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Genius Ranker of All Times RAW novel - Chapter (310)
제310화
310화.
[전(前) 1황자, ‘바이란 드 아르니스’가 당신에게 숨겨진 역사를 보여주었습니다.] [모험의 서에 기록됩니다.] [바이란 드 아르니스의 육신이 사라져갑니다.]메시지처럼 바이란의 말라비틀어진 육체가 점차 희미해져 간다.
눈의 초점이 사라지고, 생기를 잃어가며 끝내 비틀거리던 힘조차 사라진 그는 털썩 무릎을 꿇었다.
[바이란 드 아르니스가 당신을 주시합니다.]그런 상태에서조차 그는 고개를 들어 도현을 바라보았다.
간절하고도 애절한 눈으로, 그는 말했다.
-……가리…… 온을…… 막아…… 주오…….
“…….”
-그는…… 같은 방법을…… 쓰고 있……. 황가의 핏줄…… 심연…… 잠식……. 부디…… 제국을…… 지켜…… 주…….
그게 끝이었다.
말을 잇기 힘든지 끊어가며 단어만을 나열하던 그는, 끝내 풀썩 고개를 숙였다.
두 눈만큼은 처연하게 감지 못한 채였다.
스윽.
그런 바이란의 눈을 감겨 주자 울리는 알림.
[바이란의 기억을 전달받아 돌발 퀘스트 ‘바이란의 의지’가 발생합니다.] [바이란의 의지]-등급 : 돌발 퀘스트
-설명 : ‘바이란’이 겪었던 것처럼 ‘가리온 반 로드만’이 황가의 핏줄을 모두 심연에 잠식시키고, 끝내 제국을 집어삼키려 한다.
‘바이란’이 원하는 것은 자신을 배신하고, 제국을 위협하는 ‘가리온’을 저지하는 것.
그의 의지를 이어 그가 편히 잠들 수 있도록 하자.]
-퀘스트 성공 시 : 가리온의 주요 장비 아이템 확정 지급, 20만 골드, 제국 모든 NPC들의 호감도 최대치 및 황가의 은인.
-퀘스트 실패 시 : 황가의 몰락.
도현의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
무려 그 제국의 황가가 몰락할 수도 있는 퀘스트답게 보상도 심상치가 않다.
이거 하나 클리어하면 그야말로 제국의 영웅이 되는 셈.
하지만 지금 도현의 눈에 그런 건 들어오지 않았다.
‘잠식…….’
바이란의 기억에서 보았을 때 얼추 짐작했지만, 이로써 확실해졌다.
‘황족들의 몸이 붉었던 게 다 가리온 짓이었나.’
2황자의 몸이 병약해진 것도, 심연의 군단장에게서 병과 관련된 잔재를 얻은 것도 다 납득이 된다.
가리온, 그는 바이란에 이어 바하룬과 그 자식들마저 없애려 하고 있었다.
그에 찰리는 진심으로 분노했다.
-……제가 겪었던 참사와 무척 흡사합니다.
아르렌 참사와 바이란이 겪었던 참사.
이 두 가지엔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내부에서부터 심연에 잠식되어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것.
시기적으로 찰리가 더 과거의 인물이니 가리온의 짓은 아니겠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더욱 용서할 수 없었다.
-감히 아르렌 성을 다스린다는 놈이…… 역사를 잊고 그 역겨운 것들과 내통하고 있단 말입니까.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무덤을 밀도 있게 채웠다.
목소리에 어린 물기에서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원통함이 느껴졌다.
조국을 잃은 포로의 적국을 향한 원한도 이에 비할 바는 아닐 것이다.
-부하들과 동료들…… 저와 뜻을 함께했던 무수히 많은 이들이 시체도 찾지 못하고 심연 밑으로 가라앉았습니다.
그건 모든 것을 잃어본 자가 내는 목소리였으니까.
-누구보다 그 괴물들을 역겹고 끔찍해 하는 이들이 그들처럼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희생했습니다. 소중한 이들에게 내일을 안겨주기 위해서.
“……찰리.”
부하, 동료, 연인, 심지어는 모시는 주군까지.
기사로서의 긍지와 자존심이 짓밟히다 못해 깨져나가는 순간에도 찰리는 버텼다.
뜻을 함께했던 이들이 모두 죽어 곁에 없어도 앞으로 나아갔다.
오직 제국의 평화를 위해서.
-처음 시공을 거슬러 주군의 곁으로 헌신했을 때 불안했습니다. 이토록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 심연의 마수를 뿌리치지 못했구나 하고.
“…….”
-하지만 제국에 도착한 순간, 저는 안도했습니다. 저희가 그토록 원하던 평화를 되찾은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세상이라면 그들도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으리라, 그리 위안 삼았습니다.
한데 기껏 이루어 낸 평화를 아르렌 성의 주인이란 것이 더럽히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어둠을 쫓아내야 할 그들이, 어둠과 손을 잡고 비수를 들이밀고 있었다.
-그들은 이딴 미래를 위해 희생하지 않았습니다.
감히 그가 무너트리려는 평화에 얼마나 많은 무게가 담겼는지.
얼마나 많은 목숨이 밑에 깔려있는지.
놈은 결코 알지 못한다.
-그러니, 알게 해야겠습니다.
빠드득, 부술 듯 이를 가는 소리가 살벌하게 울려 퍼진다.
그런 찰리의 앞에서 도현은 입을 다물었다.
어떠한 말을 해도 위안이 되지 못할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해줄 수 있는 건 하나였다.
“걱정하지 마. 곧 네 발밑에서 뼈저리게 후회하게 될 거다.”
-…….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예, 주군.
이번만큼은 기억 속에서의 승리가 아닌, 진정한 승리를 안겨주는 것.
승산은 있었다.
2황자는 늦었다지만 아직 황제와 1황자는 완전히 잠식되지 않았으니까.
즉, 놈은 아직 모든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걸 알려서 병력을 이끌어 잡는다.’
제국의 세력에는 마탑과 기사성, 그리고 황실 기사단이 있다.
당장 도시에 남아 있는 칠강만 해도 셋 이상은 붙을 테니, 가리온이 아무리 역대급 재능을 가졌던 기사라 해도 버틸 수 없을 거다.
‘뭐가 됐든 살려 두었던 바이란도 숨을 거두었다.’
어째서 굳이 미라로 놔두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도 분명 타격이 있을 터.
실제로 이를 통해 진실을 알게 됐으니, 이미 가리온은 독 안에 든 쥐나 다름없었다.
물론 제국의 병력에게만 맡길 생각은 없었다.
‘제대로 한 방 먹여줘야지.’
최소한 찰리가 저놈에게 칼빵을 놓는 모습은 지켜봐야 직성이 풀릴 듯했다.
-리자…….
-으음…….
급격히 진지해진 분위기에 눈치를 살피는 엘리자와 지하드의 목소리에, 도현이 홱 몸을 돌렸다.
“가자. 가리온 족치러.”
-예, 주군.
-응, 주인.
-리자.
하나 호기롭게 돌아선 것에 비해 도현은 30분이 넘도록 나갈 수가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출구가 없냐, 왜?”
-그…… 러게?
-리, 리자!
입구는 있었지만, 출구는 없었다.
무덤에 없는 것은 당연했고,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가도 마찬가지.
진리의 눈이 발동하길 바라며 눈을 치켜뜨고 둘러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아무래도 특수한 조건이 있는 듯합니다.
“…….”
찰리의 말이 맞는 것 같다.
그게 아니고서야 설명이 안 되니까.
“엘리자, 뭐 찾은 거 없어? 꼭 반짝이는 거 아니어도 괜찮아.”
-리자리자…….
-자기도 혹시 몰라도 둘러봤는데 아무것도 없었대.
“스읍…….”
지하드의 통역에 도현이 곤란함을 표했다.
진리의 눈도 발동되지 않고, 주변에 뭐가 없나 둘러봐도 아무것도 없다.
적어도 나가는 조건이 내부에 숨겨져 있는 건 아니라는 뜻.
“……설마 본인만 나갈 수 있게 설계해두었나?”
-……맞는 거 같은데 주인?
-리자리자…….
-아무래도 그것밖에 답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에 도현이 감탄을 토해냈다.
이러면 설령 누군가 자신의 약점을 찾아내더라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못 나갈 테니까.
반면에 본인은 언제든 입장해서 죽이든 미라로 만들든 할 수 있을 터.
‘와, 철두철미한 새끼네. 진짜.’
과연 어릴 적부터 한평생을 바쳐 바이란을 속인 놈답다.
증거를 찾은 상황에 꼼짝없이 갇혀버린 게 어이가 없지만, 상관없었다.
자신은 NPC가 아닌 유저.
이 소식을 전할 방법이야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커뮤니티에만 퍼트려도 발칵 뒤집어지겠지.’
그리하면 보상이 줄어들긴 하나 아주 확실하게 전달이 될 거다.
하지만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가밀리온.”
[예, 계승자시여. 듣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찾았습니까?]가밀리온에게 받은 통신 구슬로 전달을 부탁하면 그만이니.
“통신으로 설명하기 긴데 가리온이 흑막입니다. 전 1황자 바이란을 죽인 것도, 심연과 내통한 것도 가리온이에요. 증거도 확실하게 있고요.”
[……알겠습니다. 준비를 해야겠군요.]“아,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제가 지금 갇혀버려서 나가지를 못하는 처지라 대신 전달을 부탁드려야 할 것 같…….”
[예? 그게 무슨…… 꺄아아아악!]한데 그때였다.
돌연 통신 구슬 너머로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수많은 사람의 뒤섞인 소리가 들려왔다.
한순간에 소란스러워진 분위기에 도현이 깜짝 놀라 물었다.
“방금 무슨 소리죠?”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계승자시여.]낮게 가라앉은 가밀리온의 목소리를 끝으로 침묵이 이어졌다.
‘이게 갑자기 무슨 상황이야?’
부쩍 소란스러워졌던 거나, 가밀리온의 심각했던 목소리를 생각하면 무언가 일이 벌어진 건 확실하다.
지금 상황에 갑작스레 일이 터졌다?
‘느낌이 안 좋아.’
대략 1분 정도가 지났을까.
다급한 가밀리온의 외침이 들려왔다.
[계승자시여! 큰일입니다…….]뭐라 설명하고 있지만, 도현은 가밀리온의 말에 집중할 수 없었다.
정확히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띠링-
“……이런 미친!”
눈앞에 뜬 메시지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직관적으로 알려주고 있었으니까.
* * *
도현의 눈앞에 메시지가 뜨기 약 30분 전.
제국 황성, 2황자의 방.
관계자 외 출입을 불허하는 공간에서 가리온은 2황자와 마주하고 있었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2황자 전하.”
“고맙습니다, 경.”
정확히는 2황자를 침실에 눕히고 간호한 후 떠나려던 찰나.
“가리온 경.”
따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2황자의 목소리였다.
“말씀하십시오, 전하.”
“경이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경께서 이런 수고를 할 필요는 없는데…… 저 때문에 늘 고생이 많네요.”
“그런 말씀 마시지요. 주군의 피가 흐르는 전하를 모시는 건 기사로서 당연한 일입니다.”
담담한 어투에 2황자, 이든 드 아르니스는 피식 웃었다.
그는 늘 그러했다.
그저 의무일 뿐이라는 듯 담담하게 굴면서도, 정작 행동은 그러하지 못하다.
“지금도 보세요. 모두가 병이 옮을까 걱정하며 쉬쉬하는 와중에도 가리온 경은 늘 저를 간호하지 않습니까.”
“……그리 보이십니까.”
“예, 경. 늘 경에게 고마울 따름입니다.”
그게 가리온만의 표현법이란 걸 이든은 알고 있었다.
그런 그를 이든은 숙부처럼 여겼다.
피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때론 아버지보다 더욱 듬직하고 안심되는 게 가리온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늘 생각했다.
“병이 나으면 가리온 경에게 선물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하하, 지금 말하면 재미없지 않겠습니까. 가리온 경도 분명 좋아할 겁니다. 그러니 제 병이 낫길 기도해 주세요.”
가리온이 가장 원하는 것을 해주자고.
물론 그가 말해주진 않았지만, 다행히 가장 원할 만한 것을 알아내는 것에 성공했다.
비록 알아낸다 해도 완전한 준비를 갖추기 무척 힘들었지만, 진심은 통한다고 이제는 거의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병에 대한 단서도 얻었으니…… 더 좋을 게 없구나.’
하나 말만 이렇게 했을 뿐.
만에 하나라도 자신이 잘못되면 선물만이라도 전해줄 생각이었다.
“마음만으로도 감사하군요. 저도 늘 기도하겠습니다.”
“아주 좋아하실 겁니다.”
“기대하겠습니다.”
이든의 호언장담에 가리온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만 쉬십시오.”
“내일은 찾아오지 않으시렵니까? 늘 내일 찾아뵙겠다 하시더니 이번엔 웬일로 멘트가 다르…….”
경도 사람이긴 한가보다며 장난스레 말하던 그때였다.
피식 웃으며 가리온을 올려다보던 이든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가리온.
그가 여태껏 보지 못한, 처음 보는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경? 왜 그러십니까?”
“쥐새끼가 들어왔습니다. 덕분에 아끼던 형제가 숨을 거두었군요. 제 비밀까지 밝히면서.”
“예? 쥐새끼…… 말입니까?”
“뭐, 어쩌겠습니까. 시기가 다소 이르긴 하나 시작할 수밖에. 저번 일 이후로 이런 상황도 대비해 와서 참으로 다행이지요. 이래서 사람은 경험이 중요한 듯합니다.”
“……경, 도무지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지 모르겠…….”
알 수 없는 소리에 이든이 의문을 표한 순간.
“커헉…….”
이든이 짧은 숨소리를 토해냈다.
심장이 타들어 가는 것 같은 격통이 밀려왔다.
심장에서 이어진 고통은 몸 전체로 퍼졌고, 정신이 희미해져 갔다.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대로 정신을 잃으면 죽게 될 거라는 것을.
“경…… 어, 어의를…….”
하여 성대를 짜내어 가까스로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내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들리지 않은 건가 싶어 힘겹게 고개를 든 순간.
“……경?”
이든은 보았다.
자신을 차갑게 내려보던 가리온의 입꼬리가, 조금이지만 비릿하게 올라간 것을.
“편히 쉬십시오.”
“끅, 끄윽…….”
발악하듯 입을 뻐끔거리는 이든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제는 성대마저 타들어 가고 있었으니까.
목을 이어 얼굴까지 퍼져가는 걸 느끼며 이든이 악착같이 가리온을 올려다보았다.
꽈악.
죽음을 목전에 둔 순간, 기지라도 발휘된 것일까.
가리온의 옷자락을 꽉 쥐어보던 이든은 끝내 숨을 거두었다.
한 발짝 뒤로 물러나자 바닥에 볼품없이 떨어지는 그의 눈 밑에는 투명한 액체가 흘러내려 있었다.
스윽.
무심하게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가리온이 이내 등을 돌렸다.
머리를 올백으로 넘기며 방을 나선 그가 향한 곳은 황제의 거처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십여 분 후.
“꺄아아아악!!”
“아아, 맙소사! 이게 대체 무슨…….”
“여, 여봐라! 어의를 데리고 와라! 어서!!”
황성이 부쩍 소란스러워졌고, 곧이어 제국 전체에 경악스러운 소식이 퍼졌다.
[아르니스 제국의 2황자, ‘이든 드 아르니스’가 사망하였습니다.] [황제 ‘바하룬 드 아르니스’가 충격으로 쓰러졌습니다.] [돌발 퀘스트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뭐?”
“엥?”
“화, 황제 폐하께서 쓰러지셨다!”
“마, 말도 안 돼!”
그리고 모두가 놀라고 있을 때.
아르렌 성 내부.
“준비는…… 나쁘지 않군.”
성주의 방에서 전투 갑옷으로 환복을 마친 가리온은 칠흑처럼 검은 기사가 되어있었다.
투구부터 갑옷, 신발까지 칠흑으로 무장한 그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럼 시작해볼까.”
가리온 반 로드만.
그가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