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Genius Ranker of All Times RAW novel - Chapter (282)
제282화
282화.
천마답지 않은 상스러운 표현이었으나, 그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쾅! 콰앙!
그 뒤에 펼쳐진 것은 끔찍한 전장이었으니까.
[현재 미궁의 심연화 진행률은 27%입니다.] [더욱 강력한 심연의 군단이 몰려옵니다.]봉인된 혼이 깨지자 기다렸다는 듯 심연화의 진행도가 치솟은 것이다.
“아니, 왜 더 몰려와?”
“몰라, 일단 막아!”
“으아악!”
가뜩이나 군단도 많이 남았는데 한층 더 강력한 심연의 군단 수십 마리가 기어 올라오는 건 호러 그 자체였다.
길드원들이 악착같이 막아보지만, 감당이 될 리 만무.
조금씩 밀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파멸의 제4 군단장이 ‘파멸의 움켜쥠’을 사용합니다.] [주의! 파멸의 움켜쥠에 닿을 시 즉사합니다.] [10초 이상 어그로가 풀릴 시 랜덤한 장소에 파멸의 기둥이 솟아오릅니다.] [세 개의 기둥이 생성될 시 광역 피해가 발생합니다.] [주의! 기둥의 광역 피해에 노출될 시 즉사합니다.]설상가상으로 즉사기를 남발하기 시작하는 군단장까지.
군단장 특성을 발휘해 넉백도, 상태 이상도 통하지 않는 군단장의 어그로를 끄는 건 지옥의 난이도가 아닐 수 없었다.
저쪽은 밀려나지도 않는데, 이쪽은 한 번만 제대로 적중당해도 치명상이었으니까.
“이런 미친…… 이게 게임이냐!?”
“떠들 여유 있으면 철퇴 한 번이라도 더 휘두르거라!”
“여기서 더 어떻게 휘둘러? 철퇴 두 개 든 거 안 보여!?”
괜히 구슬 하나 잘못 깼다가 이게 무슨 낭패인가 싶지만, 이들 중 여제를 탓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구슬을 깨야 하는 건 맞아.’
공략할 방법을 아무리 생각해 봐도 구슬을 깨는 것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가만히 둬도 심연화는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그럴 바엔 차라리 큰 피해라도 주면서 진행시키는 게 훨씬 가능성 있지 않겠는가.
‘난이도가 지랄 맞아진 게 문제일 뿐.’
심지어 그냥 지랄 맞은 것도 아니다.
[‘파멸의 제4 군단장’의 봉인된 혼을 일부 파괴하였습니다.] [군단장이 심각한 피해를 입습니다.] [봉인된 심연, ‘파멸의 제4 군단장’의 생명력이 30% 이하입니다.] [봉인된 혼이 파괴되어 넷으로 나누어집니다.] [넷으로 나누어진 봉인된 혼을 동시에 파괴해야 합니다.] [단일 공격만 데미지가 누적됩니다.]“이건 대체 몇인 레이드인 거야? 이 정도면 전설급 네임드 급인데…….”
“전설급 네임드도 이런 방향으로 지랄 맞진 않지.”
“둘 다 닥치고 저놈들이나 빨리 죽여. 시간 없으니까.”
“나도 알아, 인마.”
멀찍이서 달리는 여제의 일갈에 아스트와 천마는 투덜거리면서도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봉인된 혼이 있는 곳이었다.
각자 한 곳씩 네 방향으로 흩어져 달리고 있었는데 속도가 가장 중요한 임무였다.
[온전한 패링에 성공합니다.] [무자비한 일격을 흘려냅니다.]크어어어-!
도현이 홀로 남아 군단장의 어그로를 끄는 동안, 남은 인원이 봉인된 혼을 지키는 가디언들을 뚫고 파괴해야 했으니까.
독박이나 다름없었지만 별수 없었다.
두 배씩 늘어나는 봉인된 혼을 확실하게 파괴하려면, 모두 달려들어도 빠듯했으니까.
“한데 정말 저자에게 혼자 맡겨도 되는 건가?”
“음?”
우려를 표하는 아더의 말에 여제가 피식 웃어 보였다.
“그럼 어쩔 거야? 이거 말곤 방법이 없잖아? 아니면 네가 어그로 잡고 있을 거야? 못할 거 아냐.”
“그렇긴 하다만…….”
“쟤는 알아서 잘하니까 이쪽이나 걱정해.”
저게 할 말인가 싶어 잠시 입을 달싹이던 아더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쾅! 콰앙!
[온전한 패링에 성공합니다.] [뒤잡기를 사용합니다.]10M가 넘는 거대한 덩치로 정신없이 날뛰는데도, 조금도 밀리지 않는 안정적인 모습은 반박의 여지가 없었으니까.
기계처럼 정확한 타이밍에 딱딱 이루어지는 패링과 이동기.
거기엔 조금의 군더더기도 없었다.
“……솔직히 놀랍군. 이게 정말 가능한 전략일 줄이야.”
“아무렴 우리 탱커인데.”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건만, 저자들은 익숙하다는 듯 태연하다.
그게 너무도 이질적이었다.
‘탱커라……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탱커였다는 건가?’
회피형 탱커를 처음 보는 건 아니다.
탱커들 사이에서도 특화된 분야가 있고, 그중에는 간혹 회피탱이라는 이레귤러가 등장하곤 하니까.
물론 등장만 할 뿐, 이름을 날리는 자는 없었다.
‘던전 보스에서나 통하지, 레이드 보스쯤 되면 한 번이라도 잘못 걸리면 끝나니…….’
그에 반해 탱킹력이 더 좋은 것도 아닌 게 회피형 탱커였으니까.
굳이 더 좋지도 않은데 위험한 도박을 할 바엔 안정적인 탱커를 구하는 게 백 배는 더 이득이었다.
때문에 회피형 탱커는 일종의 예능픽에 가까운 게 세간의 인식이었다.
아더 또한 그런 인식을 가진 이 중 하나였는데…….
휘릭- 휙-
[온전한 패링에 성공합니다.] [표식이 사라집니다.] [누적된 데미지에 비례하여 강력한 일격을 가합니다.]‘딜러가 탱킹을 한다…… 이게 가능한 일이었나?’
완벽하게 회피하며 어그로를 잡는 카이저를 보자니 그 인식이 처음으로 깨져나갔다.
오히려 이 상황에선 데미안보다 카이저의 탱킹이 더 든든했다.
제아무리 방어력으론 최고라 불리는 데미안일지라도, 혼자서 저 무지막지한 일격을 몇 번이고 버텨낼 수는 없을 테니.
하지만 막을 필요 없이 전부 피한다면?
‘……저건 탱커 이상의 존재가 아닌가.’
이러면 탱커를 굳이 왜 하지?
자신이 알고 있던 상식이 잘못된 듯한 상황에 혼란스러움마저 들 때였다.
“뭔 생각하는지 알겠는데 걱정 마라. 저 녀석이 이상한 거니까.”
“…….”
불쑥 끼어든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아스트가 이해한다는 듯 피식 웃고 있었다.
그러자 반대쪽에서 듣고 있던 여제가 맞장구를 쳤다.
“괜히 패링 없었으면 뎀로크 1위 못 먹었다는 말이 있는 게 아니라니까.”
“카이저 전용 스킬이란 설도 있었잖냐, 크큭.”
“전설 스킬 없다고 뭐라 할 게 아니라니까? 자기만 패링을 전설급 이상으로 쓰는데.”
“뭐, 덕분에 탱커 생겨서 좋긴 했잖아.”
“탱커가 나보다 딜을 잘 넣는 건 문제 있는 거 아니고?”
“그건 그 템 세팅으로 딜량 밀리는 네 녀석의 문제 아니느냐.”
어느새 천마까지 끼어들어 떠드는 걸 보며 아더는 입을 다물었다.
‘단순히 패링의 문제가 아닌 듯한데.’
패링이 있기에 저런 플레이가 되는 건 맞지만, 애당초 저걸 패링 하나의 문제로 치기엔 회피력이 말이 안 된다.
애당초 안 맞을 위치에 미리 가 있는 느낌.
저 정도면 몇 초 후의 미래가 보이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였으니까.
[봉인된 심연, ‘파멸의 제4 군단장’이 파멸의 움켜쥠을 사용합니다.] [베르지나의 마도 장갑의 효과가 발동되었습니다.] [특수 옵션, ‘어루만지는 손길’의 효과로 파멸의 움켜쥠을 만질 수 있습니다.] [특수 옵션, ‘좌표 변경’의 효과로 무형의 에너지의 좌표를 이동시킵니다.] [감당하기 버거운 일격입니다. 변경 가능한 거리가 대폭 줄어듭니다.]한 번씩 사용하는 저 이상한 장갑과 도화선, 그리고 이동기가 섞인 결과였다.
공격을 포기하고 작정하고 탱킹하는 카이저는 그야말로 최고의 탱커가 따로 없을 정도.
“아아, 신께서 우리를 굽어살피신다. 최선을 다해 믿음에 보답하라!”
“아아…… 카멘.”
“카멘.”
더 환장할 건 사방에서 들려오는 카신교의 광기 어린 목소리였다.
카이저가 어그로를 붙잡기 시작하자 광신도의 눈이 한층 더 맑은 광기로 빛나더니 카신교들의 움직임이 몇 배는 더 좋아진 것이다.
서걱- 석!
“모든 것은 카신을 위해!”
아니, 당장 광신도부터가 실력이 몇 배는 증폭되었다.
난폭하게 대검을 휘두르는 모습에 아더마저 흠칫할 정도. 지금이라면 레온에게 무승부가 아닌 승리를 따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슈아아악-! 슈악!
푹! 푸푹!
날아오는 화살도 더 날카롭고 예리해진 건 기분 탓일까.
-우리도 질 수 없지!
-리자리자!
-음! 주군께 향하는 놈들을 우선으로 잡게!
간혹 놓친 군단은 찰리와 엘리자, 언데드 군단이 막아섰다.
[‘파멸의 제4 군단장’의 봉인된 혼을 일부 파괴하였습니다.] [군단장이 심각한 피해를 입습니다.]덕분에 그들은 더욱 안정적으로 군단을 뚫고 봉인된 혼을 파괴할 수 있었다.
그걸 시작으로 그들은 계속해서 구슬을 부쉈고,
[봉인된 심연, ‘파멸의 제4 군단장’의 생명력이 10% 이하입니다.]정신을 차렸을 땐 어느덧 군단장의 생명력이 바닥을 치는 상태였다.
이게 고작 한 사람이 만들어 낸 결과였다.
‘할 수 있다.’
‘앞으로 한 번. 딱 한 번만 더 반복하면…….’
이대로만 가면 공략할 수 있다.
그런 희망이 모두의 가슴에 자리 잡을 때였다.
[현재 심연화의 진행률은 78%입니다.] [현재 심연화의 진행률은 79%입니다.]조금씩 오르던 심연화의 진행률이 80% 도달한 순간.
“……어?”
“뭐야, 갑자기 왜 이렇게 밝아졌…… 헐?”
“미친……. 저, 저게 뭐야.”
돌연 전장이 보랏빛으로 물들더니 그것이 눈을 떴다.
[심연의 눈이 뜨입니다.] [잠들어있던 심연의 마수들이 모습을 드러냅니다.]파충류의 그것과도 같은 동공.
그곳에서 압도적인 위용을 뽐내며 나오는 거대한 마수들은 공포스러울 지경이었다.
하나 이곳의 누구도 마수에게 시선을 빼앗긴 사람은 없었다.
[심연의 강자, ‘파멸의 주인’이 이곳을 바라봅니다.] [심연의 강자, ‘불멸의 주인’이 이곳을 바라봅니다.]그저 실루엣만 드러난 검은 형체.
끊임없이 일렁이고 있어 그저 어둠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그것들이 이곳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다시 만나는…… 구나. 그릇이여…….
쇠를 긁는 듯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미궁에 내려앉은 순간.
[압도적인 격을 마주합니다.] [감당할 수 없는 기운에 직면합니다.] [아직 완전한 심연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영향력을 끼칠 수 없습니다.] [심연화가 100%가 될 시 그들이 강림합니다.]“미친…… 저게 대체 뭐야?”
“나, 나도 몰라.”
유저들은 확신할 수 있었다.
저놈들이 무얼 하는 존재인지는 모르지만, 강림하는 순간 모두 죽는다는 것을.
그건 저항의 여지 없는 확실한 죽음이었다.
[봉인된 심연, ‘파멸의 제4 군단장’의 봉인되었던 권능이 모두 풀립니다.] [파멸의 제4 군단장이 모든 특성과 스킬을 개화합니다.] [주의하십시오!]더불어 군단장도 최종장에 접어든 상태.
그에 도현이 어그로를 맡은 이후 처음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저놈들의 등장 때문이 아니었다. 심연의 눈을 본 순간 어느 정도 예상했었으니까.
문제는 타이밍이었다.
[생명력이 10% 이하입니다.] [마나를 모두 소진하였습니다.]‘하필 이때…….’
악착같이 버티곤 있었지만 결국 마나를 모두 소진한 것이다.
마도장갑도 쿨타임인 상황.
이젠 패링이나 이동기 없이, 그저 순수한 컨트롤로 어그로를 잡아야 했다.
겨우 10%밖에 남지 않는 생명력으로.
“빨리! 빨리 구슬을 부숴!”
그걸 눈치챈 아스트가 눈을 부릅뜨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다음 구슬은 어디에서 나타나는지 놓치지 않기 위함이었다.
하나 그건 부질없는 일이었다.
“……뭐?”
이제는 정공법만이 유일한 공략법이었으니까.
강해질 대로 강해진 군단장을 상대로, 마지막 레이드를 펼쳐야 하는 것이다.
타임 리미트가 걸린 채로.
“뭐 이딴 게 있어!?”
“젠장!”
“당황스럽긴 매한가지지만, 지금 그럴 때가 아니다. 바로 지원을…….”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도 잠시.
금방 상황을 파악한 일행들이 군단장을 향해 달렸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이대로 두면 마나가 바닥난 도현이 위험하다는 걸 자각한 것이다.
크어어어어!!
하지만 군단장이 한 발 더 빨랐다.
[봉인된 심연, ‘파멸의 제4 군단장’이 파멸의 장막을 사용합니다.] [최대 5명을 지정하여 40초간 움직임을 봉인합니다.] [플레이어 ‘천마’님, ‘여제’님, ‘아스트’님, ‘아더’님, ‘광신도’님이 지정되어 움직임이 봉인됩니다.]모든 권능의 봉인이 해제된 군단장이 비장의 한 수를 둔 것이다.
설마하니 저런 단순무식한 놈이 이런 바인드 기술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던 일행들은 허무하게 장막에 걸릴 수밖에 없었다.
“……!”
“안 돼!”
그와 동시에 거침없이 휘둘러지는 군단장의 주먹.
타앗- 콰앙!
곧장 반응하여 뒤로 몸을 구르는 도현이었지만, 군단장의 공격은 끊이질 않았다.
주먹을 피하면 곧장 파멸의 움켜쥠이 날아왔고, 간신히 피해내면 몸통 박치기를 해왔다.
그마저도 피하면 그대로 바닥에 엎어져 깔아뭉개려는 군단장.
[생명력이 5% 이하입니다.]어떻게든 피해 보는 도현이지만, 덩치가 덩치다 보니 피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주군! 이 미천한 검이 갑니…… 크윽!
-주, 주인!
-리자아!!
주인의 위급함을 느낀 가디언들이 나서보려 하지만, 역으로 마수들에게 발이 묶인 상황.
당장 떨쳐내고 오긴 어려웠다.
홀로 버텨야 하는 시간은 아직도 30초.
[신의 눈물의 두 번째 능력이 쿨타임입니다.] [남은 시간은 45초입니다.]‘타이밍 한 번 참…….’
스킬도 사용하지 못하는 지금 30초를 버틸 수 있을 거 같단 생각은 들지 않는다.
스윽-
자연스레 도현의 눈이 인벤토리로 향했다.
‘……사용해야 하나?’
이 상황을 타개할 유일한 방법이 그곳에 있었다.
정확히 어떻게 될지는 도현도 모르긴 하지만, 뭐라도 되지 않겠는가.
도저히 해결할 방법이 없을 때 사용하기 위해 아껴두고 있었는데…….
‘어쩔 수 없지.’
아무래도 지금이 그 상황인 것 같다.
흉흉하게 눈을 번뜩이는 군단장을 올려다보며 인벤토리에 손을 집어넣을 그때였다.
어디선가 날아온 검이 깔끔한 직선을 그리며 군단장의 팔을 베었다.
촤아악-!
크아아아아!!
더없이 완벽한 일섬(一纖).
예술의 경지에 이른 듯 아름다운 검을 보며 도현이 홱 고개를 돌렸다.
“이건…….”
이런 검을 구사하는 이는 그가 아는 한, 한 명뿐이었다.
탁.
아니나 다를까.
군단장과 도현의 사이로 사뿐하게 착지한 여인이 흑비단 같은 머리를 휘날리며 고개를 돌렸다.
“수련을 끝내고 오니 난리기에 바로 왔는데…….”
도복을 입고 있는 새하얀 피부의 여인.
그녀가 눈이 마주치자 옅은 웃음을 지었다.
“다행히 늦지 않게 온 것 같군.”
이제는 익숙해진 청순한 목소리에 도현이 헛웃음을 지었다.
“늦지 않긴 무슨…… 제대로 지각이다. 인마.”
“그런가.”
그에 여인이 눈을 감으며 피식 웃곤 몸을 돌렸다.
“그럼 이제 내가 맡도록 하지.”
카이저 파티의 마지막 맴버.
검성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