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Genius Ranker of All Times RAW novel - Chapter (96)
제96화
96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잠시 멍하니 있던 도현이 헛웃음을 지었다.
“허.”
신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우며 고독한 냄새를 그리 풍기더니, 바깥세상이랑 교류도 하고 있었던 건가?
전혀 그렇게 안 생겨서는 인싸라니…….
황당했지만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어찌 됐든 세상 돌아가는 일은 알아야 할 테고, NPC는 엄연히 이곳의 주민인데 급한 용무가 있을 수도 있는 거니까.
심한 경우 이틀 동안 자리를 비우는 특정 NPC도 있다고 하니, 이 정도면 양반이었다.
‘그냥 길데티한테 먼저 가자.’
아무래도 이쪽부터 깨야 할 듯했다.
가만히 1시간을 기다리는 건 시간 낭비였으니까.
그렇게 다시 15분가량을 걸은 끝에 라이르 대신전에 도착하자, 도현 일행을 알아본 경비병이 다급히 다가왔다.
“오셨습니까. 얼른 들어가십시오.”
그 말에 슥 주변을 둘러보자 경비병이 아, 하며 말을 덧붙였다.
“만약 도현 님이 오시면 최우선으로 들여보내라는 명이 있었습니다. 줄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퀘스트를 깨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나름의 특별 대우인가.
줄 서지 말라는데 굳이 설 필요는 없었기에 도현은 튕기지 않고 곧장 받아들였다.
왠지 뒤로 따가운 시선이 박히는 것 같지만, 최대한 신경을 껐다.
‘그럴 만도 하지.’
얼핏 봤을 때 보인 줄만 봐도 아찔했다.
오늘이 주말이라 더 대신전에 사람이 붐비는 것.
그런 그들의 입장에선 놀이공원 프리패스인 양 들어가는 도현이 얼마나 아니꼽게 보이겠는가.
하나 막상 곁눈질하여 본 그들의 모습은 예상과 많이 달랐다.
“대신관을 만나러 가는 거겠지?”
“저게 지금 카이저가 진행하고 있다는 그거구나……. 궁금하다, 대체 무슨 퀘스트일까?”
“영상으로 올려 주려나? 올려 줬으면 좋겠다.”
대부분 시기, 질투보다는 기대 어린 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정적인 시선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보단 저런 반응이 더 많았다.
‘이것도 뉴튜브의 영향인가.’
대놓고 특수한 퀘스트를 깨고 있다고 광고하고 있는데, 탐욕을 보이는 게 아니라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니.
그간 거쳐 온 길과 너무도 다른 반응에 어쩐지 긴장이 풀렸다.
그렇게 만인의 기대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가자, 이번엔 신관이 인사를 건네 왔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예.”
-케헴.
확실히 저번과는 다른 대우에 지하드가 엣헴, 하며 어깨를 으쓱인다.
옆구리를 슬쩍 찔러 주의를 줘 봤지만, 묘하게 힘이 들어간 왠지 모르게 얄미운 표정만큼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대우를 받으며 걸어가길 수 분.
“들어가십시오. 다들 안에 계십니다.”
더럽게 넓은 대신전답게 한참을 걸어서 문 앞에 도착하자, 신관이 꾸벅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저번하고 다른 방이네.’
문 사이즈만 봐도 웅장함이 느껴진다.
저번에는 대신관의 집무실 같은 느낌이었다면, 이번에는 방이라기보다 강당 같은 느낌이랄까.
안으로 들어서자 예상보다도 더 넓은 내부가 도현을 반겨 주었다.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 학교 운동장 정도 되어 보이는 크기였다.
무슨 야구장인 양 좌석이 사방에 가득하고, 중앙에는 원형 모양의 탁자와 거대한 신상이 놓여 있었다.
‘와…….’
압도적인 위용에 절로 감탄이 나오고 있을 때, 다소 피곤해 보이는 길데티가 도현을 반겨 주었다.
“마침 잘 오셨습니다. 조사를 마치셨다구요? 아직 회의 중이긴 하나…… 차라리 잘됐습니다.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왔나.”
“흠. 벌써 조사를 마친 건가? 생각보다 빠르군.”
그리고 그런 길데티의 옆에는 이전에 봤던 그 잘생긴 분조장 기사와 부단장이 있었다.
여기까진 이전과 같은 멤버였지만, 오늘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호오…… 저분이 그 귀인 분이시군요.”
“듣던 대로 이방인이군……. 정말 믿어도 되는 건가?”
“그래도 신의 사도들인데 예의를 갖추시지요.”
“흥, 허울뿐인 사도들 아닌가. 워낙 돼먹지 못한 것들이 많아야지…….”
“너무 그러지 말게. 심연은 우리한테도 알려진 게 적지 않나. 그런 걸 이방인이 알고 있다 못해 조사라는 중책까지 맡았으니 미심쩍은 건 어쩔 수 없는 게지.”
그들의 뒤로 사방에 쫙 깔린 좌석에 수많은 신관들이 앉아 있었다.
얼핏 보아도 두 자릿수가 아니다.
백이 훨씬 넘는 신관이 사방을 포위한 채, 신기한 동물을 바라보듯 내려다보는 건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주인, 나 좀 불편해.’
‘리자리자…….’
오죽하면 관심을 좋아하는 지하드마저 불편함을 보일 정도.
빼꼼 고개를 든 엘리자를 주머니 안에 넣은 도현이 천천히 길데티의 안내를 따라 걸으며 주변을 곁눈질했다.
‘많기도 하네. 하나같이 평범한 신관은 아닌 거 같은데.’
그중에서도 맨 앞 열에 앉아 있는 이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가지각색의 복장인 그들은 복도에서 보던 신관들과는 확연히 다른 게 느껴졌다.
어쩐지 풍기는 포스나 분위기에도 귀티가 흐른달까.
그런 노인들의 시선은 도현이 중앙의 원형 탁자에 와 앉는 순간까지 떠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중 한 시선이 유독 끈질겼다.
‘뭐야?’
오죽하면 저 많은 이들 중에서 딱 그쪽만 거슬릴 정도.
그에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돌아본 순간.
“응?”
도현의 눈썹이 펴졌다.
아니, 펴지다 못해 동그랗게 위로 올라가며 멍해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가밀리온?’
‘안녕하십니까, 계승자시여.’
당당하게 홀로 낡고 해진 신복을 입고 좌석에 앉아 있는 신관은 다름 아닌 ‘가밀리온 아드란’이었으니까.
눈이 마주치자 입꼬리를 슬며시 올리며 살짝 고개를 숙이는 가밀리온.
그 행동이 착각이 아님을 확신시켜 주고 있었다.
‘아니, 형이 왜 거기서 나와?’
급한 용무가 있다더니 왜 여기서 모습을 드러낸단 말인가?
이게 우연인가?
1시간 있다 돌아올 거였으니, 도현을 쫓아온 건 아닌 거 같은데…….
예기치 못한 상황에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일단 안내에 따라 자리에 앉자, 맞은편에 앉은 길데티가 조심스레 말했다.
“장로분들과 대신관분들입니다. 고위 신관 중에서도 가장 신앙이 높은 분들이시지요.”
“……그럼 저분도 고위 신관입니까?”
“저분이라면…… 아, 저분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슬쩍 곁눈질한 길데티가 인자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분은 헤르티 대신관님이십니다. 저희 소속의 신관들 외에도 인근 교단의 대신관, 그리고 장로분들을 초청하였는데 모두 흔쾌히 응해 주셨지요.”
“……헤르티 대신관님이요.”
“예. 암묵적인 교리상 교단까지는 밝히지 못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뇨, 상관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분은 신들을 박살 내고 싶어 하는 저희 교주님이시거든요.
차마 그 말을 입 밖으로 뱉지 못하고 삼킨 도현이 어지러운 이마를 붙잡았다.
슬쩍 곁눈질한 가밀리온은 뭐가 즐거운지 실실 웃고 있었다. 그러면서 올라간 입꼬리를 살짝 움직여 뭐라 속삭이는 가밀리온.
‘회의가 끝나고 뵙겠습니다.’
‘……그럽시다.’
뭔지는 몰라도 이름까지 속이며 활동하고 있는 거면 작정하고 교류하고 있다는 거겠지.
궁금한 건 회의가 끝나고 물어도 될 일이다.
‘차라리 잘됐어.’
번거롭게 왔다 갔다 하지 않아도 한 곳에서 두 퀘스트를 깰 수 있을 터.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한 도현이 지금 상황에 집중했다.
‘저 앞 열이 장로들이라 했나…… 라이르 소속만 열 명이 넘는군.’
그럼 보유한 고위 신관이 못해도 30명은 넘는다는 소리다.
다른 곳에서는 고위 신관 6~10명 정도가 보통인 걸 생각하면 엄청난 수. 여기에 최대 전력인 라이르 성기사단까지…….
겨우 신전 하나의 전력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수준이다.
‘괜히 라이르 대신전이 제국에까지 통한다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니구나.’
보통 NPC들은 위의 도시로 갈수록 강하다.
유저들의 레벨이 오르는 만큼, 그들을 통제할 수 있을 만큼 강한 NPC들이 서식하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하나 그 틀을 깨는 NPC들이 종종 있었는데…….
레이븐에서는 연금술사 칼데가 그러했고, 브리온에서는 라이르 대신전이 그러했다.
신을 모시는 그들의 특성상 가장 발달한 신성 도시인 브리온에 서식하는 것뿐, 그 세력은 제국에 있어야 마땅하다는 게 세간의 평이었으니까.
‘이렇게 보니 새삼 체감되긴 하네.’
저번에 부단장 탁시넬과 재수 없는 기사 놈을 봤을 때도 얼핏 느껴지긴 했지만, 오늘 보니 더 피부에 와닿았다.
당장 무구를 갖춰 입은 탁시넬에게서 느껴지는 포스부터 전과 다르다.
과연 이길 수 있을까 감이 안 잡힐 정도이니.
같은 빨간 이름표를 가진 제르딕과 비교해도 차원이 다른 강함이었다.
이쯤 되니 단장이라는 르베드는 얼마나 강할지 궁금했다.
“워낙 중요한 사안인 만큼 알아야 하실 분들은 다 소집했습니다. 르베드 경도 오셨다면 좋았겠지만…… 성기사단을 이끌고 임무를 나가 있는지라.”
“……아쉽네요.”
진심이었다.
NPC 전투력 순위에서 항상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르베드를 실제로 볼 기회를 놓친 거니까.
“늘 많은 짐을 안고 계신 분이지요. 그러니 이번 일만큼은 저희 선에서 처리할 생각입니다.”
“그렇군요.”
르베드가 오면 너무 밸런스 붕괴니까 자연스레 빠트리게 하겠다.
도현의 귀에는 이렇게 들렸다.
이런 RPG게임에서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모종의 이유로 강한 NPC가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건 흔한 일이니까.
하여튼 서론은 여기까지.
“조사 결과는 어땠습니까?”
길데티가 본론으로 들어가자 시끄럽던 소음이 멎었다.
그건 무언의 재촉이었다. 얼른 답을 해 보라는 무언의 재촉 말이다.
모두가 도현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길 수 초.
도현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죽음의 오크 전사라는 놈에게서도요.”
“그게 무슨……!”
“아무것도 없었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웅성거림이 커졌다.
“확실하게 조사한 게 맞는가! 이방인이여!”
“심연의 흔적은 결코 위장하거나 만들어 낼 수 없다. 흔적이 버젓이 나왔는데 아무것도 없다니!?”
“라이르교의 대신관이여, 그대만 괜찮다면 내 당장 팀을 꾸려서 탐색하겠소!”
개중에는 도현의 능력을 의심하는 이들도 있었다.
반응은 제각각이었지만, 확실한 건 다들 반응이 격렬하다는 거였다.
웅성거리는 소음에 귀가 아플 지경이었으니까.
심연의 존재가 그들에게 얼마나 크게 와닿는 것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제대로 된 대화가 될 리 만무.
스윽.
그 순간, 길데티가 손을 들었다.
그러자 길길이 날뛰던 이들이 거짓말처럼 입을 다물었다. 장로들은 물론 타 교단의 대신관들까지 예외는 없었다.
‘이게 라이르 대신관의 위치인가?’
보기엔 그저 인자한 할아버지 같은 길데티가, 이곳에서 얼마나 절대적인 입지를 가지고 있는지 보여 주는 부분이었다.
역시 대신관은 대신관인가.
가볍게 소란을 중재한 길데티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진중했다.
“……확실한 것인지요.”
결코 거짓을 용납할 수 없는 또렷한 눈빛.
범인(凡人)이라면 기세에 눌려 쉽사리 입을 열 수 없을 만한 무거운 기세였다. 도현은 그 기세를 온전히 받아 내며 또렷하게 답했다.
“예. 확실합니다.”
“……그렇군요.”
그러자 길데티가 눈을 감았다.
한숨을 내쉰 그에게선 좀 전의 기세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깊고 진한 감정이 느껴졌다.
바로 앞에서 직면하고 있는 도현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
그것은 싸늘함이었다.
‘갑자기?’
너무도 달라진 분위기에 흠칫한 순간, 고개를 숙이고 있던 길데티가 다시금 손을 들었다.
띠링-.
경쾌한 알림과 함께 퀘스트창이 떠오른 것도 그때였다.
그리고 도현은 당황했다.
[퀘스트 ‘심연의 흔적을 찾아서’를 클리어하셨습니다.] [보상으로 길데티의 호감도, 중급 스킬 뽑기권, 많은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숨겨진 조건 ‘타임 리미트’를 충족하였습니다. 연계 퀘스트가 강제 연계 퀘스트로 바뀝니다.] [강제 연계 퀘스트 ‘독 안에 든 쥐’가 진행됩니다.] [주의! 강제 연계 퀘스트 진행 중 목숨을 잃을 수 있습니다.] [사망할 시 퀘스트가 실패합니다.]‘숨겨진 조건을 충족했다고?’
전혀 예상치 못한 알림이 뜬 탓이었다.
아무래도 이 회담이 끝나기 전까지 클리어하는 게 히든 피스의 조건이었던 모양.
가밀리온이 돌아오는 시간이 1시간 후였으니, 조금만 늦게 접속했어도 얻지 못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소름이었다.
역시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터트린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아침잠을 이겨 내고 접속한 덕에 히든 피스를 얻은 셈이니까.
‘……강제 연계 퀘스트? 주의?’
한데 이번 히든 피스는 도현으로서도 의아한 종류였다.
‘이게 다 뭐지? 뎀로크에서도 이런 건 없었는데…….’
갓오세에서 새로 도입된 시스템인가?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지금 뭔가 범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
처음 겪는 상황에 정신을 날카롭게 세우고 있을 그때.
철컥.
예상대로 이변이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