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Genius Ranker of All Times RAW novel - Chapter (314)
제314화
314화.
칠흑 같은 투구.
그 사이로 드러난 파충류와 같은 두 눈.
검은 갑옷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날개의 형상을 띄며 본능적인 공포를 자아낸다.
심연의 강자가 인간의 탈을 쓰면 저러할까.
“저게 뭐야…….”
“미친…….”
눈이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풀릴 것 같은 기세에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유저들은 물론 NPC들도 마찬가지.
아니, 오히려 유저들보다 NPC들이 더 당혹스러워하고 있었다.
“저게 정녕 가리온 경이란 말이오?”
“맙소사…… 저게 무슨 해괴한 모습이란 말인가.”
“마치 신화 속에 나오는 용인족 같군.”
“저게? 난 용인족이라기보단 심연에 잠식된 기사 같네만.”
용인족이니 심연이니 말이 많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들이 알던 가리온은 이제 없다는 것.
그는 더 이상 인간의 범주에 들 수 없는 끔찍한 존재로 탈바꿈해있었다.
“저, 저길 보게! 1황자 전하께서 묶여있지 않나.”
“세상에, 정말이잖아?”
“1황자 전하!! 괜찮으십니까!”
“제길, 전하의 상태가 심상치가 않네. 벌써 심연화가 되어가고 있어.”
그리고 그런 그의 뒤로 1황자, 리오르 드 아르니스가 검은 기둥에 묶여있었다.
검고 푸른 혈관들은 심연화가 되어가고 있음을 증명했다.
하나 다행이라면 아직 검은 눈물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
검은 눈물은 심연에 완전히 잠식된 자의 상징.
리오르의 검은 피부를 타고 흐르는 건 투명한 액체였다.
[보이십니까, 전하.]“…….”
그런 리오르를 보지도 않고, 가리온은 입을 열었다.
[제국의 하나 남은 황자가 붙잡혀 있어도 그 누구도 구하러 오지 않는 모습이.]“…….”
[이게 당신이 지켜오던 제국의 실체입니다. 아니, 인간의 본성이라 할 수 있겠군요.]투구로 가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느껴졌다.
그가 비죽 웃고 있음이.
“……왜.”
리오르는 흐려지는 시야를 애써 부여잡으며 힘겹게 입을 뗐다.
“왜 우릴 배신한 것이냐.”
그제야 가리온이 리오르를 마주했다.
비통함과 슬픔, 분노와 탄식이 뒤섞인 눈에 가리온이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었다.
[인간은 늘 그렇습니다. 당한 것만 기억하고, 자신들이 한 짓은 기억하지 않지요.]“……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그렇겠지요. 늘 그래왔을 테니. 뭐, 상관없습니다. 이제 와선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담담하게 대꾸한 가리온이 한 발짝 다가오며 말을 이었다.
[1황자 전하께선 운이 참 좋습니다. 병약하게 태어나 미라조차 못 되는 2황자와 달리, 무골을 타고나 위대한 계획의 마지막 조각이 될 수 있으니 말입니다.]“……가리온.”
[눈에 힘 푸십시오. 잠식 속도만 빨라집니다. 보셔야지 않겠습니까? 제국이 제 손에 넘어오는 순간을 말입니다.]“……가리온!!”
절규하는 1황자의 눈 밑으로 이젠 회색에 가까워진 눈물이 흘러내렸다.
발작하듯 몸을 움직여보지만, 심연의 사슬은 일개 인간이 힘으로 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몸을 옥죄는 힘만 강해져 살이 파이며 피가 낭자할 뿐.
[한 가지가 아쉽군요. 곧 다가올 ‘그날’ 1황자 전하께서는 감상할 만한 지성이 없게 된다니…… 그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진심이라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그때였다.
띠링-
[심연의 장막에 하나의 파티가 입장합니다.] [1황자의 잠식이 지연됩니다.]누군가 입장했음을 알리는 문구.
[호오…… 겁쟁이만 있는 것은 아니었군요.]그에 고개를 돌리자 보였다.
빠드득.
“가리온…… 네놈이 감히…….”
“더는 인간이 아니군. 정녕 금기를 어긴 것인가.”
“기사의 긍지를 저버린 역겨운 놈…….”
휘황찬란한 갑옷을 입은 기사 둘과 척 봐도 귀티가 흐르는 마법사 하나.
“네놈을 처단하고 1황자 전하를 구하겠다.”
그리고 그들의 앞으로 걸어 나오는 바람의 갑옷을 입은 기사.
[드란인가?]질풍의 기사, 드란.
제국 NPC Top 100에 드는 기사로 제국의 강자에 속하는 젊은 기사였다.
1황자 리오르와 유독 친분이 깊어 자주 대련 상대가 되어준 재능 있는 기사기도 했다.
그런 그의 등장에 손가락만 빨며 장막 안을 바라보던 이들이 쑥덕거렸다.
“대박, 드란이다.”
“드란이면 질풍의 기사? 와…… 소문만 들었지 싸우는 거 처음 보네. 차세대 기사단장이라며?”
“계승만 안 했지, 이미 실력으론 기사단장급이라던데.”
“오오! 드란 경이 나섰다.”
“드란 경이라면 믿음직스럽지!”
하물며 드란만 있는 게 아니었다.
“세상에, 같이 나선 분들을 보게!”
“마하스 님과 레비아 님, 제아론 님까지? 맙소사, 저분들이 모두 함께 나서다니!”
“NPC들 왜들 저래? 유명한 사람들임?”
“모르냐? Top 100안에 드는 강자들이잖아. 드란이랑 경쟁하는 라이벌들이라고 들었는데 아예 파티로 뭉쳤네.”
“와…… 그럼 해볼 만한 거 아님? 10대 길드 마스터급 넷이라는 소리인데.”
드란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강자들의 등장에 유저들의 표정도 밝아졌다.
광신도와 해링턴만 있어도 1페이즈를 클리어했다.
하면 그런 수준의 강자가 넷이라면 2페이즈도 가능성이 있지 않겠는가.
모두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등장한 그들을 마주한 가리온은 작은 탄성을 흘렸다.
[제국의 희망이 되었군. 어떤가, 드란. 자네의 오랜 꿈을 이루게 된 소감이. 어릴 적부터 영웅이 되고자 하지 않았나?]“감히 더러운 입으로 내 이름을 담지 말라.”
[존경한다며 따라다녔던 게 엊그제 같은데 섭섭하군.]“닥쳐라. 감히 제국을 능멸하고 황자 전하를 해하려 하다니. 부재중이신 칠강을 대신하여 이 드란이 이름을 걸고 처단하마.”
싸늘한 반응만이 돌아왔으나 가리온은 조소를 흘릴 따름이었다.
[그거 아는가? 칠강을 비롯한 제국의 강자가 사라진 지금, 내 앞을 막아선 자국민이 몇인지?]“쓸데없는 소리를 하려거든 그 입 닥…….”
[셋. 단 세 개의 파티만이 나를 막으러 왔다.]“…….”
[정작 국민 취급도 못 받는 사도들은 열이고 스물이고 오는 판국에, 겨우 셋이란 말이다. 우습지 않나?]제국의 주인이라는 것들이 겁을 먹고 꿈쩍도 하지 않았다.
뭐가 위대한 기사인가.
뭐가 위대한 마탑의 마법사들인가.
[목숨이 아까워 제국을 지킬 긍지도 없는 것들이.]“……감히 네놈이 긍지를 논하는가.”
[칠강? 제국을 빛낼 일곱의 강자? 자네들은 근본부터 잘못되었어. 그들에게만 너무 많은 걸 의지하고 있거든. 그러니 이리 나약한 것들뿐이지…….]비웃는 가리온의 모습에 드란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몸이 떨릴 만큼 화가 나지만, 차마 반박할 말이 없었다.
본인도 느끼고 있던 문제였으니.
정곡을 찔려 눈만 부릅뜨고 있는 드란을 보며 가리온이 어깨를 으쓱였다.
[자네는 얼마나 다른지 한 번 보도록 하지.]그리 말하며 검을 꺼내 쥔 그가 숨을 한 차례 들이켰다.
숨이 멎은 그 짧은 찰나의 순간.
“……!”
드란의 눈이 부릅 뜨였고.
서걱-
무언가 베이는 섬뜩한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 * *
-X됐다.
-와, 진짜 ㅈ됐네
-씨X 이게 맞냐, 얘들아?
커뮤니티는 난리가 났다.
제국 TOP 100위에 드는 제국의 강자?
아직 성장 중인 지금도 하나하나가 10대 길드 마스터급이라는 제국의 미래들?
-질풍의 기사는 니X, 한 방 컷 나더만.
-이건 뭐 소문이 과장된 거야? 가리온이 말도 안 되는 괴물 새끼인 거야?
-몰라, 확실한 건 저거 잡으라고 만든 놈이 아님.
정작 가리온 앞에선 생채기조차 내지 못하고 자멸했다.
하다못해 시간이라도 끌면 다행이지.
끔살 당한 드란을 시작으로 남은 셋조차 5분도 채 버티지 못하고 죽었다.
제국을 지탱할 미래라는 자들의 죽음이라기엔 너무도 허망한 최후가 아닐 수 없었다.
-아 저러니 시나가 도망가지 ㅋㅋㅋㅋㅋ 암살자라 그런가 판단 속도 상타치.
-ㄹㅇㅋㅋㅋㅋㅋ
-이건 도망쳐도 합법이다.
그에 신명 나게 시나를 욕하던 이들도 공격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직접 보고 나니 합법적 줄행랑이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방금 시나 해명 글 올라왔는데 은신이 안 통해서 물러난 거라는데?
-왜 안 통해?
-몰라, 검은 날개 형상 같은 기운이 스스로 움직여서 막았대. 듣기론 공격하는 과정에서 눈 마주친 거 같았다는데.
-와, 자동방어도 있는 거임 그럼? 진짜 정신 나갔네;;
더불어 이때다 싶었던 혈살 길드에서 입장 표명까지 하자, 여론은 금방 넘어갔다.
어쩔 수 없는 재앙.
가리온을 그런 천재지변과 같은 존재로 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저걸 몰아붙인 카신교…… 그저 빛이었군요…….
-1페이즈여서 그랬던 거 아님? 저건 진짜 멸살이 와야 할 거 같은데.
-저런 놈 상대로는 사왕이 제격 아니냐? 걘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일인군단이잖아.
-그 음침한 놈이 나서는 거 봤냐? 지금 어디서 뭐 하는지도 아는 사람이 없는데.
-아니, 그럼 이제 어떡하냐?
-어쩌긴. 칠강 올 때까지 버텨야지.
-도착하려면 아직 2시간은 더 남았지 않나? 벌써 70퍼 넘었던데 버틸 수는 있고?
진짜 문제는 잠식 속도였다.
드란이 죽은 지 1시간도 지나지 않아 벌써 70퍼가 넘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후반부에 접어들수록 천천히 오르는 걸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속도.
오히려 초반보다 더욱 빨랐다.
-하아…… 차라리 2페이즈가 안 열렸으면 가망이 있는데. 진짜 잠식 속도가 말 안 되네.
-내 말이;; 꾸역꾸역 들어가서 시간 끄는 것도 한계가 있지. 들어가봤자 3초컷 당하는데 의미가 있나 이게?
-죄다 끔살 당하고 데스 페널티만 받는데 누가 들어가려 하겠냐.
-애초에 10번 연속 들어가면 대기시간 뜨더라. 지나친 편법 못 쓰게 시스템이 막은 듯.
-ㄹㅇ? 걍 조졌네.
-카신교…… 빛이 아니라 비치였군요…….
-앞으로 카신교 테러해도 되는 부분?
-이게 어떻게 카신교 탓이냐, 병X들아. 언젠 제발 아무나 막아달라더니 지들은 손가락만 빨고 있으면서.
2페이즈에 접어들며 잠식 속도가 빨라진 탓이었다.
오히려 카신교가 선방해서 가리온을 몰아붙였던 게 악수로 작용하게 된 셈.
그로 인해 카신교를 질타하는 이들도 많이 보였으나, 엄연히 따지면 카신교의 탓은 아니었기에 그저 말싸움 정도로 번질 뿐이었다.
[현재 1황자의 심연 잠식 진행률은 80%입니다.]…….
[현재 1황자의 심연 잠식 진행률은 83%입니다.]그 사이에도 진행률은 점점 올랐고, 채팅이 올라오는 속도도 더욱 빨라졌다.
-야, 이제 진짜 시간 없어.
-신대륙에 있는 얘들은 아직 소식 없대?
-허겁지겁 오고 있다곤 하는데 시간 안에 도착할 리가 없지. 칠강보다도 늦을 판이고만.
-아, 진짜 왜 신대륙에선 본대륙으로 워프가 안 되는 거야?
-이종족들 땅인데 그게 되겠냐? 인간이랑 무역이 활발한 설정도 아니고.
-카이저 동료들은?
-그나마 가까워서 가능성 있긴 한데…… 그래도 앞으로 2시간은 걸릴걸?
-그럼 카이저는? 이제 믿을 건 카이저밖에 없는데 왜 소식이 없냐?
-안 그래도 아스트 지금 글 올리고 난리 났던데. 카이저 욕이 반절임 ㅋㅋㅋㅋㅋㅋㅋ 귓속말 기능이 있으면 제발 좀 쓰라고. 또 어디서 뭐 하냐고 답답해 죽으려 함 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대책 없는 채팅만 올라온 지 얼마나 지났을까.
얘기가 이어질수록 가망이 없다는 사실만 체감되어 갈 즈음.
[심연 잠식 진행률이 90%를 돌파합니다.] [심연의 장막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심연의 장막의 크기가 더욱 커지고 내부가 좀 더 뚜렷하게 보입니다.] [앞으로 1%가 오를 때마다 장막의 반경이 넓어집니다.] [주의! 100%에 달할 시 1황자 ‘리오르 드 아르니스’가 사망하고, 장막이 걷히며 도시의 심연화가 시작됩니다.]어느덧 90%를 돌파하며 시스템 창이 본격적인 경고 알림을 보내기 시작했다.
-아니, 얘들아. 지금 웃음이 나와? 카이저도 없는 거면 우리 진짜 ㅈ된 건데? 제국 멸망하는 거나 다름없다니까?
-그럼 뭐 어쩔 거야. 게임이 망하는 건 아니니 어떻게든 되겠지.
-나도 이제 모르겠다. 90% 넘어가고부터 걍 놓기로 했음. 얘들아, 그동안 즐거웠다.
-내가 이 게임에 바친 돈이 얼만데 씨X 그럴 수는 없지.
-제국 망하면 시세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그게 말이냐, 새끼들아? 그러다 게임 망하면 내가 투자한 돈은? 주식은?
-어휴, 그니까 누가 겜창으로 살래?
-갓오세가 게임 수준이냐? 지금 영향력이 어떤 수준인데…….
이쯤 되자 유저들의 반응도 반으로 갈렸다.
안달이 나서 초조해하는 이들과 그냥 깔끔하게 포기하기로 한 이들.
그렇게 서로 대립하며 죽어라 채팅을 늘어놓았고,
[현재 1황자의 심연 잠식 진행률은 91%입니다.] [현재 1황자의 심연 잠식 진행률은 92%입니다.]…….
[현재 1황자의 심연 잠식 진행률은 97%입니다.] [경고! 곧 도시의 심연화가 시작됩니다.] [심연화가 시작될 시 멸망급 도시 퀘스트 ‘흑기사 가리온’이 실패합니다.]-드디어…… 오랜 염원을 이룰 순간이 찾아오는가……!
어느덧 제국의 심연화를 목전에 둔 가리온은 심연의 장막 안에서 도시의 광경을 보며 양팔을 펼쳤다.
기둥에 묶인 1황자는 몸 전체가 검게 물든 채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옅은 회색이었던 눈물은 이제 구정물에 가까워진 채였다.
[현재 1황자의 심연 잠식 진행률은 98%입니다.]-아아…….
앞으로 한 걸음.
단 몇 분만 기다리면 바라던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
-이것을 위해 달려온 지 40년…… 비로소…….
너무도 오랜 시간이었다.
유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평생을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간.
비로소 결실을 맺고, 그날을 준비할 수 있게 되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현재 1황자의 심연 잠식 진행률은 99%입니다.] [곧 심연의 장막이 사라집니다.]1황자의 의식이 흐릿해져 가고, 몸의 떨림이 멈춰가며 심연의 장막이 걷힐 준비를 하고 있는 그때.
파앗-!
저 멀리서 무언가 빛살처럼 날아오기 전까지는.
하나의 검은 점.
아니, 그것은 하나가 아니었다.
점점 가까워지는 그것들을 보던 가리온이 순간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망자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