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staurant where the fox waits RAW novel - Chapter 192
제194화
194화
많이 궁금했다.
연이가 도대체 어떻게 귀신만 들어올 수 있는 시간대의 소반에 들어올 수 있는지도 그랬지만, 여고생인 녀석이 이 시간까지 밥도 안 먹고 뭐 하고 돌아다니는 건지가 많이 궁금했다.
혹시 집에 쉽사리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아니면 저녁을 잘 챙겨 먹지 못하는 건 아닐까.
사람이 얼굴을 두 번 이상 보면 운명이라 치고 정이 든다고 하지 않던가.
어쩌면 태규는 이 수수께끼의 손님에게 정이 들어버린 것일지도 몰랐다. 물론 연이가 태규가 만들어준 밥을 세상 맛있게 잘 먹어주었던 덕도 있었지만.
“아…… 그게 말이죠.”
조금 말을 더듬는 연이. 정말로 말하기 껄끄러운 사연이라도 있는 건 아니었나 하고 고민하던 그때였다.
“저 요 앞에 고등학교 다니잖아요. 거기 야자 끝나고 나오면 딱 이 시간이거든요.”
“야, 야자? 야자를 밤 10시까지 한다고?”
“원래는 밤 8시까지인데요. 추가로 희망하는 학생들 대상으로는 9시 30분까지 시켜주거든요. 그래서 책 정리하고 노트 들고 나오면 뭐…… 한 10시쯤인 거죠.”
“아아, 그랬구나. 응. 그랬구나.”
순간 이상한 생각을 했던 자신이 부끄러우면서도 뭔가 미안해졌다.
하긴. 저녁을 조금 늦게 먹는다고 해서 다들 이상한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던가.
“집에 들어가서 엄마한테 밥 차려달라고 하기 미안하잖아요. 그래서 먹고 들어가는 거죠.”
“멋진 효녀네. 이렇게 엄마 챙겨줄 줄도 알고.”
“에이…… 아무것도 아니에요. 엄마가 저 혼자 키운다고 하루 종일 고생을…… 아, 이건 그냥 잘못 들은 걸로 해주세요.”
“응. 걱정하지 마. 그건 그렇고 공부 되게 열심히 하는구나. 아저씨도 딱 너만 한 딸이 있거든. 미호라고.”
정말로 연이와 비슷한 나이대의 미호가 딸이어서 그런 걸까.
어딘가 아빠의 마음이 동하는 게, 점점 더 이 착한 효녀가 마음에 들기 시작한 태규였다.
“연이는 공부 그렇게 열심히 해서 뭐하게?”
“저요? 조금 부끄러운데.”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괜찮아. 그냥 학교 근처 밥집 아저씨의 오지랖이니까. 무시해도 아무런 상관없는 거지. 응응.”
“사실 그런 학교 근처 밥집 아저씨니까 말해줄 수 있는 건데요. 저는 그러니까아…… 서울대 들어가려고요.”
“오! 서울대!”
서울대라면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교가 아닌가.
그런데 도대체 서울대 들어가겠다는 게 뭐가 그렇게 부끄러운 일이라고 이렇게 뜸을 들이면서 말하는 건지. 이해가 잘 안 가는 순간이었다.
“서울대 조리과…… 가려고요.”
“서, 서울대 조리과? 서울대에 조리과가 있어?”
“원래는 식품공학 어쩌고 하는 과인데. 여기 졸업하면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셰프가 될 수 있거든요. 해외도 다녀올 수 있고요. 제 꿈이 요리사라서, 그냥. 네에.”
요리사라는 자신의 꿈을 고백한 연이의 얼굴이 부끄럽다는 듯이 빨개졌다.
참 이상한 아이가 아닐 수 없었다. 도대체 요리사가 뭐가 부끄럽다고.
“응원할게. 잘할 수 있을 거야.”
“아저씨 요리 엄청 맛있어요. 진짜로요. 사실 그것 때문에 오는 것도 있거든요. 어떻게 익숙한 음식에서 이런 맛이 나지…… 하고 신기해서요.”
“칭찬해 주니까 고맙네. 그건 그렇고.”
혹시 귀신을 본다거나, 요새 이상한 일이 있다거나, 할머니가 무당이라거나 하지는 않니.
그렇게 물어보려던 태규였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어쨌든 연이 또한 사람이긴 해도 엄연한 손님 아닌가. 식당에 배가 고파서 밥을 먹으러 온 손님이라면, 그게 누구든 제대로 대하는 것이 사장의 도리일 터.
“네? 뭐가요?”
“으응, 아무것도 아니야. 나중에 배고프면 또 와. 아저씨가 맛있는 야식 만들어 줄게,”
“네, 좋아요!”
오늘도 어김없이 밥 한 그릇을 말끔히 비운 후. 연이가 집에 돌아가기 위해 주섬주섬 책가방을 챙겼다.
그렇게 소반의 문을 나가려다가, 갑자기 문득 떠오른 것이 있다며 태규에게 말했다.
“아저씨, 그런데요. 아저씨 저 어디서 본 적 있어요?”
“응? 어…… 아니. 그건 왜?”
“아니, 그냥. 뭐랄까. 이상하게 아저씨 처음 봤을 때부터요. 어디선가 본 것 같았거든요. 분명히 분명히 뭔가가 있었는데. 으음.”
“기분 탓이겠지. 늦었으니까 조심히 들어가. 아저씨도 이제 퇴근하련다.”
“네에! 좋은 밤 보내세요!!”
연이는 그렇게 돌아갔다.
배를 든든히 채운 다음, 총총걸음으로.
태규는 연이가 사라진 골목길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다시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말이지 신기할 정도로 미호와 많이 닮은 아이라고 생각했다.
‘어디선가 본 적 없냐고 했었지…….’
어디서 보았을까. 혹시 서로 모르는 사이에 스쳐 지나가면서 만난 적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
그렇게 잠깐 고민하긴 했지만, 그 고민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라졌다.
연이는 그저 손님일 뿐이니까. 조금 특별한 손님.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때는 그랬다.
* * *
연이가 다시 소반을 찾아왔다.
이제는 아주 맛을 들인 것인지,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일주일에 세 번씩은 무조건 찾아오고 있었다.
귀신들이 밥을 먹고 가는 늦은 자정 시간대에만 오는 것도 아니었다.
아침을 먹으러도 오고, 야식을 먹으러도 오고, 심지어 가끔씩은 식당에 와서는 밥이 아니라 간식을 만들어달라 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혈혈단신으로 혼자만 오던 녀석이 언제부터인가 친구들까지 데려오기 시작했다.
자신의 짝꿍부터 시작해서, 베스트 프랜드라는 녀석들과, 자신에게 계속 들이댄다는 음흉한 남자애도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소반에서 미호와 마주쳤다.
같은 학교였으니. 미호와 연이는 태규가 만들어준 밥을 먹으며 순식간에 친구가 되었다.
미호와 연이는 성격이 정말로 비슷했다. 심지어 아빠 같은, 그리고 아저씨 같은 요리사가 되고 싶다는 꿈까지 전부 다 똑같았다.
정말이지 신기할 정도로 그랬다.
두 아이들은 순식간에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가끔은 투덕거리며 싸우기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언제 싸웠냐는 듯 화해도 했다.
그러다가 한 달에 한 번 즈음.
달이 밝고 그 빛이 청명한 날의 밤마다, 연이는 이런 이야기들을 해 주었다.
– 진짜 이상해요. 아무리 봐도 아저씨 옛날에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아니, 착각이 아니라 진짜라니까요!
– 저 있잖아요. 저번에 엄청 이상한 꿈을 꿨거든요? 막 조선시대 나오는 꿈이었는데. 아무튼 거기에 아저씨랑 엄청 비슷하게 생긴 선비가 있었다니까요?!
– 아저씨. 아저씨. 태규 아저씨. 아저씨 진짜 동안이다. 어떻게 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나이 먹은 티가 하나도 안 나요? 저 피부 관리하는 법 좀 알려주세요, 진짜로!
일전에 연이가 태규를 보았다고 했다.
어디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디선가 보았다고 했다.
그게 과거였는지, 꿈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한 착각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연이가 나이를 먹어갈수록.
조금씩. 아주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조금씩.
연이는 무언가를 깨닫고 있던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연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라던 서울대에 들어갔다.
학점을 엄청나게 잘 받아서, 해외로 유학을 다녀온다고 했다.
일단 프랑스를 먼저 갈 예정인데. 미슐랭 쓰리스타를 받은 엄청 유명한 셰프에게 요리를 배울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이제 아저씨 한참 동안 못 볼 것 같아서 미안하다고. 보고 싶을 거라고.
그래서 태규는 대답했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 그저 기다리고 있겠노라고.
네가 한국에 돌아왔을 때 이 자리에 소반이 없을 수도 있지만, 어디에선가 미호와 함께 기다리겠노라고. 그렇게 말해주었다.
* * *
오랜 시간이 지났다.
태규는 소반을 폐업하고 위치를 옮겨서 다시 개업해야만 했다.
그동안 알고 지내던 혜영 아주머니 같은 주위 사람들과도 연락을 쉽사리 할 수 없게 되었다.
태규는 나이를 먹지 않았으니까. 아직은, 나이를 먹고 싶지 않았으니까.
들킬 수는 없었다. 그래서 소반의 식구들을 제외하고 아무도 모르게 떠났다.
태규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소반을 다시 열었다.
손님들도 왔고, 귀신들도 왔고, 이매망량과 신들과 저승사자들도 와서 밥을 먹고 갔다.
미호는 어엿한 성인이 되었다. 20대 중반.
태규는 미호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미호는 예전부터 아빠를 도와서 같이 소반에서 요리를 하는 게 자신의 꿈이었다면서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자식의 고집을 이길 수 있는 부모는 없었다.
그렇기에 미호와 함께 이사한 소반을 운영했다.
평소와 다를 것 하나 없는 나날이었다. 미호는 태규와는 달리 나이를 꼬박꼬박 먹긴 했지만, 그래도 아빠 눈에는 아직도 다섯 살 아이 같았다.
평화로웠다. 그저 느긋하고 행복한 시간들이 영원할 것처럼 그저 흘러가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치링~
문이 열리고.
터벅-
익숙한 얼굴이 걸어들어왔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 나이를 먹긴 했지만, 확실히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아저씨.”
태규가 대답했다.
“응, 연이야.”
잠시 망설이던 녀석의 눈가가 글썽거렸다.
조금 많이 벅차오른 목소리로, 연이가 태규에게 말했다.
“아저씨 이름 태규 아니잖아요. 맞잖아요.”
“응.”
“저 다 기억났어요. 아저씨가 왜 안 늙는지도, 저 전부 알아요.”
“……응.”
“한국 돌아왔는데 소반이 없어져서. 그래서 한참 찾았어요. 미친 듯이 찾으면서 돌아다니다가, 정말로 포기해야 하나 싶었는데. 정말 우연히. 이렇게 다시 찾아서.”
“……응.”
“아저씨.”
연이는 이제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올곧은 눈빛으로, 마치 미호가 그러했던 것처럼 태규를. 아니, 한때 선비이자 서방이었던 누군가를 바라보며 말했다.
“많이 기다렸죠?”
“아니야. 기다릴 만했어.”
“고마워요. 기다려 줘서.”
“믿었으니까. 다시 만날 거라고.”
정확하게 그때부터였다.
태규가 나이를 먹기 시작한 것이.
500년에 걸쳤던 운명의 굴레가 완전히 끊어진 것이.
여우가 기다리는 식당에, 여우가 찾아오게 된 것이.
이제는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
네가 왔으니까.
많이 보고 싶었다.
연희야.
– TextEditor Ver.1504100 – By. Sunsh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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