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Genius Ranker of All Times RAW novel - Chapter (55)
제55화
55화.
볼품없이 벽면에 처박힌 엘리자의 HP는 4천가량 깎여 있었다.
거미여왕 엘리자의 단단한 방어력을 생각하면 스킬 한 방에 깎였다고 하기엔 지나치게 높은 수치.
도현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바스타드의 수련검을 연달아 휘둘렀다.
[바스타드의 수련검의 옵션 ‘미약한 헤이스트’가 발동합니다.] [공격 속도와 이동 속도가 3% 상승합니다.]마치 춤을 추듯 휘둘러진 검이 엘리자에게 쏟아져 내렸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공간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피할 수는 있을까 싶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고, 엘리자는 쥐어 터질 수밖에 없었다.
[HP : 31,981 / 40,000]순식간에 8천가량 줄어든 생명력.
도현은 아예 스트라이킹까지 사용했다.
황금빛 기운이 은은하게 새어 나오며 내부를 순환하더니 곧이어 메시지가 떠올랐다.
[본인을 대상으로 스트라이킹을 사용합니다.] [신체 능력이 올라가 공격력이 상승합니다.]그리고 쏟아진 공격은 가히 파괴적이었다.
쾅! 콰아앙!
-엘리…… 엘리…… 자!
땅이 울릴 정도로 거센 파격음이 통로 안에 울려 퍼지고, 고개를 들 때마다 다시 벽면에 처박힌 얼굴 때문에 벽은 금이 가다 못해 갈라지고 있었다.
[승룡각(陞龍㑢)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승룡각(陞龍㑢)을 사용합니다.]그러다 쿨타임이 차자 다시금 이어진 승룡각(陞龍㑢)!
점프해서 위에서 내려찍자, 한층 거대해진 용의 형상이 엘리자를 덮쳤다.
[세트 옵션의 효과로 내려찍기의 범위가 증가합니다.]‘오?’
세트 옵션에 있는 내려찍기 범위 증가가 승룡각에도 적용된 것이다.
덕분에 한층 화려해진 발차기에 맞은 엘리자만 슬프게 되었다.
콰아앙!
-엘…… 리자…….
힘없는 비명이 벽면이 부서지는 소리에 파묻혔다.
보는 사람이 다 비참해지는 광경에 지하드가 양손으로 이마를 턱 짚었다.
-아이고…….
분명 자신의 주인이 이기고 있으니 좋은 일인데, 너무 압도적이다 보니 그저 동정심이 든다.
[HP : 17,214 / 40,000] [서쪽 숲의 필드 보스 ‘거미여왕 엘리자’의 HP가 50% 미만이 되었습니다.]얼마나 압도적인지 벌써 HP가 반토막이 넘게 나 있었다.
트라이 한 지 겨우 몇 분도 안 된 걸 생각하면 엄청난 공략 속도였다.
가뜩이나 강해진 도현에게 스트라이킹이라는 버프에 승룡각이라는 준수한 딜링기까지 주어진 덕이었다.
[2페이즈에 돌입합니다.] [특성 ‘강철 거미줄’이 발현됩니다.]거미여왕 엘리자는 2페이즈부터다!
그런 말이 있을 정도로 2페이즈가 된 엘리자는 까다로운 보스였다.
쉽게 잘리지 않는 거미줄은, 패턴을 피하지 못하는 순간 딜러나 탱커를 리타이어시켜 버리는 압도적인 위력을 자랑했으니까.
한 번 거미줄에 칭칭 감싸이면 꼼짝없이 5분이란 시간 동안 방관해야만 하는 것이다.
후욱-.
심지어 거미줄의 발동 속도마저 엄청 빠르다.
그나마 단조롭게 쏘아지기에 미리 대처만 하면 막기 수월했지만, 진짜 문제는 놈이 거미줄을 이용하여 천장과 벽면을 수없이 누비고 다닌다는 점이었다.
천장과 벽면을 누비면서 쌓이는 거미줄들의 방해로 인해, 점점 인간의 영역은 줄어들고 엘리자의 영역은 커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퍽!
뒹구르-.
도현의 2배도 안 되는 높이에, 좁아터진 통로에선 그것도 다 옛말이었다.
점프하는 순간 천장에 부딪쳐 바닥을 뒹굴어야 했으니까.
할 수 있는 거라곤 단조로운 거미줄 뱉기뿐인데…….
휙-.
-엘리자!!!
그런 뻔한 공격을 맞아 줄 도현이 아니었다.
성의 없이 고개를 젖혀 피한 도현이 공격은 이렇게 하는 거라는 듯 수련검을 휘둘렀다.
벽면에 가둬 두고 못 빠져나가게끔 다양한 구도에서 찌르고 베는 도현의 칼날.
엘리자도 나름 가끔 반격을 해 보지만, 그런 눈먼 공격을 맞아 줄 도현이 아니었다.
-엘리…….
퍼억! 휙-.
-……자.
빠각! 빡!
-엘리, 자…… 리…… 자.
제대로 소리도 못 내고 두들겨 맞는 엘리자.
그렇게 맞으면서도 꾸역꾸역 엘리자라는 말을 내뱉으려 하는 녀석을 보며 도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대체 엘리자가 뭐길래 저렇게 떠드는 거야? 어디 죽을 때도 내뱉는지 한번 보자.”
-……주인, 잔인하다.
그리 말하지만 지하드도 내심 불편하긴 했다.
뭣만 하면 엘리자를 외치는 것도 그렇고, 어감 자체가 꼭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것 같지 않은…….
-응? 이름?
뭐지?
지하드는 왠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째서인지 엘리자라는 이름이 익숙하게 느껴진 것이다.
-그럴 리가 없는…… 어?
가만히 고민하던 지하드의 눈이 동그래졌다.
[HP : 5,614 / 40,000]화들짝 놀라 옆을 보니 다 죽어 가는 거미여왕 엘리자가 보였다. 그에 지하드가 이보다 다급할 순 없는 목소리로 외쳤다.
-주, 주인! 잠시만!
“? 뭐라고?”
-잠깐만, 멈춰 줘! 제발!
손을 뻗으며 허겁지겁 달려오는 모습이 마치 다친 자식을 향해 달려오는 부모의 모습 같은 건 착각일까.
그 정도로 다급해 보이는 모습에 도현도 검을 찌르려다 말고 멈추었다.
-엘…… 리자…….
그러자 힘겨운 엘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 뒤를 지하드의 외침이 이었다.
-엘리자! 나야, 나! 못 알아보겠어!?
-……리자?
엘리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저 작은 자가 누구인지는 안다.
이 괴물 같은 인간보다 한 발짝 늦게 나타나더니, 내내 뒤에서 구경하던 정체를 알 수 없는 자.
위험 요소는 느껴지지 않았기에 무시했었는데…… 갑자기 왜?
왜 저렇게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는 거지?
-에잇!
엘리자의 반응에 답답함을 느낀 지하드가 휙, 로브의 모자를 걷었다.
그러자 지하드의 얼굴이 드러났고, 그걸 확인한 엘리자의 눈에 의아함이 담겼다.
하나 그 의아함은 곧 다른 무언가로 바뀌었다.
-……리자!?
죽어 가던 목소리에 힘이 담겼다.
붉게 물들어 있던 눈은 지하드와 같은 녹안으로 바뀌었고, 흉흉하게 빛나던 눈은 온순해져 있었다.
초롱초롱해진 녹안에 눈물이 고이며, 이내 반가움이라는 감정이 가득 찼다.
-리자아!
-그래, 나야. 엘리자!
그러곤 지하드를 향해 그 커다란 몸을 던지는 엘리자.
마치 대형견이 주인에게 안기듯, 지하드는 그런 엘리자의 머리를 포근하게 감싸 안아 주었다.
그 알 수 없는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도현이 중얼거렸다.
“……이게 뭔 상황이냐?”
자신이 복날 개 패듯 패던 거미와 과거 개 패듯 팼던 고블린이, 마치 이복형제가 상경한 듯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모습.
……이해는 둘째 치고 기분이 참 묘했다.
* * *
거미여왕 엘리자.
레이븐 서쪽 숲의 지배자, 모든 거대 거미의 여왕, 거대 곤충의 퀸…….
그녀는 이름만 들어도 모두 두려움에 떠는 필드 보스지만, 처음부터 이런 거창한 존재였던 건 아니었다.
-리자!
그녀는 본디 작은 거미였다.
숲에 득실거리는 거대 거미가 아닌, 작고 하찮은 거미.
다른 거미와 달리 새하얗고 부드러운 털을 가지고 있고, 거미줄이 더 튼튼하다는 게 차별점이라면 차별점이었다.
그리고 그 차별점 덕에 주인을 만날 수 있었다.
-호오? 뭐야, 이 거미는.
-리자?
-이런 종이 있었나? 좋은 실험체가 되겠는데.
처음에는 무슨 소린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해할 겨를도 없었다.
돌연 나무 뒤에서 우르르 모습을 드러낸 언데드 군단이 엘리자를 집어 들었으니까.
-리자! 리자!?
-쯧, 시끄럽기는. 다치지 않게 잘 데리고 와. 훌륭한 실험체가 되어 줄 테니까.
그렇게 한참을 잡혀간 끝에 엘리자는 으슥한 오두막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엘리자는 오랜 시간을 보냈다.
-일단 먹이는 뭘 줘야 하나…… 야, 너 뭐 먹고 사냐?
-리자?
-왜 자꾸 리자라고 하는 거야? 거미가 말하는 것도 웃기네. 아, 뭐 나도 따지고 보면 고블린인데 말하고 있는 건가?
강렬했던 첫 인상과 달리 자신을 납치해 간 주인은 다정했다.
툴툴대면서도 원하는 먹이를 구해 주려 했고, 좀 불편해하면 쯧 혀를 차면서도 어디서 방석 같은 걸 구해 와 주곤 했다.
거미는 방석을 좋아하지 않는데 말이다.
-리자! 리자리자!
그래도 엘리자는 그런 서툰 주인이 좋았다.
그 안에선 분명 자신을 위하는 마음이 느껴졌으니까.
매일 아침이면 먹이를 주고 나가는 주인은 저녁이면 돌아왔고, 엘리자는 그런 저녁만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렇게 주인을 반겨 주면 주인은 싫어하는 척하면서도 내심 미소를 지었었다.
-이 쪼끄만 게 참 잘 반긴단 말이야. 지능도 높은 거 같고…….
-리자?
-언데드로 만들기는 아까운데…… 너 뭐 재주 없어?
대충 말뜻을 알아들은 엘리자는 바로 거미줄을 뽑아냈다.
순식간에 10m가 넘어가는 양의 거미줄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자 주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급히 거미줄에 손대던 주인이 기겁하며 바라봤었다.
-너, 너 엄청나잖아!? 이거 더 뽑아낼 수 있어?
-리자!
그렇게 집 안이 가득 찰 때까지 거미줄을 뽑아낸 엘리자는 피곤해서 금방 잠에 들었고, 그다음 날부터 주인은 자신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이 작은 몸집에 이런 내구성의 거미줄이라니…… 내가 모르는 새로운 종이 분명해.
-성체가 될 때까지 키워 봐야겠어.
-그래, 이건 실험을 위해서야. 딱히 별 이유가 있는 건 아니라고.
-이런 특이종이면 탐내거나 사냥하려는 이들이 많을 거야. 걱정…… 은 아니고, 귀찮은 건 질색인데…….
연신 혼잣말을 중얼거리긴 했지만, 엘리자는 그저 함께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함께 산책을 나가기도 했고, 같이 밥을 먹기도 했으며 나중에는 함께 잠을 자는 순간도 많아졌다.
그녀에게 ‘엘리자’라는 이름이 주어진 것도 그 무렵이었다.
-너, 리자라는 말밖에 못 하는 거야?
-리자? 리자리자!
-리자라…… 매번 너라고 부르는 것도 좀 그러니까 엘리자 어때. 리자는 너무 없어 보이잖아?
-리자?
-리자 말고 엘리자! 엘리자라고 해야지.
-리자리자!
그날 몇 번 더 티격태격했지만, 아무렴 어떠랴.
-허참. 그래, 네 맘대로 해라. 난 엘리자라고 부를 거니까.
-리자!
결국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건 매한가지인 것을.
주인에게 첫 선물을 받은 것도 그날이었다.
-이거나 받아.
-리자?
-네 거야. 별건 아니고…… 그냥 산책 갈 때마다 차고 다녀.
-리자아!
살면서 처음 받은 선물은 그녀에게 큰 감동이었고, 그날부로 그녀의 애착 물건은 그 작은 액세서리가 되어 있었다.
산책할 때를 넘어서 평상시에도 품에서 놓질 않았다.
그런 그녀를 주인도 흐뭇하게 바라보곤 했다.
-짜식…… 좋아하네.
-리자리자!
행복한 나날의 연속.
하지만 그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참, 엘리자. 오늘은 나 혼자 나갔다 와야 해.
-리자? 리자!
-안 돼. 전에 얘기했잖아. 그간 찾고 있던 비밀에 관한 단서를 발견했어. 그곳은 아직 성체가 되지 못한 너에겐 위험한 곳이야.
-리자…….
풀 죽어 하면서도 엘리자는 주인의 뜻을 따랐다.
그래야 주인이 웃어 줄 테니까.
얌전히 기다리면 다시 자신의 곁으로 돌아올 테니까.
-그럼 다녀올게.
-리자리자!
-그래. 집 잘 지키고 있어, 엘리자. 언데드 몇 마리 남겨 놨으니까 필요한 거 있으면 걔들한테 시켜.
그렇게 엘리자의 배웅 끝에 주인은 떠났다.
그리고 주인은 돌아오지 않았다.
해가 저물고 밤이 되어도, 다시 달이 지고 해가 떠올라도.
저녁이면 돌아오던 주인은 곁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그건 그 과정을 몇 번을 반복해도 마찬가지였다.
-리자…….
그럼에도 엘리자는 기다렸다.
날이 추워지며 나뭇가지가 앙상해지고, 시들었던 생명이 다시 충만해지며 따스한 바람을 품고 올 때에도.
무더위로 인해 오두막 안에 다른 벌레들이 찾아오고 다시 떠날 때까지도.
엘리자는 주인을 기다렸고, 그렇게 하염없이 시간이 흘렀다.
1년.
10년.
100년…….
영겁과도 같은 시간이 흘렀다.
파스스-.
이젠 그녀와 함께해 주던 유일한 주인의 흔적이자 친구인 언데드들마저 가루가 되어 사라졌을 때.
-……리자.
엘리자는 오두막을 떠났다.
그녀가 향한 곳은 서쪽 숲 깊은 곳.
처음 주인을 만났던 곳이자 모든 게 시작되었던 곳.
-리자, 리…… 자…… 엘…….
그녀는 그곳에서 주인을 그리워했고,
-……리자. 엘리…… 자…….
주어진 이름을 까먹지 않기 위해 늘 되뇌었다.
-엘리자.
이윽고 그녀가 선명하게 이름을 말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레이븐에 엘리자라는 말을 반복하는 기괴한 괴수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