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granddaughter of the Namgoong family RAW novel - Chapter 106
106화
축축하게 젖어가는 등. 빠르게 퍼지는 혈향. 따뜻하고 질척이는 감각.
설화는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에겐 너무나도 익숙했던, 이제는 어느새 낯설어지고 있는 그것이 그녀의 손을 물들였다.
죽음이었다.
유강에게, 죽음의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정신이 아득해지고, 윙윙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설화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수많은 죽음을 보았음에도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아득한 기분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그 어떤 소리보다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어때요? 곧 죽을 것 같습니까? 어두워서 통 안 보이네, 이거….”
설화가 시선을 들어 황룡대주를 바라보았다. 눈동자 속에서 붉은 기운이 일렁였다.
“와…. 그렇게 보시니 좀 무섭군요…?”
“왜 그랬어…?”
“으음….”
황룡대주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검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본래 나설 생각은 없었는데 말입니다. 눈앞에서 워낙 멍청한 짓들을 하니까 답답하더군요. 애새끼 하나 못 잡아서 이 난리라니요.”
“….”
‘황룡대주 남궁호락.’
남궁호락에 대하여 설화가 알고 있는 정보는 단 하나다.
‘연소란의 정인이자, 남궁소룡의 친부.’
연소란과 소룡을 이용해 남궁을 집어삼키려 했던 남궁의 좀 같은 존재.
그가 바로 설화가 알고 있는 황룡대주였다.
이전 생에선 혈교의 난이 일어나기도 전에 연소란과 소룡을 빼내어 미리 도망쳤다는 기억밖에는….
‘…그렇구나.’
이제야 알겠다.
그때, 그들이 어째서 혈교의 난이 시작되기도 전에 몸을 피할 수 있었는지.
“하아….”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은 설화의 입 사이로 한기 어린 호흡이 흘러나왔다.
이건 명백한 자신의 실수다. 언제든 처리할 수 있다는 안일함이 불러온 치명적인 실수.
청해의 손으로 직접 처리되길 바라서 남겨두었던 것이 자충수가 되었다.
‘실수는… 바로잡아야지.’
스릉―
설화는 유강을 조심스레 눕히고 떨어져 있는 검을 집어 들었다.
제 몸집보다 한참이나 큰 검은, 수로채를 나올 때 혹시 몰라 챙겨 온 것이었다.
“도망가.”
나직한 목소리가 수풀 너머의 아이들을 향했다.
숨죽인 채 수풀 속에 숨어있던 화린과 소약이 화들짝 놀라며 수풀이 흔들렸다.
“할 수 있는 한 멀리 도망가. 뒤돌아보지 말고, 멈추지 말고. 너희가 할 수 있는 한 멀리 가.”
이내 두 아이가 후다닥 도망치는 기척이 느껴졌다.
황룡대주가 아이들이 달려가는 방향을 바라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이야…. 듣기보다 세심한 분이시군요, 소루주께선. 제가 저 아이들을 죽이기라도 할까 걱정이 되시는 겁니까?”
아이들의 기척은 점차 멀어져 이제는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애들 걸음으로 가면 어디까지 간다고….”
쯧.
“아니.”
“?”
“내가 죽일까 봐.”
“…예?”
그 순간, 황룡대주는 일순, 주위가 까맣게 물드는 것만 같은 착각을 느꼈다.
이미 어두운 숲속에 더 짙은 어둠이 내려앉는 것만 같은 착각을.
“이게 무슨….”
오싹한 기운과 함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검을 쥔 그의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황룡대주는 제게로 한 걸음씩 가까워지는 어둠을 바라보았다.
어둠에 잡아먹히지 않은 곳은 그녀의 뒤편, 유강이 있는 곳뿐이었다.
‘…살기를 이런 식으로 다루는 것이 가능하다고…?’
이토록 숨이 막힐 듯한 짙은 살기는 처음이려니와, 살기로 일대를 장악하는 것도 처음 본다.
이건 마치….
‘지배자.’
지배자 같지 않은가.
쉬익―
어둠 속에서 날카로운 기운이 움직였다.
카앙―!
“큭!”
황룡대주가 그 검을 받아친 것은 본능이었다. 검을 받는 동시에 제 공력을 끌어올렸다.
살기 탓에 막히던 숨이 조금은 해방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숨 돌릴 틈은 잠시뿐.
쉭― 쉬익― 쉭!
카캉! 캉! 카각…!
날카로운 기운이 쉴 틈 없이 몰아쳤다.
‘애새끼 검이 뭐 이리…!’
뭐 이리 무겁단 말이냐!
어디 무겁다, 뿐일까. 빠르고 날카롭다.
빈틈을 보이는 순간 단숨에 숨통을 벨 것 같이, 한 초, 한 초에 살기가 배어 있다.
촤악―
“크아악!”
황룡대주는 결국 설화의 검을 전부 받아치지 못하고 왼쪽 어깨를 내어주었다.
황급히 몇 걸음 떨어진 그가 욱신거리는 어깨를 확인했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 깊이의 절창(切創)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직 멀었어.”
으득.
황룡대주는 이를 갈며 제게 다가오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이제 막 절정의 경지에 오른 것이 아니었나?’
분명, 혈기를 버리고 내공을 다시 쌓고 있다고 들었는데?
어째서 완숙한 절정의 경지인 자신이 밀린단 말인가!
‘제기랄.’
황룡대주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설화가 더 가까워지기 전에 얼른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엄지손톱만 한 환단이었다.
그 환단을 본 설화가 우뚝, 걸음을 멈췄다.
“네 무위는 천무제에서 똑똑히 보았는데, 설마 내가 빈손으로 왔겠느냐?”
황룡대주가 실실 웃으며 환단을 입에 집어넣었다. 마치 뼈를 씹는 듯이 우드득, 하는 소리가 들려오길 잠시.
“큭… 크아아악!!”
괴로운 듯 제 심장을 부여잡고 부들부들 떨더니, 이내 그의 몸에서 검붉은 기운이 폭발하듯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넘치는 힘에 포효하는 그를 보며 설화가 미간을 찌푸렸다.
‘폭혈환(爆血丸).’
몸의 혈기를 일순간 끌어올려 폭발적인 힘을 내도록 하는, 혈교에서 만든 환단이다.
폭혈환을 복용하면 심장이 빠르게 뛰고 혈맥이 넓어져 온몸의 피가 빠르게 돌게 된다.
그렇게 끌어올린 혈기는 최소 일각(一刻_15분)에서 길게는 이각(二刻_30분)까지 유지되었다.
“크흐흐흐….”
황룡대주의 기운이 절정에서 일순 초절정의 경지로 올라섰다.
해방감마저 느껴질 정도의 폭발적인 힘을 만끽하는 그를 향해 설화가 물었다.
“폭혈환의 부작용은 알고 있는 건가?”
폭혈환을 섭취하면 순간적인 힘을 낼 수 있지만, 억지로 끌어올리는 것이기에 효과가 끝남과 동시에 과부하된 육신은 곧장 퍼지게 된다.
최소 반 시진에서 한 시진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운이 좋지 않거나 다량으로 섭취한 경우엔 심장마비가 올 수도 있다.
‘그 부작용 탓에 이전 생에선 혈교 내에서도 사용을 제한하던 환단.’
그걸 이렇게나 무방비하게 써먹다니.
“크흐흐, 알다마다. 부작용이 오기 전에 끝낼 생각이다. 하니, 어디 한번 이 검도….”
훅―
“받아 보거라!”
천풍검법 2식 사위난룡!
황룡대주는 남궁의 무사답게 남궁의 검법을 써서 공격해 왔다.
단, 그 검이 흘리는 기운은 푸르지 않았다.
모양만 따를 뿐, 그의 검엔 하늘이 없었다.
황룡대주의 검이 설화에게 쇄도하는 그 순간, 설화는 몸을 비틀며 그의 검을 흘려냈다.
카강― 캉―
‘받아내려 하면 밀려난다.’
폭혈환으로 거세진 기운에 정면으로 맞섰다간, 검과 몸이 버티지 못할 터.
설화는 이를 앙다문 채 아슬아슬하게 검격을 흘려냈다.
공력은 초절정일지라도 황룡대주의 검은 그 경지에 다다르지 못한 거짓 강기.
그에 반해 설화의 공력은 절정일지라도 이미 화경의 경지에 닿아본 적 있는 검이었다.
상반된 두 사람의 검이 눈 깜짝할 사이 수십 차례 부딪혔다.
그러나 아무리 경험에서 앞선다 해도, 초절정의 공력을 받아내기는 쉽지 않았다.
설화는 한 걸음씩, 밀려나고 있었다.
‘폭혈환의 기세가 사라질 때까지만 버티면….’
“적괴수가 그러더군! 널 데려오면 남궁의 일 공자를 죽여주겠다고!”
두근.
카강―!
설화의 검에 실린 힘이 찰나의 순간 흔들렸다.
그 찰나를 놓치지 않은 황룡대주의 입꼬리가 휘어졌다.
‘이거구나!’
그는 더욱 거칠고 빠르게 검을 휘두르며 설화를 압박했다.
“좀 전의 폭발 이후 일 공자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건 알고 있나?”
설화의 평정심을 흔들어 보려던 그의 간계는 예리했다.
카칵, 칵!
공격을 받아내는 설화의 검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지! 그래봤자 아직 애새끼일 뿐이지! 이대로 더 몰아붙이면…!’
“저 망할 어린놈도 운 좋게 급소는 피해 간 것 같다만, 곧 죽을 테지?”
황룡대주가 실실 웃음을 흘렸다. 이제는 점차 짙어지는 살기가 두렵지 않았다.
“일 공자나 저놈이나. 이런 외진 곳에서 죽는 것이 다 누구 때문인 줄 아나?”
카칵, 카앙…!
“너 때문이다…!”
카앙―! 하는 부딪힘과 동시에 설화의 검이 날아갔다.
공중에서 휘휘, 돌던 검은 세 걸음 떨어진 땅에 박혔다.
“….”
설화는 부들거리는 오른 손목을 부여잡았다.
핏빛으로 번득이는 그녀의 눈동자가 황룡대주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섬찟한 그 시선에 괜스레 긴장된 침을 삼키며 황룡대주가 입을 열었다.
“넌 남궁으로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다. 너만 없었으면 일 공자가 돌아오는 일도 없었을 거고, 내 계획이 방해받을 일도 없었을 테지.”
이 공자를 차기 가주로 세우면 자연스레 그 아들인 소룡과 웅이 소가주 후보가 된다.
하나, 남궁웅은 형을 뒤로하고 가주의 자리를 탐낼 그릇은 못 되니 필시, 소룡이 차차기 가주가 되었을 것이고 그렇게만 된다면….
‘남궁이 내 손에 들어오는 것이었는데…!’
“손에 더러운 피나 묻히면서 살던 것이 돌아오긴 왜 돌아와서….”
“그게 목숨 걸고 돌아온 꼬맹이한테 할 소리냐!”
퍼억―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황룡대주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설화는 그 자리를 대신한 누군가의 야무진 발을 멍하니 보다가 이내 바닥에 내려선 발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이런 뒷구멍을 입에 달고 다니는 놈을 봤나! 뚫려 있다고 마음대로 싸질러도 되는 줄 아느냐?”
씩씩거리며 설화 앞을 가리고 나선 이는, 비풍대주 섭무광이었다.
“퉤! 이 썩어 문드러져도 아까울 잡놈 같으니라고!”
언제나 그렇듯 어딘가 여유 넘치는 섭무광의 주위로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거친 기운이 휘몰아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