꺼지라고.
그렇게 온통 어둠과 절망뿐이던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
내게 무관심하던, 야유를 보내던 관중들이 목이 터져라 내 이름을 외친다. 시큰둥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던 동료와 감독, 코치들 대신 동료를 넘어 친구, 혹은 형이라 불러도 좋을 사람들이 나와 함께 하고 있다.
그러니 지금 내가 해야 하는 건,
부웅
“스윙!”
이 경기를 끝내는 거다. 코앞까지 다가온 우승의 그림자에도 여전히 불안해하는, 너무나 오랜 시간 패배의 그림자에 잠식된, 마치 예전의 나처럼 지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승리의 기쁨을 맛보게 해주는 거다.
그리고,
뻐어어엉!
“스트라이크! 아웃! 게임 셋!”
“우아아아아아아!”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 경기 끝났습니다! 이 치열했던 경기가 마침내 끝났습니다! 10대 7! 타이탄스의 승리! 시리즈 초반 1승 3패로 몰렸던 타이탄스가 극적인 3연승을 일궈내며 2027 KBO 챔피언의 자리에 오릅니다! 창단 후 첫 통합우승을 이뤄냅니다!
– 으아아아아!
– 위원님? 위원님!
– 아!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아, 이거 왜 자꾸 눈물이 나죠? 주책없게, 정말 죄송합니다. 흑, 시청자 여러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건 기뻐서 나는 눈물이 아니라 눈에 먼지가 들…
사실 나는 잘 모른다.
응원하는 팀의 첫 우승을 기다리는 마음을, 소년이 중년이 되고, 청년이 노인이 될 때까지 그 오랜 시간 한결같은 마음으로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을.
그렇기에,
지금 외야 펜스를 넘어, 안전망을 넘어 그라운드로 뛰어드는 저 사람들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준우야! 준우야! 도준우!”
그 사람들 속에서 눈물을 펑펑 흘리고 있는,
지난 삶에서 내 유일한 쉼터였던 다은이의 마음만큼은 이해할 수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자신의 행복보다 남자친구의 행복을 더 바라는 저 아이의 마음을.
“관중여러분, 다시 한 번 뜨거운 박수 부탁드립니다! 2027 KBO 챔피언 부산 타이탄스 선수들입니다!”
거대한 폭풍이 사직구장을 쓸고 지나갔다. 수천 명의 팬들이 그라운드로 들어와 선수들과 함께 뒹굴렀다. 아무도 다치지 않은 게 기적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우승의 기쁨으로 엉망진창이 되었던 그라운드가 정리되고, 미처 관중석으로 돌아가지 못한 관중들이 그라운드 구석에 털썩 주저앉은 가운데 트로피 수여식이 준비되었다.
엔트리에 포함되어 있던 모든 선수들과 감독, 코치들이 수상대에 오르고 타이탄스 구단주가 특별 지시했다는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한국시리즈 우승트로피가 우리 앞에 놓였다.
“우아아아아아!”
“타이탄스! 타이탄스! 타이탄스!”
주장과 감독이 가장 먼저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내 차례가 돌아왔다.
“준우야, 우리 준우! 기특한 막내! 자, 이리 와서 사진 한… 어라?”
“뭐야? 준우야? 그거 들고 어디 가는데? 조심해! 인마, 그거 무거워!”
20kg 가까운 트로피를 들쳐 메고 다은이가 앉아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다은이의 눈동자가 크게 떨렸다.
“준우야? 지금… 뭐해?”
“다은아!”
“어?”
“나 약속 지켰다! 이거 가지고 다시 온다고 했잖아!”
“……”
“고마워, 다 네 덕분이야. 그러니까 나랑 미국 여행 가자. 너 좋아하는 뮤지컬, 그거 내가 실컷 보여줄게.”
“이야! 싸나이네! 우리 도준우 선수 남자네!”
“키스해! 키스해! 키스해!”
순간 무언가 밑에서 날 들어올렸다. 밑을 내려다보니 호석이와 선배들이었다.
호석이의 어깨에 올라타니 다은이와 눈높이가 맞았다.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다시 한 번 다은이에게 말했다.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나도.”
두 사람의 입술이 한 점에서 만났다.
이 나라의 야구팬들 중 누구도, 심지어 타이탄스의 팬들조차도 믿지 않았던 첫 번째 통합우승이 그렇게 이루어졌다. 대한민국 야구계의 압도적 꼴찌 팀이 마침내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누군가의 눈물을 시작으로 사직구장이 울음바다가 되었다.
그리고 그 기적을 만들어낸 열아홉 살 루키는 부산의 전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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