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Genius Ranker of All Times RAW novel - Chapter (74)
제74화
74화.
라이르 대신전.
고대 라이르 신을 모시는 역대 가장 위대한 고위 사제와 성기사를 배출한 명문.
그 야망 넘치는 제국도 브리온만큼은 건들지 않는다는 신의 신전.
말이 신전이지, 사실상 아브타르텔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하나의 세력이라 불리는 곳이 라이르 대신전이었다.
그 이름에 걸맞게 내부부터 장난이 아니었다.
-와…… 주인, 이게 다 뭐야? 뭐 이렇게 넓어?
-리자…….
지하드와 엘리자가 첫발을 들이자마자 감탄해서 턱이 빠져라 입을 벌릴 정도로.
그 정도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압도되게 만드는 복도였다.
역사에 이름을 올린 뛰어난 장인이 굳건한 신앙심으로 한 땀 한 땀 공을 들여 만든 것만 같은 풍경.
장식 하나하나가 예술품 같았다.
벽면이든 천장이든 가릴 것 없이 신성함이 느껴지는 모습에 도현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엄청나긴 하네.’
듣기는 했지만, 실제로 보니 그 감동이 배는 컸다.
어째 도시를 단계적으로 방문할수록 볼거리도 더 풍성해지는 느낌이다. 하기야 이러니 단순히 게임에서 그치지 않고 세상을 집어삼켰겠지.
“이곳입니다. 그럼 대화 나누십시오.”
“대신관님께서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구경하며 걷길 몇 분.
한 입구 앞에 도달하자 신관들이 꾸벅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확실히 다른 곳과 달리 좀 더 화려한 문이었다.
끼익.
거침없이 열고 들어가자 시선이 꽂힌다.
신성의 도시 아니랄까 봐 내부에서 느끼지도 못하는 신성력이 느껴질 정도로 성스러운 인테리어.
그리고 그 신성함을 느낄 겨를도 없이 무겁게 박히는 살기.
“그대가 ‘그것’을 가져온 자인가?”
차가운 음성의 주인은 한 젊은 기사였다.
정황상 대신관으로 보이는, 흰 턱수염을 길게 기른 주름진 노인의 뒤에 서 있는 금발의 남자였는데 풍기는 분위기가 범상치 않았다.
고조가 없는 목소리는 미적지근하게 보일 정도로 섬뜩한 표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도현의 시선을 끄는 건 다른 요소였다.
[제르딕 경]‘……빨간색?’
금발 남자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이름표.
그것의 색이 붉었다.
‘NPC인데 왜 색을 띠지? 기사단이라서 그런가?’
상인이나 연금술사 같은 생산직 NPC나 주민들의 경우엔 이름표에 색이 붙지 않는다.
이름표의 색은 일종의 전투력이라 볼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갓오세를 하며 제대로 기사를 조우한 건 이번이 처음이긴 했다.
‘빨간색이라…….’
레벨이든 전투력이든 격차가 크면 붉고, 낮을수록 무채색이다.
저 정도 진함의 빨간색이면 적어도 도현보다 레벨이 월등히 높다는 소리였다.
‘……주인.’
‘리자…….’
강약약강이 특성인 가디언답게 그 기세를 누구보다 빠르게 읽은 지하드가 조심스레 신호를 주었다.
가밀리온을 만났을 때와 같은 반응에 도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들이 그렇게 강하다더니 사실인가 보네.’
갓오세 최강을 논하면 대부분 멸살을 비롯한 10대 길드, 그리고 그에 준하는 플레이어를 말한다.
하지만 진정으로 갓오세 최강이 누구냐를 묻는다면?
그건 다름 아닌 NPC들이었다.
이제 겨우 1년 6개월 된 유저들과 달리 오랜 세월 세력을 갖추고 힘을 길러 온 아브타르텔의 주민들.
그들이 강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니, 강해야만 한다.
‘NPC가 유저보다 약하면 균형이 맞춰질 리가 없지.’
가뜩이나 불멸자인 유저들이다.
도시에서 작정하고 난동을 피우고자 하면 난리가 날 텐데, 그걸 통제할 힘이 없다면?
아마 지금의 갓오세와 전혀 다른 게임이 되었을 것이다.
때문에 기사나 마법사, 자병단체와 같은 NPC들은 그 도시에 거주하는 유저들보다 비교적 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칠강(七強)이라고 불리는 자들의 강함은 가히 유저가 어찌할 수 없는 수준이라 한다.
‘드래곤도 잡아 낸다니 뭐…….’
흔히 판타지 소설에서 보는 소드 마스터나 무협의 천하십대고수 같은 존재가 바로 그들인 것이다.
그런 칠강(七強)까지 갈 것도 없이 ‘기사’쯤 되면 엄청난 무위를 자랑한다.
튜토리얼이라는 특성상 엄청 다운그레이드해서 그렇지.
보통 기사 정도 되면 오크는 무 썰듯이 썰어 내며, 이름난 기사단의 단장 정도 되는 자들은 단신으로 레이드 보스를 살육할 정도라니 뭐…….
‘주인…….’
‘그래.’
도현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집중했을 때 나오는 그의 버릇이었다.
브리온의 기사가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지만, 도현도 나름 스펙에서 자신이 있었기에 여차하면 당해 줄 생각은 없었다.
다소 묘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을 때.
“그만.”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발의 기사보다 좀 더 뒤에서 벽에 기대고 서 있던 중년의 남자였다.
‘탁시넬’이라고 적힌 그의 이름표 또한 붉었다.
“손님이시다, 예를 갖춰라.”
“……죄송합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살기를 가라앉힌 금발의 기사.
그 대신 자리한 건 미안함이었다.
“……본의는 아니었다. 부디 용서를 바란다.”
말투는 조금 싹수가 없었지만, 분명 미안함이 담겨 있긴 했다.
그에 도현이 눈살을 찌푸리자 앞에 앉아 있던 노인이 인자하게 웃으며 대신 사과했다.
“허허, 미안합니다. 제르딕 경도 고의는 아니었을 겁니다. 귀인께서 가져오신 게 아무래도 그에겐 워낙 예민한 것인지라…… 부디 이해를 바랍니다.”
“예.”
뭔지는 몰라도 고의는 아니라니 도현도 자리에 앉으며 적당히 수긍했다.
그에겐 퀘스트의 진행이 우선이었으니까.
다행히 그들도 도현과 바라는 것이 같았는지 빠르게 본론으로 넘어갔다.
“저희는 귀인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 자인지 모릅니다. 다만, 이방인이신 것만을 느낄 뿐.”
“…….”
“하지만 그런 건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건 귀인께서 이것을 가져오셨다는 것이죠.”
그러며 품에서 손수건을 꺼낸 그가, 작은 상자에 담긴 ‘그것’을 집어 들었다.
검은 액체가 굳은 듯한 물질.
그뿐인데 이상하게 손수건에 감싸인 그것은 무척이나 꺼림칙해 보였다.
“이게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모릅니다.”
도현은 솔직하게 답했다.
NPC들한테서 퀘스트를 이끌어 내려면 어느 정도 아는 척을 하는 게 좋지만, 그것도 적당히 몰라야지.
지금처럼 감도 안 잡히는데 구태여 유식한 척하는 건 손해다.
다행히 대신관도 답을 기대하고 물은 건 아닌지, 별 괘념치 않고 말을 이어 갔다.
“허허, 그러시군요. 대외비라 자세히는 말씀드리지 못합니다만, 이를 제거하는 건 저희 신전의 숙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 예.”
“혹시 이것을 어디에서 발견하셨습니까?”
저것의 정체를 끝내 안 알려 주는 건 조금 불편했지만, 도현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런 비밀 가득한 퀘스트를 뎀로크에서 자주 겪어 본 덕이었다.
정체도 밝히지 않고 퀘스트를 주는 자들도 있었던 걸 생각하면, 이 정도는 양반이었다.
“비릿한 바위 숲에서 발견했습니다. 바위에 묻어 있더군요.”
“……바위에 말입니까?”
“예. 피와 함께 묻어 있어 육안으론 분간이 힘들었을 듯합니다.”
그래도 내심 어필을 하는 걸 잊지 않았다.
아무나 발견 못 한다는 어필 정도는 해야 좀 더 잘 먹히지 않겠는가.
한데 그 어필의 위력이 예상을 웃돌았다.
“……바위에 피와 함께 묻어 있는 이것을 발견하셨다구요? 혹시 성직자이십니까?”
“아뇨.”
“아니면 무슨 장비를 이용…….”
“그냥 지나가다 운 좋게 보였습니다.”
“허.”
진심으로 놀랍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은 대신관, 길데티가 감탄했다.
“성직자도 아니시고, 장비도 없으신데 찾아내셨다라…… 신성력이 느껴지질 않는 걸 보니 정말이시군요.”
“혹시 마기는…….”
“그만. 너도 알지 않나. 그랬다면 대신관님이 눈치채시지 못할 리가 없다는 걸.”
탁시넬의 단호한 말에 제르딕이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그의 말대로였다.
길데티가 마기를 감지하지 못했다면 세상천지 어느 사제나 성인이 와도 못 알아볼 것이다.
마기 감지에 있어서는 절대적인 입지를 지닌 게 그였으니까.
하지만 그만큼 믿기 힘든 일이기도 했다.
“너무 뭐라 하지 마십시오, 탁시넬 경. 납득이 안 되는 것도 이해가 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혹시 탐험가이십니까?”
“탐험가는 아니지만 그런 능력이 조금 있기는 합니다.”
“호오, 역시 그렇군요. 조금이라니…… 겸손하십니다, 허허.”
어째서인지 납득한 듯한 길데티.
그런 그가 도현을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마치 한 분야의 거장을 보는 듯한 느낌에 도현이 의아해할 때였다.
“고위 사제들도 이름난 탐험가들과 힘을 합해 심혈을 기울여 수색 작업을 펼쳐야 간신히 찾는 것을 손쉽게 찾아내셨으면서 ‘조금’이라니요. 허허, 농담도 심하십니다.”
“……?”
“그 얘기를 저희 신관들이 들으면 자괴감을 느낄 겁니다.”
“……??”
점점 이해할 수 없는 얘기에 도현이 멍해지려는 머리를 붙잡았다.
‘잠깐만, 그러니까…….’
정리를 해 보자.
그러니까 이 ‘불길한 기운’이라는 퀘스트 아이템이 실은 아무나 찾을 수 없는, 무척 어려운 단서라는 거지?
그것도 뛰어난 신성력과 수색 능력을 겸비해야 간신히 찾을 수 있을 정도로.
‘그걸 난 진리의 눈 하나로 퉁친 거고.’
이렇게 보니 정리가 된다.
한마디로 진리의 눈이 진리의 눈 했다는 거다. 밸런스는 개나 준 미친 파밸 특성이 또 사기성을 발휘한 것이다.
‘희귀 등급이라기에 별거 아닌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대어였다.
이런 경우 처음에나 희귀 등급이지, 연계 퀘스트를 진행하며 그 등급이 뻥튀기되기 마련이니까.
‘이 정도면 최소 희귀+…… 어쩌면 영웅 등급까지도 갈지도?’
아마 마지막 연계 퀘스트쯤 되면 높은 확률로 영웅 등급까지 오를 것이다.
별 기대하지 않았던 퀘스트 아이템이 이런 대어를 물어다 줄 줄이야.
기대감이 오른 도현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다음으로 이어질 말이 너무도 기다려졌다. 그 기대감에 부응하듯 길데티가 빠르게 본론을 꺼내 주었다.
“마침 다행이군요. 마침 이것을 처리하기 위한 재료가 떨어져 가던 참이었는데…… 혹시 작은 부탁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울리는 경쾌한 알림음.
[퀘스트 ‘불길한 기운’을 클리어하셨습니다.] [길데티의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타이틀 ‘시작부터 호감도 맥스?’의 효과로 호감도가 보다 크게 상승합니다.] [연계 퀘스트 ‘재료 탐색’이 생성됩니다.] [재료 탐색]-등급 : 희귀
-설명 : 현재 라이르 대신전에 불길한 기운을 처리하기 위한 재료가 부족합니다. 원활한 처리를 위해 ‘길데티’가 원하는 재료를 구해 주자.
-오크의 농축된 피 (0 / 5)
-10년 묵은 트라필카 뿌리 (0 / 1)
-붉은 신성 약초 (0 / 3)
-퀘스트 성공 시 : 길데티의 호감도 상승, 하급 스킬 뽑기권, 연계 퀘스트 ‘처리 단계’ 생성.
-퀘스트 실패 시 : 연계 퀘스트 불가.
‘좋아, 역시 연계 퀘스트가 더 있어.’
심지어 이번 보상이 무려 하급 스킬 뽑기권이다.
꽁으로 얻은 퀘스트임을 생각하면 꿀 같은 보상.
다만, 전형적인 노가다 퀘스트라는 게 흠이라면 흠이긴 했다.
원래라면 귀찮을 내용에 불만을 토로했겠지만, 지금의 도현에겐 그것마저 너무도 설렜다.
‘이번에야말로 약초를 찾을 수 있나 보는 건가?’
진리의 눈의 효과를 보다 확실하게 확인해 볼 시간이었으니까.
그게 아니어도 어차피 메인 퀘스트 때문에 오크를 잡아야 하는 도현의 입장에선 꿩 먹고 알 먹기였다.
“예, 알겠습니다. 금방 구해 오…….”
“……잠시만.”
당장 필드로 나가고 싶어 몸이 근질거린 도현이 나가기 위해 일어나려 할 때였다.
돌연 인자한 미소를 지운 길데티의 얼굴이 변했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것을 발견한 듯, 묘한 눈빛으로 도현과 눈을 마주한 그의 시선이 점점 선명해졌다.
마치 내부를 들여다보는 듯한 기묘한 감각.
“갑자기 왜…….”
“……평범한 귀인이 아니셨군요? 아니, 수색 능력만 따져도 평범하진 않긴 합니다만…… 허, 이런 귀인이 오시다니.”
“예?”
알 수 없는 소리를 늘어놓던 길데티가 허리를 펴고 자세를 바로 했다.
그러곤 한층 더 진중해진 목소리로 낮게 말해 온다.
“일등 졸업자셨군요.”
“……음?”
“신께선 사도들에게 시련을 내린다죠. 최초의 도시, 레이븐의 시련을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한 분이라면…… 믿을 수 있습니다.”
[타이틀 ‘일등 졸업생’이 반응합니다.] [숨겨진 조건을 충족합니다.] [연계 퀘스트 ‘재료 탐색’이 ‘…….’로 변형됩니다.]‘……뭐?’
갑작스런 상황에 멍해진 도현.
그가 상황 파악을 하기도 전에 길데티가 말을 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이것부터 말씀드려야겠군요. 귀인께서 가져오신 것의 정체…… 궁금하시지 않습니까?”
“아…….”
순간 얼탄 도현이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하나 도현의 대답은 필요 없었다.
그는 그저 정해진 대사를 외치듯, 말을 이어 가고 있었으니까.
“아브타르텔에서 가장 불길한 기운, 공포의 발자취, 최악최흉의 존재, 지하의 공포…….”
“…….”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이것은 ‘그것’의 흔적입니다. 저희는 ‘그것’을 이리 부르지요.”
거기까지 말한 길데티가 바로 말을 잇지 않고 멈추었다.
뒤에서 제르딕이 주먹을 꽉 쥐는 게 얼핏 보였다. 그사이 한 차례 숨을 고른 길데티가 낮게 말했다.
“심연.”
“……!”
낯익은 단어에 도현의 눈동자가 커졌다.
아브타르텔을 멸망에 이르게 할 뻔했던 공포의 존재, 심연이 언급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