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granddaughter of the Namgoong family RAW novel - Chapter 1
1화
프롤로그. 남궁이 잃어버린 아이
푸욱―
새까만 기운으로 둘러싸인 검이 일화의 심장을 꿰뚫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공격에 조금도 대비하지 못한 일화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어…째서….”
일화는 제 심장에 검을 꽂은 이를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녀를 어릴 적부터 키워 주고 무공을 가르쳐 준 스승이자, 무림 일통의 대업을 이룬 대수라 혈교의 수장.
혈마(血魔).
일화의 심장을 꿰뚫은 검은 그의 것이었다.
“제자야. 내 너를 통해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느냐?”
어린 시절부터 일화는 그에게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온 말이 있었다.
‘남궁을 무너트리거라. 네 손으로 반드시 남궁의 검을 꺾어야만 한다!’
스승이 남궁을 멸하려는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스승이 시키는 대로 일화는 그저 25년 동안 남궁을 무너트리기 위해 살아왔다.
오로지 남궁의 검을 꺾겠다는 일념으로 무예를 익혔다. 그 탓에 혈교 내에서 그녀는 천멸검(天滅劍), 즉, 하늘을 멸하는 검이라 불렸다.
그 결과 마침내 오늘, 남궁은 완전히 멸문되었다. 일화의 손에.
일화는 바닥에 죽어 있는 남궁의 마지막 검, 남궁청운을 바라보았다.
“스승의 뜻을… 이루었습니다.”
“그래. 비로소 이루어지겠구나.”
“한데… 어째서….”
혈마의 검이 그녀의 심장을 꿰뚫은 것은 남궁청운의 숨이 끊어진 것과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기나긴 전투 끝에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생각한 그 순간에, 혈마는 그녀의 심장을 찔렀다.
“어째섭니까…?”
“이제 천하에 남궁은 너 하나 남았다. 네 목숨이 끊어져야 비로소 나의 뜻이 이루어지니, 어쩌겠느냐?”
일화는 표정을 굳힌 채 그를 응시했다.
“이 미친 스승이 무슨 말을 지껄이느냐는 눈빛이로구나?”
큭큭, 웃음을 흘리는 제 스승은 이번에도 재수 없게 제 속을 간파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안다는 듯이, 머릿속을 꿰뚫어 보는 듯이.
“네 발치에 쓰러진 이가 누구인지 아느냐?”
일화의 시선이 다시금 쓰러져 있는 남궁청운을 향했다. 그의 목을 반쯤 갈라놓은 검상은 그녀의 손으로 낸 것이었다.
“네 아비다.”
“…!”
“널 찾겠다고 남궁의 가주 자리를 포기하고 표두질이나 해 대던 한심한 놈이지.”
일화는 혼란스러웠다.
제 스승인 혈마는 본래 성품이 고약하고 악하다. 심심하면 사람을 죽여 제 단전이나 채우는 자이니 모든 말을 믿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상했지.’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 보듯 하는 그가 자신은 오랜 시간을 제자라 부르며 키워 왔다.
자신보다 강한 이들이 충성을 맹세해도 스승은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 그녀의 손으로 남궁을 무너트릴 때까지, 끈질기게 남궁을 대적하게 하였다.
대체 왜?
쿨럭.
그녀의 입에서 검붉은 핏물이 울컥, 쏟아졌다. 내공으로 상처가 벌어지는 것을 막아 버티고 있지만, 이젠 한계였다.
“하하하! 어떠하냐? 네 손으로 아비를 죽인 소감이!”
혈마의 웃음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네가 딸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니 내공을 거둬들이더구나. 참으로 한심하지 않으냐?”
“…!”
일화는 죽기 직전 자신을 애절하게 바라보던 남궁청운의 눈빛을 떠올렸다.
분명 전투는 자신이 밀리는 상황이었다.
기나긴 전투 끝에 남궁청운이 내공을 실은 일격을 준비했고, 일화는 패배를 직감했다. 그러나 그가 일격을 날리려는 순간, 남궁청운은 돌연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는 혼란스러운 시선으로 일화를 바라보았다. 일화는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그의 목을 베었다.
남궁청운은 목에서 피를 뿜으며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의 시선은 일화를 떠나지 않았다.
‘설…화야….’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떠올린 일화의 눈에서 눈물 한줄기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어째서 눈물이 나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일화의 감정은 혈기가 쌓이고 쌓이며 그 부작용으로 완전히 파괴되었기 때문에.
그럼에도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클클, 그리 억울해하지 말거라. 너도 꽤 즐거웠지 않으냐.”
남궁청운의 시신을 바라보던 그녀의 눈앞이 서서히 흐릿해졌다.
혈마가 내공을 끌어 올리자, 일화의 심장을 꿰뚫은 검신이 웅웅, 울기 시작했다.
“오늘을 위해 널 내 손으로 길러 왔다. 오만하기 짝이 없는 남궁이, 남궁의 손으로 멸문하는 이 순간을 위해! 하하하하!”
그의 웃음소리에 천지가 진동하고 공간이 짓눌렸다. 혈마는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일화는 상처를 막고 있던 내공을 없앴다.
쿨럭―
그녀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쏟아져 나왔다.
온몸이 축 늘어지고 팔을 들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가까스로 붙어 있던 숨이 빠르게 멎어 가기 시작했다.
“그만…하십시오…. 재미…없습니다.”
그 순간, 혈마의 웃음이 뚝. 끊어졌다.
그녀를 내려다보는 그의 심드렁한 눈동자 속에서 검붉은 기운이 일렁였다.
“그러지 않아도 흥미가 떨어진 참이다.”
섬뜩한 기운이 검을 중심으로 휘몰아쳤다.
그 순간, 혈마의 검이 그녀의 몸을 베었다.
심장에서 시작하여 어깨를 가르며 검이 빠져나가는 것과 동시에 일화는 피를 토하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재미있었다. 제자야.”
덕분에 천하에서 남궁이 사라졌구나.
혈마가 흘리는 웃음소리가 서서히 허공으로 흩어졌다.
죽어 가는 그녀를 버려둔 채 돌아가는 뒷모습이 참으로 가볍고 홀가분한 발걸음이었다.
“쿨럭….”
멀어져 가는 혈마를 바라보던 일화의 눈동자에서 검붉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어리석구나.’
참으로 어리석은 삶이야.
속아서 이용당하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스승이라 부르며 따랐었다니.
자신은 어째서 이리도 어리석은 삶을 살아왔는가.
무엇을 믿고 그저 피밖엔 모르는 이의 뒤를 좇아 왔는가.
일평생을 혈마를 위해, 남궁을 쓰러트리기 위해 살아왔건만 그 끝에 남은 것은 믿고 따르던 이의 비웃음뿐이다.
돌아온 것은 비참한 죽음뿐이다.
남은 것은 그저 혈(血).
검붉은 피만이 온 세상을 물들였다.
제 손으로 죽인 남궁의 피 냄새가 원한과 같이 그녀를 둘러싼 채 맴돌았다.
그 혈향 속엔 일화, 그녀의 죽음도 있을 터였다.
풀썩.
일화의 몸이 힘을 잃고 쓰러졌다.
혈마의 수족이자 남궁을 무너트리기 위한 혈교의 소교주. 천멸검(天滅劍) 일화(一化).
혈마에게 놀아난 그녀의 삶은 그렇게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