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Genius Ranker of All Times RAW novel - Chapter (249)
제249화
249화.
첩첩산중이 이런 걸까.
아주 끝도 없이 커지는 스케일에 도현이 마른침을 삼켰다.
괴랄한 난이도의 월드 퀘스트만 해도 버거웠는데 이젠 뭐? 제국의 황실이 심연과 엮여있어?
‘아이고 두야…….’
절로 골이 아파져 온다.
브리온 때도 성기사단의 부단장 탁시넬이 엮여있긴 했지만, 이번 건 그때와 차원이 다르다.
브리온은 신성제국으로서 제국이 무시하지 못할 뿐.
무력으로만 치면 제국이 압도적이다.
‘아니, 압도적이란 말도 부족하지.’
르베드 원툴이라 불리는 브리온에 비해, 제국에는 르베드 경 이상의 강자가 몇이나 있었으니까.
타 도시 전부가 합쳐도 이기지 못하는 게 제국.
그런 제국의 핵심인 황실이 심연과 작정하고 내통하면 막을 도리가 없다.
‘이놈의 메인 퀘스트가 붙는 것들은 난이도가 참 지랄 맞단 말이지.’
불만을 토로하던 도현이 이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애당초 3년 후에나 열릴 메인 퀘스트를 깨고 있는 것이니 난이도가 괴랄한 게 당연했다.
[잊혀진 왕의 혼이 흐릿해집니다.] [잠시 후 신전이 무너집니다. 어서 신전을 벗어나십시오.]-……이젠 정말 시간이 없군. 그대에게 큰 짐을 맡기는 것 같네만 나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겠나?
“예, 물론입니다.”
-정말 고맙군. 궁금한 게 많을 테니 빠르게 설명하도록 하지.
지금은 불평하기보다 왕의 혼이 사라지기 전에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듣는 게 현명한 판단이리라.
-월령단(月令團). 그들은 아주 먼 과거부터 존재해온 자들이다. 대대로 사람들에게 공포를 심어준 존재로 누군가에겐 신으로 떠받들어지기도 했다고 하지. 다섯 개의 태양이라 부른다던가. 웃기는 일이야.
이쯤 되니 확신이 섰다.
‘벽화에서 본 다섯 명이다.’
왕의 무덤에 그려진 거대한 벽화.
대대로 이어지던 그림 속에 등장했던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한 단체.
그자들이 월령단임이 틀림없었다.
‘다섯 개의 태양이자 달…… 그럼 루이드라가 말했던 진정한 대륙의 주인이 될 자라던 게 월령단이겠군.’
다섯이라 설마 고대의 다섯 왕을 말하는 건가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건 아니었나 보다.
그렇다면 그들의 정체가 무엇일까.
왕의 무덤의 벽화에 이어 루이드라, 그리고 월드 퀘스트에서까지.
‘메인 퀘스트 궤도에 계속해서 끼어있는 걸 보면 핵심적인 역할인 거 같긴 한데…….’
그렇다면 그들은 인간의 편일까, 신의 편일까.
그도 아니면 심연의 편일까.
‘아니면 아예 다른 파벌? 아니, 웬만하면 그러진 않겠지. 존재를 삼키는 자와 함께 등장했다 하니 심연의 편이라는 확신은 없어도, 최소한 놈들과 엮여있을 가능성이 커.’
잊혀진 왕의 말을 토대로 추측하던 도현이 이내 상념을 떨쳐냈다.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막상 까보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니까.
정확한 건 좀 더 들어보고 판단하는 게 좋지만, 아쉽게도 그럴 수는 없었다.
-그 이상은 나도 아는 게 없다. 그저 어떠한 목표를 가지고 아주 오랜 시간을 살아왔고, 그 목표를 시행한 게 나의 세대였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지.
그리 말하는 왕에게선 씁쓸한 기색이 역력했다.
더는 자신에겐 놈들에게 복수할 기회도, 힘도 없다는 것에서 오는 허탈감인지. 그도 아니면 희생한 이들에 대한 안쓰러움인지 알 수 없었다.
과거를 떠올리는 듯 눈을 감던 왕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한데 이상하지 않나?
그런 그가 내뱉은 건 허탈함도, 원망도 아닌 의문이었다.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던 그들이 마침 내 세대에 움직이기 시작했고, 공교롭게도 때마침 같은 타이밍에 심연이 움직였다는 게.
“…….”
-역사에는 지워졌겠지만, 심연의 마수들이 나타날 때면 언제나 그들이 있었다. 우연일 수도 있지만 세 번 이상 반복되면 운명이란 말이 있지 않나.
그리고 그때마다 제국에 수많은 참사가 발생했다.
-내가 죽은 이후의 참사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들과 심연에 어떠한 관계가 있을 거라 추측하네. 혹여 알고 있는 참사가 있나?
빠득…….
그 말이 끝나자마자 옆에서 이를 악무는 소리가 들려왔다.
잊혀진 왕과 존재를 삼키는 자에 대한 역사가 말소되며 수많은 참사가 묻혔지만, 한 가지 사라지지 않은 역사가 있었다.
갓오세를 즐기는 유저라면 모든 이들이 알고 있는 참사.
현존하는 NPC들이 심연이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건.
-그런 과거를 겪고도 제국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황실이 그따위 짓을 하고 있는단 말인가……!
-찰리…….
-리, 리자…….
아르렌 참사.
이를 바득 갈며 주먹을 부르르 떨면서도 애써 인내하고자 노력하는 찰리.
그런 찰리를 보는 도현은 고민이 많았다.
‘진실을 말해야 하나?’
튜토리얼은 과거 일어났던 아르렌 참사를 생생하게 재현한 무대.
찰리는 도현과 만난 탓에 승리로 기억하고 있지만, 그것은 기억에서일 뿐.
역사가 바뀐 건 아니었다.
이걸 말할 일이 없기도 하고, 모르는 게 약이라는 생각에 굳이 언급은 안 했었는데…….
-……나는 괜찮네. 주군과 함께 참사를 막아내어 위대한 아르렌 성에 광명을 찾지 않았나.
-어……. 그…… 치?
-제국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황실이 심연과 내통할지도 모른다는 게 썩 충격적이긴 하지만…… 지금이라도 알게 되었으니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네.
저런 말을 듣자니 괜히 마음이 불편한 게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말을 하자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다.
잠시 고민하던 도현이 이내 시선을 돌렸다. 때론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는 법이었다.
쿠구구구-
돌연 신전이 뒤흔들린 건 그때였다.
[곧 잊혀진 왕의 신전이 무너집니다.] [5…….] [4…….]본격적으로 신전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얘기는 여기까지인 것 같군.
그에 자연스레 대화가 끊기자 잊혀진 왕이 조심스레 마지막 부탁을 건넸다.
-나를 깨워낸 영웅이여. 염치없지만 그대 뿐이기에 부탁하는 바이네.
“…….”
-부디 이번에야말로 저 재앙을 완전히 봉인하고, 나아가 제국에 저들과 내통하는 자가 있는지 파헤쳐줄 수 있겠는가?
[돌발 퀘스트 ‘잊혀진 왕의 부탁’이 발생합니다.] [잊혀진 왕의 부탁]-등급 : 돌발 퀘스트
-설명 : 왕의 혼이 자신이 미처 이루지 못했던 과업을 대신 이루어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의 바람은 제국의 평화.
거대한 재앙을 봉인한 후 황실에 심연, 혹은 월령단과 내통하는 자가 있는지 조사해보자.
-재앙을 봉인할 시 월드 퀘스트를 클리어할 수 있습니다.
-퀘스트 성공 시 : 연계 퀘스트 발생, 메인 퀘스트 단서 획득
-퀘스트 실패 시 : 연계 퀘스트 삭제, 메인 퀘스트 단서 삭제
무너지는 신전 위로 떠 오른 퀘스트창을 보며 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저 재앙부터 처리하고 생각해야겠네.’
황실이니, 월령단(月令團)이니, 심연이니.
그 다음에 생각해도 늦지 않았다.
지금은 눈앞의 월드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끝내는 것에 집중할 때였으니까. 그런 도현의 의지에 반응하기라도 한 듯 떠오르는 메시지.
[보상 측정이 완료되었습니다.] [보상이 강화되어 세 가지 보상 중 두 개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유수비화검(流水秘火劍)], 흑비가면(黑比假面), 멸악의 시(矢)]‘이건…….’
흥미롭다는 듯 눈을 크게 뜬 도현이 이내 입꼬리를 올리며 손을 뻗었다.
[보상 선택을 완료하였습니다.] [왕의 신전이 무너집니다.] [신전을 나가시겠습니까?]이윽고 완전히 무너져내린 천장이 후두둑 떨어지며 왕과 도현의 사이를 가렸다.
그 사이로 얼핏 드러난 왕과 눈이 마주한 순간.
-그럼…… 그대만 믿고 있겠네. 이 시대의 영웅이여.
도현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고, 희미한 목소리를 끝으로 시야가 반전되었다.
* * *
-진짜 공략 불가능인 거냐?
-몰라 시부레, 걍 X됐음. 10대 길드 다 물러나는데 누가 잡냐.
-다들 고생 많으셨고, 다음에는 어니스트 처형식에서 뵙겠습니다.
-ㅋㅋㅋㅋㅋ 실시간 해링턴 손 떨리는 소리 여기까지 들리누
-당분간 접속 안 해야겠다. 참사 열리면 괜히 지나가다 뒤질 수도 있는 거 아님?
-에이, 그니까 꿀잼이지.
-어? 그런가?
-그런가 ㅇㅈㄹ
잊혀진 무덤의 상황은 여전히 최악이었다.
믿었던 10대 길드와 하이 랭커들의 공략 포기에 가망이 사라진 것이다.
이대로 가다간 월드 퀘스트의 실패는 기정사실인 상황.
하나 용기 있게 나서는 이는 없었다.
그들 모두 방송으로 본 탓이다. 저 재앙을 잡는다는 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소리인지.
그렇기에 그저 시답잖은 소리나 하며 떠들고 있을 때였다.
띠링-
[잊혀진 왕의 신전이 무너집니다.] [카이저 님이 잊혀진 왕의 신전을 클리어하였습니다.] [월드 퀘스트 공략 랭킹에 변화가 일어납니다.]갑작스레 알림이 울리며 모든 유저들의 위로 메시지가 떠 올랐고,
-??
-?
-엥?
-??????
채팅창에 수많은 갈고리가 찍혔다.
무수한 갈고리 후에 찾아온 건 싸늘한 적막이었다.
-……클리어?
-미친, 내가 지금 잘못 본 거 아니지?
-왕을 잡았다고? 카이저가?
-이거 실화냐? 실화 맞지 얘들아?
몇 초가 흐르자 간간이 채팅이 올라오긴 했지만, 어딘가 어벙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도 그럴 게 너무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탓이었다.
이런 반응은 잊혀진 무덤에 있는 유저들 또한 별반 다를 게 없었다.
하나 그것도 잠시.
“카, 카이저가 잊혀진 왕을 잡았다!!!”
“와아아아!!!”
“해냈어! 해냈다고!!”
“누가 카이저가 절대 못 잡는다 했냐!? 10대 길드? X까라 그래!”
“카이저, 그는 신이야! 카이저, 그는 신이야! 카이저, 그는 신이야!!”
“카이저 펀치! 카이저 펀치! 카이저 펀치!”
곧 상황파악을 마친 유저들에게서 우렁찬 함성이 터져 나왔다.
수십, 수백만이 넘는 유저들이 내지른 함성에 무덤이 떠나갈 기세였다.
귀가 먹먹해지다 못해 얼얼할 지경.
“……그놈을 잡았다고?”
“카이저가……? 도대체 어떻게?”
“설마 아더의 말이 잘못되었다는 말인가?”
이 상황 속 가장 크게 당황한 건 다름 아닌 10대 길드의 마스터들이었다.
레피아스를 비롯한 수많은 하이 랭커가 끔살 당하고, 그 아더마저 결국 2페이즈에서 실패한 왕.
몇 년 후에나 등장할 난이도라는 평이 잇따르는 절대 잡지 못하는 함정카드.
‘그런 놈을 카이저가 대체 무슨 수로 잡았다는 거냐!’
‘아직 초월은커녕 만렙도 찍지 못한 자가 아닌가.’
‘설마 아더가 큰 피해를 입혔기 때문인가? 일회성 패턴이었던 거라면…… 우리는 지레 겁을 먹고 기회를 걷어찬 걸지도 모른다.’
‘정말 믿을 수가 없군…….’
그렇기에 포기했던 왕인데, 그 왕이 잡혔다니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던 것이다.
이미지를 수습해야 할 미래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골치가 아파져 올 정도.
그래도 망해가던 월드 퀘스트를 클리어하게 되었으니 기뻐해야 하는지, 슬퍼해야 하는지 영 감이 잡히지 않는 얼굴들이었다.
씨익.
하나 유일하게 웃고 있는 유저가 있었으니.
‘새끼, 해낼 줄 알았다.’
안전한 곳에서 의자에 앉아 턱을 괴고 있던 아스트였다.
애당초 공략에 참여하지도 않았으니 망신당할 것도 없던 것이다.
-아스트 ㅋㅋㅋㅋㅋㅋㅋ
-아스트가 승리자였누.
-아, 카이저가 잡아줄 건데 뭐하러 힘 빼냐고~
-아스트는 모두 알고 있었단 말이다!
-그리고 아스트만 유일하게 10대 길드 중에 왕한테 도전하려 했었음. 믿을 땐 믿고, 해야 할 땐 하는 남자. 이게 상남자 아니냐?
실제로 채팅창 반응도 좋았다.
절대 못 잡는다고 못 박으며 통제하던 다른 길드와 다른 반응도 그렇고, 홀로 카이저를 믿으며 태연하게 있던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호감으로 작용한 것이다.
‘그런데 이놈은 언제 나오는 거야?’
기다리라 했던 것도 그렇고 궁금한 게 많았던 아스트가 무너져내리는 문을 빤히 보고 있을 때였다.
“……야, 그런데 왜 클리어 메시지가 안 뜨냐?”
“이상하네. 보통 이렇게 오래 안 뜨진 않을 텐데…….”
“설마…….”
이곳저곳에서 쑥덕거리는 소리가 커져갔다.
벌써 몇 분이나 지났는데 월드 퀘스트를 클리어했다는 문구가 뜨지 않고 있었다.
그뿐이랴.
우어어어어어-!!
아직도 굳건하게 버티고 선 거대한 재앙이 유유히 떠다니고 있었다.
“……저 새끼 왜 살아있어?”
“이런 씨X 클리어한 거 아니잖아!”
“잊혀진 왕을 잡는 게 클리어 조건이 아니었다고?”
“그럼 신전은 왜 있는 거야!?”
“10대 길드 말이 맞았잖아? 왕은 함정카드였어!”
아직 월드 퀘스트는 끝나지 않았다.
도리어 이제 시작이었다. 그것을 자각한 유저들이 저마다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다급히 발을 놀렸다.
재앙의 눈에 띄지 않으려면 지형 뒤에 숨어있어야 하는데 클리어가 된 줄 알고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
혼비백산으로 샅샅이 흩어지며 도망치는 게 자극이 된 것일까.
거대한 재앙이 귀가 먹는 괴성을 지르며 날뛰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간 강제 2차전이 열릴 터.
“어억!”
“아씨, 자빠지면 어떡하냐!”
“뒤, 뒤에! 젠장, 일단 도망쳐!”
“사, 살려줘!”
동료들마저 버리고 갈 수밖에 없는 참사.
떠나는 동료들의 뒷모습에 넘어진 유저가 질끈 눈을 감았다.
지진이라도 난 듯한 진동과 밤이 된 듯 주변을 가득 메운 짙은 그림자가, 재앙이 바로 뒤에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콰아앙!!
묵직하게 울려 퍼지는 소리에 죽었구나 싶었던 때였다.
수 초가 지나도 울리지 않는 알림에 유저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보았다.
크르르…….
주변에 휘몰아치는 거센 눈보라와 그 위로 내려앉은 하얀 사자를.
아름다우면서도 몽환적인 광경이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건 한 남자였다.
어딘가 더 짙고 섬뜩한 가면을 끼고, 새하얀 검신에 하얀 사자와 설화가 새겨진 검을 들고 있는 남자.
“여기도 개판이네.”
-그러게, 주인.
-리자리자.
-……악취가 코를 찌릅니다, 주군. 얼마나 많은 이들을 희생시킨 것인지…….
그 뒤로 선 가디언들과 특유의 중저음을 듣는 순간 유저는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카, 카이저!”
“카이저다! 카이저가 나타났다!”
“카이저? 어디!?”
거의 동시에 사방에서 터져 나온 외침에 도망치던 유저들이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등장만으로 모든 이들의 시선을 받으며, 거대한 재앙 앞에 오롯이 서 있던 남자, 도현이 천변을 도로 쥐었다.
[대상이 심연의 마수임이 확인되었습니다.] [무결(無缺)의 육각성이 대상의 급소에 반응합니다.]거대한 몸 안에 작게 빛나는 급소를 보며 도현이 피식 웃었다.
‘아가리 속이 급소라…… 괜히 아가리 안으로 들어가서 자폭한 게 아니구만.’
혀를 찬 도현이 슬쩍 옆을 곁눈질했다.
어느 정도 회복을 한 덕에 생명력은 20%까지 올라있었고, 마나는 거의 30%까지 올라있었다.
반면 놈은 아직도 쌩쌩한 상황.
[생명력 : 40,051,234 / 60,000,000]‘……뭐? 생명력이 6천만? 이게 몬스터야?’
아니, 쌩쌩한 걸 넘어 미친 수준이었다.
실로 경악스럽기 짝이 없는 수치에 헛웃음이 나올 지경.
이거야말로 잡지 말라고 만든 보스였다.
어째서 수호자가 결코 죽이지 못하니 봉인을 해야 한다 했는지 이해가 된다.
우오오오오!
그때였다.
도현을 파악하는 걸 마쳤는지 거대한 재앙이 재차 돌진하려는 모습을 취했다.
그리고 그 순간.
[특성 업그레이드를 사용합니다.] [무기의 강화가 +1 상승합니다.]콰아앙!!
절벽 위에서 뛰어내린 누군가가 그대로 우람한 둔기를 내려찍었다.
묵직한 굉음과 함께 터져 나오는 충격파. 꽤나 데미지가 있었는지 재앙이 멈춰 서서 괴성을 내질렀다.
그에 눈살을 찌푸리기도 잠시, 한 거구의 남성이 도현의 옆으로 섰다.
“잡으려는 거냐?”
“아재.”
아스트였다.
입장하기 전에 말한 대로 힘을 비축하고 있었는지 컨디션이 무척 좋아 보였다.
거의 풀컨디션에 가까운 수준.
하지만 그런 아스트조차 거대한 재앙과 코앞에서 직면하자 헛웃음을 지었다.
“허……. 크기 보소. 눈에 다 담기지도 않네. 왜 힘 빼지 말라는 건가 했더니만, 어째 너랑 엮이면 쉽게 가는 일이 없냐.”
“그래서 쫄려, 아재?”
“……청심환이나 하나 먹고 올 걸 그랬나 싶긴 하다.”
너스레를 떨며 엄살 피우는 모습에 피식 웃자, 아스트가 툭 내뱉듯 물었다.
“그래서 방법은 있고?”
“봉인석이 있어. 저놈 급소에 박아넣으면 끝나.”
“그거 참 말은 쉽네. 급소가 어디인데?”
“저놈 아가리 속.”
“……뭐?”
어벙한 표정이 된 아스트가 자기가 제대로 들은 게 맞냐는 듯 쳐다봤다.
“……그것밖에 없어. 강요는 안 할게, 못 하겠으면 빠져도 돼. 솔직히 우리 둘로는 힘들긴 하니까.”
“둘이라…….”
그에 잠시 하늘을 보며 골똘히 생각하던 아스트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무언갈 발견한 듯 눈이 살짝 커진 그의 입꼬리가 곡선을 그렸다.
—–!!
[거대한 재앙이 눈을 뜹니다.]그리고 거의 동시에 회복을 마친 재앙이 울부짖자, 수백 개의 눈이 뜨였다.
눈동자 하나하나가 웬만한 사람 머리통만 했다.
머리통만 한 수백 개의 눈이 짙은 살기를 담아 노려보고 있었다.
닭살이 돋을 만큼 소름끼치는 광경이었지만, 아스트는 담담하게 제 말을 이어갔다.
“둘이라고 누가 그러냐?”
“……뭐?”
멈칫한 도현이 아스트를 바라볼 틈도 없이 일은 벌어졌다.
[재앙의 눈이 빛에 닿은 존재를 삼킵니다.] [주의! 빛에 닿지 않게 조심하십시오.]수백 개의 눈에서 빛을 머금기 시작한 것이다.
다급히 천변을 쥐고 대항하려던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여인의 검이 깔끔한 직선을 그렸다.
더없이 완벽한 일섬(一纖).
그저 단순한 횡베기 뿐임에도 예술의 경지에 이른 검이었다.
촤아악-!
피가 튀며 재앙의 눈이 감겼다.
그리고 그런 재앙과 도현의 사이로 흑비단 같은 머릿결을 휘날리며 발도 자세를 취하고 있는 여인.
도복을 입고 있는 새하얀 피부의 여인은 처음 보는 이였지만, 왜일까.
‘……이건.’
어딘가 모르게 익숙하단 느낌이 들던 찰나.
—-!
이번엔 위에서 무언가 거세게 내려 찍혔다.
공기를 찢는 듯한 이질적인 소리가 귀를 자극했고, 고개를 들자 붉은 기운을 흩뿌리는 여인이 보였다.
촤악- 촥!
붉은 기운이 번쩍이며 수많은 참격이 쏟아졌다.
공간 자체를 찢어발길 듯한 난격에 상처투성이가 된 재앙의 몸이 크게 뒤흔들렸다.
하얀 머리를 휘날리며 도복을 입은 여인 옆에 착지한 그녀가 휙 고개를 돌렸다.
매섭게 번뜩이는 적안과 마주치는 순간.
씨익.
그녀가 사납게 웃어 보였다.
“이 새끼 또 혼자 재밌는 짓 하고 있네. 너도 참 한결같다.”
“……뭐?”
이해할 틈도 없이 이번엔 검을 집어넣은 검성이 은은한 미소를 품으며 인사를 건네왔다.
“오랜만이다, 카이저.”
“……?”
어안이 벙벙해진 도현이 저도 모르게 아스트를 바라보았다.
그는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 실실 웃고 있었다.
‘설마…….’
본능적으로 떠오른 생각이 뇌를 거치지 않고 튀어나왔다.
“……꾸꾸? 검제?”
“오, 알아보네?”
“호오, 똥촉이 별 일이군.”
어언 2년 만에 카이저 파티가 모인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