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Genius Ranker of All Times RAW novel - Chapter (40)
제40화
40화.
지하드 블랙.
그는 서쪽 숲의 지배자다. 정확히는 지배자였다.
숲의 모든 마물들은 그의 드높은 격을 견디지 못했고, 도시의 주민들은 그의 존재를 두려워하였다.
감히 접근조차 불허하는 최악, 최흉의 숲.
그게 지하드 블랙이 지배했던 서쪽 숲의 모습이었다.
한 괴물 같은 남자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이런 곳에 숨어 지내야 하는 꼴이라니…….’
그 사실을 지하드는 용납할 수 없었다.
찬란했던 왕좌의 주인이었던 자신이 이깟 낡아 문드러진 지하에 숨어 있게 됐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 괴물은 살아 있고, 다시 조우하는 날엔 이런 지하에서조차 있을 수 없을 것이다.
태생이 고블린인 덕일까.
비교적 빠르게 현실에 굴복하고 적응한 그는 금방 안정감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차츰 이곳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져 갈 때쯤.
‘흠…….’
지하드는 따분함을 느꼈다.
너무도 잘 숨어 있던 탓인지 새로운 생명체를 만날 일이 없어진 탓이었다.
초기에는 한 번씩 밖으로 나가긴 했지만, 그마저도 훌륭한 종들이 생긴 후로는 나갈 일이 없어졌다.
괜히 위험 부담을 안고 나갔다가 귀찮은 일이 생길 수도 있지 않나.
그렇게 안전한 생활을 하다 보니 자신이 뭘 하려 했었는지도 기억이 안 나기 시작했다.
무언가 중요한 걸 잊고 있는 거 같은데…….
‘아무렴 어때.’
지하드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100년?
아니, 150년은 보냈을 이 생활에 적응할 대로 적응한 것이다.
뭐든 유하게 넘길 줄 아는 남자가 된 것!
하나 그것도 한계가 있었는지 최근 들어 지하드는 기분이 이상함을 느꼈다.
‘답답하다. 너무 답답해!’
이곳에서 지내는 게 안정감을 주기는 했지만, 동시에 가슴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따분함만큼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간간이 취미 생활로 새로운 언데드를 만드는 것도 꽤 재밌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이 지독한 갈증을 해결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한번 나가 볼까?’
시간도 오래 지났는데 상관없지 않을까?
아니야. 그래도 혹시 모르니 굳이 위험 부담을 안지 말자.
그래도 너무 따분한데…….
지루함은 몸을 게으르게 만들었고, 반대로 머리는 복잡하게 만들었다.
어찌해야 좋을지 몇 년을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은신처에 누군가 들어오고 있습니다.]“누가 들어오고 있다고?”
평소처럼 멍하니 앉아 있을 때 들려온 목소리에 지하드는 눈을 의심했다.
그 괴물에게서 숨으려고 심혈을 기울여 꽁꽁 숨겨 놓은 은신처다.
실제로 몇백 년 동안 아무도 찾지 못했지 않나. 그런 곳에 누군가 들어온다니 처음엔 몹시 긴장되었다.
‘설마 그 녀석이……?’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론 불안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주술을 외우며 기다렸고, 이내 은신처에 나타난 인간 남자를 본 순간.
‘아.’
불안감이 씻기듯 사라졌다.
처음 보는 놈이었던 것이다.
역시 그럴 일이 없다는 안도감이 지나가며 그 뒤로 호기심이 피어올랐다. 동시에 묘한 설렘이 느껴졌다.
‘장난감이 생겼구나!’
이 따분한 삶에 신선한 재미를 줄 존재가 나타났구나!
심지어 저 장난감은 어딘가 특이했다.
[탐험가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데…… 여러 기운이 섞여 있는 것이 참 특이한 존재로다.]느껴지는 강함은 그리 크지 않은데 난생처음 느껴 보는 기운…… 마치 여러 가지 기운이 조화롭게 섞여 있는 듯한 느낌이 신선한 충격을 준 것이다.
‘실험체로 가지고 놀기 딱 좋겠어.’
시체로 만들어서 놀아도 좋고, 온갖 주술을 걸며 내구성 테스트를 해 봐도 좋으리라.
그러다 질리면 그냥 언데드로 만들어도 될 테고.
뭐가 됐든 몇 년간은 이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게 해 줄 터였다.
‘너무 상하지 않게 제압해야지.’
그렇기에 장난감이 너무 다치지 않게 마물들을 이용하여 사로잡을 생각이었다.
이 과정에서 어떠한 변수가 일어날 거란 생각은 없었다.
이곳은 자신이 수백 년을 살아온 둥지였고, 이곳에서 자신이 알 수 없는 건 없었으니까.
그래, 그렇게 생각했다.
장난감이 시야에서 사라지기 전까지는.
[표식이 생성됩니다.]슥-.
[……?]알 수 없는 메시지와 함께 등 뒤로 서늘한 감각이 느껴지기 전까지는.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지하드가 빠르게 움직였다.
휙- 퍼엉!
[시체조종이 발동합니다.] [특성 ‘재빠른 손놀림’의 효과로 속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시체폭발이 발동합니다.] [특성 ‘재빠른 손놀림’의 효과로 속도가 대폭 상승합니다.]바로 옆에 있던 마물들 장난감…… 아니, 건방진 인간에게 날려 보냄과 동시에 폭발시킨 것이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에 일어난 일.
미리 알지 못한다면 결코 눈으로 반응하기 힘든 속도였지만, 인간은 맞지 않았다.
언제 빠졌는지 저 멀리 물러나 있었던 것이다.
[……쥐새끼 같은 놈이로다.]태연한 척 말하지만 지하드는 내심 당황하고 있었다.
[급소를 찔리셨습니다. 상태이상 ‘출혈’이 발동합니다.]‘대체 언제 찌른 거지?’
그 짧은 틈에 거리를 벌려 피한 것뿐만 아니라 쥐도 새도 모르게 급소까지 찔렀다.
도무지 검사라고 믿기지 않는 재빠름이었던 것이다.
그 후에 보여 준 모습은 더더욱 그러했다.
탓. 휙-.
퍼엉!
가볍게 스텝을 밟으며 땅을 박차고 들어온 인간의 걸음걸이는 특이했다.
분명 빠르게 들어오는 것 같은데 막상 사체를 날리고 보면, 예상 범위보다 뒤에 있다.
느릿하게 움직인 것 같아서 늦게 던지면 또 빠르게 들어온다.
‘왜 맞질 않는 거냐!’
인지한 것과 실제가 반대인 신기한 현상.
‘저런 능력을 가진 인간이 있었던가?’
수백 년을 살아온 지하드지만, 이런 인간이 있다는 건 듣도 보도 못했다.
여러 기운이 섞여 있다 싶더니, 실은 여러 종족이 섞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펑! 퍼엉!
[이익……!]흥분하여 사체를 이리저리 휘두르는 지하드를 보며 도현이 피식 웃었다.
마치 염력을 다루는 듯 자유자재인 조종 능력과 화염계 법사 뺨치는 위력의 폭발 능력.
전형적인 폭파 네크로맨서로, 근거리 입장에서는 까다로운 능력임이 틀림없었지만 맞질 않으면 의미가 없었다.
푹-.
[급소를 찔렀습니다. 상태이상 ‘출혈’이 발동합니다.] [공격이 적중했습니다. 상대를 ‘출혈’ 상태로 만듭니다.]거리를 좁히고 찌르고, 사체가 날아오면 거리를 벌린다.
그리고 다시 거리를 좁힐 듯 말 듯 움직이다 결국 좁혀지면 검을 찔러 넣고, 출혈이 쿨타임이 되면 살수의 단검을 찔러 넣는다.
그러다 운이 좋으면 살수의 단검의 출혈이 발동하여 딜이 중첩으로 들어갔다.
더 놀라운 건, 그 와중에 포위하기 위해 보낸 언데드들을 폭파해도 신출귀몰한 움직임으로 따돌리며 공간 장악을 해 낸다는 것이다.
압도적인 멀티 능력으로 행해지는 지독할 정도의 치빠(치고 빠지는) 플레이에 지하드가 성을 냈다.
[이런 건방진……!]자고로 원거리 딜러들이 암살자를 유독 혐오하는 이유는 이 특유의 플레이에 있었다.
암살자란 족속은 대놓고 싸워 주는 법이 없다.
치고 빠지며 온갖 상태이상을 넣으며 사람 성질을 살살 긁는 것이다.
물론 도현은 그런 플레이를 하기엔 아직 스킬 세트가 부족했지만…….
[대체 저 움직임은 뭐란 말이냐! 왜 도통 맞질 않는 것이지?]도현의 특이한 움직임과 회피력이 그걸 가능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뿐인가.
[특성 ‘영웅’이 정신오염을 막아 냅니다.] [저주구의 효과가 무효화됩니다.]아무리 암흑시야를 걸어도 저 기이한 능력이 죄다 막아 내고 있었다.
당혹스러워하는 지하드를 보며 도현이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역시 통하네.’
카이저를 상대한 유저들에게 가장 힘들었던 점이 뭐냐 묻는다면 수많은 이유가 나오지만, 열에 일곱은 같은 대답을 내놓는다.
-무빙.
PC게임 시절처럼 마우스로 딸칵거리면 되던 것과 달리 수많은 심리전이 들어가고, 난도가 높은 게 가상현실의 무빙이다.
하나 뛰어난 민첩과 감각 능력치의 도움과 인체의 한계를 넘어선 움직임을 구사하게 해 주는 가상현실의 특성상, 적응만 하면 못 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이걸 숨 쉬듯 해 온 게 고인물이라는 족속들이었다.
그런 만큼 무빙이 안 좋은 랭커를 찾는 게 더 어렵지 않을까 싶을 정도.
그럼에도 왜 카이저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느냐.
간단하다.
-와씨, 진짜 개꼴받네. 그렇게 열받게 무빙 치는 새끼는 너밖에 없을 거다. 이 X같은 새끼…….
-왜 화를 내?
-지금 화 안 나게 생겼어? 내 심정이 지금 천만 뎀로크 유저의 심정을 대변해 주고 있다니까?
-……이번만큼은 저 녀석 말에 동감이다.
카이저의 무빙은 일반적인 그것과는 달랐으니까.
무빙의 근본은 심리전에 있다.
랭커라면 동체시력으로 보고 반응하긴 하지만, 거기엔 한계가 있으니 어느 정도 예측을 하게 되는 것이다.
카이저, 도현은 거기에 집중했다.
-분명 멈추는 거 같은데 갑자기 치고 들어오고, 치고 들어온 거 같으면 갑자기 반 박자 늦게 들어오니 환장하겠네. 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저게 물리적으로 가능한가?
-VR에서 물리적인 걸 따지는 건 이상하지만…… 솔직히 궁금하군. 어떻게 하는 거지?
상체만 따로 멈추거나 하체만 멈출 때도 있었고, 멈춘 척하다 폭발적으로 들어가거나, 빠르게 진입하는 척 자세만 취하고 힘을 풀어 반박자 늦게 움직일 때도 있었다.
물리적 법칙과 인체의 한계가 작용하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움직임.
하지만 그런 한계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뎀로크와 갓오세에서는 하려 한다면 못 할 것도 없었다.
-……그니까 몸을 다 따로 움직일 줄 알아야 한다는 거지? 그 와중에 심리전도 하고, 멀티도 하고? 난 못 하겠다. 포기.
-저딴 미친 짓을 누가 해?
-그보다 애초에 저걸 무빙이라고 할 수가 있나? 이미 그 영역을 넘어선 거 같은데.
단지, 그게 말도 안 되게 어려울 뿐.
당장 왼손을 상하로 움직이면서 오른손은 좌우로 움직이는 간단한 행위조차 대부분의 인간은 어려워한다.
그사이에 멈추는 패턴을 추가한다면 말할 것도 없을 터.
겨우 두 손만 해도 그럴진대 모든 신체를 자유롭게 멈추고 움직이는 건?
말 그대로 오직 도현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꾸꾸도 못 하겠다 했으니까.’
도현이 본 최강 피지컬 중 하나인 꾸꾸닭꾸꾸도 두 손 다 들었을 정도니 말 다 한 셈.
그게 카이저가 전무후무한 천재로 불리는 이유였다.
심리전에 있어 남들보다 몇 배는 많은 선택지를 가지고 우위를 점할 수 있었으니까.
본능만 남았던 이전의 몬스터들과 달리 심리전을 할 줄 아는 저 보스에게라면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그 예상이 보기 좋게 들어맞았다.
‘보인다.’
무엇을 하려 하는지, 어딜 노리고 공격하는지.
주변 언데드들이 어떤 구도로 자신을 포위하려 하는지.
도현의 눈엔 모든 게 보였다.
그때 반 박자씩만 움직임을 꼬아도 지하드는 결코 닿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마치 신기루처럼.
펑! 퍼엉!
크어어…… 크어…….
[이익…… 이런 날파리 같은 녀석!]그리고 대개 이런 상황에서 상대가 택하는 방법은 늘 같았다.
턱.
[크큭…… 미련한 녀석. 파리 몰이하는 줄도 모르고 좋아하는 꼴이라니.]무조건 큰 거 한 방.
전세를 뒤집을 수 있는 필살기를 먹이는 것.
벽에 닿아 더는 물러날 수 없는 도현을 보며 지하드가 비열한 웃음을 흘렸다.
로브 속에 얼굴이 가려져 있지만, 분명 고블린 특유의 그 비열함이 드러났을 거라 확신할 수 있었다.
[비밀 던전의 보스 ‘지하드 블랙’이 대시체술법 시체대폭발을 사용합니다.] [특성 ‘재빠른 손놀림’의 효과로 시전 속도가 빨라집니다.]시체대폭발, 일명 대폭.
폭파 네크로맨서의 꽃이라 불리는 기술로 모든 언데드를 한 번에 폭파하는 화려한 스킬이었다.
이때 딜이 중첩으로 들어가기에 상황만 잘 맞는다면 광범위에 그 누구보다 강한 폭딜을 때려 박을 수 있는 스킬이기도 했다.
——!!
언데드들이 일시에 터지며 동굴이 거세게 뒤흔들렸다.
벽면을 모두 집어삼키는 위력에 귀가 멍해지는 이명을 들으며 지하드가 쯧 혀를 찼다.
이번 폭파에 들어간 언데드만 수십 마리다. 그중에는 심혈을 기울인 언데드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저건 설령 트롤이어도 살아남을 수 없으리라.
[모처럼의 실험체이니 살살 다뤄 주려 했거늘…… 네가 네 명을 재촉했다.]그렇기에 지하드는 도현의 죽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공격이었으니 당연했다.
장난감이 사라진 것과, 많은 재료가 사라진 것이 아쉽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날파리 같던 놈을 참교육한 게 속이 다 시원했으니까.
[표식이 사라집니다.]“……?”
이상한 메시지와 함께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지기 전까지는.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보자, 볼 수 있었다.
검을 들이밀며 슬며시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도현의 모습을.
“대폭 뺐네? 뺐으면 맞아야지.”
[……아.]체크메이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