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granddaughter of the Namgoong family RAW novel - Chapter 11
11화
* * *
최근 들어 섬서와 하남, 호북 지역을 중심으로 대륙의 중원에는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마을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흑도 세력이 늘어나는 등 하나같이 위험을 알리는 징조였다.
남궁에서 운영하는 표국 역시, 하남을 지나오던 중에 흑도 방파에게 습격당해 피해를 입는 일이 벌어졌다.
남궁무천은 비풍검대에게 이 일을 조사하게 하였고, 그러던 중 소림과 화산의 비밀 거래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였다.
“화산과 소림이 어째서 그런 거래를 하였는지는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만….”
섭무광이 콧잔등을 긁으며 끙, 앓은 소리를 냈다.
“흑운방이라는 조직은 생각보다 별거 아니더이다. 꼬맹이 혼자 뒤집어 놓았을 정도이니 말이오. 그들이 화산의 정예를 쓰러트리고 물건을 빼돌린 데에는 필시 다른 개입이….”
보고를 이어 가던 섭무광이 돌연 말을 멈추었다.
무언가 이상했다.
주요 안건에 대한 보고인데도 남궁무천의 반응이 덤덤했다.
“가주님?”
섭무광이 남궁무천의 눈앞에 손을 휘휘 저었다.
“듣고 계십니까?”
남궁무천은 팔짱을 낀 채 잔뜩 심각한 표정으로 앞을 응시하고 있었다.
“음….”
남궁무천이 두툼한 손으로 까슬까슬한 제 턱을 쓸었다.
그 심각한 표정에선 스산한 날카로움이 느껴졌다.
마치 적을 베기 직전의 표정과 흡사했다.
섭무광과 총관이 마른침을 삼켰다.
‘섬서와 하남의 거대 세력 간의 일이니 신중하신 것이로군.’
‘보고에서 벌써 무언가 알아차리신 것인가!’
그런 생각에 땀이 흥건한 주먹을 꽉 말아 쥐던 순간이었다.
“그 녀석이 태어났을 때부터 날 닮았다는 말을 꽤 듣긴 했었지.”
남궁무천의 입에서 나온 말은 섭무광의 보고와는 전혀 다른 얘기였다.
“그땐 그 손바닥만 한 것이 어디가 날 닮았는가 싶더니. 장성한 모습을 보니 알겠어.”
섭무광과 총관이 시선을 나누었다.
서로 무어라 말하지 않아도 남궁무천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총관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가주님. 솔직히 장성한 건 아닙니다만….”
누가 열세 살짜리를 장성했다 말한단 말인가?
심지어 다른 열세 살 아이보다 덩치가 큰 편도 아니던데.
“하긴. 천명(天鳴)보다도 작았지.”
천명은 남궁무천의 검 이름이다.
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하늘이 운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었다.
“잘 먹여야겠군. 천명보단 커야지.”
“천명보단 당연히 커야겠지요.”
천명이 크다고 하나, 그 아이보다 고작 두 뼘 정도 더 크지 않은가?
“천명보다 작으면 큰일이지요. 그보다….”
“그보다?”
남궁무천이 눈썹을 휘며 총관을 돌아보았다.
‘안 닮았습니다.’
…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무시무시한 눈빛은 금방이라도 그를 잡아먹을 것만 같았다.
총관이 미소 지으며 입을 꾹 다물었다.
때마침 섭무광이 화제를 돌렸다.
“그렇지. 그 꼬맹이에게 물어보면 어떻겠습니까?”
‘고맙소. 비풍검.’
‘안 닮았다는 데 동의하는 바요.’
남궁무천이 섭무광을 바라보았다.
“무얼?”
“대환단을 가져가지 않았습니까. 그 꼬맹이가 화오루의 소루주였다 하니, 이번 일의 뭐라도 알고 있지 않겠습니까?”
“화오루라는 곳에 대해선 알아보았나?”
“꼬맹이를 추적하는 놈들을 처리한 뒤 운남으로 곧바로 수하들을 보냈습니다. 곧 소식이 오겠지요.”
아이의 뒤를 쫓던 놈들은 화오루의 살수들이었다.
그들을 처리한 뒤 비풍검대원 몇을 운남으로 보낸 지 닷새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 아이의 말은 믿을 만하더냐?”
남궁무천의 물음에 섭무광은 잠시 침묵했다.
신뢰라는 것은 함부로 주거나 받을 수 없는 것이다. 하물며 정체도 모를 세력의 소주였던 아이였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이 아이가 남궁으로 온 이유지만, 그 내면엔 무슨 꿍꿍이가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것이 아무리 가주의 손녀라 하여도.
그러니 함부로 확신해선 안 될 일이지만.
“지금껏 쌓아 온 내공을 포기하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지요. 솔직히 내가 그 꼬맹이였어도 그런 생각은 못 했을 거요.”
절정의 내공은 하루아침에 쌓이는 것이 아니다.
중원 어디를 가도 한 지역을 주름잡을 정도의 힘을 포기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 힘을 포기하면서까지 남궁을 선택한 꼬맹이니. 다른 목적이 있겠습니까?”
섭무광의 목소리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 확언은 아이가 가문을 배신하였을 때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총관이 놀란 기색으로 물었다.
“비풍검. 그 아이와 다니다 보니 벌써 정이라도 든 게요?”
“정은 무슨. 생긴 거랑 다르게 구는 게 좀 귀엽긴 하더이다.”
“허….”
섭무광은 남궁에서 누구에게도 쉬이 마음을 내어 주지 않기로 유명한 자였다.
실력으로 따지자면 천하 10대 고수와 겨루어볼 수 있을 정도인 그가 남궁에 몸담은 이유는 오로지 가주 남궁무천 때문이었다.
그 말은 즉, 남궁의 어느 세력에도 속하지 않은 채 독보적인 힘을 갖고 있어, 남궁의 모두가 제 편으로 두고 싶어 하는 자.
그런 그가 수많던 ‘손녀 후보’들 중에서 저리 좋게 말하는 건 처음이었다.
“오래 살고 볼 일이구려.”
“크크크….”
총관이 섭무광의 뜻을 거들었다.
“저도 아이에게 화산의 일을 묻는 것은 동의합니다. 마침 천객원의 객에겐 가주께서 식사를 대접하시는 관례가 있으니 좋은 기회가 아니겠습니까. 믿고 안 믿고는 그 뒤의 일이지요.”
두 사람의 말에 남궁무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라.”
그의 입가가 옅게 휘어졌다.
* * *
일화가 무릎 꿇은 적룡 조장을 싸늘한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이전 생에 그녀는 목적 없이 살생을 해 왔다. 살생이 늘어날수록 자연스레 적이 늘어났다.
그들 중엔 간혹 살수를 보내거나 직접 암살을 시도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 수많은 습격에서도 살아남았는데, 내공조차 실리지 않은 이류 무사의 목검이 두려울 리가.
“더 해도 상관없어요. 하지만 이번엔 저를 얕잡아 보지 말고 전력을 다해야 할 거예요.”
일화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목검을 발로 툭 쳐서 그에게 밀어 주었다.
적룡 조장은 제 앞으로 밀려온 목검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이게….’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자신이 어째서 이 어린 녀석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냐는 말이다.
아이가 검을 휘두르는 걸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더 분한 건 제가 검을 놓친 것을 깨닫지도 못했다는 점이다.
그것도 고작 두 초 만에.
멀찍이서 구경꾼들의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단원들은 놀람이 뒤섞인 반응이었지만, 아직 무학에 어두운 어린 훈련병들이나 시비들은 그저 돌아가는 상황을 몰라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그들의 눈엔 커다란 어른이 애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 우스울 수밖에 없었다.
적룡 조장은 얼굴을 와락 구기며 목검을 집었다.
“오냐.”
보지 못했으니, 믿을 수 없다.
믿지 못하겠으니, 제대로 확인을 해야겠다.
이대로 끝내기에는 자존심도 허락하지 않는다.
자리에서 일어난 적룡 조장은 일화를 향해 제대로 된 자세를 취하고 섰다.
“어디 한번 제대로 해 보자꾸나. 이 건방진 꼬마 놈아.”
그의 눈빛이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더 이상 아이라고 우습게 여기지 않았다.
바보가 아닌 이상 이제는 알 수 있다.
‘강하다.’
이 아이는 강하다.
느껴지는 기운은 작지만, 그보다도 뛰어난 무위를 지니고 있다.
어쩌면 자신보다도 더.
절대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될 상대다.
진지해진 그에 맞서 일화 역시 검을 쥐며 제대로 된 자세를 취했다.
상대가 전심을 다한다면 일화 역시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조금만 상대해 줘 볼까.
사실 조금 궁금하다. 자신이 남궁을 정말로 변화시킬 수 있을지.
남궁은 강하다.
강하기 때문에 함부로 덤벼드는 적이 없다.
하지만 정말 강한 것은 가주와 몇몇 절대 고수들일 뿐, 남궁의 무사 전부가 강한 것은 아니다.
그 말은 즉, 남궁의 무사들은 남궁이라는 이름 아래 보호받고 있다는 뜻이었다.
‘적이 없으니 싸울 일이 없어.’
싸울 일이 없으니 안일할 수밖에.
오랜 안일함은 검을 무뎌지게 한다. 하지만 정말 무뎌지는 것은 검이 아닌 저들의 마음가짐이다.
‘내가 정말 이들의 마음을 벼릴 수 있을까.’
이미 평안에 찌들어 있는 이들을 달구고 두드려 날카롭게 만들 수 있을까?
이들에겐 과연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을까?
그것이 궁금하다.
그것이 일화가 적룡 조장의 싸움에 응해 주는 이유였다.
“타핫!”
적룡 조장이 먼저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자신을 두 번이나 무릎 꿇린 아이였다. 봐주고 말고 할 처지가 아니었다.
탁! 타닥! 탁!
일화는 빠르게 쇄도하는 그의 검을 연달아 가볍게 받아쳤다. 정면으로 받아치기보단 상대의 힘을 이용해 공격을 흘려내는 식이었다.
‘무슨…!’
오가는 검격 속에 적룡 조장은 당황했다.
분명 온 힘을 실어 검을 휘둘렀다. 어린아이라고 봐줄 생각도, 쉽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아이는 너무나도 쉽게 자신의 검을 받아 내고 있었다.
이게 말이 되나?
이렇게 어린아이가 자신의 검을 이리도 쉽게 받아치는 것이?
타악―!
“흡!”
적룡 조장이 당혹스러움에 빠져들고 있는 그때, 일화의 검이 그의 팔목을 때렸다.
하마터면 검을 또다시 놓치는 추태를 보일 뻔한 적룡 조장은 검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집중하세요.”
그의 이마에는 어느새 송골송골 땀이 맺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