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Genius Ranker of All Times RAW novel - Chapter (174)
제174화
174화.
사람이 충격에 빠지면 사고회로가 정지된다 하던가.
도현은 그 말이 지극히 옳음을 느끼고 있었다. 순간 시간이 정지된 듯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일 초, 이 초…….
“아.”
삼 초가 조금 못 되는 시간이 되어서 정신을 차린 도현이 눈을 끔뻑였다.
루리엘이 고개를 갸웃하며 뭐하냐는 듯 바라보는 게 보였다.
그러다 곧 상황을 파악하곤 설명을 해주었다.
“아, 저게 누구인지 말을 안 해줬구나. 당황할 만하네.”
“…….”
“어느 정도 예상했겠지만, 그래. 저 잠들어있는 여인이 네가 그토록 찾던 안젤라야.”
쐐기였다.
더는 빼도 박도 못할 진실 판정에 도현이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아니, 정리하려 했다.
‘아니, 정리가 안 되네.’
황당함에 절여진 뇌가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않았으면.
그래도 열심히 뇌를 굴린 결과 어느 정도 지금 상황을 요약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안젤라는 죽었지만 사실 죽은 게 아니고, 모종의 이유로 이런 숲에 잠들어있다는 거지? 동시에 운명의 조각을 얻게 해줄 열쇠이자 매개체인 거고.’
‘그런…… 거 같은데, 주인?’
‘훌륭한 상황정리였습니다, 주군.’
‘리자리자!’
바라왔던 대로 운명의 조각을 얻을 단서를 얻은 건 좋다.
‘아니, 왜 하필 안젤라가 열쇠인 거야?’
사르기스 때 이후로 운명의 조각은 보통 부서져 있고, 본래의 형체를 되찾으려면 열쇠가 될 매개체가 필요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사람인 건 웬 말이란 말인가.
그것도 그냥 사람도 아니고 죽은 거로 알려진, 잠자는 숲속의 왕후라니.
아니, 애초에 왕이 이 사실을 알고는 있나?
목걸이만 건드려도 그 난리를 폈던 걸 생각하면 의아했다.
“모를 리가 있나. 왕이 부탁해서 하얀 마탑주가 직접 제작한 결계관이야. 이곳만큼 안전한 곳은 없지.”
“아.”
아무래도 그건 아닌가 보다.
그 말에 유리관에 가까이 다가가 만져보려 하자 파직, 소리가 나며 손이 튕겨났다.
[강력한 결계로 보호되어있습니다.] [오래 접촉할 시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허락 없이 해제하려면 매우 수준 높은 결계 해제 능력과 마법 지식이 필요합니다.]‘성능은 확실하네.’
하얀 마탑주가 마도품 제작에 관해선 적수가 없다는 건 워낙 유명한 일.
그 밖에도 결계 마법에 뛰어나단 소리가 많았는데, 그 두 가지를 결합한 특제 유리관인 듯했다.
하나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보다 왜 안젤라가 이런 곳에 있는 거야?”
대체 이런 곳에 왜 잠들어있는가.
그리고 왜 구태여 이곳에 특수 결계까지 쳐가며 보호하고 있는가.
그게 의문이었다.
“저주에 걸렸어.”
“……저주?”
“영원한 숙면에 빠지게 되는 저주. 아마 지금 꿈 속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을 거야.”
그리 말하며 잠들어있는 안젤라를 바라보는 루리엘의 표정이 씁쓸해졌다.
“금기를 어긴 자의 말로인 거지…….”
“금기라니?”
“이건 내가 할 얘기가 아닌 거 같네. 당사자들이 꺼내는 게 예의겠지.”
“……예의. 음. 그렇지.”
“눈빛이 왜 그러냐? 뭔가 내 입에서 예의라는 단어가 나오다니 놀랍다라는 듯한 얼굴이다?”
“설마.”
……저 꼬마 생각보다 더 눈치가 빠르다.
오랜 훈수질로 다져진 눈치인 건가.
헛기침을 하며 모르쇠한 도현이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당사자들이라면……. 설마 내가 생각하는 사람인가?”
찜찜한 눈으로 바라보는 루리엘이었지만, 다행히 도현의 의도를 따라주었다.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남쪽을 바라보았다.
꿈의 도시 프라텔이 있는 방향. 정확히는 그 너머 왕성이 있는 방향이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군이라 불리는 왕, 길베룬. 나머지는 그가 말해줄 거야.”
“아하.”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던 도현이 멈칫했다.
그리곤 잠시 생각해보던 도현이 이내 떨떠름한 어조로 말했다.
“음……. 내 생각인데 그거 좀 힘들걸?”
“엥? 왜? 그는 사도라고 차별하고, 안 만나줄 사람은 아닌데?”
“내가 쫓겨났거든.”
“……?”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한 얼굴로 갸웃하는 루리엘.
그런 그녀에게 도현은 짧게 요약해서 설명해주었다.
무슨 일이 있었고, 어찌하여 쫓겨났는지.
모든 과정을 들은 루리엘이 헛웃음을 지었다.
“신통방통하네. 그걸 어떻게 찾았지? 막말로 하얀 마탑주 본인도 한 번에 못 찾을 정도로 흔적조차 느껴지지 않을 텐데.”
“내가 눈이 좀 좋아.”
“……눈이 좋은 거로는 납득이 안 가는데?”
눈이 많이 좋긴 하다.
무려 유일 특성이라는 갓오세 유일의 눈이니까. 머리를 긁적인 루리엘이 모르겠다는 듯 휙 뒤를 돌았다.
“됐어. 그냥 따라와. 잘 설명하면 될 거야.”
“그럴…… 표정이 아니던데.”
잠시 쫓겨났을 때 길베룬과 기사단장의 얼굴을 회상해본 도현이 입맛을 다셨다.
싸늘하다 못해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운 얼굴이었다.
하나 루리엘은 그저 태연했다.
“상관없어.”
“뭐, 방법이 있어?”
“방법이랄 것도 없지. 나 루리엘이 보증한다는데.”
그러며 씨익 웃은 그녀가 호기롭게 말했다.
“그러니까 나만 믿고 따라와.”
그 당당한 자태에 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루리엘이 그저 빛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이 깨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 *
왕성 뒷문.
유저들에게 허락되지 않은 입구.
“아니, 내가 보증한다니까. 일단 왕에게 보고나 올려보라고. 답답하네 정말.”
“……안 됩니다. 지금 왕께선 안정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특히 저분은…… 들여보내기 곤란하군요.”
힐끔 이쪽을 곁눈질하곤 냉랭하게 내뱉는 경비를 보며 도현이 얼굴을 덮었다.
‘그럼 그렇지…….’
대체 뭐에 홀려 저 꼰대 소녀를 믿었던 걸까.
“너만 믿으라지 않았니?”
“아니, 이게 아닌데…….”
“에휴.”
“너 지금 나 진상? 인가 뭐 그걸로 생각했지.”
저런 단어는 또 어찌 안 건지.
눈치 백 단인 루리엘이 눈을 치켜뜨자 도현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결국, 창피함 반, 짜증 반으로 물들은 루리엘의 혀가 빠르게 움직였다.
“대체 왜 안 되는데? 나 몰라? 나 여기 한 번씩 들어간 건 봤을 거 아냐.”
“압니다. 매번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경비들에게 훈수를…… 크흠. 조언을 두시는 분 아니십니까. 그렇다 하여도 오늘은 안 되니 다른 날에 찾아와 주십시오.”
“훈수? 너 지금 훈수랬냐? 그게 훈수야?”
“그럼 아닙니까?”
“허. 워낙 답답하게 구니까 보다 못해 조언 한 번 해준 거지. 그런 게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거야. 내가 나 좋자고 그래?”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꼰대 부록에 실릴 유명한 말을 내뱉는 루리엘을 보며 도현이 진심으로 감탄했다.
‘와…….’
꼰대는 시대를 타지 않는 것인가?
어쩜 하는 말이나 행동이 다 같은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아 거참, 말 많네. 너 신입이지? 눈치가 없어 눈치가. 야, 라떼는 말이야. 말 한마디 섞어보기도 전에 아, 이분이 누구시겠구나 파악하고 그랬어.”
“……그만해, 루리엘. 좀 추해. 지하드 저 멀리 떨어진 것 봐.”
-주군, 저는 늘 곁을 지키겠습니다!
“아냐. 이럴 땐 빠져있어도 돼. 너도 이미지 관리해야지.”
워낙 호기롭게 말해서 뭐 엄청난 권력이라도 가진 줄 알았더니.
그냥 전형적인 동네 꼰대 취급이었다.
그저 힘이 좀 센 꼰대라는 게 차이라면 차이일까.
“어느 귀족 가문의 자녀분이신지는 모르겠으나 아무리 그러셔도 오늘은 안 됩니다.”
“아니, 일단 왕 부르라니까? 아니면 라크라도 불러.”
“……기사단장님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으십니까?”
더는 두고 볼 수 없어서 일단 데리고 물러나려던 찰나였다.
라크라는 이름에 멈칫한 경비가 멈칫했다. 심드렁했던 표정은 어느덧 경직되어 있었다.
기사단장, 하이드 라크드리어.
그런 그를 친밀하게 라크라고 부르는 게 허락된 이는 몇 없었던 것이다.
그에 경비의 머릿속에 설마 하는 싸한 느낌이 들 때였다.
끼이익-
“누가 날 찾아온 모양이군.”
“……저런 난동을 피울 사람이 한 명밖에 없다 생각했는데……. 정말 루리엘 님이군요.”
경비의 뒤로 문이 열리며 묵직한 두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번 들었지만 강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목소리.
“……어어?”
“왕……?”
프라텔의 왕 길베룬과 기사단장 하이드 라크드리어였다.
“라크!”
“히익……!”
루리엘의 안색은 눈에 띄게 밝아졌고, 반대로 경비의 안색은 새파랗게 질렸다.
* * *
천만다행으로 루리엘은 그저 정신 나간 꼰대 소녀가 아니었다.
“웬 어린 소녀가 후문에서 난동을 피우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와서 혹시나 했는데……. 정말 루리엘 님이였군요.”
“……정녕 그자가 보증하고자 하는 자인가?”
“그렇다니까, 내 말을 못 믿는 거야?”
도현에게 좋은 감정이 아닐 게 분명한 두 사람이, 루리엘의 한 마디에 납득한 것이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으음……. 그럴 리가 있나.”
“루리엘 님의 보증이라면 믿을 만하지요.”
그리 쫓아냈을 때는 언제고, 루리엘이 데리고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도현을 왕성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심지어는 처음 왕을 알현했던 알헌실까지도 허락해주었다.
이게 다 루리엘의 위치 덕이었다.
“예언가의 보증을 믿지 않으면 누구의 말을 믿을까.”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최초로 떠돌이 NPC, ‘루리엘’의 별칭을 들으셨습니다.] [모험의 서에 기록됩니다.]떠돌이 NPC, 루리엘.
그녀는 프라텔에서 예언가로 불리는 하나뿐인 존재였던 것이다.
‘와, 이건 예상 못 했는데.’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것투성이라 무언가 특별한 존재일 것은 예상했지만, 왕에게 편하게 말해도 될 정도의 존재였을 줄이야.
그렇다고 왕보다 위는 아니고 동등한 느낌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다.
아마도 이 사실을 몰랐던 건 유저들만이 아닌 듯했다.
경비의 반응을 보면 그녀의 정체는 NPC들에게도 비밀인 듯 보였으니까.
‘경비 표정이 가관이었지.’
새하얗게 질리다 못해 퍼렇게 물든 게 귀신이라도 본 줄 알았다.
하기야 경비 입장에서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을 것이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었는데, 꼰대 기질 다분한 귀족 여식 정도로 여겼을 소녀가 사실은 기사단장조차 함부로 못 하는 존재라니.
이걸 가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 경비 어떻게 되었을까, 주인?’
‘음. 나 때 경험을 떠올리면 아마 직속 상사에게 솔찬히 깨지지 않을까 싶네.’
‘그런 건 어느 시대든 똑같구나.’
하긴 과거 판타지 배경인 이곳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으려나.
그나마 루리엘이 괴팍하긴 해도 나름 아량이 넓은 편이었다.
경비에 관한 나쁜 언급을 하지 않고 상관없다며 쿨하게 넘겼으니까.
그녀로선 그저 답답할 뿐, 악감정은 없던 것이다.
뭐 어찌 됐든 그건 그거고.
저들이 루리엘의 ‘보증’이라는 말 한마디에 도현을 들여보낸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보다……. 보증이 되었다는 건 예언된 사도의 그릇이라는 뜻이겠지요, 루리엘 님.”
“당연하지. 내 시험도 모두 통과했어. 재료도 다 구해왔고 말이야.”
“과연…….”
“운이 좋았지. 영 싹수 있는 녀석이 보이질 않아서 답답했는데 좋은 기운이 느껴지더라고.”
“……?”
도통 뭔 소린지 모를 얘길 저들끼리 떠드는 걸 보며 도현이 의문을 표했다.
예언? 싹수?
이게 다 무슨 소리란 말인가.
이럴 땐 가만히 있으면 반이라도 간다던가.
“드디어……. 드디어 때가 온 것인가.”
그 말을 따라 잠자코 듣고 있는데 길베룬이 처음 보는 흥분한 모습을 보였다.
원수를 바라보듯 충혈된 눈이 된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루이드라, 그 악몽을 쫓아내고 정화의 불씨를 얻을 때가.”
그 중얼거림을 들은 도현이 귀를 기울였다.
‘루이드라?’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적어도 프라텔에 알려진 보스나 NPC에는 저런 이름이 없었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보스에 저런 이름이 있었으면 모를 수가 없고, NPC는 안젤라를 찾을 당시 정말 구석구석 다 뒤져봤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다는 건…….
‘히든 피스!’
이번에도 히든 피스를 발견했다는 뜻.
“루이드라가 누구죠?”
“아, 루리엘이 아직 설명하지 않은 모양이군.”
“당사자가 말하는 게 맞을 것 같아서 말이야.”
“그런가……. 그것도 그렇군.”
결국 참지 못하고 묻자 길베룬이 무얼 숨기겠냐며 입을 열었다.
“꿈을 먹고 자라는 끔찍한 악몽의 집합체. 나의 그릇된 욕심으로 깨어난 마녀의 이름일세.”
띠링-
그 말의 끝나기 무섭게 알림이 울렸다.
[끔찍한 악몽이자 꿈의 마녀, 루이드라의 이름을 들었습니다.] [모험의 서에 기록됩니다.] [프라텔에 숨겨진 레이드 보스를 알게 되었습니다.]‘흠……. 그래, 이번에는 레이드 보스구…… 어?’
흥미롭게 문구를 읽어나가던 도현이 순간 입을 다물었다.
‘잠시만, 무슨 보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