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Genius Ranker of All Times RAW novel - Chapter (309)
제309화
309화.
“……저는 기사일 뿐입니다.”
어느덧 진지해진 바이란의 얼굴에도 가리온은 담담하게 답할 뿐이었다.
“위대한 사자왕은 황제이자 지고의 경지에 오른 기사. 통솔과 지휘, 덕망, 무력은 물론 사자왕의 핏줄을 이은 전하야말로 자격이 있지 않겠습니까.”
“허, 핏줄 말곤 네가 부족한 게 뭐가 있어?”
“그게 가장 중요합니다, 전하.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어느 가문 출신인지.”
“그, 그 얘길 꺼내버리면 내가 나쁜 놈 되잖아.”
당황해서 말을 더듬는 바이란을 보며 피식 웃은 가리온이 스쳐 가듯 말했다.
“저는 주군의 기사, 그것이면 족합니다. 그러니 하루 빨리 지고의 경지에 오르십시오.”
“어! 너 방금 뭐라 했어? 주군이라 했지!”
“흠, 잘못 들은 것 같습니다만.”
“아닌데! 내가 분명 들었는데!”
가리온이 모르쇠를 시전하자 더 신이 나서 소리치는 바이란이었지만, 곧 이어진 대답에 얼굴이 창백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소릴 하는 거 보면 아직 힘이 남아도시나 봅니다. 수련을 이어가도록 하죠.”
“어……? 오늘은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럴 수는 없지요. 재능도 노력이 받혀줘야 빛을 발하는 겁니다.”
“으아아악! 황자 살려!”
그렇게 두 사람은 밤새 수련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런 나날은 그 뒤로도 쭉 이어졌다.
아침에는 검술 교관에게 수업을 받고, 교양 수업과 군주학을 배우고 밤에는 가리온과 수련한다.
이걸 수십, 수백 일을 넘어 몇 년을 반복한 결과.
“아니, 불과 일주일 전에 가르쳤는데 벌써 마스터했다고요? 아아! 정말이지, 신이 내린 재능입니다!”
“과연 사자왕의 환생이라 불리는 분. 16살의 나이에 벌써 오러를 발현해내시다니!”
바이란은 당대 최연소의 나이로 소드 오러를 발현하는 경지에 도달했다.
덕분에 세상은 다시 한 번 떠들썩해졌지만, 바이란은 뿌듯한 마음 반, 답답한 마음 반이었다.
“호들갑들은…… 최연소가 뭐야? 가리온은 무려 1년 전에 발현해냈는데.”
“그런 말 마십시오. 16살에 소드 오러를 발현한 건 정말 대단한 일이 맞으니까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가리온 네가 그러니까 어째 얄밉다? 기만하니?”
“그럴 리가요.”
세상은 바이란을 당대 최연소 소드 오러 유저로 알고 있지만, 진정한 최연소 기록은 가리온이 차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불세출의 천재.
이 수식어는 자신이 아닌, 가리온이 차지해야 마땅했다.
“늘 말했듯이 그저 정진하십시오.”
“정진하면 뭐하냐, 매번 네가 더 앞서가는데.”
“주군을 지켜야 할 기사가 주군보다 강해야지 않겠습니까?”
“말이나 못 하면.”
하지만 가리온은 늘 담담한 얼굴로 곁을 지킬 뿐이었다.
“그보다 오늘 아침 단련을 빼먹으셨더군요. 매일 꾸준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 않았습니까? 오러를 발현했다고 해서 끝이 아닙니다. 같은 오러 유저라도 단련도에 따라 큰…….”
“아아, 알았어. 내가 잘못했어. 지금 돌아가서 단련할게.”
한결 같은 잔소리를 늘여놓으면서.
‘정말 고맙다, 가리온.’
그런 가리온을 바이란은 늘 고맙게 여겼다.
솔직한 말로 과분하단 생각마저 들었다.
이런 불세출의 천재가 자신의 충직한 검이라니.
‘이제는 말해도 될 텐데.’
가리온이 왜 비밀로 하고자 하는지는 알고 있다.
그는 멸망한 가문의 후계자였으니까.
자신이 첫 번째 검이 된 게 밝혀지면 바이란에게든 가이론에게든 여러모로 좋을 게 없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소드 오러 유저가 되며 입지도 단단해진 지금.
굳이 악착같이 비밀로 삼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저는 이게 편합니다.”
“왜?”
“사람들은 자신보다 밑에 사람이 뛰어난 것을 견디기 힘들어하니까요.”
“나는 아닌데?”
“그게 주군의 장점입니다. 불안해하지 않고 더욱 정진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으니까요.”
하여 물어보면, 늘 눈에 띄기 싫단 말만 돌아올 뿐이었다.
이때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곧 그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조금씩 나이가 먹어가며 봐온 이들은 가리온의 말처럼, 자신보다 권위가 낮은 이가 위에 서는 걸 견디지 못한 경우가 대다수였으니까.
잘난 귀족일수록 더욱 심했다.
‘하루빨리 황위에 올라야겠어.’
누구도 가리온을 무시하지 못하게.
가리온이 저런 걱정을 하지 않는 세상이 오게 말이다.
지금처럼 가리온이 함께 해준다면 가능할 것 같았다.
실제로 덕분에 만인의 인정을 받으며 빠르게 황제의 자리에 가까워지고 있기도 했고.
이대로만 가면 모든 게 수월하게 풀리리라, 그리 여겼다.
“저, 전하! 황후께서 쓰러지셨습니다!”
“어의를 데려오지 않고 무얼 하는가!”
“실력 있는 어의들을 데리고 왔으나 모두 고개를 저었습니다. 처음 보는 병이라고 합니다.”
“그럼 어머니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
“……우선은 안정을 취하셔야…….”
20살이 되던 어느 날, 돌연 황후가 쓰러지기 전까지는.
그건 시작일 뿐이었다.
“전하! 백성들 사이에도 같은 증세를 보이는 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하면…… 전염병이란 말이냐? 아아, 이 무슨…….”
혼수상태에 빠지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끔찍한 전염병이 자국 전체에 퍼진 것이다.
갑작스레 들이닥친 재앙에 제국이 발칵 뒤집혔다.
평민 귀족을 가리지 않고 동시다발적으로 걸린 병은 신기하게도, 귀족과 황족에게 가장 많은 증세를 보인 것이다.
그 비율이 8:2정도로 압도적이었다.
‘그렇다는 건…… 귀족한테만 걸리는 병……?’
그때 바이란이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아버지인 황제도, 동생인 바하룬도 아니었다.
형제보다 더 형제 같은 친우.
“전하, 한데 가리온 경은 괜찮은지요?”
“……뭐라?”
“임무를 나선 후 한동안 경이 보이지 않습니다. 혹시 전염병에 걸린 건 아닐지…… 당분간 거리를 두는 게 좋겠군요…… 전하?”
어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바이란은 달렸다.
생각이 제대로 이어지기 전에 몸이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없어?’
한데 막상 도착한 가리온의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음이 조급해진 바이란이 어의들을 닦달해보았으나, 병실에 가리온은 없다는 말만 들을 뿐이었다.
혹시 몰라 수련장과 집무실 등등 모든 곳을 확인했으나 없었다.
‘론드 경이라면 알지도 몰라.’
그때 문득 떠오른 건 론드였다.
가리온이 자신을 제외하고 가장 친하게 지낸 사람이 아르렌 성의 기사단장인 론드였으니까.
‘기분 탓인가? 몸이 오늘따라 무겁군.’
어머니와 가리온이 걱정되는 탓일지도 모르리라.
점점 무거워지는 몸을 이끌고 허겁지겁 아르렌 성에 도착한 바이란은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경비병이 없다?’
이 난리가 난 통에 경비병이 없는 게 말이 되나?
무언가 이상하다.
왠지 불길한 감이 든 바이란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불길함은 성 내를 걸을수록 더욱 커져갔다.
복도를 걷는 내내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던 그때.
“론드 경!”
멀리 보이는 익숙한 론드의 뒷모습에, 바이란이 소리쳤다.
하나 론드는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등을 보인 채 우두커니 서 있을 뿐.
“론드 경?”
의아함에 가까이 다가간 순간.
바이란은 맡았다.
‘피…… 냄새?’
그때였다.
우두커니 서 있던 론드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힘없이 옆으로 쓰러졌고, 론드에게 가려져 있던 남자가 드러났다.
그에 바이란의 동공이 거세게 흔들렸다.
남자는 바이란이 너무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가리…… 온?”
“…….”
가리온 반 로드만.
바이란의 하나뿐인 친우이자, 피를 나누지 않았지만, 형제와도 같은 남자.
그가 두 사람에게 검술을 알려주던 론드를 죽이고, 그의 피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론드는 단순한 검술 교관이 아니었다.
마치 삼촌처럼 편하고 친하게 지내던, 든든한 어른이었다.
“어째서…… 네가……?”
도무지 믿기지 않는 현실에 바이란이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을 때였다.
“하아…….”
묵묵부답으로 서 있던 가리온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처음 보는 싸늘한 눈으로 마주했다.
“왜 오셨습니까. 가족에게 가셔야지.”
“……네가 걱정돼서 론드 경에게 물어보려 했…… 아니.”
횡설수설하던 바이란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곤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가리온을 보며 물었다.
“……왜 그랬냐?”
“론드 경에게 악감정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죽었냐고!! 다른 누구도 아닌 네가, 네가 그래선 안 되잖아!”
절규에 가까운 외침에도 가리온은 담담했다.
물끄러미 아직 식지 않은 론드의 시체를 보던 그가 태연한 목소리로 답했다.
“눈치가 빠르더군요. 답지 않게.”
“……뭐?”
“제가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지 뭡니까. 이래서 사람들과 거리 유지를 하던 건데…… 쯧. 너무 친해져서 문제였습니다.”
“……준비? 이해할 수 있게 말해라, 가리온.”
도통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하나 몸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지 덜덜 떨려왔다.
배신감인지 충격인지 다른 무언가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그가 낯설었다.
“전하는 마지막이었는데…… 이미 들켰으니 어쩔 수 없죠.”
“마지막…… 이라고?”
“순진하신 전하. 나의 주군이시여. 귀족만이 걸리는 병이란 게 이상하다 생각한 적 없습니까? 하물며 황가의 사람들은 지금 모두 병에 걸렸습니다.”
그리 말하던 가리온이 아, 하는 탄성을 내며 말을 정정했다.
“아직 반응이 온 사람이 황후뿐이라 모르겠군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어렵게 생각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 가문이 멸망한 것처럼 황가에도 몰락이 찾아왔다, 정도로 이해하면 되니까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해 벙쪄있는 바이란.
싱긋 웃은 가리온은 가까이 다가와 귀에 대고 속삭였다.
“제가, 병을 퍼트렸다 이 말입니다. 주군의 가족에게.”
“……!”
“그리고 이번엔 주군 차례입니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바이란이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아 휘둘렀다.
하지만 가리온은 이미 뒤로 물러난 후였다.
동시에 바이란이 털썩 무릎을 꿇었다. 무언가에 당한 게 아니었다.
그저 가리온이 허공에 대고 손짓하자 몸 안이 작열하듯 타들어 가기 시작했고, 정신이 아찔해졌다.
“어째서…… 몸이……?”
“말했지 않습니까, 황가의 사람들은 모두 병에 걸렸다고. 주군은 황가의 핏줄 아닙니까?”
“…….”
“그리고, 그거. 사실 병 같은 게 아닙니다. 잠식이지.”
“잠식…… 이라니?”
“잠식이 달리 뭐가 있겠습니까.”
비웃듯 입꼬리를 올린 가리온의 눈은 싸늘했다.
“심연.”
“……!”
바이란이 이를 악물며 바닥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심연과 손을 잡았다는 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금기를 저질렀다는 것.
그럼에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론드를 제외한 어느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었다.
“……언제부터냐. 언제부터 준비한 거지?”
이는 아주 오래전부터 준비해 왔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진실이란 말인가.
자신이 알던 가리온의 잔소리는 많지만 충직하던 모습은 진실이 맞나?
그에 대한 가리온의 답은 하나였다.
“처음부터입니다.”
“……뭐?”
“주군이 몰래 담벼락을 넘어갔던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모든 것이 계획된 일이었다는 소리입니다.”
바이란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호흡이 가빠지고 더는 숨을 쉬기 버거웠다.
하지만 털썩 엎어져 있는 상태에서도 부릅뜬 두 눈만큼은 가리온을 똑바로 향하고 있었다.
“……형제라 생각했다. 평생을 함께할 수 있는 친우라고 여겼다.”
“예. 주군은 참으로 올곧더군요. 황가의 핏줄답지 않게도, 정말이지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어쩌면 그렇기에 마지막까지 순번을 미루려 했던 걸지도 모르겠군요.”
담담하게 답하던 가리온은 이내 등을 돌렸다.
“이곳에 곧 심연이 나타날 겁니다. 론드는 심연을 쫓아내는 것에는 성공하나, 끝내 삼켜지죠. 주군은 병으로 쓰러져 시름시름 앓다 곧 실종됩니다.”
“가리…… 온…….”
“황제 폐하는 그에 대한 충격으로 쓰러지고, 애석하게도 황후의 뒤를 따라가죠.”
“가리온……!”
“저는 그런 주군을 극진히 간호하다 끝내 떠나보낸 기사일 뿐입니다. 이게 기록될 역사입니다. 아, 어쩌면 역사를 감출지도 모르겠군요.”
바이란의 시야가 점점 흐릿해졌다.
“걱정 마십시오. 아직은 때가 아니니. 모든 것은 ‘그날’을 위해…….”
이제는 등을 돌리고 있는지, 자신을 보고 있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다만, 멀어져가는 의식 속에서 바이란은 보았다.
——-!!!
가리온을 가리며 나타난 거대한 무언가가 끔찍한 괴성을 내지르는 것을.
파충류의 그것과 같은 눈이 번뜩인 순간.
바이란의 의식이 꺼졌다.
그리고 그날, 황실과 귀족의 반이 병에 걸려 쓰러졌다.
* * *
띠링-
[바이란 드 아르니스의 기억이 끝났습니다.] [제국의 숨겨진 역사를 보았습니다.]…….
[바이란 드 아르니스가 당신을 주시합니다.]캄캄해졌던 시야가 돌아왔다.
가장 먼저 보인 건 자신을 빤히 보고 있는 바이란의 눈에 깃든 생명의 빛이 사그라들어가는 것.
-…….
그리고 화로처럼 격한 분노로 일렁이는 찰리의 눈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