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Genius Ranker of All Times RAW novel - Chapter (139)
제139화
139화.
“이쪽으로 오시지요.”
경비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가며 도현은 주변을 살폈다.
다소 칙칙한 풍경이었으나, 달빛이 은은하게 감싸고 있어서인지 그마저도 분위기 있게 느껴졌다.
곳곳에 놓인 촛불이나 검, 단검과 같은 장식품들 때문도 한몫하리라.
‘와……. 주인, 진짜 엄청 크다.’
‘리자리자…….’
‘음, 훌륭한 성이군요. 무척 견고해 보입니다.’
‘그러게. 엄청 크네.’
또 하나 특징이 있다면, 여태 도현이 봤던 건물 중 가장 큰 내부를 보유한 건물이라는 것이다.
크기만 따지면 브리온의 라이르 대신전보다도 훨씬 컸다.
벌써 10분은 걸은 거 같은데 아직도 복도가 끝나질 않고 있었으니까.
‘하긴 숲에서도 훤히 보일 정도였으니.’
도시 전체가 성의 정원처럼 보였던 걸 생각하면 이런 웅장함이 당연하다 싶다.
이 거대한 성을 본 유저가 아무도 없다니.
그야말로 영광스런 순간에 도현의 호기심도 커져만 갔다.
‘대체 왜 그렇게 유저들을 보기 꺼려한 거지.’
도현이 경비에게 건네준 건 진 루드델의 자필 편지였다.
삼촌의 편지가 맞음이 검증되니 바로 들여보내는 걸 보면 그간 고의로 유저들의 입성을 거부했다는 거 아닌가.
‘곧 알게 되겠지.’
이제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터.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복도를 지나치며 본 문 중 가장 고풍스러운 문 앞에 도착한 경비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안에서 성주님이 기다리십니다. 그럼 저는 이만…….”
고개를 끄덕인 도현이 한 차례 심호흡을 하곤 문을 열었다.
그러자 곧바로 들려오는 목소리.
“……당신이 진 삼촌의 편지를 가져온 자입니까.”
낮게 중얼거리는 듯한 중음이었는데, 어딘가 힘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그건 외관에서 더욱 잘 느껴졌다.
웬만한 거실보다 큰 방 크기와 고풍스런 인테리어, 화려한 장식품이 무색하게도 침대에 기대고 누워있는 젊은 남자는 무척 병약해 보였다.
“성주께서 묻습니다. 대답하시지요.”
그런 남자의 옆에서 집사복을 입고 있던 노인이 답을 재촉했다.
호리호리한 체형에서 나왔다곤 생각되지 않는 묵직한 목소리였다.
“예, 맞습니다.”
도현이 본능적으로 즉답하자 젊은 남자, 성주가 피식 웃으며 읊조리듯 말했다.
“그 난리를 치고 나갔던 진 삼촌이 편지를 보냈다는 것도 놀라운데, 사도가 들고 오다니……. 여러모로 궁금한 게 많네요.”
그러며 가까이 오기를 청하는 성주.
도현은 다가가며 성주를 티 나지 않게 훑어봤다.
오랜 세월 병과 싸운 환자처럼 기가 빨린 얼굴과 앙상해진 팔다리.
이제 막 20살이 넘긴 듯 앳된 얼굴과 달리 그의 상태는 썩 좋지 못했다.
밝게 빛나야 할 금발은 윤기가 없이 퍼석했으며, 군데군데 드러난 피부는 보라색으로 변질되어서 척 보아도 심상치 않아 보였다.
‘……이래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거군.’
이 거대한 성의 주인이자 도시의 주인.
가뜩이나 어린 나이도 흠이 될 터인데 저렇게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상태라면 면이 안 살 테니까.
심할 경우 권위가 땅에 떨어져 통제가 안 될 수도 있을 거다.
‘입 싼 유저들한테 밝히려 할 리가 없지.’
지금도 자신의 행보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커뮤니티 전체가 떠들썩하지 않나.
성주의 비밀! 알고 보니 성주는 극심한 환자!?
성주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 이런 기사가 홈페이지를 차지할 게 뻔했다.
“보시다시피 저는 사람들에게 모습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예.”
그래서 더 궁금했다.
이런 와중에도 처음 보는 사도를 만날 마음을 먹었다는 건, 그만큼 진 루드델의 편지가 그에겐 중요하다는 뜻이었으니까.
“진 삼촌은 제 형제이자 아버지나 다름없어요. 옆에 있는 베릭 집사장과 함께 유일한 저의 편이었죠. 아버지가 죽고 후계자 자리에 앉자 사방이 적이 되었으니까요. 마치 그 순간을 기다린 것처럼…….”
“……성주님.”
베릭 집사장이라 불린 노인이 조심스레 말하자 성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쓸데없는 소리를 했네요. 제 이름은 제이 루드델. 당신의 이름은 무엇이죠?”
“카이저입니다.”
“카이저……. 알겠습니다. 뒤에 있으신 분들은…….”
“제 가디언입니다.”
가디언이라는 말에 루드델은 굳이 더 집요하게 파고들지 않았다.
이곳 사람들은 가디언을 데리고 다니는 이가 그리 많지 않지만, 사도들 사이에선 흔하다는 걸 알고 있는 것이다.
“편지에 적힌 내용을 아십니까?”
자기소개를 마치자 제이 루드델의 표정이 한없이 진지해졌다.
도현이 고개를 젓자 제이 루드델이 말을 이었다.
“저를 노리는 이들의 비리 정보가 잔뜩 담겨있더군요. 배낭에는 그놈들 증거가 들어있었구요. 간단한 안부 인사도 없이 참……. 하여튼 진 삼촌답다니까요.”
그러며 슬며시 웃는 그는 어쩐지 진 루드델을 그리워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래서일 것이다.
“……진 삼촌이 죽었다고요?”
무거운 입을 열어 진 루드델의 상황을 알려주자,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것은.
도현은 구태여 대답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의지하던 사람이 죽었다는 건 엄청난 충격일 테니까.
“아아…….”
하나 그걸로 답은 충분했고, 제이 루드델은 이내 손으로 마른 얼굴을 쓸어내렸다.
“자유롭게 살 거라고 떠나더니…… 왜 돌아와서……. 저 때문에 소중한 사람들이 매번 희생되네요. 제가 뭐라고 대체…….”
“성주님. 진정하십시오. 건강이 우려됩니다.”
“빌어먹을 무법자들은 왜 우리 핏줄을 가만히 두질 못하는 거죠? 한 명은 저주에 걸려 서서히 죽어가고 있고, 한 명은 성불도 못 하고 떠돌게 되는 신세라니…….”
“저주요?”
도현이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되묻자 두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잠시 고민하던 그들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진 삼촌과 유일하게 소통이 가능한 사람이라 하셨죠. 삼촌이 믿고 맡긴 사도라면…… 말해드리는 게 맞겠죠.”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성주님.”
[퀘스트 ‘삼촌의 물건’을 클리어하셨습니다.] [타이틀 ‘시작부터 호감도 맥스?’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호감도가 더 크게 상승합니다.] [사르기스의 성주 ‘제이 루드델’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연계 퀘스트 성의 진실이 진행됩니다.]그 말을 끝으로 떠오른 메시지에 도현이 깜짝 놀랐다.
‘레벨이 올랐다고? 벌써?’
이로써 도현의 레벨은 44.
방금 왕의 무덤을 나오며 43레벨이 되었는데 겨우 퀘스트 두 개 깼다고 레벨이 오른 건 엄청난 일이었다.
사르기스부터는 레벨을 올리기가 더럽게 힘들었으니까.
“3년 전의 일입니다…….”
담담하게 내뱉어진 제이 루드델의 목소리에 도현이 정신을 차리곤 집중했다.
그렇게 이어진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랬다.
3년 전, 이전의 성주이자 제이 루드델의 아버지였던 이안 루드델이 죽고, 성주의 자리를 두고 떠들썩해졌을 때.
“만월이 뜬 밤, 그자들이 달빛을 타고 내려왔습니다.”
이승의 존재가 맞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유령들.
갑자기 나타난 무법자들은 군단을 이끌고 성을 위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 성주의 자리를 비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약조대로 정통 후계자인 제이 루드델이 성주가 되었다.
그렇게 제이 루드델은 기사단과 병력을 이끌고 그들과 대적했다.
“수많은 병사와 기사들이 희생당했습니다. 하지만 승산은 있었어요. 이대로만 가면 능히 막아낼 수 있을 거 같았거든요.”
“…….”
“그들이 ‘그것’을 꺼내기 전까지는.”
지독하리만큼 차가운 기운.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를 꺼낸 후로 무법자들은, 이승에선 발휘할 수 없던 저승의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온전한 힘을 내진 못했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것에 닿은 이들은 모두 지독한 한기에 얼어붙었고, 맹독에 걸린 것처럼 타들어 가는 고통을 느끼며 죽어갔습니다. 접근조차 불허하는 끔찍한 기운…….”
덕분에 승기가 확실하게 뒤집혔으니까.
그놈들이라고 계속해서 저승의 기운을 뿜어내는 건 아니었지만, 발동하는 순간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제가 당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살았어요. 염치없게도 사르기스 성의 기사단장님의 목숨을 대신해서 말이죠.”
“그런 말씀 마시지요, 성주님. 파기스 경은 훌륭하게 의무를 다했을 뿐. 그런 말씀은 오히려 경의 희생을 무시하는 겁니다.”
“하. 그게 문제에요 집사장. 괜히 저 살리겠다고 최대전력을 잃었으니까요. 무법자들이 언제 들어올까 손가락이나 빨고 있는 절 보면 경이 눈물을 흘리지 않을까 싶군요.”
“…….”
잠시 분위기가 격해져서 말이 끊겼지만, 이제 더 들을 필요도 없었다.
‘워……. 주인, 생각보다 엄청 심각한데?’
‘그자의 말대로 악의 손아귀에 넘어가기 직전이었군요.’
‘리자리자.’
녀석들의 말대로 언제 무법자들에게 함락당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성주는 죽어가지, 최대전력은 사라졌지.
이 상황을 도시 사람들이 알았다면 무법자들이 쳐들어오기도 전에 쿠데타로 멸망해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늘 의문이었습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우린 다 잡아둔 물고기일 텐데. 왜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고 몇 년째 무언가를 찾고 있는 건지.”
“…….”
“한데 그게 진 삼촌 덕분이었군요. 자유를 외치며 떠난 사람이 정작 죽어서까지 우리를 수호하고 있다니…….”
제이 루드델을 위해 방해하는 세력들의 비리 정보와 증거를 모아서 사르기스에 들렸다가 허망한 죽음을 맞이한 진 루드델.
그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도둑질로.
죽어서까지 무법자들에게서 소중한 조카와 도시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감동적이야 주인……, 그 말 많은 양반에게 그런 비밀이 있었다니.’
‘리자리자.’
‘음! 과연 주군의 위대함을 알아본 자 답군. 훌륭한 책임감이로다.’
‘……좀 달라 보이긴 하네.’
이래서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는 건가.
도현의 머릿속에서 ‘리틀 즈린나’, ‘즈린나 2호’ 정도로 인식되었던 그의 이미지가 책임감 강한 대도둑으로 바뀌었다.
띠링-
[퀘스트 성의 진실을 클리어합니다.] [사르기스 성의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험의 서에 기록됩니다.]그렇게 진실을 모두 듣고 난 도현의 얼굴은 진지했다.
‘무법자들이 얻었다는 ‘그것’은 분명 음의 기운이겠지.’
파멸자 게이먼도 믿음의 모래시계 덕에 심연으로부터 인간의 이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처럼.
무법자들도 음의 기운을 통해 저승의 힘을 일부 쓰는 게 틀림없었다.
‘운명을 완성 못 하면 조각 가지고있어도 별 의미 없고, 어느 정도 영향만 있다면서요. 그 영향이 너무 큰 거 아니냐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던 암왕(暗王)이 생각난 도현이 헛웃음을 지었다.
한 개의 도시가 뒤집어지고, 한 개의 도시가 멸망할 뻔했는데 이게 어느 정도 영향이면, 큰 영향은 아주 나라가 망하겠다.
심지어 이번 건 조각도 아니고 반쪽짜리 열쇠라는 걸 생각하면 그저 어이가 없었다.
‘……아닌가?’
음의 기운을 하필 무법자가 들고 있지 않았다면 이리 위협적이진 않았을 것도 같다.
믿음의 모래시계도 하필 심연의 계약자가 들고 있어서 문제였지, 그게 아니면 단순히 신성력이 담긴 모래시계 정도이지 않았을까.
‘뭐, 지금 이게 중요한 건 아니지.’
중요한 건 무법자들이 음의 기운을 가진 게 정황상 확실해졌다는 거다.
이로써 도현은 꼼짝없이 무법자들을 잡아야 하는 신세가 된 것.
그에 마음을 다잡고 있을 때였다.
댕- 대앵-
성 밖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거대한 종소리.
만월이 될 때면 울리는 그 종소리였다.
“별 일이군요. 이 시간에 종이 울리다니.”
“간혹 멋대로 울리기도 하니까요.”
“……음? 멋대로요?”
도현의 물음에 제이 루드델이 별거 아니라는 듯 답했다.
“달의 기운에 반응하는 종. 달이 뜨면 스스로 소리를 내는데 만월이 뜨고 나면 간혹 이럴 때가 있습니다.”
“아마 달의 기운을 많이 머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저희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법자들이 나타난 후로는, 놈들이 등장하는 걸 알려주는 종으로 전락해버린 느낌이 있지만……. 참 신기한 종입니다. 어떤 실력 있는 자가 만들었는지.”
제이 루드델의 중얼거림에 집사장이 흐뭇하게 웃어 보였다.
그리곤 과거를 회상하듯 감회에 젖은 눈으로 입을 열었다.
“전 성주님께서도 저 종을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푸른색이 달과 닮아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하셨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군요.”
“아버지도…… 너무 오래전부터 있던 종이라 제작자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웠겠네요.”
“맞습니다. 매일 밤 그 말을 하곤 하셨죠.”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도현이 불쑥 끼어 들은 건 그때였다.
“……푸른색이요? 붉은색이 아니라?”
“예?”
눈이 휘둥그레져선 깜짝 놀라 묻는 도현의 모습에 두 사람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당연히 푸른색이지 않겠습니까? 저토록 시린 색을 띠고 있는데.”
그건 두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잉? 주인, 그게 무슨 소리야? 누가 봐도 푸른색이잖아.’
‘리자리자.’
‘……제 눈에도 푸른색으로 보입니다, 주군.’
지하드와 엘리자, 찰리의 눈에도 푸른색으로 보이고 있었으니까.
이곳에서 종을 붉은색으로 알고 있던 건 도현밖에 없었다.
이게 말하는 바는 간단했다.
“……허?”
밤을 알리는 거대한 종.
그것이 사르기스에 있는 세 번째 운명의 조각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