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leased pitcher returns as a diamond RAW novel - Chapter (98)
방출당한 투수가 금강불괴로 돌아옴-129화(98/172)
129화. 저놈은 최고야
지난 시즌 내셔널리그에서는 동부지구의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중부지구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서부지구의 LA 다저스가 각각 지구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시카고 컵스가 와일드카드를 선취한 가운데, 시즌 막판까지 뉴욕 메츠와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기적적인 마지막 와일드카드를 획득하며 가을야구에 합류했다.
자이언츠로서는 6년 만에 맛보는 가을야구였다. 최대 라이벌 다저스가 14년 연속 가을야구에 진출하는 걸 부러워하던 자이언츠 팬들로서는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하지만,
6년 만에 올라간 가을야구에서 자이언츠는 달라진 메이저리그의 트렌드와 처참한 팀의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
누가 뭐래도 현대의 야구, 메이저리그, 그 중에서도 진짜들이 부딪히는 가을야구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빠르고 강한 공을 가진 에이스, 그리고 중요한 순간 한 방을 날려줄 수 있는 거포가 필요하다는 걸 말이다.
아쉽게도 자이언츠에는 그런 선수가 없었다.
다저스와의 와일드카드 결정전,
정규시즌 나름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던 자이언츠의 1, 2 선발이 다저스의 거포들에게 처참하게 박살이 났다. 17홈런 88타점을 올린 호세를 중심으로 19홈런의 로베르토, 13홈런의 디에고 등이 힘을 냈지만 다저스의 투수들에게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확실한 에이스, 그리고 한 방에 전세를 역전시킬 슬러거의 부재.
자이언츠 팬들이 더욱 절망했던 건 이런 팀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팀의 골치 덩어리가 되어버린 외야 3인방과의 장기계약, 여전히 남아 있는 FA계약들, 사치세 구간에 인접한 팀 페이롤, 점점 황폐해져가는 팜까지.
차라리 리빌딩에 돌입하는 게 나을지도 모를 그런 상황이었다. 내셔널리그 명문구단이라는 타이틀을 반납하고 그냥 현실을 챙겨야 하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때,
그가 팀에 합류했다.
한국 야구를 박살낸 프로 2년차 루키 도준우.
그가 KBO에서 WBC에서 활약한 모습을 직접 본 팬들은 큰 기대를 나타냈지만 대부분의 자이언츠 팬들은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하위리그에서 뛰다 온 열아홉 루키가 과연 뭘 할 수 있을까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도준우 영입에 성공한 프런트가 온갖 보도자료를 뿌려댈 때 쓸데없는 짓 말고 추가 트레이드나 진행하라며 프런트를 압박했다.
하지만,
뻐어어엉!
“스트라이크! 아웃!”
그런 팬들이, 자이언츠를 목숨처럼 사랑하는 팬들이 지금 도준우에게 열광하고 있다.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표정과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도준우! 도준우! 도준우!”
9회 초, 0대 4로 뒤진 레드삭스의 마지막 공격.
지난 이닝까지 투구 수 98개를 기록한 도준우가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그리고 레드삭스가 내보낸 두 명의 대타를 연속 삼진으로 처리했다.
16번째 삼진, 타석에 레드삭스의 마지막 타자 헌터 롱이 들어섰다.
딱!
“파울!”
부웅
“스윙!”
투수들의 구속증가와 분업화가 갈수록 심해지며 완투와 완봉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전력을 다한 100마일 이상의 공을 100개 이상 던지는 건 상당히 무모한 일이다.
하지만 도준우는 아니었다.
100개가 넘는 공을 던졌지만 도준우의 구속과 구위는 거의 처음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스태미너와 정신력이었다.
타석 위의 헌터 롱, 그리고 원정팀 덕아웃에 앉은 레드삭스 선수들의 표정이 바위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반면 마운드 위 도준우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경기를 마무리할 마지막 공이 발사되었다.
뻐어어엉!
“스트라이크! 아웃! 게임 셋!”
“빌어먹을! 끝내주잖아!”
“으아아아아! 퍼킹 자이언츠! 퍼킹 베이스볼!”
지난 시즌, 대한민국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펼쳐졌던 광경이 이곳 오라클 파크에서 재현되었다. 기껏해야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치는 게 다인 메이저리그 관중들이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며 소리를 질러댔다. 그들이 내뿜는 에너지에 오라클 파크가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진동했다.
– 이런! 정말 엄청난 경기였습니다! 한국에서 온 슈퍼루키 도준우가 오늘 경기를 혼자 힘으로 가져옵니다! 타석에서 4타점을 모두 책임졌고, 마운드 위에서… 맙소사, 메이저리그에서도 처음 나온 기록입니다! 노히트노런! 도준우가 메이저리그 데뷔전에서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첫 번째 투수가 되었습니다!
– 믿을 수 없군요. 그간 경기를 지배한 선수라는 말을 습관처럼 썼지만 오늘 도준우는 정말… 말 그대로 경기를 지배했습니다. 타자로서, 투수로서, 그라운드를 압도했습니다. 메이저리그의 역사에 남을 경기였습니다!
팀의 2번 타자로서 4타석 3타수 2안타 1볼넷 1홈런 4타점 1득점,
선발투수로서 9이닝 투구 수 111개, 무실점 피안타 0, 볼넷 1, 탈삼진 17개,
모든 점수를 책임지고, 팀의 모든 이닝을 홀로 막아낸 도준우.
자이언츠에 새로운 영웅이 탄생했다.
**
<투웨이란 무엇인가? 그 정답을 알려준 자이언츠와 레드삭스 간의 경기>
<4대 0으로 끝난 경기에서 4타점,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철인 도준우>
<아시아에서 건너온 자이언츠의 루키, 메이저리그 최초로 선발 데뷔전 경기에서 노히트노런을 기록하다>
<어쩌면 퍼펙트게임이 될 수도 있었던 경기, 다시 보는 8회 초 도준우의 유일한 볼넷 장면, 전문가들 “저건 누가 봐도 스트라이크다. 심판이 잘못 봤거나 혹은 루키 길들이기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심각한 문제다. 더 이상 ABS 도입을 미루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저것이다”>
<메이저리그 퍼펙트피처가 될 기회를 놓친 도준우 “그런가? 솔직히 별로 신경 안 썼다. 노히트던 퍼펙트던 결국 그 기록이 의미 있는 건 팀이 이겨서다. 그리고 우리 팀은 오늘 승리했다. 그럼 된 거다”>
<도준우와 스폰서 계약을 맺은 기업들, 갑작스러운 인지도 상승에 함박웃음>
└ 한 가지는 확실해
└ 그게 뭔데
└ 우리가 메이저리그 역사에 손꼽힐 선수의 데뷔시즌을 보고 있다는 거
└ 좋아, 나도 동의하는 바야. 그런 의미에서 프런트 이 개자식들은 도준우 유니폼을 좀 더 찍어내야 해. 경기장에서도 안 팔고 온라인 샵에는 계속 품절이고, 장난해?
└ 걱정되는 부분이 없는 건 아냐. 과연 그 친구가 시즌이 끝날 때까지 투웨이를 이어갈 수 있을까? 지금이라도 한쪽에 집중하게 해줘야 하는 거 아냐?
자이언츠 팬들이 환호와 우려를 쏟아내고 있는 가운데 도준우는 자신의 에이전트와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추가 스폰서, 좋죠. 대신 제가 직접 뭔가를 촬영해야 하거나, 그런 건 다 빼주세요. 경기 영상을 편집해서 사용하거나, 아무튼 알아서 하겠다는 기업들 위주로 골라서 리스트를 보내주세요. 피드백 드리겠습니다.”
– 당연하죠. 시즌 중인 선수를 불러내서 촬영을 하자는 얼간이들까지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오늘 중으로 리스트업 해드리겠습니다. 어쨌든 축하드립니다. 조만간 스폰서 금액으로만 천만 달러를 돌파하게 될 것 같군요
“네, 돈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죠. 그럼 이만 끊어야겠네요. 경기 준비를 시작해야 해서.”
자신의 라커에 전화기를 던져 넣은 도준우가 그라운드로 향했다. 한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자이언츠의 베테랑 두 명이 대화를 시작했다.
“이봐, 디에고. 아직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는 거야?”
“생각? 무슨 생각?”
“올 시즌이 끝나면 우승할 수 있는 팀으로 떠나겠다는 생각 말이야.”
주장 로베르토 보니야의 질문에 주전포수 디에고 마르케스가 멈칫했다.
자신의 입으로 수 없이 되풀이 한 말이었다. 은퇴 전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되기 위해 보다 강한 팀으로 떠나겠다는 말, 올 시즌이 끝난 후 FA 자격을 취득하게 될 디에고는 그렇게 자이언츠와의 마지막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젠장, 일단은 보류야.”
“그렇지? 흐흐.”
아직 4경기뿐이긴 하지만 자이언츠는 투타 모든 면에서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애물단지였던 장기계약 외야 3인방은 지난 시즌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팀에 공헌하고 있고, 팀 내 타자 중 최고 성적을 기록했던 호세는 한층 더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 투수들 역시 지난 시즌의 호투가 우연이 아님을 입증했다.
무엇보다 저 녀석, 방금 전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로 나간 열아홉 루키.
이 팀을 오랜 동안 지켜온 베테랑들은 도준우의 존재로 인해 희망을 느끼고 있다.
특히나 어제 경기, 아메리칸 리그 최고 명문 팀 중 하나인 레드삭스 전에서 도준우가 보여준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혼자 팀의 모든 타점을 올리고, 거기에 마운드 위에서는 상대 타자들을 그야말로 압살했다.
야구가 팀 스포츠라고?
만약 어제 경기, 도준우를 제외한 다른 포지션에 자신들이 아닌 마이너 선수, 아니, 대학리그 수준의 선수들이 대신 서 있었다면?
그럼 자이언츠의 승리는 없었을까?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다. 인정해야 했다. 어제 레드삭스의 경기에서 이긴 건 자이언츠가 아닌 도준우라는 걸.
“그나저나 영감은, 올해를 끝으로 정말 은퇴할 생각이야?”
“나? 음… 글쎄.”
지난 시즌 자이언츠 타자들 중 두 자리 수 홈런을 기록한 선수는 단 세 명뿐이었다. 자이언츠의 장타력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알 수 있는 지표였다.
타율 0.267, OPS 0.804, 17홈런 88타점을 기록한 3루수 호세 마르티네스,
올 시즌을 끝으로 자이언츠를 떠날 생각이었던 13홈런 포수 디에고 마르케스,
그리고 타율 0.198, OPS 0.636이라는 주전 1루수로서는 절망적인 타격 지표를 기록했지만 어쨌든 팀에서 가장 많은 19홈런을 때려냈던 38세의 노장 로베르토 보니야.
디에고의 질문에 한참 동안 고민하던 로베르토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도 알겠지만 말이야. 난 이 팀을 정말 사랑해.”
“젠장, 당연히 알지. 그 얘기 수백 번은 더 들은 것 같은데. 증조부 때부터 이 팀의 팬이었다고.”
“맞아. 어쨌든 중요한 건 이거야. 아직 계약기간이 3년이나 남았지만 나는 내가 사랑하는 팀의 발목을 잡으면서까지 구질구질한 말년을 보내고 싶지 않아. 내가 은퇴하면 페이롤에도 여유가 생길 테니 더 좋은 선수를 데려올 수 있을 테고.”
“지나친 충성심이야. 그보다는 먼저 가족을 생각하라고, 캡틴.”
“가족? 내가 말 안 했나? 내 와이프, 그리고 아들은 나보다 더한 자이언츠 팬이라고. 이미 얘기는 다 끝났어. 은퇴하고 나면 가족들하고 같이 요트나 타면서 인생을 즐길 거야. 다행이 그 정도 돈은 모아놨거든.”
어린 시절부터 누구보다 이 팀을 사랑했던 소년 팬은 바늘구멍보다 좁은 문을 뚫고 자이언츠의 선수가 되었고, 이곳에서 평생을 헌신했다.
지금은 연봉만 축내는 늙은이 취급을 받지만 이 팀의 전성기였던 2010년대, 그는 이 팀의 공격을 이끌던 중심타자였다. 비록 최고였던 적은 없지만 항상 꾸준했던, 팬들로부터 미스터 자이언츠라 불리던 그런 선수였다.
하지만 그런 그도 세월의 흐름을 이겨내지 못했다. 나이가 들어 배트 스피드가 무뎌지고, 잔부상이 끊이지 않았다. 매년 0.9를 넘나들던 OPS가 0.6대까지 떨어졌고, 커리어 처음으로 wRC+가 100 이하로 추락했다. 리그 평균수준에도 한참 못 미치는 1루수가 된 것이다.
결국 은퇴를 결심했다. 장기계약에 묶여 마음대로 돈을 쓸 수 없게 된 구단을 위해 자리를 비워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모든 걸 내려놓은 로베르토는 후배들이 벌이는 세력싸움에서 한 발 물러난 채 무기력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런데 말이야. 디에고.”
“뜸 들이지 말고 말해봐, 캡틴.”
“저 녀석이 뛰는 걸 보면 왜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리지?”
“젠장… 내가 이유를 말해줄까?”
“그래, 말해줘봐.”
“그건 캡틴이 이 팀의 팬이라서 그래. 자기가 응원하는 팀에 괴물이 입단했는데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어?”
“흠, 그렇군.”
“그리고 또,”
“응?”
“캡틴이 아직 야구선수라 그런 거야. 이 팀을 떠날 생각이던 나조차 이렇게 망설여질 정도로, 저 놈은 주변 사람들을 끌어들여. 희망을 갖게 한단 말이지. 저놈과 함께라면 최고에 도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들게 한다고.”
“흐음…”
“솔직히 말해서 내 마음은 아직도 반반이야. 올 시즌 결과와 상관없이 자이언츠는 약해. 다저스 같은 빅 클럽에 비하면 여러모로 허약하지. 그러니 월드시리즈를 노리려면 이적이 정답이야. 하지만…”
“그건 뭔가 재미없지.”
“맞아, 젠장. 정신 나간 소리이긴 한데 그렇게 우승해봐야 별로 기쁠 것 같지가 않단 말이지.”
“흐흐.”
“아무튼 한 가지는 확실해.”
“그게 뭔데?”
“어제 저 녀석이 던지는 공을 받으면서 깨달았어. 우리가 만약 월드시리즈에 진출하게 되면, 자이언츠가 월드시리즈 무대에 오르게 되면…”
들고 있던 이온 음료를 한 입에 털어 넣은 디에고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적어도 1차전은 먹고 들어가는 거야. 저 놈은 최고야. 내가 본 최고의 재능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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