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leased pitcher returns as a diamond RAW novel - Chapter (86)
방출당한 투수가 금강불괴로 돌아옴-108화(86/172)
108화. 명문구단
앞으로 한 달 간 도준우의 포스팅 협상장소로 사용될 예정인 JIB 코퍼레이션 본사 내 대회의실,
양키스의 단장을 비롯한 실무진, 도준우, 그리고 에이전시 직원들이 마주 앉은 가운데 회의실 중앙 스크린에 줄무늬 유니폼을 입고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선수들의 사진이 떠올랐다.
흑백사진으로 시작된 사진이 조금씩 흩어지며 다른 사진으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컬러 사진으로 바뀌었고, 그렇게 총 27장의 사진이 화면을 스쳐지나갔다.
오늘 프리젠테이션에 직접 나선 양키스의 단장이 자부심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어차피 계약금과 연봉 상한액이 정해진 이상 저희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왜 양키스냐 하는 것일 테니까요. 그에 대한 해답을 방금 보여드렸습니다. 저희 양키스의 역사는 곧 메이저리그의 역사입니다. 총 스물일곱 번의 월드시리즈 우승과 베이브 루스부터 시작해서 데릭 지터까지, 메이저리그를 상징하는 선수들이 뛰던, 그야말로 베이스볼 그 자체! 때문에 저희 양키스…”
“잠시만요.”
“네?”
끝없이 이어지는 양키스 단장의 말을 도준우가 중간에 끊었다. 그리고 시큰둥한 목소리로 물었다.
“통산 최다 우승팀이라는 건 알겠는데 가장 최근이 2009년이네요.”
“흠, 그건 어디까지나…”
“애초에 마지막 월드시리즈 진출이 2009년이죠. 20년 가까이 된 이야기네요.”
“…운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보기에는 지구 우승까지 내려가도 5년이나 됐네요. 그 와중에 지난 20년 간 연봉 총액은 계속 최상위권이고요.”
“저희 양키스는 좋은 선수를 위해 결코 돈을 아끼지 않습니다.”
“네, 그건 저도 마음에 듭니다. 하지만 그렇다는 이야기는 지금 덕아웃에 몸값만 비싸고 처치 곤란한 선수들이 한 가득이라는 거잖아요?”
“……”
“그 와중에 최저연봉을 받는 제가 아주 약간이라도 부진할 경우… 가만, 그것부터 물어봐야겠군요. 제가 양키스에 입단할 경우 어떤 식으로 기용이 될 것인지 말이죠.”
“…좋습니다. 안 그래도 그걸 말씀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일단 도준우 선수의 입단이 결정되면 양키 스타디움에서 성대한 입단식과 함께…”
“앞부분은 그냥 패스하고 바로 시범경기부터 시작해보죠.”
“네, 일단 시범경기에서는 투수로만 출전하게 될 겁니다. 3이닝씩 최대 4번, 그렇게 빅리그 마운드에 익숙해진 이후에는…”
“투수로만요?”
“네, 투웨이를 막을 생각은 없지만 모든 것이 바뀐 상황에서 처음부터 무리할 필요는 없다는 게 우리 판단입니다. 그렇게 시범경기에서 투수로서 가능성을 테스트한 후에는 곧바로 더블A부터 시작해서…”
곧바로 더블A라는 말에 JIB 코퍼레이션의 대표 마이클 버렛이 곧바로 제동을 걸었다.
“잠시만요. 아무래도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도준우 선수는 마이너리그에서 뛸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끝까지 설명을 들어주시겠습니까? 마이너에 두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더블A에서 투웨이에 대한 적응훈련을 마치라는 뜻입니다. 길어야 몇 달?”
“그 말에 따를 수 없다면요?”
“이건 따르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팀의 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기 위해서는 당연히 거쳐야 할…”
“됐습니다. 1차 제안은 여기까지만 듣죠. 아무래도 양 측이 생각하는 방향이 많이 다른 것 같군요. 양키스에서 오신 분들은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이봐요, 마이클. 당신 지금 실수하는 거야.”
“네, 맞네요. 제가 실수했습니다. 우리 소중한 고객을 모셔놓고 헛소리를 듣게 만들었으니까요. 자, 이번 미팅은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
마이클 버렛이 마치 잡상인을 쫓아내듯 양키스 쪽 사람들을 회의실 밖으로 내보냈다. 물론 저 상태로 보내진 않을 것이다. 누가 뭐래도 양키스는 대고객이니까. 밖에서 다시 달래주거나 최소한 2차 미팅에 대한 그림이라도 그린 후에 헤어질 것이다.
그러니까 방금 마이클의 그 행동은 도준우에게 보이기 위한, 자신들이 고객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쇼맨십 같은 거였다.
피식
옅은 웃음을 지은 도준우가 양키스에서 받은 제안서를 차근차근 훑어보았다. 현재 선수단 구성부터 향후 10년 간 구단운영계획, 그 가운데 도준우가 어떤 역할을 하게 될 지에 대한 청사진까지.
최근 좀 부진한 감이 있지만 그래도 역시 양키스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끌리지 않았다.
마이너리그부터 시작하는 거?
아니, 그건 중요한 게 아닌 것 같다. 설사 그 이야기가 없었다 해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다. 도준우가 본 양키스는 과거의 영광에 휩싸여 계속 헛돈만 쓰고 있는, 그런 시간을 보내며 유연성과 창의성을 모두 잃은 늙고 고집 센 거인이었다.
“죄송합니다. 양키스와는 나중에 다시 2차 미팅을 갖기로 했습니다. 그쪽에서 보강 안을 만들어온 후 다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시죠.”
“네, 그럼 다음은 어디죠?”
“30분 후에 레드삭스와 만날 예정이고, 오후에는 메츠와 필리스 순으로 미팅 순서가 잡혀있습니다.”
“알겠습니다.”
도준우 영입을 위한 각 구단의 프리젠테이션이 며칠에 걸쳐 진행되었다.
양키스를 시작으로 레드삭스와 메츠, 필리스, 워싱턴 등 동부 지역 팀들이 먼저 발표를 진행했고, 이후에는 에인절스와 샌디에이고가 그 뒤를 이었다.
그렇게 여러 팀을 만났지만 아직 도준우의 마음을 움직인 곳은 없었다. 어차피 계약금이라봐야 300만에서 400만 달러 내외, 연봉은 75만 달러로 고정이었다. 그 외 조건으로 내세운 것들은 하나가 마음에 들면 다른 하나가 걸리고, 또 하나가 들면 무언가가 걸리는 식이었다.
그런 가운데 마침내 다저스의 차례가 돌아왔다. 1년하고도 반년 전, 고등학생이던 도준우를 데려갈 수 있었던 기회를 스스로 놓친, 이로 인해 사장으로부터 강한 경고를 받은 단장이 직접 마이크를 잡았다.
“다른 무엇보다 이걸 말씀드리고 싶군요. 저희 다저스는 진심으로 도준우 선수를 원하고 있다는 것 말이죠.”
“그럼 예전에 제가 요구한 것들은 왜 거절하셨나요?”
“……”
“농담입니다. 계속하시죠.”
미국 서부 최대 도시 LA를 연고지로 하는 명문구단 다저스는 2013년부터 2027년까지 15년 연속 메이저리그 관중동원 1위에 오른 인기구단이다. 뉴욕 양키스의 27번에는 못 미치지만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 6위에 해당하는 7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팀이며, 부자 구단주의 적극적인 투자를 바탕으로 매년 우승에 도전하는 명문구단이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건 연고지인 캘리포니아가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살기 좋은 지역이라는 거다. 따뜻한 지중해성 기후와 해안선을 따라 형성된 아름다운 해변, 편리한 생활 인프라, 거기에 아시아인들이 많이 살고 있어 적응하기에도 최적이다. 일본과 한국의 야구선수들이 괜히 다저스를 선호하는 게 아니다.
거기에 팀의 캡틴인 미구엘 로드리게스와 차세대 프랜차이즈 스타로 꼽히는 브랜든 워커까지 도준우에게 호의적이다. 그렇기에 다저스를 선택한다면 후회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누구보다 그걸 잘 알고 있는 다저스 단장이 침을 튀겨가며 자신들의 장점을 어필했다.
“가장 중요한 건 이겁니다. 다저스는 언제나 우승을 노리는 구단이라는 겁니다. 2020년 월드시리즈 이후 우리 다저스는 선수단 규모를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투자를 확대, 올스타급 라인업을 유지해나가고 있습니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때문에 도준우 선수가 필요한 겁니다. 우리 팀으로 와주시죠. 같이 메이저리그 정상을 향해 도전합시다.”
“좋네요.”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네, 그럼 묻겠습니다. 제가 다저스에 입단할 경우 어떤 과정을 밟게 될지 하나하나 설명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일단 스프링 트레이닝에 합류해 그곳에서 곧바로 시범경기를 시작하게 될 겁니다. 전체 30경기 중 대략 절반 정도, 타석으로는 50에서 60타석 정도 기회를 받게 될 거고, 3번 혹은 4번 마운드에 등판해 10이닝 내외를 던지게 될 겁니다.”
“다음은요?”
“시범경기만으로는 도준우 선수의 빅리그 적응, 혹은 조정 작업을 완료하기 힘들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에 트리플A에서 한 달 간 예열의 시간을 갖게 될 겁니다.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이 기간에도 메이저리그 선수에 준하는 4성급 호텔과 차량, 통역 등이 지원될 것입니다. 그리고 트리플A에서의 경기결과와 상관없이 30일이 지난 후 곧바로 빅리그에 콜업될 겁니다.”
“음, 포지션은, 제 포지션은 어디가 될까요?”
“내년 시즌 다저스의 선발 마운드는 에반 브라운과 애덤 콜린스, 그 둘을 중심으로 운영될 예정입니다. 물론 추가 영입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요. 어쨌든 도준우 선수는 브랜든 워커와 함께 4, 5선발 경쟁을 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선발등판 다음 날을 제외한 모든 경기에 지명타자로 출전시킬 생각입니다.”
“지명타자요?”
“네, 물론 도준우 선수가 KBO에서 아주 훌륭한 우익수이며, 내야수로서도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저스의 내야와 외야는 현재 포화상태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무리하게 투웨이 선수에게 수비까지 시킬 필요는 없다는 게 저희 판단입니다. 도준우 선수의 실력을 못 믿어서가 아니니 오해 없길 바랍니다.”
단장의 목소리에서 도준우는 진심을 느꼈다. 고등학교 당시 에이전트를 통해 듣던 그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태도가 아니었다. 다저스는 정말로 도준우를 원하고 있었다.
다만,
“일단 알겠습니다. 저는 질문할 거 다 한 것 같은데요, 마이클.”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단장님, 그럼 오늘 미팅은 여기까지만 하죠.”
“음… 좋습니다. 그럼 다음 일정은…?”
“저희 내부에서 논의 후 곧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다저스의 실무진이 철수하고 잠시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커피 두 잔을 갖고 돌아온 마이클이 도준우에게 웃으며 말했다.
“예전에 만났을 때랑은 전혀 딴판이군요. 저 단장 말이죠, 하하.”
“네, 많이 변한 것 같네요.”
“그런데 도준우 선수는 별로 만족하는 표정이 아니시군요.”
“제가요? 글쎄요…”
아주 잠깐 도준우의 표정을 관찰하던 마이클이 알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도준우 선수,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될까요?”
“얼마든지요.”
“내년 시즌 최저연봉을 받는 것과 상관없이 도준우 선수는 미국에서 풍족한 생활을 하게 될 겁니다. 지금 협상중인 스폰서 계약만 따져도 최소 600만 달러 가까운 돈을 만지게 될 테니까요.”
“아마도 그렇겠죠.”
“그러니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마켓의 크기나 구단의 역사, 네, 물론 중요하죠. 하지만 굳이 그런 것에 매몰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도준우 선수는 배고픈 중남미 지역 유망주들과는 전혀 다른 입장이니까요. 팀을 고를 선택의 폭이 훨씬 넓다는 뜻입니다.”
“음.”
“당장의 성적, 인센티브, 조금 미래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장기 계약이나 FA 계약까지 생각하면 그냥 양키스든 다저스든 명문 구단 중 하나를 고르면 됩니다. 마이너 옵션이니 뭐니 마음에 걸리는 건 협상을 통해 조율하면 되니까요. 다만…”
“네.”
“저는 도준우 선수가 곧 메이저리그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솔직히 말해 돈 안 되는 국제아마추어계약에 이렇게 전력을 쏟는 이유도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니 그냥… 마음이 끌리는 곳을 고르는 것도, 네, 나쁘지 않을 겁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팀이 있다면 그곳이 도준우 선수가 갈 곳일 겁니다. 제 말이 조금 주제 넘었나요?”
“아뇨, 조언 고마워요. 마이클.”
“다행이군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머리를 냉정하게 식히고 말하자면 역시 양키스나 다저스, 혹은 레드삭스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하하.”
“역시나 그게 무난하겠죠?”
“네, 그래도 일단 마지막 구단까지는 만나보시죠. 서두를 필요는 없으니까요. 아, 마침 도착한 것 같군요.”
스마트폰을 확인한 마이클이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일단의 무리를 이끌고 다시 회의실로 돌아왔다.
“드디어 만나게 되었군요. 반갑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단장 마이크 스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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