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Genius Ranker of All Times RAW novel - Chapter (89)
제89화
89화.
비릿한 바위 숲 깊숙한 곳.
저벅저벅.
몇 분가량 걷던 도현이 주변을 둘러보고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밀린 메시지창들을 확인했다.
[비릿한 바위 숲의 필드 보스, ‘죽음의 오크 전사’를 처치하셨습니다.] [죽음의 오크 전사의 강화된 정수 구슬을 수확하시겠습니까?] [정수 구슬을 수확하였습니다.] [보상으로…….] [모험의 서에 기록됩니다.] [첫 조우에 새로운 타입의 보스를 처치하셨습니다.] [포식 효과로 모든 능력치가 + 6 상승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죽음의 오크 전사를 잡고 떴던 무수한 메시지의 향연.
평소라면 곧바로 확인했을 도현이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어우, 정신없었네.’
죽음의 오크 전사를 쓰러트린 순간, 메시지를 확인할 틈도 없이 쏟아진 구경꾼들의 박수 세례 때문이었다.
시커먼 남정네들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며 순수하게 박수 치던 모습이란…….
‘……썩 좋진 않네.’
어쩐지 찰리가 떠오르기도 했고.
그래도 이게 끝이면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겼을 텐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박수로는 그들이 받은 감동을 표현하기 부족했던 것인지, 우르르 몰려와 사인을 요청한 것이다.
-복 받으실 거예요.
-아싸! 사인!
-정말 대단하십니다. 영상 잘 보고 있어요, 이번 것도 올리실 거죠? 기다릴게요!
그렇게 사인을 해 줄 때마다 한마디씩 건네던 그들의 말은 부담스럽긴 해도,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옛날에도 이런 사람들이 종종 있곤 했었는데.
그때의 추억이 떠오르기도 하고, 뉴튜브를 보고 있다는 말이 색다르게 다가온 것이다.
인터뷰 봤단 말은 들었어도, 직접 올린 영상을 보고 있다며 팬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처음이었으니까.
‘특히 그 궁수가 가장 임팩트 있었지.’
그들 중에서도 유독 눈빛이 초롱초롱한데 이상하게 말수는 가장 적었다.
그저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할 뿐.
마치 츤데레가 사인을 받으면 저러지 않을까 싶었달까.
-……좋겠다.
-리자!
그런 그들의 관심에 옆에서 지하드가 부럽다는 듯 보고 있던 건 비밀이었다.
기가 막힌 언데드 쇼를 보여 줬음에도 정말 놀랍도록 아무도 지하드에게 말을 걸지 않았던 것이다.
-뭐가 문제야. 왜 나한텐 말을 안 걸어 줘?
아마 싸움 방식이 너무 저급했던 게 문제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바로 들었지만, 도현이라고 배려가 쥐뿔만큼도 없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잠깐의 회상을 끝낸 도현이 시스템창에 집중했다.
정확히는 보상에.
[죽음의 기운이 서린 오크 전사의 가죽] [등급 : 희귀] [설명 : 죽음의 기운이 서린 오크 전사의 질긴 가죽이다. 방어구를 제작할 때 유용하게 쓰일 것 같다.] [죽음의 기운이 서린 오크 전사의 송곳니] [등급 : 희귀] [설명 : 죽음의 기운이 서린 오크 전사의 날카로운 송곳니다. 액세서리를 제작할 때 유용하게 쓰일 것 같다.]이번에 얻은 보상은 이 두 재료템과 600골드가 전부였다.
지금껏 얻어 온 것들에 비하면 초라한 보상.
씁쓸하긴 했지만 도현은 쉽게 수긍했다.
‘……이게 정상이지. 요즘 나답지 않게 너무 잘 풀린다 했다.’
각종 히든 피스를 싹쓸이하거나 최초 발견 버프로 확정 아이템을 얻어 와서 그렇지, 보통은 이게 정상이었다.
필드 보스 한 번 잡았다고 바로 장비를 얻을 수 있으면 장비가 왜 귀하고 비싸겠는가.
경매장에 조금만 검색해도 발에 차일 만큼 널렸겠지.
‘뭐, 그래도 수확이 없진 않으니까.’
장비를 얻지 못했을 뿐 수확은 충분했다.
첫 조우에 보스를 잡은 덕에 최초의 슬레이어의 ‘포식’ 효과가 발동하여 모든 능력치가 6이나 오른 것이다.
그뿐인가. 레벨도 하나 올라서 어느덧 30레벨을 달성했다.
[플레이어 : 카이저] [레벨 : 30] [HP : 5,010 / 5,010] [MP : 1,600 / 1,600] [체력 : 790 / 790] [클래스 : 최후의 모험가 [카시야르의 계승자>] [타이틀 (7개)]-시작부터 호감도 맥스?
-최초의 슬레이어
……(펼쳐보기)
[능력치] [근력 : 80(+70)> [민첩 : 55(+69)> [체력 : 5(+69)> [감각 : 37(+67)> [마력 : 5(+65)>잔여 포인트 : 46
‘크…….’
그리하여 탄생한 상태창.
한층 화려해진 능력치를 보니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누가 이걸 보고 30레벨이라 생각할까.
이제 겨우 30레벨인데 타이틀도 벌써 7개에 등급도 하나같이 범상치 않다.
잔여 포인트도 무려 46이나 남은 상황.
‘아직은 굳이 투자할 필요 없겠지.’
어차피 ‘잠룡’ 특성 때문에 레벨업 할 때마다 7포인트씩 주어져서 금방 오르긴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30레벨을 달성하며 얻은 랜덤 스킬 뽑기권.
‘뭐가 나오는지 보고 투자해도 안 늦어.’
마음 같아선 바로 뽑고 싶었지만 도현은 참았다.
레이븐에서 다짐하지 않았나.
‘뽑기는 명당에서!’
진리의 눈만 믿고 아무 데서나 스킬을 뽑는 안일함을 갖지 않기로!
그 마음가짐을 훌륭하게 여겼는지 ‘패링’이라는 운명의 스킬을 주었으니 이번에도 그 마음을 유지할 생각이었다.
반면 확고한 도현에 비해 지하드는 생각이 다른 모양이었다.
-주, 주인…… 나 참기가 힘들어.
다급해 보이는 지하드를 보지도 않으며 도현이 단호하게 답했다.
“조금만 참아.”
-몸 안에서 뭔가가…… 뭔가가 일어나려 하고 있어.
“진짜 거의 다 왔어.”
-그 말만 벌써 다섯 번째인 거 알아, 주인……?
“진짜 찐막. 진짜 다 왔다.”
더는 바벨을 못 올리겠는데 트레이너가 ‘하나 더, 진짜 마지막 하나’를 외치는 기분이 이러할까.
아니면 산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냐는 아들에게 ‘5분만 더 가면 돼!’를 외치는 아버지의 심정이 이러할까.
진짜 다 왔다는 말을 할 때마다 일그러지는 지하드의 표정을 보는 맛이 있었다.
사실 지하드가 이리 칭얼거리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가디언 ‘지하드 블랙’이 10레벨을 달성하였습니다.] [선택의 기로에 선 그를 인도하십시오.]‘어떻게 타이밍도 이렇게 딱 들어맞냐.’
유저가 신 뽑기 이후 파생 직업 중 하나를 골라 전직하는 것처럼, 가디언들도 10레벨을 달성하면 전직이라는 걸 한다.
다만, 유저와는 조금 달랐다.
말이 전직이지 그냥 속성 고르기 정도라 보는 게 일반적이다.
이를테면 ‘홍염의 샐러맨더’, ‘청염의 샐러맨더’.
혹은 ‘강철 골렘’, ‘재생 골렘’ 같은 식으로 말이다.
뭐가 더 좋다 할 것 없이 그냥 그 유저에게 더 필요한 걸 선택하는 게 가디언 전직이었다.
‘하지만 신수는 다르지.’
가디언이 속성 고르기 정도였다면, 신수는 진화에 가까웠다.
마치 이무기에서 여의주를 문 이무기가 되고 끝내 용이 되듯, 전직을 할 때마다 확연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신수는 전직하기 전과 후가 다른 종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용용이랑 호식이도 그랬지.’
보라 아재의 용호상박도 처음 봤을 땐 그저 조금 큰 호랑이와 이무기였다.
전직을 거듭하여 끝내 사신방의 청룡과 백호 같은 포스를 자랑하게 된 것일 뿐.
그런 면에서 지하드는 조금 특이했다.
[지휘관 네크로맨서의 길] [폭파 네크로맨서의 길]‘예상은 했다만, 진짜로 직업이 뜨니까 묘하네.’
특성에도 시체술사와 저주술사가 있는 데다, 전투 스타일도 전형적이 폭파 네크로맨서였던 지하드다.
스킬도 대놓고 언데드 소환이고.
이제 와서 뭐 고블린 홉으로 진화한다면 그게 더 이상했다.
그렇기에 도현도 자연스레 폭크가 아닌 지크로 키울 생각이었던 건데…….
가디언이 유저처럼 직업이 뜨니 기분이 묘한 건 사실이었다.
‘뭐, 저놈이 언제 평범했던 게 있었나.’
좋은 쪽으로든 안 좋은 쪽으로든 여러모로 특이한 놈이지 않나.
이제 와서 새삼 놀랄 것도 없었다.
하여튼 그렇게 걸어간 지 얼마나 지났을까. 이제는 정말 지하드가 한계에 도달했을 즈음.
“으아악!”
“아오 씨X! 왜 또 일반이야!”
“대박! 영웅 등급 떴다!! 감사합니다, 신이시여.”
바위 너머로 소란스런 소리가 들려왔다.
-와, 왔다!
한 번 경험한 적이 있었기에 이곳이 맞음을 확신한 지하드가 후다닥 안으로 들어갔다.
도현과 엘리자도 그 뒤를 따랐고, 곧 볼 수 있었다.
자욱하게 깔린 안개 속에서 붉어진 눈으로 바위에 걸터앉아 각종 뽑기를 하고 있는 유저들을.
전체적으로 비릿한 바위 숲에 수가 줄어들어서인지 그 수가 레이븐처럼 많지는 않았지만, 족히 열 명은 되어 보였다.
‘맞게 왔구나.’
이곳이 브리온에서 가장 유명한 두 명당 중 하나, 바위 숲 산맥이었다.
안개가 있는 곳이면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오크들이지만, 신기하게도 이곳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오크뿐만이 아니었다.
작은 곤충조차 보이지 않는 곳이 이곳이었고, 때문에 사람들은 이곳을 일종의 쉼터, 혹은 안전지대로 이용하곤 했다.
‘지금에 와서는 뽑기 장소가 되었지만.’
역시나 늘 소문이 문제였다.
안전지대다 보니 사냥 중에 뽑기권을 얻은 이들이 뽑기를 하기 위해 들르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좋은 걸 뽑는 이들이 늘어나며 입소문이 퍼졌다.
과거엔 안전지대로 활용되었던 곳이지만, 이제는 뽑기를 위해 찾아오는 명소가 된 것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도현이었고 말이다.
-주인, 빨리!
“오냐.”
지하드의 재촉에 도현이 곧장 손을 움직였다.
[지휘관 네크로맨서의 길을 택하시겠습니까?]“어.”
파앗!
그러자 지하드에게서 눈부신 빛이 터져 나오며 시야를 잠재웠다.
지하드의 마나와 같은 칠흑과도 검은빛이었다. 순식간에 스쳐 간 어둠은 마치 터널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느껴졌다.
[가디언 ‘지하드 블랙’이 지휘관 네크로맨서의 길을 걷습니다.] [스킬을 뽑아 주십시오.]눈앞에 번뜩이며 나타난 메시지와 일곱 장의 카드.
이게 이유였다.
사냥터에서 전직시키지 않고, 굳이 칭얼거리는 걸 참아 가며 명당까지 온 이유.
가디언이 처음 전직하는 순간에는 스킬 뽑기권이 지급되지 않고 곧바로 스킬을 뽑게 하는 것이다.
‘보라 아재한테서 들어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이상한 데서 뽑을 뻔했네.’
십년감수하는 도현의 중얼거림에 비로소 해방된 지하드는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아니, 그게 뭐가 중요해? 아무 데서나 뽑으면 되지.
“아니. 그런 알량한 각오론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무언가를 이루는 게 그리 쉬운 줄 알아? 원래 인생은 그런 거야 X만…… 아니, 지하드야.”
-…….
세상 진지한 도현의 얼굴에 지하드가 입을 달싹이다 닫았다.
분명 맞는 말이긴 한데 왜 저런 각오를 뽑기에서 발휘한단 말인가. 정작 보스 잡을 때는 대충 때려잡으면서.
지하드의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봐, 저 의지를 불태우는 사람들의 모습을. 얼마나 필사적이야.”
-…….
더 이해가 안 되는 건, 주변 인간들의 얼굴에서 정말로 도현의 말이 과장이 아니다 싶을 만큼의 각오가 엿보인다는 거였다.
그야말로 필사(必死).
-인간은 이상해…….
원래도 정상은 아니지만, 유독 ‘카드깡’이나 ‘뽑기’라는 단어만 들어가면 정줄을 놓는 주인이나.
무슨 약물 중독자처럼 눈이 충혈되어 필사를 발휘하는 저 인간들이나…….
-리자?
-저런 거 보지 마, 엘리자. 지지야.
갸웃하며 자기도 보겠다고 로브 주머니에서 빠져나오는 엘리자를 지하드가 도로 집어넣으며 물었다.
-그래서 뭐 나왔는데?
지하드의 물음에 도현의 얼굴이 굳었다.
“……은색.”
-그게 뭐야?
“몰라, 슬프니까 말 걸지 마.”
-……?
그런 도현은 진심으로 슬퍼 보였다.
-난 모르겠다. 알아서 해 줘.
결국 이해하기를 포기한 지하드가 손을 떼고 물러났다.
자신의 스킬을 뽑는 거니 집중해야 마땅하지만, 본인 빼고 다 이상해진 세상에 들어온 것 같은 이 리그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