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Genius Ranker of All Times RAW novel - Chapter (280)
제280화
280화.
3년.
뎀로크를 플레이한 시간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도현은 수많은 유저들을 봐왔다.
그때와 갓오세를 플레이하며 만난 유저들을 비교하자면, 당연히 그때가 더 개성 있는 유저들이 많았다.
‘특히 후반으로 갈수록 그랬지.’
똥망겜이라 불리던 게임에 남아있던 고인물들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
그렇다 보니 당장 떠오르는 유저만 해도 수십 명이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유저를 물으면 한 손에 꼽을 수 있었다.
그중 동료들을 제외하면 역시…….
‘뇌제.’
뇌제(雷帝) 천지아, 그녀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다만, 동료들처럼 도현과의 친분이 있어 기억에 남는 경우는 아니었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서 아재와 다퉜었지.’
어찌나 자주 시비를 거는지 도현과는 별다른 얘기를 나누지 않았음에도 내적 친밀감이 들 정도였다.
-이 정도면 충분히 먹히겠군. 쓸만한 샌드백이었다. 그럼 다음에 또 찾아오지.
-아오, 저 새끼 또 지만 패다가 사라지는 것 봐. 아, 나 좀 놔. 아예 이곳 통째로 날려버리게.
-호오, 마침 이동기를 하나 얻었는데 시험해보기 좋겠구나.
-아, 내 혈압.
어디에 있든 귀신같이 찾아와 샌드백마냥 두드리고는 유유히 떠나는 그녀는 도현 일행에게 있어 일종의 이벤트나 다름없었다.
콘텐츠가 떨어져 할 일이 없던 그들에게 가뭄 속 단비와도 같은 재미를 선사해준 것이다.
-야, 보고만 있지 말고 좀 도우라니까? 왜 팝콘 뜯고 있는 거야?
-에이, 이런 건 혼자 해결해야 남자인 거야 아재.
-검을 수련해야 해서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염병. 웃참하고 있는 거 다 보이는데 무슨…… 그리고 검제 넌 나랑 눈 마주치지 않았냐? 검 휘두르다 멈춘 거 본 거 같은데.
-……크흠. 착각이다.
그래서일까.
도현을 비롯한 꾸꾸와 검제는 굳이 끼어들지 않았고, 덕분에 그녀와 보라아재의 앙숙 관계는 더욱 커져만 갔다.
처음에는 보름에 한 번 정도 찾아오던 게 일주일에 한 번이 되고, 마지막에 가서는 3일에 한 번이 되었을 정도.
“지금 보니 샤오의 말이 이해되는군. 하는 짓부터 말투까지 한결같이 싼 티가 나니 원…… 보기 좋진 않구나.”
“싼 티는 무슨, 이게 멋이야 인마. 그 쓸데없이 고고한 척하는 말투보단 낫지.”
“격식이라 하느니라. 그대가 무얼 알겠나.”
“참나, 격식은 내가 더 잘 알지.”
“그쪽에선 팔자걸음을 격식이라 칭하나 보지? 그럼 문신에 클러치백은 훈장이겠구나.”
“야, 그건…….”
그렇기에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검은 흑발, 도자기처럼 하얀 피부, 검은 도복, 저 고상한 말투에 걸맞은 고고한 인상까지.
“……뇌제?”
이전의 노란 머리에 화려했던 인상과는 확연히 달랐지만, 한 마디도 안 지고 아스트와 티격태격하는 그녀는 누가 봐도 뇌제였으니까.
“호오?”
“오, 뭐야. 바로 알아보네? 이 년 생긴 게 아예 달라져서 못 알아볼 줄 알았는데.”
그러자 의외라는 듯 대화를 멈추고 시선을 돌리는 두 사람.
그에 가만히 듣고 있던 여제가 황당하다는 투로 말했다.
“오자마자 그렇게 사랑 싸움하고 있는데 못 알아보겠냐고.”
툭 내뱉은 말에 두 사람의 인상이 와락 찌푸려졌다.
차마 못 들을 걸 들었다는 듯한 얼굴.
거의 동시에 찌푸린 모습이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았다.
“아씨, 역겹게 뭔…….”
“심히 불쾌하구나, 여제여. 이 덜떨어진 곰탱이랑 엮는 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지 않은가.”
“뭐? 야, 누군 좋은 줄 알아? 당연히 내가 아깝지.”
“속이 안 좋아지려 하니 입 좀 다물었으면 좋겠구나.”
“이게 보자 보자 하니……!”
크어어어어!!
다시금 불이 붙으려던 그때 울려 퍼진 포효가 물이 끼얹은 듯 입을 다물었다.
언제 싸웠냐는 듯 진지해진 얼굴.
“진심으로 때렸는데 벌써 일어나?”
“생채기도 안 난 것 같군.”
그도 그럴 게 군단장이 너무도 멀쩡한 상태였다.
수십 번을 할퀴고, 업그레이드된 특수 옵션을 거하게 쑤셔 넣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은 온전한 모습.
그건 외관만이 아니었다.
[파멸의 제4 군단장의 생명력이 90% 이하입니다.]실제로 여태껏 깎아낸 생명력이 10%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아더가 손을 자르고, 광신도가 난입한 길드원들과 함께 계속 대검을 휘두르고 있는 걸 생각하면 상상 이상의 단단함이었다.
“괴물이네. 이건 뭐 하는 보스야?”
“지금 한가롭게 사랑 싸움할 때가 아니야, 아재. 집중해.”
“아니, 카이저 너까지…… 후우, 아니다, 일단 이놈부터 처리하자.”
“그게 좋을 것 같다.”
그래도 희망은 있었다.
“뭐야, 이럼 우리도 질 수 없지!”
“달려들어!”
“이미 X된 마당에 이게 뭔 소용이야?”
“뭔 소용이긴. 이거라도 해야 공략점수라도 챙길 거 아니냐.”
“으아아아아!!”
아직 남아있던 10대 길드 연합의 길드원들이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곤 전투에 참여하는 것을 택했으니까.
“진열을 갖추어라. 무작정 싸워서는 안 된다.”
“우리 레온느는 이지스 길드가 앞장 서면 뒤따른다.”
그중에는 부마스터인 마르파드와 라바온도 있었다.
사실상 일시적 동맹 관계가 된 상황이다 보니, 카신교 또한 전투에 참여하는 게 지극히 당연한 일.
순식간에 수백 명의 연합이 탄생한 것.
십성기사단과 부마스터들이 능수능란하게 지휘를 하자 군단장도 무시할 수만은 없었다.
쾅! 콰앙!
그중에서도 유독 돋보이는 건 단연 광신도였다.
금발을 휘날리며 묵직한 대검을 연신 휘둘러대는 그녀는 멀찍이서 봐도 파괴적이었다.
어째서 레온이 계속 뒤로 밀려났는지 납득이 될 정도.
“검은 가면에 로브…… 카신교? 잠시만, 그럼 저 여잔 설마 광신도냐?”
“그런 거 같더라.”
“얘네가 왜 여기 있…… 아니지. 그럼 너희 만난 거야? 얘기도 나눴고?”
“아니, 상황이 급해서 그럴 시간은 없었어.”
도현이 고개를 젓자 깜짝 놀라며 묻던 아스트의 표정이 점점 묘해졌다.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툭 물어온다.
“그럼 너 아직 쟤 정체 모르겠네.”
“뭐, 그렇지.”
“흐음, 그래?”
“왜, 또 뭔데.”
“아냐.”
오묘한 말투에 도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긴 무슨.’
입꼬리를 씰룩거리는 게 아재는 광신도의 정체를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반응을 보면 자신도 아는 인물인 게 분명한데…… 아무래도 뎀로크에서 만난 인물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누구지?’
내심 궁금해지는 도현이었으나, 지금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쟤 실력은 확실하니까 알아서 맡기고…… 이젠 우리 차례인 것 같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야.”
지금은 군단장을 잡는 것에 집중할 때였으니까.
아스트의 말에 여제가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손을 풀며 왼쪽에 섰다.
그러자 그 뒤에 서는 아스트를 보며 아더가 피식 웃었다.
“이 멤버로 싸울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동감하는 바다.”
자연스레 남은 자리인 오른쪽에 서는 아더와 천마를 보며 도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과 피 터지게 싸우던 10대 길드 연합과 제 팬클럽인 카신교.
그리고 동료들을 비롯한 아더와 천마까지.
‘조합도 이런 막장 조합이 없네.’
하물며 파티라곤 동료들과 한 것밖에 없는 도현으로선 무척 특이한 상황이었다.
-우리도 잊지 말라구.
-리자리자!
-보필하겠습니다, 주군.
그때 불쑥 앞으로 나서는 가디언들.
그에 피식 웃은 도현이 천변을 꽉 쥐며 말했다.
“그럼 시작하자.”
-리자!
갓오세 최초로 심연의 군단장 레이드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 *
쾅! 콰앙!
—-!!
‘아아…….’
해링턴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이 정도 수준의 레이드가 있었던가.’
군단장이라는 타이틀이 허명이 아닌지 기억을 뒤져봐도 몇 없을 치열한 전투가 펼쳐지고 있었다.
수백 명의 랭커들이 10M가 넘는 덩치의 군단장을 포위한 상황.
마치 베짱이를 둘러싼 개미 같았는데 실제로 펼쳐지는 장면도 그와 비슷했다.
콰아앙!
“크으윽…….”
“2부대 정렬!”
군단장이 손을 휘두를 때마다 수십 명의 이지스 길드원이 힘없이 밀려난 것이다.
최강의 탱커들이라기엔 참으로 볼품없었으나, 그들도 나름 랭커.
최전방의 탱커들이 이탈하면 곧바로 다음 방패 부대가 자리를 차지했다.
“돌격!”
그러면 라바온이 레온느 길드원들을 이끌고 돌진했다.
군단장의 눈먼 공격에 볼품없이 나가떨어지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꿋꿋이 돌격을 이어갔다.
그것만으로도 흔히 볼 수 없는 웅장한 전투가 펼쳐졌으나, 해링턴의 시선은 그들을 향해있지 않았다.
휘릭- 쾅!
후우웅- 퍼어엉!!
가장 앞에서 날뛰고 있는 여섯 명.
아까부터 왼쪽 다리를 자르는 것에 집착하고 있는 광신도와 잘린 손을 팔째로 갈아버리려 하는 아더.
“지금이니라.”
“오야, 큰 거 한 방 간다.”
그리고 팀을 이루어 합을 맞추고 있는 천마와 아스트.
마지막으로 길드원들 사이에서 모든 공격을 피해가며 전장을 누비는 카이저와 여제까지.
원거리 지원을 맡아 멀리 떨어져 있는 그이기에 더 확연히 느껴졌다.
단언컨대 그들이 이 전장의 주역이라는 것이.
‘아아……. 저 엄청난 몸놀림.’
거친 야수 같은 여제도 섬뜩했지만, 가장 놀라운 건 역시 카이저였다.
이들 중 가장 지쳐있는데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고의 효율을 뽑아내고 있는 것이다.
마치 기계를 보는 듯 칼 같은 거리 계산과 움직임.
‘과연,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군요.’
기도가 마려운 해링턴이었지만, 그는 간신히 참아내며 시위를 당겼다.
더없이 훌륭한 전투였지만 전능하신 카신에게 큰 문제가 하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계야, 바꿔.”
“오케이.”
바닥을 보이고 있는 체력.
이들 중 가장 체력 상황이 안 좋은 카이저와 여제였기에, 두 사람은 번갈아 가며 전투를 이어가고 있었다.
분명 두 사람이 번갈아 움직이는 것임에도 조금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
괴물 같은 피지컬을 보유한 두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란 게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바꿔.”
“……아직 회복 안 됐어.”
두 사람의 체력이 동시에 고갈되는 상황이 그러했다.
그리고 이때야말로 해링턴이 빛을 발했다.
슈아아악-!
퍼엉!
난처하다 싶을 때마다 귀신같이 화살을 쏘아내 시간을 벌어준 것이다.
“오, 나이스.”
“활잡이 누구냐? 쓸만한데.”
“나도 잘 몰라.”
비록 이름조차 기억 못 하시긴 했으나 해링턴은 만족스러웠다.
카신에게 도움이 된다는 거로 족했으니까.
‘나이스…… 라 하셨다. 아아, 카신이시여.’
도리어 카신에게 나이스라는 칭찬을 들은 것이 감격이었다.
그렇게 투지를 불태우며 활을 당긴 덕일까.
두 사람이 체력분배를 좀 더 원활하게 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체력이 먼저 고갈되는 일이 없어졌다.
[봉인된 심연, ‘파멸의 제4 군단장’의 생명력이 60% 이하입니다.]도무지 깎일 기세가 보이지 않던 생명력도 어느덧 눈에 띄게 깎여있었다.
이대로만 가면 능히 레이드에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
우와아아아!
쾅! 콰앙! 펑!
‘생각보다 상황이 좋아.’
‘벌써 반이 죽었지만…… 충분히 할 만해.’
‘저들이 살아있는 한 가능해.’
‘와, 그런데 마스터들이야 그렇다 치는데 카이저랑 여제 움직임 미쳤네, 진짜. 저게 사람인가?’
‘저러니 우리가 그렇게 개털렸지…….’
그리고 그건 전장의 중심에 선 이들이 가장 체감하고 있었다.
함께 싸우고 있기에 더 잘 느껴지는 도현과 마스터들의 수준에 그들의 사기는 하늘을 뚫을 듯
치솟아 있었다.
하지만 도현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정확히는 찝찝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너무 순탄해.’
사실 따지고 보면 그리 순탄한 건 아니다.
1시간이 넘어가는 긴 공략 시간에도 불구하고 아직 반이 넘게 남은 생명력.
반면 이쪽은 벌써 공략대의 반 가까이 손실됐다.
[생명력이 20% 이하입니다.] [마나가 10% 이하입니다.] [역천(逆天)의 효과가 발동 중입니다.]그뿐이랴.
이쪽은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비교적 컨디션이 좋던 아더와 천마, 아스트도 슬슬 포텐이 떨어지는 게 보인다.
장기전으로 가면 불리한 건 이쪽인 것이다.
그럼에도 도현이 순탄하다고 표현하며 찝찝함을 느낀 이유는 하나였다.
‘저놈, 즉사기를 한 번도 안 썼어.’
팽팽한 싸움이 이어지는 게 과연 이쪽이 잘하고 있어서일까?
의문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만약 여기서 아주 조금의 이변이 일어난다면…… 그 생각이 불헌 듯 떠오른 순간.
거칠게 날뛰던 군단장이 우뚝 멈춰 섰다.
“어?”
“그로기다!”
“지금이다! 빨리 극딜 넣어!”
그에 유저들이 박차를 가하려던 그 순간.
휙-
놈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잔뜩 충혈된 붉은 안광이 정확히 도현을 향하고 있었다.
붉은 건 눈동자만이 아니었다.
[봉인된 심연, ‘파멸의 제4 군단장’의 생명력이 50% 이하입니다.] [2페이즈가 시작됩니다.] [진리의 눈이 발동됩니다.]“……!”
놈의 심장 부근에 박혀있던 작은 무언가가 붉게 번뜩이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걸 자각한 순간.
띠링-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