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Genius Ranker of All Times RAW novel - Chapter (272)
제272화
272화.
사람은 아득한 벽을 마주하면 이지를 상실한다던가.
‘도, 도망쳐야 돼.’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저런 괴물들하고 싸우라고?’
‘나, 난 못해.’
그런 그들에게 더 이상 긍지나 자부심은 남아 있지 않았다.
뱀 앞에 선 개구리처럼 싸울 의지조차 상실했으니까.
어쩌면 괜히 건드린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 무렵.
“어? 아까 욕한 새끼네? 잘 걸렸다.”
“히이익!”
닥치는 대로 베고 다니던 여제와 눈이 마주쳤다.
얼굴이 창백해진 그가 기겁하며 뒷걸음질 쳐보지만 한발 늦었다.
그녀가 말을 걸었을 땐 이미 검이 휘둘러지고 있었으니까.
‘말하기 전에 베는 게 어디 있……!’
그에 속으로 억울함을 호소하며 눈을 질끈 감았을 때였다.
슈아악- 캉!
무언가 쏜살같이 날아온다 싶더니, 목전에서 휘둘러지던 여제의 검을 튕겨냈다.
살이 시리는 날카로운 바람이 느껴진다.
눈을 뜨자 화가 난 라바온이 보였다.
라바온 뿐만이 아니었다.
“흐읍!”
“어쭈?”
그 직후 방패를 내밀며 무섭게 돌진해오는 마르파드에 여제가 재밌다는 듯 마주 달려들었다.
하나 돌진은 마르파드의 최대 특기.
탱커들 사이에서도 돌진의 위력만큼은 적수가 없는 만큼, 스킬도 없이 급하게 맞부딪힌 여제가 막아낼 리가 없었다.
콰아앙!
옆으로 밀려나는 걸 느낀 여제가 곧장 몸을 띄워 충격을 최소화했다.
괴물로만 여겨지던 여제가 처음으로 저지된 모습에 길드원들의 눈이 커다래졌다.
“다들 뭐 하는 거냐!! 정신 똑바로 안 차려!?”
“데미안 님께서 보시면 참으로 자랑스러워하겠군.”
버럭 소리를 지르는 라바온과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는 마르파드.
“아.”
“내가 무슨 짓을…….”
“잠시 미쳤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부마스터님.”
데미안이라는 이름에 길드원들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정신이 돌아오자 상황이 제대로 보였다.
“그래 봐야 고작 두 명이다. 두 놈을 감당 못 해서 그러고도 니들이 레온느의 사자들이냐?”
일인군단? 뎀로크의 신?
그게 다 알 게 뭐란 말인가.
결국, 체력이 다 닳으면 움직이지 못하는 똑같은 유저일 뿐이었다.
반면 이쪽은 아직 70명은 넘게 남아 있었다.
“우리가 있다. 우리가 있는 한 패배는 없다.”
그뿐이랴. 그들에겐 든든한 지휘관이 둘이나 있다.
웬만한 대형 길드 마스터들은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는 10대 길드의 부마스터들.
그들이 앞장서주는데 두려울 건 없었다.
“단 한 놈이야. 딱 한 놈만 너희가 처리하면 돼. 이것도 못 하면 니들은 간부 자격이 없는 거니 옷 벗을 준비나 해, 알겠어!?”
“예! 알겠습니다!!”
군단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기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지 그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더는 물러나거나 주춤거리지 않고 당당하게 포위를 좁혀온다.
이지스 길드의 탱커들은 맨 앞열에 서고, 레온느 길드의 딜러들은 살짝 뒤쪽에서 매섭게 눈을 빛낸다.
“이제야 좀 볼 만하네. 진작 이랬어야지.”
그제야 인상을 편 라바온이 검면을 어깨에 툭 얹었다.
그런 그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그야 당연했다.
최강 탱커 길드인 이지스의 이인자 마르파드와, 알아주는 딜러 길드인 레온느의 이인자인 자신이 힘을 합쳤다.
‘이 조합이면 다른 10대 길드 마스터한테도 쉽게는 지지 않는다.’
수준 높은 탱커와 딜러의 조합인 만큼 자신이 있었다.
라바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신호를 주자 길드원들이 카이저를 포위했다.
‘여제와 싸우는 사이 길드원들이 카이저를 처리하고 우리에게 합류한다.’
실로 완벽한 전략이지 않나.
씨익 웃은 라바온이 검을 모로 쥐자 바람이 살랑이며 몸을 가볍게 만들어주었다.
마르파드가 버텨주는 사이 빠른 속도를 이용해서 괴롭혀줄 생각이었다.
“이것 봐라?”
그 생각이 빤히 보인 것일까.
재밌다는 듯 입꼬리를 올린 여제는 물러나지 않고 도리어 한 발짝 더 다가왔다.
한결 가까워진 얼굴이 살기로 번뜩인다.
위험한 냄새가 풀풀 나는 눈빛이지만, 그마저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치명적인 외모였다.
“너 그런 말 아냐?”
어느덧 지척 거리까지 가까워진 그녀가 작은 입술을 벌렸다.
앵두 같은 입술에서 튀어나온 말은 투박함 그 자체였다.
“사람은 누구나 계획은 있다는 거. 처맞기 전까지.”
“……뭐?”
그리 말한 그녀가 적안을 번뜩이며 냅다 달려들었다.
“마르파드!”
“그래.”
그에 다시금 앞으로 나서는 마르파드.
좀 전과 비슷한 구도였지만, 곧 펼쳐진 양상은 완전히 달랐다.
냅다 달려들어 거리를 좁혀 돌진의 위력을 상쇄시킨 여제가 그대로 품으로 파고들어 초근접전을 열어버린 것이다.
쾅!
“……커억.”
시야가 돌아간다.
팔꿈치에 턱을 맞아 고개가 돌아간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쉴 새 없는 난격이 쏟아졌다. 주먹질부터 발길질 하다못해 검 손잡이까지 동원한 그것은 일방적인 구타였다.
아무리 방패를 들이밀어도 귀신같이 허점을 찾아내어 팬다.
‘보, 보이지가 않아.’
초근접전이 되자 작은 몸집이 이토록 위협적일 수가 없었다.
고개를 내려야만 보이는데 자꾸 고개가 돌아가고, 사각에서 공격이 날아온다.
“이런 날파리 같은……!”
결국, 참다못한 마르파드가 발로 지면을 세게 밟으려 했다.
전설 스킬인 ‘지진파’의 발동조건이었다.
땅을 세게 구르는 것만으로 주변에 강한 진동을 일으켜 균형을 무너트리는 대진형 파괴 스킬.
이런 구도에서도 상당히 유용한 스킬이었으나, 그걸 가만히 놔둘 여제가 아니었다.
턱.
“……검집?”
왼손에 쥔 검집으로 발이 지면을 구르는 걸 막은 것이다.
예상 따위가 아니었다.
분명 방금까지 오른손으로 신나게 검을 휘두르려는 걸 보고 카운터를 날린 것이니까.
‘……반응했다고? 그 짧은 순간에?’
대체 반사신경이 얼마나 빠르단 말인가.
“말했지. 처맞기 전까진 다 계획이 있다고.”
“아…….”
벙찐 마르파드가 다급히 눈을 굴렸다.
라바온, 이 자식은 뭐하길래 도와주지 않고 있는지 항의하는 눈이었다.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그어어- 그어-
카앙! 캉!
“언데드 군단이랑 찰리가 만만치가 않아.”
“카이저는? 카이저는 어디로 사라졌어!”
“저기 있다! 라바온 님께 간다. 막아!”
“뭐, 뭐야. 다시 돌아오는…… 어어? 다시 간다!”
언제 소환했는지 열댓 마리가 넘는 언데드 군단이 깽판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포위망이 조금씩 넓혀진 틈을 타 종횡무진하는 카이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홍X동도 아니고 푸른 전류를 흩뿌리며 이곳저곳 누비는 그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젠장……!”
그에 길드원들은 닭 쫓던 개가 되었고, 라바온도 발이 묶였다.
마르파드를 도와주려 하면 귀신같이 뇌전 이동으로 날아온 카이저가 괴롭히고, 길드원들이 합세하면 뒤잡기로 물러난 탓이었다.
[빙기류에 노출되어 이동 속도가 느려집니다.] [오랜 시간 노출되어 둔화 효과가 크게 증폭되며 동상에 걸릴 위험이 증가합니다.]“아니, 이거 빙기류 맞아? 범위가 왜 이래?”
“뒤잡기에 뇌전 이동에 빙기류에…… 마법사여도 화나는데 이게 검사? 양심 어딨냐.”
“아오, 열 받아 죽겠네.”
심지어 이곳저곳 빙기류를 뿌리고 다니질 않나.
간신히 기회를 잡을 만하면 찰리가 끼어들거나 엘리자가 거미줄을 뱉어 발을 묶어버리니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빼꼼 고개를 내밀어 그 모습을 본 여제가 씨익 웃었다.
“역시 우리 탱커 아니랄까 봐 어그로 잘 잡네.”
“……탱커?”
……저게?
어그로 잡고, 광역 CC기도 넣고, 정타가 될 만한 건 죄다 피하면서 딜은 야무지게 넣는데 탱커라고?
저게 탱커면 자신은 탱커가 아닌 허수아비라도 된단 말인가.
‘……10대 길드 연합이 고작 두 명한테 이런 꼴을 당하고 있다고?’
비록 이쪽도 전력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백여 명의 병력이다.
조합도 더 좋으면 좋았지, 결코 불리하지 않다.
그럼에도 이런 상황이 나온 이유?
여제가 생각 이상으로 더 강력해서? 자신들이 합공을 해내지 못해서?
다 맞다. 다 맞지만, 핵심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카이저.’
카이저의 발을 묶고 여제에게 합공을 하려는 자신들의 수를 읽고, 도리어 본인이 70명과 라바온의 발을 묶었다.
감히 상상도 못 한 방식으로.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수를 떠올리고 완벽하게 해낸 것이다.
‘어떤 미친놈이 이런 짓을 해낼 수 있을까.’
단언컨대 오직 그만이 가능한 방법이리라.
“슬슬 끝내자. 이제 아재한테도 가봐야…… 아니, 잠깐만. 너 지금 몇 명 잡았냐? 내가 싸우는 동안 얌체처럼 쓸고 다닌 거 봐라?”
“다 실력이지. 꼬우면 네가 시선 끌지 그랬어.”
“아오!”
이 와중에도 여유롭게 내기 얘기나 하는 두 사람을 보며 마르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느낀 것이다.
자신은 저들에게서 진지함을 끌어내지도 못한 존재였다는 것을.
자신과 저들 사이에는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는 것을.
마치 마스터를 처음 봤을 때와 같은 지독한 무력감에 마르파드가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마스터…….’
자신은 정녕 부마스터로 있을 자격이 있는 걸까?
회의감마저 찾아온 그가, 태양을 가리며 내려오는 여제의 검을 보며 천천히 눈을 감을 때였다.
슈아아- 팡!
뒤에서 부메랑처럼 날아온 방패가 여제의 검을 쳐냈다.
그와 동시에 지면에 울려 퍼지는 강렬한 진동.
[전설급 스킬, ‘지진파(地震波)’가 발동되었습니다.] [균형을 잃고 넘어질 시 상태 이상 ‘그로기’에 빠집니다.] [주의! 지형이 변형될 수 있습니다.]-어어?
-리, 리자!?
-으음……!
딱, 따닥. 그어어-
흡사 지진이 일어난 듯 흔들리는 지면에 지하드와 찰리가 전투를 멈추고 몸을 낮추었다.
지성이 높은 고통이와 무법자들도 따라서 낮췄지만, 비교적 지능이 낮은 언데드들은 상황판단이 느렸는지 볼품없이 나자빠졌다.
하나 가디언들도 넘어지지 않았을 뿐이지 바짝 엎드려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순식간에 리타이어 된 상황.
“이건 설마!?”
“아아…….”
반면 길드원들은 지진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지 하나둘 몸을 일으키더니, 멸망 직전 희망을 본 백성과도 같은 눈이 되었다.
그런 그들의 눈은 태양을 향하고 있었다.
눈이 부시지도 않는지 강렬한 태양을 쬐고 있는 그들의 시야로 태양 너머 흐릿한 실루엣이 보였다.
[전설급 스킬, ‘유성낙하(流星落下)’가 발동됩니다.]—-!!
그 순간 번쩍이며 내리꽂히는 강력한 일격.
귀를 찢는 듯한 폭발음에 지하드고 길드원이고 할 것 없이 모두 귀를 틀어막았다.
황사처럼 자욱하게 내려앉은 먼지가 걷히자 드러난 건 엄청난 크기의 크레이터였다.
정말 유성이라도 떨어진 듯한 그곳에서 한 남성이 걸어오고 있었다.
“어이가 없네. 진짜로 당하고 있었잖아?”
기가 찬다는 듯한 말에 대한 답은 뒤에서 들려왔다.
부메랑처럼 던진 방패를 도로 받아 든 거구의 근육질인 백인이 쯧 혀를 찼다.
“실망이군. 아무리 변수가 있었다지만…… 이건 좀 너무한 거 같은데 말이야.”
이윽고 먼지가 완전히 걷히며 드러난 그의 얼굴은 한없이 차가웠다.
2M가 넘어가는 체구 때문인지 그것만으로도 실로 위협적이었다.
“내 말이 그 말이야. 니들이 그러고도 10대 길드냐? 휘장 떼라 새끼들아.”
반면 혜성처럼 떨어진 남자는 번쩍거리는 갑옷에 검을 쥐고 있었는데, 남자다운 얼굴임에도 어딘가 다소 양아치스러운 느낌이 있었다.
그런 둘의 신랄한 디스에도 라바온과 마르파드는 발끈하지 않고 자세를 바로 했다.
“마, 마스터…….”
“죄송합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그야 당연했다.
지금 나타난 존재는 그들에겐 왕과 다름없는 존재들이었으니까.
긴장한 두 사람을 힐끗 쳐다보던 거구의 남자가 시선을 돌렸다.
“뭘 봐?”
“…….”
눈살을 찌푸리는 여제에 이어 도현에게 눈길이 멈춘 그가 말없이 주시했다.
마찬가지로 도현도 그의 눈을 마주했다.
서로 간에 어떠한 말도 오고 가지 않았지만, 도현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새끼네. 이 난리를 벌인 원흉이.’
데미안 알렉산더.
저 남자가 이 모든 사건의 중심이라는 것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