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Genius Ranker of All Times RAW novel - Chapter (113)
제113화
113화.
정신없이 떠오르는 메시지들이 도현을 반겼지만, 지금 그런 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찰리?”
“예, 주군.”
황당함에 중얼거리자 곧장 답하는 찰리.
묵직한 목소리, 깐깐한 인상의 미중년 같은 얼굴, 찰랑거리는 금발.
도현이 기억하는 찰리가 맞았다.
[맹약의 기사의 충성도가 최대치입니다.]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카이저의 첫 번째 검 찰리’가 당신의 가디언이 됩니다.]“제가 드린 목걸이를 잘 간직하고 계셔 주셨군요. 덕분에 이 미천한 검, 늦게나마 주군의 곁으로 올 수 있었습니다.”
찰리에겐 최소 수백 년, 어쩌면 천 년이 넘어가는 시간을 거슬러 도현의 곁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러니까 찰리의 가디언화가 숨겨진 옵션이었다는 거지?’
왜 굳이 목걸이를 주나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던 건가.
가디언을 주는 옵션이라니…….
뭐 이런 옵션이 다 있나 싶지만, 히든 옵션들이 다 그런 법이었다. 온갖 옵션이 다 나왔으니까.
그리고 지금 도현이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와, 타이밍 미쳤다.’
마침 35레벨이 되며 찰리가 나타나 준 덕에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으니까.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이대로 죽나 싶었다.
도저히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는데 이런 걸 보고 가밀리온은 운명이라 했던가.
“주군, 좀 더 제대로 인사를 드리고 싶지만, 아무래도 지금은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군요.”
“그래.”
찰리의 말대로 지금은 감상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었다.
[크아아아아!]“저 끔찍한 기운…… 분명 심연의 기운으로 보입니다만, 맞습니까?”
아직 파멸자 게이먼이 살아 있었으니까.
찰리의 일섬에 큰 피해를 입은 듯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지만, 한 방에 10%의 생명력을 없애는 건 무리였다.
[죽인다, 기필코 죽인다…… 이대로……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칠판을 긁는 듯 쩍쩍 갈라지는 목소리로 연신 중얼거리는 녀석.
그런 놈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놈을 보며 대충 수긍해 주자, 본능적으로 눈살을 찌푸리던 찰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진심으로 감탄했다.
“과연 주군이십니다. 그 긴 세월을 놈들과 싸워 오고 계셨군요.”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겸손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주군의 충직한 검인 저 찰리의 눈은 속일 수 없으니까요. 얼마나 힘든 시간이셨을지…… 앞으로는 제가 주군을 보필하겠습니다!”
“……그냥 그런 거로 하자.”
깐깐한 인상의 미중년이 초롱초롱하게 눈을 빛내는 걸 보자니 썩 달갑진 않았지만, 도현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저 리액션 넘치는 양반한테 말을 길게 해 봐야 의미 없다는 걸 경험으로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해명할 시간이 없었다.
소리 없는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는 놈을 상대해야 했으니까.
이성을 잃은 것 같지만, 그 와중에도 도현부터 노리고 드는 모습에서 악랄함이 느껴졌다.
생명력이고 마력이고 모두 바닥을 보이고 있는 도현으로선 낭패인 일이었지만…….
“어딜 감히!”
카앙!
다시 검을 빼어 든 찰리가 든든하게 막아 주었다.
저럴 거면 왜 굳이 검집에 검을 넣고 인사했나 싶은데…….
“당연한 겁니다. 주군께 인사드리는데 감히 날을 보일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구나.”
본인이 그렇다니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 저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금 중요한 건, 찰리의 전투력이 상상 이상이라는 거다.
카앙! 캉!
비록 게이먼의 모든 능력치가 70%나 감소되긴 했지만, 단신으로 합을 겨루고 있는 건 엄청난 일이었으니까.
‘와우, 이게 전 기사단장 클라스인가?’
이제 막 얻은 가디언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수준.
튜토리얼 때는 확실히 그 특성상 설정보다 다운 그레이드 된 게 맞았나 보다.
하나 아쉽게도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크윽……!”
[어디서 굴러들어왔는지도 모를 놈이, 감히 나를 상대할 수 있을 줄 알았는가!!]어느 정도 합을 겨룬 것도 잠시, 점점 힘겨워하는 게 보였다.
결국 도현까지 합세하자 비로소 균형을 맞출 수 있었다.
갑작스레 끼어들자 흐름이 불편했던 걸까, 게이먼이 쯧 혀를 차며 한 발짝 물러났다.
덕분에 숨통이 트인 찰리가 자책 어린 목소리를 내었다.
“죄송합니다, 주군. 본신의 힘만 온전히 다룰 수 있었어도…….”
“아까 쓰던 그 기술은 못 써? 강해 보이던데.”
“아, 빛의 검 말입니까. 시간을 거슬러 오느라 많은 힘을 잃어버려 한 번 사용하고 나면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마저도 완성된 빛의 검이 아닌지라…… 면목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전투 당 한 번밖에 못 쓰는 필살기란 소리였다.
아쉽긴 하지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걸 펑펑 쓰고 다니면 밸런스 파괴긴 하지.’
이제 막 가디언이 되었는데, 그런 힘을 가진 게 더 이상한 일이었으니까.
아닌 게 아니라 지금도 충분히 엄청난 성능이었다.
‘찰리랑 함께라면 할 만해.’
오죽하면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좀 전까지만 해도 도무지 가망이 보이지 않았는데, 찰리라는 존재가 이를 가능하게 해 주고 있었다.
이건 단지 생각만이 아니었다.
“내가 지금 상태가 안 좋아, 최대한 붙잡아 줘.”
“알겠습니다, 주군.”
“놈이 회복하기 전에 바로 들어가자.”
도현의 명령을 받자마자 튀어나간 찰리가 완벽하게 게이먼의 어그로를 붙잡은 것이다.
파멸자 게이먼과의 일대일?
[크아아!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것이 귀찮게 하는구나!]어느 정도 버티긴 해도, 결국 놈의 말대로 처참하게 찢어 발겨질 것이다.
하지만 승리하는 것과 어그로를 붙잡는 건 엄연히 다른 이야기.
서걱- 푹!
어그로를 붙잡은 게 확인될 때마다 얌체처럼 공격하고 빠지는 도현에 분노한 게이먼이 표적을 돌리는 순간.
“어디에 한눈을 파느냐! 네놈의 상대는 나다!”
찰리는 질릴 정도로 끈질기게 따라붙으며 방해했다.
그렇게 드러난 틈이 도현의 공격 타이밍이었다.
[이 날파리 같은 것들이!!]놈이 화를 참지 못하고 사방에 어둠의 검을 휘두를 때는, 이미 도현이 사라지고 없었다.
[도대체 왜! 왜 맞질 않는 거냐!]파멸자 게이먼으로서는 답답해서 미칠 노릇이었다.
한 대만.
정말 딱 한 대만 맞추면 되는데, 미래 예지라도 하는 건지 미리 알고 귀신같이 피해 내는 것이다.
‘자고로 최고의 CC기는 딸피지.’
놈은 모르고 있겠지만, 단 한 대면 된다는 생각이 오히려 움직임을 단조롭게 만들고 있었다.
고작 한 대면 되는데 맞질 않으니 흥분하게 되고, 동작도 커지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쉽게 예측이 되는데 찰리가 붙잡아 주기까지 하니, 도현에게 파멸자 게이먼은 더 이상 위협적인 짐승이 아니었다.
퍽, 퍼퍽! 푹!
그저 움직이는 샌드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뿐.
[아…….]서서히, 하지만 확실하게.
놈은 죽어가고 있었다.
[아아…….]그걸 파멸자 게이먼, 그도 알고 있었다.
분명 자신보다 약한 놈들인데.
생명력도, 체력도, 남은 수도 없는 스치기만 해도 죽을 벌레일 뿐인데.
‘……사냥당하고 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피식자가 되어 있는 건 자신이었다.
저 작은 벌레가 자신을 절벽 끝으로 몰아세우고 있는 것이다.
겨우 인간 둘…… 아니, 저 다 죽어가는 인간 하나가 그걸 가능케 만들고 있었다.
이대로 죽을 순 없다. 저 건방진 놈을 죽여야만 한다.
-놈을 죽여라…… 죽여서 해방되어라…….
그리하면 머릿속 목소리처럼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즉사기? 타락 성기사의 강력한 기술들?
마지막 힘까지 쥐어짜 내 부활하느라 일부조차 꺼낼 수가 없다.
무슨 수를 써도 자신의 검은 놈에게 닿지 않고, 놈의 검은 자신을 목숨을 조금씩 도려내고 있었다.
[아.]결국, 게이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10년을 방황하던 자신은, 결국 이곳에서 죽을 거라는 것을.
불멸의 힘을 받아 죽음을 극복한 자신이, 끝내 초라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을.
서걱-
검이 옆구리를 베고 지나간다.
콰득! 캉!
검이었던 그것은, 양날 도끼가 되어 어깨를 찢고, 반격으로 휘두른 게이먼의 검은 찰리의 검에 가로막힌다.
푸욱!
단검이 날아와 심장에 박힌다.
단검이었던 그것은 이내 방패가 되어 찰리를 보호하고, 방패였던 그것은 다시 검이 되어 심장을 노려 온다.
하나의 검은 수많은 살수가 되어 그의 목을 옥죄었다.
-탁시넬 경, 정말 감사하오!
-고마워요, 기사 아저씨! 전 기사 아저씨가 제일 좋아요!
주마등이라도 되는 걸까?
들릴 리 없는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주름진 노인의 힘없는 목소리와, 어린 소녀의 명랑한 음성.
-제발…… 제발 살려 주시오……!
-꺄, 꺄아악! 괴물, 이 괴물! 우리 엄마를 놔 줘! 흐어어엉!
-으아아! 안 돼. 안 된다! 내 딸만큼은 제발 살려다오!
그 목소리는 어느 순간 소름끼치는 절규로 바뀌어 있었다.
주름진 눈가를 접으며 고마워하던 노인은 얼굴이 반쯤 녹아내린 채 목숨을 빌고 있었고.
환하게 웃으며 수줍게 꽃을 건네주던 소녀는 눈물범벅이 되어 울고 있었다.
-살려 줘! 살려 줘어!
-죽기 싫어…… 제발…… 제발……!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
-르베드 경…… 아니, 탁시넬 경! 탁시넬 경은 어디 있소!
수많은 절규가 들려왔다.
피가 쌓이고 쌓여 몸이 반쯤 잠겨 있는 곳에서, 끔찍한 몰골을 한 채 울부짖는 사람들은 모두 탁시넬에게 감사를 표하던 이들이었다.
[그만…… 그만……!]눈이 반쯤 뒤집힌 파멸자가 정신없이 손을 휘저었다.
푸욱-!
심장을 꿰뚫었다.
자신을 찾는 이를, 직접 제 손으로 죽였다.
-탁시넬 경…… 경…….
-괴물…… 괴물이야. 너는…….
-내 가족을 돌려다오, 돌려 달라고!
괴물이라 칭하는 자의 머리통을 터트렸고, 가족을 찾는 이를 가족의 곁으로 보내 주었다.
모두 그날의 기억이었다.
끊임없는 죽음은 이제 늪이 되어 그를 잠식하고 있었다.
아아…….
느껴졌다.
자신에게 마지막 남은 일말의 인간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
자신이 죽였던 이들이 뼈만 남은 손으로 발을 붙잡고 있는 것이.
[금기를 어긴 심연의 계약자, ‘파멸자 게이먼’이 ‘부서진 믿음의 모래시계’를 잃어버립니다.] [파멸자 게이먼의 정신이 심연에 잠식되어 갑니다.]안정적으로 뛰던 심장 박동이 멈추었다.
지독한 공허 속에 빠진 것처럼 소리 없이 메아리치는 감각 속에서.
“이제 그만 가라. 징글징글했다.”
도현의 질린 기색이 가득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푸욱!
이내 심장이 뚫리는 감각이 공허함을 채워 주었다.
불안정하게 유지하던 몸이 흩어지며 죽음에 가까워지는 걸 느끼며 게이먼이 눈물을 흘렸다.
검은 눈물이었다.
[나는… 종이… 되기… 싫… 인간으로… 살고… 을… 뿐이었…….]작은 중얼거림은 끝내 이어지지 못했다.
“이게 어디서 사연을 팔려 그래? 어림도 없지.”
불쑥 끼어든 도현의 목소리와 함께, 목이 잘려나가며 정신이 날아간 것이다.
아지랑이처럼 사라지는 놈의 뒤로 알림이 떠올랐고,
[금기를 어긴 심연의 계약자, ‘파멸자 게이먼’을 처치하셨습니다!] [믿을 수 없는 업적을 세웠습니다.] [모험의 서에 기록됩니다.] [돌발 퀘스트 ‘유일한 희망’을 클리어하셨습니다!] [믿을 수 없는 업적을 세워 퀘스트 보상이 달라집니다.] [보상으로…….]…….
“으아아아!”
도현이 함성을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