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granddaughter of the Namgoong family RAW novel - Chapter 110
110화
한 사람이 나타나 온 중원의 패자로 군림하면 사람들은 그를 ‘천하 제일인’이라 부른다.
그러나 하나의 세력이 나타나 중원의 모든 세력을 굴복시키고 그 위에 군림하면 사람들은 그 세력의 머리를 ‘지배자’로 기억할 것이다.
“그자가 원하는 건 지배자가 되는 거예요. 모든 이들이 무릎 꿇고 경배하는 지배자요.”
그러기 위해선 혈마 뿐만 아니라 혈교 전체가 준비되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 필요한 시간이 앞으로 5년이다.
‘혈교가 준비되지 않았다는 증거가 오늘의 일이라고 할 수 있어.’
오늘 본 육 혈주는 이전 생에 설화가 알던 것보다 한참이나 약했다.
혈마에게 전수받은 혈공에 익숙하지 않았고, 그 탓에 아직 장강 수로채를 장악하지도 못했다.
5년 후엔 남궁무천과 비등한 무위를 가지고, 남궁에 비견될 정도의 세를 가지고 있을 육 혈주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육 혈주를 만난 것은 천운이었다.
이로써, 혈교의 중심이 되었던 여섯 세력 중 하나를 없앤 셈이니.
‘혈마가 새로운 육 혈주를 세울 가능성도 있지만, 우선은 이걸로 되었다.’
육 혈주의 죽음은 혈마에게 충격을 주는 것과 동시에 좋은 선전포고가 될 것이다.
이번 일로 자신을 포기해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혈마가 새로운 육 혈주를 세울 수도 있고, 이번 일에 자극받아 혈교의 출두를 앞당길 수도 있지만, 과거를 바꾸기로 한 이상 미래가 변하는 건 불가피한 일이다.
‘그에 맞춰 대비하면 돼.’
이미 많은 것이 변하였고, 조금 더 나아졌다. 여섯 혈주 중 하나를 죽였으니, 남은 것은 다섯.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 * *
수로채는 어수선했다.
곳곳에선 혈사채와의 전투에서 속출한 부상자들의 치료가 한창이었다.
“아가씨!!”
설화를 발견한 령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남궁무천은 그제야 설화를 바닥에 내려 주었다.
“네 아비를 살펴보러 가 보마.”
“네. 막사에서 뵈어요, 할아버지.”
남궁무천과 섭무광이 떠나가자,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안절부절못하던 령이 다가왔다.
“…아가씨.”
“령.”
많이 혼났어? 라고 물어보려는 찰나.
쿵! 하며 령이 설화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가씨를 제대로 호위하지 못하고 위험한 순간에 곁을 지켜드리지 못한 절 벌하여 주십시오!”
설화는 놀란 눈을 깜박였다.
역시 아주 많이 혼난 모양이었다.
“일어나.”
“아가씨….”
“너를 보낸 건 나야. 벌을 받아야 하면 내가 받는 게 맞지. 그러니까 일어나.”
하지만 령은 설화가 내민 손을 붙잡지 못했다. 짧게 한숨을 내쉰 설화가 무릎을 굽혀 그녀의 앞에 앉았다.
“사람은 누구나 처음이 있는 법이잖아. 나도 호위는 네가 처음이고….”
이전 생을 통틀어서.
“너도 호위는 처음이니까.”
설화가 다시금 령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번 실수를 반면교사 삼아 앞으로 잘하면 되는 거야.”
령이 제 앞에 드리워진 작은 손을 따라 시선을 들었다.
빙긋 웃는 아이의 미소에 령은 잠시 주춤했다.
‘아가씨… 뭔가….’
뭔가 달라지지 않으셨나…?
설화가 감정이 없다는 것은 남궁무천과 청운을 포함한 몇몇만이 알고 있는 사실.
그러나 근래 설화와 가장 가까이 다녔던 령은 아이의 작은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차렸다.
“감사…합니다.”
령은 아이의 손을 붙잡았다.
무엇이 변하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좋은 변화의 징조 같았다.
“남궁령.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아가씨를 보필하겠습니다.”
* * *
치료가 시급한 청운과 청산 부부를 제외하고, 남궁무천과 섭무광, 흑룡대주가 채주의 막사에 모였다.
진소약의 절맥 치료와 거취에 관해 나눌 얘기도 있었기에 설화 역시 자리를 지켰다.
어린아이가 어른들 사이에 섞여 있었지만,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이들은 없었다.
상대적으로 뒤늦게 전투에 합류하여 부상이 적은 맹등호는 막사에 들어서다 말고 그 기묘한 모습에 눈썹을 휘었다.
“자네가 귀영채주인가?”
상석에 앉아 있던 남궁무천이 짐짓 근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맹등호가 그를 향해 포권을 취했다.
“천룡검황을 뵙습니다.”
“앉지.”
맹등호가 자신의 자리에 가서 앉으려 할 때였다.
“내 손녀들을 납치한 것이 자네인가.”
맹등호는 저도 모르게 흠칫, 몸을 떨었다.
공력이나 살기를 뿜는 것도 아닌데 남궁무천에게서 무시할 수 없는 위압감이 흘러나왔다.
입술조차 쉬이 뗄 수 없이 압도되어 식은땀만 흘리고 있으니, 한참을 머물던 남궁무천의 시선이 흩어졌다.
“어느 놈이 내 손녀들을 건드렸나 했더니 애송이로군.”
맹등호는 그 순간 소약이 한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깨달았다.
‘설화 누나가 그랬어요! 인질인 척하면 아빠를 살릴 수 있을 거라고요!’
남궁의 사람들을 살리려고 벌인 짓인 줄 알았건만. 그뿐만은 아니었다. 그 덕에 제 목이 아직 붙어 있으니.
맹등호는 이 순간, 설화에게 고마웠다.
“그 얘기는 그쯤하고. 설화야. 이자에게 할 말이 있다 하지 않았느냐.”
“네.”
설화가 맹등호를 바라보았다.
“소약에 관한 얘기예요. 저는 소약이가 절맥증이 완전히 치료될 때까지 남궁에서 지내는 것을 제안드려요.”
맹등호의 시선이 살짝 흔들렸다.
“절맥증 치료가 오래 걸리나?”
“적어도 5년이요.”
음양대절맥은 제대로 된 증세가 나타날 때까지 꾸준히 영약을 통해 기혈을 다스려 주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치료는 증세가 나타나 기혈이 뒤틀리는 시기인데, 발작을 일으켰을 때 초절정 이상의 고수가 기혈을 바로잡아 주면 완전히 치료될 수 있었다.
“음양대절맥의 증세가 나타나는 시기는 열 살 무렵이에요. 소약이는 여섯 살이니 4, 5년이 걸릴 테고요. 증세가 나타나기 전 1, 2년은 소약이 가장 약해질 시기예요.”
지금도 절맥증 탓에 약한 아이가 더 약해져서 걸핏하면 피를 토하고 쓰러질 텐데.
“이런 위험한 곳에 두실 건가요?”
맹등호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소약이 절맥증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안 뒤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였다.
실력 있다는 명의들을 찾아다녔고, 영약을 먹이기 위해 산속 곳곳을 돌아다니고, 심지어 남궁을 건드리기까지 했는데.
‘5년 떨어져 있는 것쯤이야, 아이를 살릴 수만 있다면.’
“네 말대로… 하마.”
남궁의 아이를 납치해 왔는데, 제 아이를 볼모로 내어준 꼴이었다.
어느 수적이 제 자식을 정파 세가에 둔단 말인가. 흑도의 누구도 그런 짓은 안 할 터다.
‘수적질은 글렀군.’
조금이라도 이치에 어긋나는 짓을 했다간 자식을 이용해 압박을 넣겠지.
사실상 도적질은 그만두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5년이라는 시간은 금방일 거예요.”
“무슨 말이지?”
“채주께선 그동안 이 장강 수로채의 총채주가 되셔야 하니까요.”
“…?”
어리둥절해하는 그를 보며 설화가 탁자 위에 펼쳐져 있던 수로 지도를 짚었다.
탁.
아이가 짚은 곳은 지도의 동쪽, 혈사채의 자리였다.
“오늘, 귀영채는 혈사채를 이겼어요. 혈사채는 바닷길과 통하는 거점으로 열여덟 개의 채 중 가장 부유한 채죠.”
“…맞다.”
설화의 손이 다음으로 귀영채의 위치를 짚었다.
“그리고 귀영채는 우리 남궁세가의 패권 속에서 살아남을 정도로 강한 채예요. 호북으로 이어지는 물길이니, 그 유명한 무당과 제갈세가의 영향력도 버텨낸 셈이죠.”
맹등호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 열세 살 아이가 섞여 있는 것을 이상히 여겼던 그는 누구보다 아이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수로채 최고의 재력과 탄탄한 무력. 이 두 가지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죠.”
실제로 이전 생에선 육 혈주가 해낸 일이니.
“거기다….”
설화가 싱긋 웃으며 남궁무천을 돌아보았다.
“필요할 땐 남궁이 채주님을 도와드릴 겁니다.”
남궁무천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맹등호가 오기 전 이야기가 된 것이었다.
귀영채를 수로채의 지배자로 만들자. 그리하여 수로를 확보하자.
어차피 누군가는 총채주가 될 것이고, 수로의 패권을 틀어쥘 것이다.
그렇다면 그 누군가는, 남궁이, 설화가 통제할 수 있는 이인 것이 낫다.
‘남은 건….’
맹등호의 의지뿐이다.
“채주님.”
맹등호는 멍하니 지도를 바라보던 시선을 들어 아이를 마주 보았다.
지금껏 귀영채를 지킬 생각만 하였지, 수로채의 권역을 넓힐 생각은 하지 않은 그였다.
하지만 혈사채의 부와 귀영채의 무력을 등에 업고, 남궁세가가 그 일을 도와준다면…?
“중원을 아우르는 물길을 지배하고 싶지 않으세요?”
아이의 말이 달콤하다.
“채주님이라면 충분히 물 위의 패자가 되실 수 있어요. 그리고….”
너무 달콤해서 머릿속이 캄캄해진다.
그 캄캄한 머릿속에.
“그 힘이라면 누구도 소약이를 함부로 건드릴 수 없을 거예요.”
단 하나의 뚜렷한 목표가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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