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Genius Ranker of All Times RAW novel - Chapter (154)
제154화
154화.
도현이 눈을 끔뻑거렸다. 지금 보는 게 사실인가 싶었다.
‘이게 돼?’
그것은 당연하다 여기며 포기하고 있던 도현에게 주어진 한 줄기 빛과 같았다.
아무리 두 단계나 낮췄다지만 ‘고통’은 히든 필드 보스.
심지어 일개 필드 보스가 아닌, 무려 저승에서 서식하는 한 종족의 왕이자 한 나라를 집어삼켰었던 존재.
‘이런 놈을 진짜 언데드로 삼을 수가 있다고?’
이건 단순히 고통의 혼을 소유한 게 문제가 아니다.
만렙 후 ‘그것’을 하지 않고서야, 일반 유저들은 격을 두 단계를 낮추던 세 단계를 낮추던 특수 재료의 도움을 빌리지 않으면 결코 숙주로 삼지 못할 테니까.
아니, 특수 재료를 사용한다 해도 과연 숙주로 삼을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할 터.
이건 지하드 녀석 자체의 격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이다.
‘이 녀석 진짜 뭐가 있긴 한 건가?’
생각해보면 암왕의 의지 앞에서도 찰리와 달리 태연한 모습을 보여줬었지.
아무래도 도현이 생각한 것보다 더 대단한 녀석인 게 틀림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된 거야? 저거 계속 내 마나 빨아들이는데?? 나 군단장 만들 수 있어 주인? 응?
“…….”
어린아이처럼 설레발을 치며 발을 동동 구르는 저 못생긴 고블린을 보자니, 눈앞에서 보고도 영 체감이 되지 않는 게 문제일 뿐.
하나 이번만큼은 도현이라고 다를 게 없었다.
“그래, 그러니까 빨리 군단장 생성해봐.”
-와! 진짜?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봐!
도현도 설레고 기대되는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아니, 오히려 지하드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을 거다.
직접 상대했던 만큼 무법자의 수장이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 강적을 휘하로 삼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어찌 기대되지 않으랴.
-그럼 한다?
“어, 빨리.”
-흐읍!
천진난만한 지하드의 물음에 재촉하자, 지하드도 더는 망설이지 않고 스킬을 사용했다.
—-!
그러자 마나를 받은 고통의 혼에서 검은빛이 폭사했다.
검은색이 눈부시게 느껴질 수도 있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
귓가에 울리는 경쾌한 알림과 동시에 검은빛 너머로 하나의 실루엣이 떠올랐다.
딱…… 따닥…….
뼈끼리 부딪치며 나는 소름끼치는 소리.
190cm는 되어 보이는 기다란 신장과 트레이드 마크와 같은 검은 로브.
[고통의 혼에 잠들어있는 무법자의 수장, ‘고통’이 깨어납니다.] [그릇의 격이 높아 의지가 남아있습니다.] [20분 내에 그릇을 설득하십시오.] [시간 내에 설득하지 못할 시 군단장으로 만들 수 없으며 고통의 혼이 사라집니다.]무법자의 왕, 고통이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아아…….
검은 기운이 걷히며 다시금 조우한 놈의 형체는 이전과 같았다.
리치와 흡사한 생김새나 고통으로 붉게 타오르는 적안.
그리고 특유의 을씨년한 분위기까지.
마지막에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였던 것이다.
한 가지 다른 게 있다면 죽어가는 순간까지 목숨을 붙들며 손을 뻗어오던 그 소름 끼치던 분위기가 없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군……. 나…… 는…… 분명…… 죽었을…… 텐데…….
그저 이 상황에 의문을 표하고 있을 뿐.
그에 지하드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응. 내가 저 느낌 잘 알지.
-오, 자네도 아는군! 주군과 재회했을 때의 그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느끼고 싶네.
-……말을 말자.
-리자?
녀석들의 대화를 뒤로하고 도현은 ‘고통’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눈이 마주친 ‘고통’의 인상이 살짝 찌푸려졌으나, 이내 상황을 받아들인 듯 한숨을 쉬었다.
-그런…… 건…… 가. 네…… 가…… 나를…… 불렀…… 군.
-아니! 내가 불렀어!
-……고블…… 린?
지하드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고통.
말은 하지 않았지만 표정에서 느껴졌다.
‘너 따위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이, 이익……!
“그래. 우리가 너를 불렀다. 군단장이 되어줘야겠어.”
그에 지하드가 발끈하려 하자 도현이 말을 가로챘다.
우리라는 표현이 마음에 든 걸까. 발끈하던 지하드도 입을 빼죽 내밀 뿐 더 끼어들지 않았다.
하나 고통은 말이 없었다. 그저 바라볼 뿐.
“불만이 있나?”
-……당연히 있지 않을까, 주인? 눈앞에서 열쇠 꺼내고 조롱 세레모니까지 하고 죽였는데. 나라면 잘 걸렸다 싶어서 바로 2차전 열 거 같은……. 케엑!
-자네, 눈치를 조금만 기르는 게 어떤가? 그러다 머리에 난 혹이 안 사라지겠네.
-리자리자…….
어김없이 딱밤을 원하는 지하드의 머리통을 가볍게 쥐어 박아주자 고개를 젓는 찰리와 엘리자.
괘씸하긴 했지만 지하드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도현 같아도 저놈 상황이면 싫은 게 당연했으니까.
목표까지 코앞인데 그리 농락하며 죽여놓고, 이젠 언데드나 이끌라?
‘내가 생각해도 이런 모욕이 없긴 하네.’
난처했다.
스킬을 사용하면 바로 군단장으로 만들 줄 알았건만, 저놈을 설득해야 할 줄이야.
하기야 이 정도 페널티는 있어야 마땅하긴 하다.
저놈은 본래라면 결코 한낱 군단장 따위로 만들 수 없는 존재이니까.
이 정도 시련은 있어야 밸런스적으로 타당하지 않겠는가.
‘그게 내 일로 다가오니까 문제일 뿐.’
뭐든 기세라고 세게 나가기는 했지만, 지금 도현의 머리는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이걸 어찌해야 하나 머리를 굴릴 그때.
-……불만이…… 랄…… 것도…… 없지.
예상과 달리 고통이 고개를 저었다.
-너와…… 나는…… 각자의…… 입장에서…… 이념을…… 걸고…… 싸웠다.
눈을 마주한 그가 나직하게 말을 이었다.
-그저……. 내…… 가…… 네놈보다…… 약했을…… 뿐. 너는…… 훌륭하게…… 너의 이들을…… 지켰고. 나는…… 지키지…… 못했다…….
“…….”
-……그저…… 그뿐이다.
그리 말하는 고통은 씁쓸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에 도현이 의외라는 듯 묘한 표정을 지었다.
충분히 원망할 법도 하건만, 놈은 표정이나 목소리엔 어떠한 분노도 원망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나약한 자신과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씁쓸함만 가지고 있을 뿐.
여러모로 대단한 놈이었지만, 그래서 더 문제였다.
“그럼 넌 패자니까 군단장이 되는 것을 받아들이는 건가?”
-……전사로서…… 신성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이걸 어떻게 설득하지?’
저런 놈들의 신념을 꺾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삼고초려라도 하거나, 강제성을 부여해야 될까 말까 한 일인데 20분 안에 해라?
아니, 20분도 아니다.
[남은 시간 : 00 : 14 : 05]강제 로그아웃까지 남은 시간은 불과 14분.
사실상 14분 안에 놈을 설득하지 못하면 고통의 혼이 사라지니, 군단장이고 뭐고 기회가 다 날아가는 거다.
‘미치겠네.’
이럴 줄 알았으면 군단장 생성을 다음에 했어야 했나.
‘저놈의 마음을 혹하게 할 만한 게…… 젠장, 운명의 조각 말곤 떠오르는 게 없어.’
그렇다고 운명의 조각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저놈에 대해 아는 정보가 너무 적었다. 아는 거라곤 과거 이승에 한 번 내려와 한 나라를 집어삼킬 뻔했다는 것.
그리고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싸우며 했던 말이나 모습을 생각하면, 제 동족을 지키기 위해 운명의 조각을 찾고 있는 거 같은데…….
‘잠시만. 동족?’
그 순간 뇌리를 스치고 가는 무언가.
퍼뜩 고개를 든 도현이 창문 밖을 바라봤다.
아직 달빛이 내려와 도시를 은은하게 감싸고 있는 걸 보며, 도현이 입꼬리를 슬며시 올렸다.
‘이거라면 괜찮겠는데?’
아니, 이 방법밖엔 없다.
적어도 지금 상황에선 최선의 수를 떠올린 도현이 고통을 보며 말했다.
“그럼 마지막으로 한 번만 따라와 봐. 보여줄 게 있어.”
-……?
“이걸 보고도 싫다 하면, 나도 포기할게.
-……어어? 주인? 내 군단장인데 왜 그걸 주인 맘대로 정…….
지하드가 깜짝 놀라 반박해보지만, 그 말은 금방 묻히고 말았다.
-알겠…… 다. 대신…… 약속은…… 지켜야 할…… 것이다…….
“물론이지. 남자가 한 입으로 두 말하겠어?”
-믿어…… 보지…….
정작 소환한 당사자인 지하드는 신경도 안 쓰고, 저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는 둘을 보며 지하드가 제 목덜미를 붙잡았다.
-아이고……, 내 혈압…….
-리자리자…….
엘리자의 위로에 간신히 정줄을 붙잡은 지하드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다들 뒤돌아 성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에효…….
-리자!
하는 수 없이 그 뒤를 부리나케 따라가는 지하드.
그리고 그런 지하드의 머리 위에서 그저 싱글벙글한 엘리자였다.
* * *
달빛이 드리우는 숲.
울창한 숲 곳곳에 난 흔적이 이곳에서 어떤 험난한 전투가 벌어졌는지 알려주고 있었다.
도현이 무법자 챌린지를 벌인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대략 100M쯤 떨어진 곳에서 도현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에는…… 왜…… 온…… 것이냐.
가디언들과 이 무대의 두 번째 주연인 ‘고통’을 데리고서.
은신을 쓰고 이동해서인지 주변에 사람은 없었다.
모두 성주의 연설 사건으로 인해 로그아웃하거나, 성 주변에 모여있는 덕이었다.
‘저놈이 눈에 띄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유저들이 따라붙어도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겠다 생각했는데, 다행히도 녀석은 다른 유저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대놓고 은신을 쓴 도현을 따라와도 아무도 보지 못했으니까.
유저들을 통과하며 지나가는 걸 보며 지하드가 괴상한 비명을 지른 게 유일한 위기라면 위기였다.
“기다려봐, 곧 알게 될 테니까. 아, 마침 저기 나오네.”
도현의 말대로 수풀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제는 만월의 상징이 된 무법자들.
왕을 잃은 유령병사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아…….
-왕…… 이시여…….
눈이 보이지 않음에도 제 왕의 존재는 느끼는 것일까.
이쪽으로 다가오는 그들의 발걸음은 뚜렷했다. 사방에서 하나둘씩 기어 나오는 그들은 이전과 같은 포스가 느껴지지 않았다.
몸 곳곳에 상처와 흙투성이가 있는 것도 그렇지만, 당장 그 수부터가 차이가 났으니까.
-겨우…… 겨우…… 이 정도밖에…… 남지…… 않았는가…….
불과 여섯.
반에 달하는 수가 자연의 품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 사실을 견딜 수 없었는지 ‘고통’이 자책 어린 얼굴이 되었다.
그런 그는 감히 저들의 앞에 나설 수 없었다.
모두의 고통을 대신 떠안아주겠다고 다짐했었다.
모두의 희생을 안고 대의를 이루기로 해놓고, 한낱 인간에게 패했다.
그런 주제에 무슨 면목으로 병사들을 맞이하겠는가.
저들이 자신을 원망해도 할 말이 없었다.
털썩.
그때였다.
척. 척. 척. 척.
사방을 둘러싸던 무법자들이 일제히 한쪽 무릎을 꿇었다.
-왕…… 이시여……. 자책하지…… 마소서.
-당신은…… 저희의…… 구원자이십니…… 다.
-무한한…… 감사를…….
곳곳에서 들려오는 감사의 목소리.
전혀 예상치 못했던 건지 얼빠진 얼굴이 된 고통.
그런 놈을 보며 도현이 피식 웃었다.
“너에게 모든 걸 건 놈들이야. 그건 존경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지.”
-음! 두려움이나 기대고 싶다는 나약한 마음 따위로는 충성을 다할 수 없는 법. 자네는 이미 훌륭한 왕일세.
-……아…….
그러고 보면.
여태 저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
저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고통은 몰랐다.
저들의 고통을 떠안겠다면서 저들이 무슨 마음으로 자신을 따르는지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이 무슨 우매한 왕이란 말인가.
-왕…… 이시여……. 두 번째…… 삶을…… 얻으신…… 겁니까…….
그리 묻는 병사에겐 어떠한 질책도 없었다. 희망이나 바람도 없었다.
그저 걱정 어린 눈빛만 보일 뿐.
이 순간에도. 저들은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었다.
반면 자신은 어땠는가. 그저 전사로서 죽음을 받아들일 생각뿐이었다.
“군단장이 되면 너는 두 번째 삶을 살아갈 수 있어. 비록 언데드이긴 하지만, 뭐 어차피 너흰 저승에서 온 얘들이잖아? 별다를 것도 없을 거 같은데.”
-…….
“지금이 아니면 없어. 마지막 기회야. 넌 정말 이대로 저들을 버려두고, 죽음을 받아들일 거냐?”
고통은 답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부답으로 제 병사들을 바라볼 뿐.
대략 10초 정도가 지났을까.
생각에 잠긴 듯 보이던 그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