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mains of the Poison King RAW novel - chapter 120
“그런가? 허허허!”
“칠은방은 어찌 된 겁니까?”
“부친이 은점이자 칠은방주라네. 혈반사접이 완성되지 않을 경
우를 생각해서 만들었지만 점차 교세가 약해지고 있어. 쓸 만
한 사람들은 모두 빠져 나가고 껍데기만 남았어. 그래도 정보
하나는 신속 정확했지. 내가 아는 거의 대부분은 그들에게서
연락받은 거네.”
“혈반사접을 그렇게 오랫동안 만들었다면 남악에 나타난 것
은?”
“실험삼아 풀어 보았네. 그런데 뜻밖에도 형산에 풀린 독접들
은 스스로 진화하기 시작했지. 그 속도가 무척 빨랐어. 기후와
토양이 맞은거지. 우리는 그 동안 가장 기본적인 것을 잊고 있
었던 거야. 후후후! 그래서 혈반사접의 견본이 필요했지. 그런
데 당영지까지 죽을줄은 몰랐어. 그는 차기 당문의 문주감이었
네.”
“당자인, 당철휘, 당동한은?”
“그들은 그릇이 작았어. 그래서 일도 시킬 겸, 겸사겸사 내보
냈네. 그릇을 키우면 좋고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었어. 원래 기
대를 하지 않았으니까. 처음에는 당자인이 제법 잘 나가더군
하지만 한연지가 문제였어. 그녀는 후계자 세 명을 다 버려 놨
어.”
“당동한은?”
“죽었네. 한연지의 성품을 알고 있는데, 그녀의 육체를 탐해서
은밀히 감춰 두고 있었지.”
“그런 일이 있었군요.”
행방불명되었던 한연지가 무엇을 했는지 알았다.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행복하기를 바랐는데.
“이제 물어 볼 게 없으면 그만 가세나. 오랜만에 어머니를 뵙
게 되는군. 후후후! 사실 난 딸아이의 얼굴도 모른다네. 소식
만 들었지. 자, 그만 가세나.”
혈반사접은 퉁방울만한 눈을 데룩데룩 굴리며 두 사람을 노려
보았다. 간사한 눈이었다. 자신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
법을 써야하는지 잘 안다는 눈이었다. 마주 대하기도 끔찍
한…
정자에는 무산파파 일행도 와 있었다.
미독환사, 독사우공, 사두열목, 제갈문, 사망산검…이경화도
와있었고, 갈홍아는 반사영의 손을 꼭 잡은 채 말없이 허공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 모두는 허탈했다. 아니, 심각한 갈등속에서 허우적거렸
다. 그중에서도 특히 무산파파와 갈홍아, 제갈문의 번뇌는 누
구도 따를 사람이 없었다.
단비하가 갈홍아의 부친과 같이 정자에 들어섰음에도 묵직한
분위기에는 변함이 없었다.
“미독환사, 문주의 자식이 살아 있고 당문의 육실장이라는 말
만 했지. 저 늙은이에 대해서는 왜 언급하지 않았소?”
제갈문의 음성은 절규에 가까웠다.
“허허허! 이럴 줄 알았으면 야망을 키우지 않는 건데. 늙은이,
그잘난 얼굴이나 봅시다. 가면은 뭐 하러 쓰고 있소. 하늘이
내려다볼까 겁이 나오.”
그러자 은색 가면인은 천천히 손을 올렸다.,
차마 자식의 처절한 절규를 무시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윽고 드러난 얼굴은…아! 도검으로 난자당한 얼굴이라도 저
렇게 흉하지는 않을 듯 싶었다.
“혈반사접을 연구하면서…독분에 상하셨다네.”
삼절 진인 제갈부가 동생의 아픈 심정을 어루만졌다. 하지만
같이 늙어 가는 처지에 당한 황당함은 필설로 다할 수 없었다.
“허허허허…! 나는 가겠소. 정말 더럽고 치사한 곳이 무림이
구려. 깨끗이 싸울수는 없는 거요? 허허허허…!”
제갈문은 휘적휘적 걸어갔다.
그를 붙잡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붙잡으려 해도 붙잡을 기
력도 없었지만…
“이제 그만 살아. 너 같은 인간에게 한때나마 정을 주었던 내
가 불쌍하다.”
무산파파는 정말 온후한 사람인가 의심이 생길 정도로 악담을
퍼부었다.
“저의 이름은 뭐죠? 갈홍아인가요? 아니면 당홍아?”
갈홍아의 충격은 더욱 컸다.
당철휘. 그녀의 성이 당씨라면? 오오! 근친상간이 아닌가?
갈홍아는 감내할 수 없는 충격에 눈물만 흘렸다.
“단비하, 어떤가? 혈반사접을 완성할 수 있겠나?”
삼절 진인의 물음은 정녕 뜻밖이었다. 이런 와중에 혈반사접에
대해 논의하다니.
단비하는 이야기도 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마지막 부탁이네. 정말 가능했던 건가?”
그의 음성에는 평생을 쏟아온 일에 대한 열정이 담겨 있었다.
“불가능한 일이오. 억지로 만든 독은 반드시 재앙을 부르는 법
이오. 지금 혈반사접은 자기 독에 자기가 상하고 있소. 날개에
흐르는 독액이 그걸 말하지. 조만간 혈반사접은 한 마리도 남
지 않을거요.”
“그렇군. 허허허…!”
삼절 진인은 허탈하게 웃었다.
“아버님 저희 도가에서는 무(無)를 중시합니다. 제가 장문이
될 때 분명히 독수를 펼쳤는데도 조양진인의 시신이 보이지 않
더군요. 지금와서 생각해 보니, 그는 조령신공을 완성했음이
틀림없습니다. 무(無)를 얻은 거지요. 이 세상에 진정한 자유
인은 조양 뿐입니다.”
삼절 진인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부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혈반사접이 완성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모든 계획은 수정해야
합니다. 먼저 당문을 정상으로 돌려 놓는 일이 중요하지요. 청
성에는 제목을 보내면 됩니다. 그들은 옥양 진인의 죽음을 잊
지 않을 겁니다. 좀 더 강한 문파가 되겠지요.”
“일점! 너는 점문의 뜻을…”
“그만하시지요, 아버님! 독이 없는데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사대 독문이 이십 년의 고행 끝에 만들어 낸 진독들도 모두 사
용해 보지 않았습니까? 둘째, 자네 목도 필요하네. 자네 목을
소림으로 보내면 무림의 공분이 가라앉을 거야. 성소 법사를
살려 둔 게 천만다행이구먼.”
“허허허! 소제도 지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문의
차기 문주는 셋째가 맡으면 되겠군요. 그는 육실장이라 무림에
드러난 적이 없으니까요.”
“허허허! 이상하게도 자네와 나는 뜻이 맞아.”
“저는 형님과 뜻이 좀 다른데요.”
“응? 그게 무슨 말인가?”
“허허허! 목을 주는 방법이 틀리다는 말이지요. 허허허!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강한 독만이 능사는 아니다. 하독
기구의 개발도 아니고…독이란 사람의 손길이 닿아야 한다.
허허허! 아버님 사실 용기가 없어 말하지 못했지만 진작 포기
하고 싶었습니다.’
“이, 이놈들…”
은색 가면인은 분노가 치미는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단비하, 저 친구와 겨루고 싶습니다. 틀림없이 제가 죽을 겁
니다. 오점이 죽은 모습을 봤는데 저는 상대할수 없겠더군요.
이미 저를 능가한 독인입니다. 아버님 진정한 독의 세계가 어
떤 것인지 보시겠습니까?”
당기룡의 눈은 잔잔히 가라앉았다.
“이놈…!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독이 진정한 독이야.”
버럭 소리를 지르는 은색 가면인, 그에 비해 당기룡은 무슨 생
각을 했는지 차분하기만 했다. 당기룡은 단비하를 응시했다.
“들었는가?”
“들었소. 하지만 당신들은 크게 잘못 생각하는 부분이 있소.
진정한 독인이라면 절독의 유무에 관계없이 사용할수 있어야
하지요. 문주께서는 무슨 독을 사용하겠습니까?”
“당문의 독으로 하겠네. 독성이야 혈반사접의 독이 가장 우월
하지만 당문의 무영지독으로 겨루고 싶군.”
“좋습니다. 저도 당문의 독을 쓰죠. 나눠 줄수 있습니까?”
“무슨 독을 사용하겠나? 혹시 무영지독인가?”
“한매단입니다.”
“한매단? 장난하는 건가?”
“문주는 한매단으로 죽게 됩니다. 고통도 없이 중독 당하는 즉
시.”
“허허허! 좋아. 해보세. 자네가 이긴다면 이거야 말로 혈반사
접을 완성하는 것보다 더 크고 새로운 독의 세계를 개척한 거
야.”
단비하와 당문주는 서로 이 장의 거리를 두고 마주섰다.
당문주는 양손을 넓은 소맷자락 사이에 집어넣은 상태였다.
반면에 단비하는 한매단을 손에 들고 만지작거렸다.
“시작하겠네.”
“오십시오.”
파아악…!
당문주의 손이 허공에 큰 원을 그렸다. 그것뿐이었다. 독분의
흔적도, 기류의 흐름도, 어떠한 냄새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하독 즉시 삼장을 물러섰다.
단비하는 역시 절음십이박을 전개했다.
그는 허공 중에 떠도는 독분을 보았다. 그것은 육안으로 볼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절음십이박과 함께 쏟아져 나오는
정기가 감지한 체감이었다. 방사를 익히지 않았던들 느낄 수
없었던 기운(氣運)…독이 아닌 기운이었다.
기운을 느낀 한, 무영지독은 만독지왕(萬毒之王)이 아니었다.
맛도, 형체도 없는 완벽한 무영지독, 전설은 사실이었다. 하지
만 그 사이에도 틈은 있었다. 그리고 절음십이박은 정확히 그
틈새를 파고들었다.
당문주 당기룡은 선 채로 몸이 굳어졌다.
단비하의 말대로 비명도 없었고, 고통을 당한 흔적도 없었다.
싸움에 임하기 전 긴장된 기색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실로 찰
나간에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허허허! 잘 봤네. 자네는 일수천명이란 외호를 버려야겠어.
독의 제일인자 당문주를 꺾은사람…자네는 독왕(毒王)이야.”
말을 마친 삼절 진인은 검을 뽑아 목을 그었다.
“허허허! 형님들, 이놈이 미련해서 단비하 저 놈을 끌어들였
소. 청성문도들만 내보내지 않았어도 대봉전시는 성공하는 건
데. 허허허! 형님들, 이 몸도 살아 짐만 될 몸이니 형님들을
따라가리다.”
유명원주 정태구는 누가 말릴 사이도 없이 품속에서 독을 꺼내
자신에게 하독했다. 그의 죽음은 셋 중에서 가장 비참한 죽음
이었다.
“너도 죽어라,”
무산파파의 싸늘한 일갈이 허공을 때렸다.
자신의 아들, 갈홍아의 부친인 무명인에게 하는 말이었다.
“어머니 그동안 모시지 못해서…”
“닥쳐! 너는 내 뱃속으로 나은 놈. 저놈은 몰라도 네놈의 생명
은 거둘 권리가 있다.”
“장문, 제발 고정을…”
미독환사 전유는 무산파파의 옷깃을 부여잡고 간곡히 사정했
다. 당문의 대를 끊을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무산파파의 분
노에 찬 얼굴은 식을줄 몰랐다.
“어머니, 그럼 부디 안녕히…”
무명인은 풀썩 주저앉았다. 어느새 그의 기해혈에는 독비(毒
匕)가 깊숙이 꼽혀 있었다.
“아버지!”
갈홍아의 입에서 절규가 새어나왔다.
무산파파의 얼굴에도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잘가거라. 살아서는 내 자식이 아니었지만 죽어서는 내 자식
이 되었구나.”
무산파파는 무명인의 시신을 안고 일어섰다, 그리고 얼굴이 흉
악하게 변한 남편은 돌아보지도 않은 채 걸어나갔다. 모진 게
인연의 사슬이었다. 늙어 죽을 무렵이 되어서야 만난 남편과자
식, 무산파파는 인연의 사슬을 이런 방법으로 끊었다.
단비하는 반사영에게 다가갔다.
은색 가면인을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희망이 좌절된 인간은
살 의욕을 느끼지 못한다. 은색 가면인처럼 평생을 외곬으로
걸어온 사람이 느끼는 좌절은 영구히 치유될 수 없었다.
그런 사람과 싸워서 무엇 하겠는가.
조양진인의 말이 떠올랐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미워할때도
있어야하고 아무리 미운 사람이라도 사랑할 때가 있어야 한다
는…용서하고 또 용서하는 것도 복수중 하나라는…
“아직도 나를 사부로 여기느냐?”
“그럼 아닌가요? 한번 사부는 영원한 사부예요.”
손을들어 반사영을 머리를 쓰다듬었다.
“홍아, 우리도 가지.”
정자 난간에 기대고 하염없이 울고 있던 갈홍아는 눈물 젖은
얼굴을 들었다.
“가세요. 저도 죽어야해요. 저는, 저는…모든 걸 잃었어요.
저를 동정할 필요는 없어요. 비하, 언니…흑흑!”
“나를 얻었잖아! 그리고 우리의 아이가 있잖아. 이 아이…잘
키워 봐야지?”
“비하!”
갈홍아는 무너지 듯이 단비하의 품속으로 안겨들었다.
모든 걸 잃었다. 몸도 마음도, 아버지도, 성씨까지도 하지만
또 모든 걸 얻었다. 단비하를…
이경화가 사망산검의 손을 잡고 활짝 미소띤 얼굴로 다가왔다.
“갈 매, 아니 당 매…이거 참 뭐라고 불러야 하지? 아무튼 잘
됐어. 축하해.”
“언니, 미안해…!”
“내숭은…그럼 내가 뺏을까?”
“언니…”
“호호호! 단공 우리 갈매 잘해 줘야해요.”
“고마워.”
이경화는 급히 사망산검을 몰아 세웠다.
“아버지 빨리 가요. 나, 배고파 죽겠어요.”
하지만 돌아서자 마자 구슬같은 눈물이 흩러내렸다. 애써 웃음
을 지으려는 얼굴, 그 속에 감춰진 슬픔이 더욱 애잔하게 가슴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 마음은 사망산검이 누구보다 잘 알지 않은가. 사망산검은
눈인사를 보내고 딸의 손을 붙잡았다.
“낄낄낄i 우리도 가야지. 참 한연지라고 했던가? 그 계집 여간
독한 게 아니던데? 아무리 권유를 해도 막무가내야. 결국 기은
촌으로 들어갔네. 그녀가 들어갔으니 화궁이 더욱 활개칠 거
야. 낄낄낄! 살아있는 한 복수를 하겠다고 하더군. 조심해야
할 거야. 내가 보기에는 그러고도 남을 계집이야.”
“할아버지…”
갈홍아는 다시 눈물을 지었다.
“말만한 계집이 눈물은…아! 자식까지 있는 여자가…”
하지만 독사우공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잘 살아.”
“할머니를 부탁해요.”
“낄낄낄! 그건 걱정하지 마. 야, 뱀대가리 가자.”
“나는 인사도 못 했는데.”
“영원히 안 볼거야? 빨리 가자.”
독사우공과 사두열목도 떠나갔다.
단비하는 지그시 호면을 응시하고 있는 노인을 일견하고는 깊
은 한숨을 내쉬었다.
“홍아 가자.”
“할아버지는…”
“휴우! 사람은 다 제 갈길이 있지 않을까?”
갈홍아는 단비하의 말 뜻을 알아들었다.
할아버지는 아직도 혈반사접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의 자식들이 모두 죽은 마당에도.
“혈반사접을 완성해야 해. 혈반사접을 완성하면 모든 것을 다
시 찾을 수 있어. 그때 이놈들…나를 떠난 대가를 치러 주겠
다.”
노인은 몸을 돌렸다.
그의 눈에 일생을 독과 더불어 살아온 네 자식의 시신이 보였
다. 노인은 이성을 잃었다.
“우후후후! 혈반사접…혈반사접…”
노인은 혈반사접이 있는 곳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쿠르릉…!
육중한 석문이 열리고 혈반사접이 눈에 들어왔다. 아! 그런데
한마리 남아 있던 혈반사접이 날개를 처박고 죽어 있지 않은
가?
“안돼! 죽으면 안돼!”
노인은 옥벽을 여는 단추를 눌렀다.
스르륵!
그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혈반사접의 새빨간 눈이 번뜩이며 달
려들었다.
“아아악…!”
노인은 자신이 평생 심혈을 기울였던 혈반사접에 의해 최후를
마쳤다. 혈반사접 평범한 독나방이 진화를 거듭한 끝에 스스로
먹이를 사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 *
울창한 수림을 오르는 노인이 보였다.
그는 산을 오르기가 힘에 겨운지 가끔 커다란 나무 곁에 주저
앉아 숨을 돌렸다.
드디어 발길이 멈춘 곳은 바로 당문이었다.
당문은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리는 한낮인데도 사람들로 인해
발걸음을 떼어 놓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거의 대부분 질병으
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
“어디가 아파서 오셨습니까?”
노인은 친근한 어조로 물어오는 당문도를 보면서 희미한 웃음
을 지었다.
“허허허! 당문도 많이 변했군 그래.”
“네에?”
“아닐세, 옛날 생각이 나서 한 말이야.”
“아, 전에도 와 보셨군요. 연세가 드셨으니 조심하셔야죠. 안
으로 드시지요. 젊은 사람 못지않게 기력을 되찾아 드리지요.”
“허허허! 그런 말은 늙은이에게 빨리 죽으란 소리나 진배없
어.”
노인은 다리가 아픈지 주저앉아 행낭을 뒤적거렸다.
“허, 요놈이 여기 있었군.”
행낭속에서 꺼내 든 것은 한권의 책이었다.
누렇게 변색된 한지 뭉치.
“장문에게 전해 주게나. 귀한 물건이니 잘 보관하라고…허허
허! 평생을 연구했는데…아직 멀었어. 독왕…허허허! 독왕이
겨우 스물아홉에 깨우친 심득이라네.”
당문도는 누런 한지 뭉치를 받아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겉면
에는 아무 글씨도 적혀 있지 않았던 까닭에…
“누가 주셨다고 말씀 올릴까요?”
“허허허! 활문의 이대 문주 반사영이라고 전해 주게나. 그 책
은…음! 이름을 뭘로 할까? 허허허! 그래, 독왕유고(毒王遺
稿)…독왕유고가 좋겠군그래. 이미 타계하신 분이니…”
허리가 꾸부정한 노인의 눈곱 낀 눈에는 자색 대문 안에서 어
린 시절을 비참하게 보냈던 선사의 영상이 그려졌다. 푸른 하
늘에 유유히 떠가는 구름 너머로…
까르르…!
당문 안에서 철없이 뒹구는 해맑은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들려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