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public of Korea in reverse! RAW novel - Chapter (369)
역천의 대한민국-369화(369/369)
#369. 피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야
1966년 12월 9일.
중화인민공화국 베이징.
마오쩌둥의 저택.
“이게 뭡니까?”
“저우 동지가 다음 주 중반 정도에 중앙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읽어 주었으면 하는 것이네.”
“이, 이걸 말입니까?”
“왜? 마음에 들지 않나?”
“…….”
저우언라이는 황당함을 금치 못하였다.
대한민국의 전 외교부 부총리 김규식이 12월 1일 서거하여서, 저우언라이도 천윈 임시 주석의 부탁을 받고서 조문객으로 다녀왔다.
불과 몇 달 전까지 일방적으로 도륙당하였던 치욕을 안겨 준 나라였지만, 그래도 김규식 정도의 거물이 죽었다면 조문하는 것이 훗날을 위해서라도 옳다고 판단해서였고, 저우언라이도 원래부터 김규식과는 친분이 있었기에 조용히 다녀온 것이다.
그런데, 귀국하자마자 마오쩌둥의 호출이 있어서 저택에 방문하였는데, 이미 모인 인물들의 면면이 심상치 않았다.
린뱌오가 마오쩌둥의 옆에 앉아 있었고, 마오쩌둥의 부인 장칭도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떨거지들.
마오쩌둥의 사형 집행인이라고 불리는 캉성, 주둥아리만 살아서 마오쩌둥의 사상을 이론화하고 대필하는 천보다, 그밖에 장춘차오와 왕훙원, 그리고 장칭이 뒤를 봐주는 야오원위안 같은 애송이들이었다.
모인 인물들이 마오쩌둥의 오랜 심복이거나 최근에 심복으로 등극한 자들로, 저우언라이는 이때부터 어째 예감이 좋지 않았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적중하였다.
저우언라이가 마오쩌둥이 권하는 의자에 앉자마자 그의 코앞에 내민 문서 하나.
“이게 뭡니까?”
“읽어 보시게. 읽어 보면 알 것이야.”
“…….”
저우언라이는 천천히 읽어 보다가 경악하였다.
이건 세상을 다시 한번 뒤집어엎어 버리겠다는 일종의 선언문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피 냄새가 진하게 났다.
대약진 운동이나 지난번 대한민국과의 전쟁 정도의 피 냄새가 말이다.
저우언라이는 어떻게든 이건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그는 마오쩌둥에게 대항할 수 없었다.
“이보게, 저우언라이. 마음에 들지 않냐고 물었네만?”
결국 저우언라이의 입에서는 다른 소리가 나왔다.
“아, 아닙니다. 전적으로 찬동하는 내용입니다.”
“허허허! 그렇지? 그래, 난 항상 저우 동지를 믿었네. 앞으로도 믿을 것이고 말이야.”
“감사합니다. 하지만…….”
“하지만?”
“이 내용대로 진행된다면, 우리 중화인민공화국은 또다시 엄청난 피를 흘리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 내용을 조금만 순화시키는 것이…….”
“어허! 저우 동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뭐? 아니, 이보게 린뱌오…….”
“그 문서는 천보다가 정리하기는 했지만, 오롯이 마오 주석님께서 공화국의 앞날을 걱정하여 심혈을 기울여 쓴 것이오! 그런데, 지금 저우언라이 동지는 감히 마오 주석님의 생각이 틀렸다는 거요! 엉? 말을 하시오, 말을!”
“그런 말이 아니잖은가! 단지 이 내용대로 그대로 실행된다면 가뜩이나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공화국의 인민들의 고통이…….”
“그만, 그만들 하게.”
“…….”
“…….”
저우언라이는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린뱌오 자식이 하도 깝치는 바람에 자신도 모르게 흥분한 것이었는데, 적어도 지금 이 자리에서는 명백한 실수였다.
당장 좀 전만 해도 마치 끌어안아 주기라도 할 것 같았던 마오 주석의 눈매가 그를 사납게 보고 있는 것이 그 사실을 증명하였다.
“저우 동지.”
“네, 주석님.”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들었나? 편하게 말해 보게.”
여기서 잘해야 한다.
삐끗하면 그냥 낭떠러지다.
지금은 천윈이 군부의 예젠잉과 쉬샹첸, 그리고 녜룽전 등의 지지로 간신히 임시 주석직을 유지하고 있지만, 전쟁으로 걸레가 되어 버린 인민 해방군은 전쟁에 반대했고 아들마저 잃어버린 린뱌오에게 기울어진 상태다.
당연히 실각 중이었던 마오쩌둥은 애초부터 전쟁에 반대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점점 지지세를 확대하는 중이었고.
그런데 이 둘이 손을 잡았다.
즉 마오쩌둥이 다시 권력을 잡는 일은 시간문제라는 말이다.
이미 많은 당 간부들이 대놓고 마오쩌둥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상황이었고 말이다.
살려면 무조건 따라야 한다.
“아닙니다, 주석 동지. 그럴 리가 있습니까? 제가 비행기를 타고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말이 잘못 나왔나 봅니다만, 그런 말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정말인가?”
“정말입니다.”
“허허허! 그래, 나는 우리 저우 동지를 믿는다니까?”
“가, 감사합니다.”
“그래, 저우 동지를 믿지만 내 말을 명심하게. 저우 동지는 가끔 보면 좀 사람이 우유부단한 면이 있네.”
“그, 그렇습니까?”
“내가 보기에는 그래. 그런데 말이야, 사람이 독하게 마음을 품어야 할 때는 그리해야 큰일을 할 수 있는 법이야. 내가 물러나서 어떻게 하면 우리 혁명을 완수할 수 있을까, 곰곰이 고민하고 많이 생각하였지.”
“역시 훌륭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결론은 오직 하나였어. 정치, 사회, 문화, 사상? 다 뜯어고쳐야 해.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
저우언라이는 눈알을 번들거리면 말하는 마오쩌둥의 물음에 대답하기도 겁이 났다.
“다시 시작하려면 잘못된 옛것을 철저히 파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맞습니다.”
“그리고 사람도 마찬가지야. 내가 왜 실각해서 야인으로 지냈어야 했나? 응? 대약진 운동의 실패? 인민들 몇이 배가 좀 고프고 죽었다고 치자. 그래서 어쩌라는 것인가?”
저우언라이는 이 부분에서는 정말 환장할 것 같았다.
고작? 인민들 몇?
어떻게 수천만이 인민들 몇으로 둔갑할 수 있는가?
“나는 말일세, 다시는 지난번같이 수정주의자들과 흐루쇼프 추종자들을 다독이면서 혁명을 완수할 생각 따위는 없어. 당과 군, 그리고 정 모든 분야에서 쭉정이들을 골라서 버려야 해. 그렇게 하려면 당연히 피를 보아야 하겠지. 그건 어쩔 수 없고, 그런 피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야.”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우리 저우 동지는 다 좋은데, 그런 면에서는 약간 강단이 부족한 거 같아.”
“앞으로는 그렇게 보이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허허허! 항상 그랬지만, 내게 거짓 없이 제대로 보고하고 내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는 사람은 역시 저우 동지밖에 없어.”
“…….”
일단은 살았다.
솔직히 마오쩌둥도 알고, 저우언라이도 알았다.
결국은 이렇게 될 것을 말이다.
그래서 마오쩌둥이 저우언라이를 그토록 신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저우언라이는 절대로 마오쩌둥을 거역할 수 없었으니까.
“너무 부담을 갖지는 말게. 일단 처음 포문을 여는 것은 린뱌오 동지가 할 것이야.”
“그렇습니까?”
“그래, 린뱌오가 좀 거칠게 나가면, 당신은 그저 이 서신을 조용히 읽어 주면서 찬성의 뜻을 표시하기만 하면 되는 거라고.”
“알겠습니다.”
“허허! 얼굴 좀 펴게나. 누가 보면 내가 잡아먹기라도 하는 줄 알겠네.”
“아닙니다, 주석 동지. 그저 좀 피곤해서요. 저기, 송구합니다만, 그런데 왜 제가 읽기를 원하시는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음? 정말 몰라서 묻는 건가?”
“네, 정말 몰라서입니다만…….”
“으하하하! 가끔 보면 말이야, 아주 똑똑한 사람도 자신을 볼 때는 멍청해질 때가 있더군.”
“네?”
“저우 이 친구야, 자넨 자네의 가치가 얼마나 높은지 모르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이보게 저우, 당은 물론이고 일반 인민들도 자네에 대한 신뢰가 무척이나 깊다는 것을 정말로 몰라서 하는 말인가? 하하하!”
“…….”
저우언라이는 속으로 생각하였다.
실각하기 전보다 더 독이 바짝 오른 마오쩌둥이다.
그전에 그나마 온화함을 가지고 있을 때도 수천만이 죽어 나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얼마나 죽을까?
도무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저 가능하면 적은 피를 흘리기를 기원할 뿐이다.
1966년 12월 12일.
정치국 확대회의.
마오쩌둥의 말처럼 린뱌오가 먼저 포문을 열었다.
“우리 공화국은 지금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해 있다! 지난 대한민국과의 전쟁으로 베이징의 북부와 동부, 그리고 산둥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뼈아픈 사실은! 1,000만이 넘는 우리의 아들들과 남편, 그리고 아버지를 잃었다는 거다! 어째서 이런 참극이 벌어졌을까?”
“…….”
“이게 다 어쭙잖게 자본주의를 추종하는 수정주의자들이 당내에서 암약한 사실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저 빌어먹을 류사오치와 덩샤오핑! 그들 반동 놈들이 우리 공화국을 어떻게 망쳐 놓았는지 보라!”
“…….”
“그 위선자 놈들은 때를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의 위대한 지도자 마오쩌둥 동지께서 직접 교시한 대약진 운동의 사소한 점을 트집 잡아서 권력을 쟁취하였다! 그들은 우리 죽음을 원하였던 가짜 혁명가이며 가짜 마르크스주의자이다! 그놈들은 항상 마오 주석을 배신하려 했고, 배신하였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인민들의 참혹한 죽음! 우리 위대한 인민 해방군의 처참한 죽음뿐이었다!”
“혹자는 내게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너는 동북군의 수장으로 패장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나는 대한민국과의 전쟁을 애초에 반대했었지만, 그럼에도 우리 아들과 남편, 아버지들을 단 한 명이라도 더 살리고자 패장이 될 것이 분명함에도 그 자리를 맡았다.”
“…….”
“그렇다, 나는 패배했다. 하지만! 나는 또 승리했다!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내가 아니었으면 그 누가 베이징을 지킬 수 있었을까?”
“…….”
“나는 베이징을 지키기 위하여 내 아들이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전투기에 태워서 적진으로 보냈다! 그렇게 나는 아들을 잃었다. 그 누가 나를 비난할 수 있을까!”
“누구고 린뱌오 동지를 비난할 수는 없소!”
“그렇소! 린뱌오 동지가 있었기에, 그나마 우리 베이징을 구할 수 있었소!”
마오쩌둥 일파와 미리 손이 닿아 있던 간부들이 열성적으로 린뱌오를 비호하고 지지하였는데, 이 열기는 점점 이 촌극과 관련이 없던 당 간부들에게도 번져 나갔다.
“그렇다! 나는 흐루쇼프의 수정주의를 추종하는 저 간악한 무리들로부터 베이징을 구하였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진 공화국을 구해야 하지 않을까?”
“옳소!”
“그 누가 우리 인민 공화국을 위기에서 구해 낼 수 있을까?”
“오직 마오쩌둥 주석님만이 가능한 일이오!”
“그렇다! 우리 위대한 지도자 마오쩌둥 주석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 것이다. 안 그렇소? 저우 동지?”
저우언라이는 화들짝 놀라서 린뱌오를 바라보았다.
방금 질문은 사전에 협의가 전혀 없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쨌든 대답해야 했다.
“린뱌오 동지의 말씀이 전적으로 옳소! 마오 주석만이 위기에 빠진 공화국을 구원할 것이오!”
“잘 말씀하셨소! 저우 동지!”
“…….”
저우언라이는 속으로 린뱌오에게 이를 갈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슬슬 마오쩌둥의 지시를 이행해야 한다.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베이징의 하늘이 어쩐지 핏빛으로 물들어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