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Genius Ranker of All Times RAW novel - Chapter (4)
제4화
4화.
“전역하면 가장 하고 싶은 게 뭐냐?”
전역을 앞둔 군인들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대개 일차원적이다.
집에서 하루 종일 자고 싶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하고 싶다.
침대에 누워 치킨을 뜯으며 넷X릭스 보고 싶다.
당연시하던 자유가 억압되었던 이들이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고, 그 일상을 되찾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도현도 비슷했다.
“게임.”
“……뭐?”
“게임하고 싶다고.”
“…….”
겜창 인생이었던 그의 일상은 적당히 넓은 방구석에 컴퓨터, 그리고 VR기기가 전부였다.
그 일상을 미치도록 되찾고 싶었다.
그런 그를 동기들도 처음에는 얼탄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곧 이해할 수 있었다.
“게임? 혹시 갓오세?”
“아, 그 최초의 가상현실게임? 와씨, 그거면 인정이지. 나도 진짜 하고 싶어 미치겠다. 하필이면 출시한 지 얼마 안 돼서 영장 나와 가지곤…….”
“그게 무슨 게임이냐? 갓오세가 하고 싶다고 했어야지.”
“다들 전역하면 캡슐방이나 가실? 파티 한번 꾸리게.”
사람들에게 갓오세는 더 이상 폐인들이나 하는 게임이 아니었으니까.
갓오세는 하나의 문화이자 세상이었다.
오히려 갓오세를 하지 않는 사람을 찾는 게 더 힘들 정도로.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 사이에서도 모르면 세상 물정 모른다는 취급받는 게 갓오세였다.
애석하게도 그런 갓오세가 판을 치는 상황에 군대에 박혀 있는 그들 중, 갓오세를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갓오세가 그렇게 멋집니까?”
“또 하나의 세계라곤 들었습니다만…….”
“아, 니들 갓오세 안 해 봤냐? 와씨, 이런 문찐들을 봤나…… 진짜 장난 없다. 기저귀 세 장씩 들고 가라.”
하물며 같이 담배를 피우면서 얘기를 듣던 후임들까지 관심을 가질 정도였다.
그럴 때면 바깥에서 갓오세를 접해 봤던 놈들이 기세등등해져선 영웅담을 펼치듯 이야기보따리를 펼치곤 했다.
갓오세를 하지 못한 이들은 어린아이처럼 동심 가득한 눈으로 경청했고.
어느덧 군대에선 갓오세와 여자 얘기가 대화의 90퍼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도현은 인내심 테스트를 해야만 했다.
‘진짜로 가상현실게임이었다니……!’
어림도 없다며 거들떠보지 않았던 뎀로크의 후속작.
그게 정말 가상현실게임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왜 하필이면 정확히 자신이 군대를 간 타이밍에 출시됐는지 안타깝다 못해 피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평소 신을 믿지 않았는데 이번만큼은 신앙심이 아주 솟구친다.
이쯤 되면 정말 신이 개입해서 자신을 억까 하고 있는 게 분명했으니까.
그렇게 갓오세의 소식을 들으며 1년 6개월이라는 억겁의 시간을 버티고 버텨 전역한 순간.
벌컥!
“……캡슐! 캡슐은?”
“뭐야, 오빠 왔어? 머리 많이 길었네.”
“네 오빠는 오자마자 캡슐부터 찾는다니. 아기 땐 엄마, 엄마 하면서 엄마만 찾았는데. 이래서 자식들 크면 필요 없다 하나 봐.”
“마미, 딸내미가 있잖아용.”
“넌 좀 그만 부르고. 하여튼 너희는 중간이 없니.”
집에 도착한 도현은 약을 찾는 약쟁이처럼 캡슐부터 찾았다.
그 모습에 티브이를 보던 여동생 현아와 어머니 채미숙이 핀잔을 늘어놓았다. 평소라면 발끈했을 도현이지만, 지금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한시라도 빨리 캡슐을 영접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캡슐은 네 방에 들여놓았단다. 아저씨들 두 명이서 옮기는데 어휴, 캡슐이 왜 그렇게 무겁니? 요즘엔 저런 걸로 게임하나 봐.”
“엄마, 갓오세 몰라? 그거 모르면 요즘 아싸 취급받아.”
“어머 얘는, 티브이에도 맨날 그 얘기만 하는데 알지. 그런데 엄마는 무서워서 그런 거 못 하겠어. 저 사람들은 저런 괴물들 잡는 게 무섭지도 않나 봐.”
“엄마, 엄마 아들이 제일 잘 잡아. 도살자야, 아주.”
둘의 대화를 한 귀로 듣고 흘리며 방으로 들어간 도현이 우뚝 멈춰 섰다.
그런 그의 눈이 감격으로 물들었다.
“아아…….”
영롱한 자태.
매끄럽게 그려진 타원형과 유려하게 들어간 굴곡이 그리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 캡슐을 어루만지는 도현의 만면에 미소가 그려졌다.
‘이게 캡슐…….’
방송으로만 보던 것과는 느껴지는 감동이 다르다.
이제는 월급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오른 군인 월급으로 야금야금 모아서 주문한 캡슐이라 더 그런 걸까?
비록 중고로 400 정도 주고 산 보급형 캡슐이었지만, 첫 차를 산 듯 뿌듯함이 차올랐다.
“아들, 밥은 안 먹어?”
“먹고 왔어요. 저녁에 먹을게요.”
채미숙의 말에 대충 대답한 도현이 냅다 캡슐 안으로 몸을 던졌다.
푹신하게 감싸는 쿠션이 제법 괜찮았다.
처음에는 값비쌌지만, 이젠 2년이 다 되어 가서인지 캡슐도 요즘엔 싼 가격에 잘 나온다.
그 당시에 비하면 품질도 괜찮고, 동기화율도 더 높아졌다니까.
‘그럼 어디 접속해 볼까.’
도현이 능숙하게 캡슐을 작동하기 시작했다.
사용법은 그간 수도 없이 영상을 보며 이미 숙지했다.
갓오세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모든 걸 공부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얼추 어떤 구조인지는 오는 길에 확인했다.
‘뎀로크랑 비슷한 점이 많아.’
후속작이라 그런지 많은 면이 비슷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갓오세는 설정상 뎀로크 이후의 미래 세대라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세계관이나 도시, 그리고 그 외 여러 요소들까지.
많은 면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같은 줄기를 이어서인지 시스템적인 설정 자체는 비슷했기에 어려울 건 없어 보였다.
우선은 대략적인 것만 봤지만, 자세한 공략집이야 그때그때 봐도 늦지 않았다.
1년 6개월이면 웬만한 정보는 홈페이지만 몇 번 딸깍거려도 나오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으니까.
10억 명이 플레이하는 갓오세야 말할 것도 없었다.
딸칵.
스위치를 차례대로 켜고 조작을 마친 후 헬멧형 기기와 비슷한 기어를 머리에 쓰자 곧 시야가 암전되었다.
그러며 나타나는 메시지.
[홍채를 인식합니다.] [ID카드를 확인합니다.] [ID카드를 확인하였습니다.]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God of Savior에 접속하시겠습니까?]“어.”
즉답과 함께 정신이 아득해지며 세상이 하얗게 물들었다.
그리고 다시 드러난 세상은 새하얀 공간이었다. 그 공간 속에서 들려오는 여성 인공지능의 음성.
[모험의 낙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캐릭터를 생성해 주십시오.] [성별은 변경할 수 없으며 외형은 머리카락과 눈동자, 그 외 신체의 복구가 가능합니다. 그 외에도 인체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 선에서의 변경이 가능합니다.]도현이 눈앞에 놓인 전신거울을 바라봤다.
덩그러니 놓인 거울 속엔 현재 도현의 외관이 비치고 있었다.
중요 부위만 간신히 가린 채 적나라하게 드러난 모습.
나름 길렀다지만 여전히 군인 티를 벗어나지 못한 머리와 이전보다 제법 다부져진 몸이 눈에 띄었다.
‘너무 군인 티가 나긴 하네.’
전역하자마자 달려왔다고 광고하는 것도 아니고.
간단하게 손을 댈 때마다 달라지는 모습에 바꾸면서도 감탄이 나왔다.
슥 하면 바뀌는 게, 뭔가 마법을 부리는 기분이었다. 뭐 말이 그렇지 바꾼 거 자체는 딱히 없었다.
그도 그럴 게 그냥 머리만 길렀을 뿐이니까.
그거 말곤 현실의 모습과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
‘애초에 제대로 손볼 수 있는 것도 없는데 굳이 귀찮게 시간 들일 필욘 없겠지.’
확실히 이런 건 뎀로크와는 달랐다.
오감이 느껴지지 않는 뎀로크에서는 외형은 물론 성별까지 마음껏 바꿀 수 있었으니까.
소위 커마 장인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극한의 활용을 보여 준다는데, 아쉽게도 도현에겐 그런 손재주가 없었다. 굳이 귀찮게 그럴 생각도 없고.
그렇게 커스텀을 마치자 이젠 제법 민간인다운 모습이 완성되었다.
흡족하게 거울을 바라보고 있자 다시금 음성이 들려왔다.
[닉네임을 정해 주십시오.]‘닉네임이라…….’
갓오세를 하는 사람이라면 신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보편적으로 게임 속 닉네임은 중복이 되지 않지만, 갓오세는 중복이 되기 때문이었다.
무려 10억 명이나 플레이하는 게임인 만큼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였다.
하나 도현은 일말의 고민 없이 외쳤다.
“카이저.”
게임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서비스가 종료될 때까지 쭉 함께해 온 이름.
그에게 있어 카이저는 본명만큼이나 친숙하고 뜻깊은 것이었다.
애초부터 다른 이름을 지을 생각은 없었다.
[닉네임 ‘카이저’가 맞습니까?]“그래.”
[‘카이저’ 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당신의 해시태그는 카이저#312543입니다.] [캐릭터가 생성되었습니다.] [튜토리얼 존으로 이동합니다.]그 메시지와 함께 시야가 까맣게 물들었다.
* * *
“와…….”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도현은 솔직하게 감탄을 내뱉었다.
이곳은 성 위였다.
전형적인 중세시대 판타지 영화에서 볼 법한 그런 성 말이다.
영상에서 보던 것처럼 아름다운 이세계의 풍경은 아니었지만, 어둠을 밝히는 성화나 드높은 성벽이 마치 전장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몸을 스치고 가는 밤의 선선한 기운이나, 불에 타는 냄새.
바닥을 짚고 서 있는 발의 감각.
손가락을 꼼지락거리자 피부로 느껴지는 미세한 감각까지.
온몸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현실과 같았다.
자신이 게임을 시작한 게 아니라 판타지에 빙의한 게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야말로 뎀로크와는 차원이 다른 생동감.
‘이게 가상현실게임…….’
성벽 밖에 펼쳐진 이세계의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이곳은 과거 아르렌성의 참혹했던 전장입니다.] [무기를 선택하십시오.]캐릭터를 생성할 때 들렸던 음성이 도현을 깨웠다.
본능적으로 뒤로 돌자 수많은 무기들이 허공에 둥실 떠올라 있는 게 보였다. 현실 같은 곳에 시스템적인 현상이 나오니 오히려 어색한 느낌이었다.
[조악한 검]-낡고 무뎌진 검이다.
사람을 베는 데는 지장이 없을 듯하다.
[조악한 창]-낡고 무뎌진 창이다.
사람을 찌르는 데 지장이 없을 듯하다.
…….
[조악한 활]-낡고 해진 활이다.
아직 오십 번 정도는 쏠 수 있을 것 같다.
검부터 창, 활, 단검, 철퇴, 석궁, 지팡이…….
여러 무기들이 즐비했지만, 도현은 일절 고민 없이 무기를 집어 들었다.
[조악한 검을 선택했습니다.] [검의 기본 스킬 ‘강타’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튜토리얼이 시작됩니다.]검. 도현이 뎀로크 시절 가장 애용하는 무기였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냥 모든 방면에서 가장 활용하기 좋아 보여서 택했던 건데, 막상 다뤄 보니 적성에 잘 맞았을 뿐이었다.
“이보게!”
무기를 집어 들자 기다렸다는 듯이 멀리서 병사가 달려왔다.
다급한 표정이나 피가 묻은 갑옷이 긴박한 상황임을 드러내고 있었다.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 도현이 답답하다는 듯 거칠게 다가온 그가 손목을 잡아끌었다.
“이곳에서 대체 뭐 하는 건가, 한시가 급한 상황에! 다른 용병들은 이미 참전했으니 어서 합류하게!”
[기사단장 ‘찰리’와 파티가 형성됩니다.]파티원
-찰리
-카이저
그렇게 급조된 파티로 도현은 성안으로 끌려가다시피 이동했다.
여타 게임에서도 나오는 이벤트성 튜토리얼이었다.
찰리를 따라가자 성 밖과 달리 아비규환이 펼쳐졌다. 검과 화살에 찔린 채 피투성이로 쓰러진 병사들과 마물들.
방금까지의 느긋한 감상은 어디 가고 순식간에 긴박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그건 깊숙이 들어갈수록 더욱 심해졌다.
크악!
카아아아!
쓰러진 병사들, 그런 동료의 위에서 흉측하게 생긴 마물과 치열하게 싸우는 병사들의 수가 점점 많아졌다.
용병으로 보이는 이도 종종 쓰러져 있는 게 보였다.
“벌써 이렇게나…… 제길.”
가슴이 찢어진다는 듯 눈을 질끈 감은 찰리가 고개를 돌리곤 걸음을 재촉했다.
그는 진심으로 동료들의 죽음에 슬퍼하고 있었다.
단순한 데이터로는 저 눈가의 떨림과 손의 미세한 떨림까지 재현하지 못할 테니까.
“결국 마물 놈들과 힘을 합쳤군……. 소문이 사실이라면 그 ‘괴물’과 계약을 맺었을 터. 어서 가서 막지 않으면 놈이 강림할 걸세.”
그것이 그가 동료들의 눈조차 제대로 감기지 못하고 서두르는 이유였다.
괴물이 강림하면 모든 게 끝이었으니까.
그리고 도현은 그 괴물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이미 영상을 통해 여러 번 봐 왔으니까.
놈은 튜토리얼에서 잡으라고 만든 몬스터가 아니었다.
“서두르게. 이쪽으로 들어가면 금방이야.”
이제 막 계단에서 내려가자 복도를 건너며 찰리가 외쳤다.
그러던 그때였다.
슈우- 푸슈슉-!
무언가 허공을 가르는 소리에 도현이 멈추자 바로 앞을 지나쳐 바닥에 박히는 화살들.
마치 화살이 알아서 도현을 비껴간 것만 같았다.
“……!”
검으로 화살을 쳐 내려던 찰리가 놀란 듯 멈췄다.
그러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곤 중얼거렸다.
“알고 피한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없겠지. 자네는 운이 좋은 편이군.”
화살을 쳐 내는 것도 아니고, 저런 식으로 멈춰서 피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운이 좋은 것일 거라 생각하는 게 타당했다.
키키킥-.
키릭-.
화살을 날린 것은 마물들이었다.
전체적으로 놀을 닮은 녀석들.
다만, 머리에 난 작은 뿔이 일반적인 놀과의 차이점이었다.
그런 놈들이 총 다섯.
“여기까지 몰려왔군……. 놈들을 뚫어야만 하네.”
찰리가 자세를 잡자 마물들도 키킥 소리를 내며 각자 무기를 들었다.
활잡이 둘, 둔기를 든 놈 셋.
까다로운 조합이었다. 찰리로선 난감했다. 한시가 급한 상황에 발이 묶이게 생겼으니까.
“우선 내가 먼저……!?”
도현이 뛰쳐나간 건 그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