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granddaughter of the Namgoong family RAW novel - Chapter 14
14화
의약당에서의 일을 말하는 것일까?
“적룡단 아이가 네게 검을 겨누었다지.”
예상은 빗나갔다. 당연히 의약당의 일을 물어 올 거라 생각하였는데, 남궁무천은 의외의 것을 물어 왔다.
“다치지 않았어요. 목검이었고요.”
“목검도 검이다. 무릇 검객이란 제 손에 무엇이 들리든 휘두르기 전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법. 그것이 검이든 목검이든 혹여 비루한 나뭇가지라도 말이다.”
“그 무사는 그 정도 실력을 가진 이가 아니었어요. 무엇보다 전 그 무사가 든 것이 두렵지 않았어요.”
“네가 그놈보다 강하니까?”
“내공으로만 본다면 강하다고 할 순 없지만, 강함과 약함의 차이는 힘으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닌 걸 아시잖아요.”
남궁무천의 입매가 살짝 휘었다.
일화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기특함이 가득했다.
그러다 이내 그의 낯빛이 차갑게 식었다.
“나는 네가 내 손녀가 아니길 바랐다.”
일화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선선한 바람이 뒷짐을 지고 선 남궁무천의 장포를 펄럭였다.
버들잎이 바람에 날려 사르륵, 사르륵, 소리를 냈다.
“넌 아이답지 않다. 평범한 아이라면 너와 같은 살기를 풍길 수 없지. 너 정도의 살기를 쌓으려면 사람 한두 명 죽인 것으로는 어림도 없을 테고.”
남궁무천의 눈에는 보였다.
일화를 둘러싼 수많은 것들이.
그녀의 손에 묻은 피와 그녀가 겪은 아픔. 어쩌면, 작은 몸뚱어리 속에 들어 있는 이전 생의 기억마저도.
일화 역시 그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내뿜는 살기엔 이전 생의 살생으로 쌓인 기운이 섞여 있다는 것을.
그 살기에 가장 많이 섞인 피는 바로 이 남궁의 피라는 것을.
시간은 되돌아왔지만, 그녀는 되돌아오지 못한 탓이었다.
그녀가 죽인 수많은 이들의 원망과 눈물은 없어질 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 될, 그녀가 짊어지고 가야 할 업보였다.
남궁무천은 이 어린아이에게서 그 무게를 보았다.
“어느 누가 제 핏줄이 생사가 오가는 위험한 삶을 살길 바라겠느냐.”
사람을 죽이려면 스스로도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많은 이들을 죽였다는 것은 그녀 역시 죽을 고비를 많이 넘어왔다는 의미였다.
“나는 내 손녀가 곱게 컸길 바랐다. 넉넉하진 못하였더라도 평범하게 자랐다면 더 바랄 것이 없었다.”
“….”
“널 이리 키운 이가 누구냐.”
“그게 중요한가요?”
“중요하지.”
그 순간, 남궁무천에게서 상상도 못 할 기운이 발출되었다.
숨이 턱, 막힐 정도의 푸른 기운이 그의 주위로 일렁였다.
주변의 공기가 얼어붙는 것만 같은, 압도적인 기운이었지만, 일화는 그 위압감을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
남궁무천이 그녀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기운을 조절한 덕이다.
“누군지 알아야 그 죄를 물을 것이 아니냐.”
스산함이 풍길 정도로 낮은 목소리에서는 깊은 분노가 느껴졌다.
한 마디, 한 마디가 결코 가벼이 내뱉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 손녀를 이리 만든 놈을 결코 쉬이 죽게 하진 말아야지.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발겨 도륙을 내 버려도 모자란다.”
“제가 손녀가 아니면요?”
숨이 턱 막힐 정도의 기운이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남궁무천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가 돌연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꺼내 일화의 옆에 쿵! 세웠다.
“아직 멀었군.”
“뭐 하시는 건가요?”
“그간 얼마나 자랐나 확인해 봤다. 언제 천명보다 클 테냐.”
“이 검 이름이 천명인가요?”
“그래.”
그가 검을 다시 허리에 차며 말했다.
“네가 내 손을 잡고 내 처소를 돌아다닐 때만 해도 네 키가 지금의 반도 안 되었지.”
그가 일화의 머리 위에 커다란 손을 턱, 올려놓았다.
“그새 많이도 컸구나.”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은 그리 부드럽지 않았다. 아니, 바위를 문지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내일 저녁이나 같이 먹자꾸나. 맛있는 음식을 좋아한다지. 잔뜩 준비해 놓으마.”
“…네.”
“그래. 쉬거라. 사람을 보내마.”
남궁무천은 그 말을 끝으로 천객원을 떠났다.
끝내 의약당에서의 일은 꺼내지 않았다.
섭무광이 말하지 않은 것인지, 알고도 아무 말 하지 않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남궁무천이 떠난 뒤, 일화는 천객원의 연무장으로 향했다.
마치지 못한 외공 수련을 하기 위해서였다.
혼자 수련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지만, 오늘은 더 이상 소란을 일으킬 수 없었다.
수련 후에 씻고 식사를 마치니 해는 어느새 지평선 너머로 사라진 뒤였다.
천객원의 내부는 고요했다.
시비와 무사들이 사박사박 돌아다니는 작은 소음이 전부인 한적한 곳이었다.
일화는 푹신한 이불 위에 앉아 밤하늘을 둥둥 떠가는 잿빛 구름을 바라보았다.
달이 구름에 가려졌다가 다시 말간 얼굴을 내비치기를 여러 번.
일화는 어느새 잠에 빠져들었다.
남궁에서 그녀가 보내는 첫 번째 밤이었다.
* * *
딸랑― 딸랑―
맑은 종소리가 천객원을 울렸다.
동시에 스산한 기운이 천객원을 둘러쌌다.
자욱한 안개가 끼듯 옅은 연기는 천객원 전체에 빠르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천객원의 무사도, 시비들도 이 변화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마치 일제히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딸랑― 딸랑―
종소리가 연기를 타고 퍼져나갔다.
그 사이로 날카로운 기운이 빠르게 한 곳을 향해 나아갔다.
기운은 천객원을 순찰하는 무사들을 지나쳤다.
천객원 곳곳에 포진해 있는 시비들을 탐색하듯 휘돌았다.
마침내 기운이 향한 곳은 천객원의 객실이 있는 방향이었다.
쉬이익―
날카로운 기운이 천객원의 객실 복도에 들어섰다.
밖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복도 시비들을 휘감으며 빠르게 움직인다.
복도를 지나치던 기운은 한 방문 앞에서 멈춰 섰다.
무언가를 가늠하듯 방 앞을 서성이기를 잠시.
덜컹―!
기운이 거침없이 방문을 통과했다.
기운에 방문이 흔들리는 소리가 조용한 복도를 울렸다.
“…?”
복도를 지키고 서 있던 시비 하나가 이상함을 느끼고 방 쪽을 바라보았다.
딸랑― 딸랑―
스산한 기운이 가득한 방 안.
일렁이는 어둠 속에, 일화가 눈을 떴다.
허공을 응시하는 그녀의 검은 눈동자는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것처럼 텅 비어 있었다.
잠시간 천장을 응시하던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일화는 고개를 돌려 한 곳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검을 놓아둔 협탁 방향이었다.
일화는 침상에서 내려와 검을 집어 들었다.
스릉―
검 뽑는 소리와 함께 은색 날이 부연 연기 속에서 번득였다.
그녀의 검에 하얀색 아지랑이가 일렁였다.
아직은 아무런 색을 띠지 않는 순수한 내력의 기운이었다.
“아가씨, 필요한 것이 있으신가요?”
일화의 고개가 문 너머로 향했다.
조금 전 소리를 듣고 온 시비의 그림자가 문 너머로 아른거렸다.
일화의 검이 우웅, 웅, 떨리기 시작했다.
* * *
“좀 부드럽게 말해 주면 어디가 덧나기라도 한답니까?”
가주전 집무실.
벌써 두 시진째 섭무광은 남궁무천에게 툴툴대고 있었다.
“그 꼬맹이가 아무리 어른스럽다고 하지만, 그 속까지 어른은 아니지요. 제 가족 만나겠다고 가문까지 찾아온 애한테 좀 더 따뜻하게 말할 수 있잖소?”
“음.”
남궁무천이 팔짱을 낀 채 지그시 눈을 감고 침음했다.
“비풍검. 이제 그만하시오.”
총관 남궁문이 섭무광을 말렸다.
“가주님을 보시오. 딱 봐도 충분히 따뜻하게 말씀하셨다는 반응이시잖소?”
남궁무천이 눈을 뜨고 총관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총관이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노려보셔 봤자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저희가 전음 드릴 때 들으시지 그러셨습니까.”
남궁무천의 눈썹이 설핏, 찌푸려졌다.
천객원에 가서 손녀와 이야기를 나눌 때, 이 둘은 천객원 지붕에 앉아 얘기를 엿들었다.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어찌나 훈수를 두던지.
나중엔 귀찮아서 연못가 전체에 기막을 쳐 버렸다.
“거기서 내기는 왜 끌어 올리신 겁니까? 이 할아버지가 이렇게 강하다, 뭐 그런 건 아니셨겠지요?”
“큼, 흠!”
정곡을 찔린 남궁무천이 괜스레 헛기침했다.
“내 손녀가 불안해하길래 안심시켜 준 것뿐이다.”
“그게 그런 방법만 있는 건 아니잖습니까? 안심은커녕 지레 겁이나 먹겠더만….”
“일거수일투족 일러바치는 네놈이 할 말은 아니지.”
“스읍….”
섭무광도 괜스레 시선을 피했다.
아이의 감시는 가문에 도착할 때까지만이었는데, 본의 아니게 외당 연무장과 의약당에서의 일을 가주에게 일러바친 꼴이 된 그였다.
“하면 어째요! 그 작은 것이 위험하다는데! 형님 손녀가 죽을 때까지 입 다물고 있어야 했소이까?”
다급한 순간엔 남궁무천에게 형님이라 부르는 섭무광의 버릇이 튀어나왔다.
“형님이 의약당에서 걔를 봤어야 했습니다! 꼬맹이 눈빛이 무슨…!”
그 순간이었다.
“…!”
섭무광의 말이 멎고, 남궁무천이 퍼뜩, 시선을 들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섭무광의 말에 고개만 주억이던 총관 남궁문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가 돌아보았을 땐 남궁무천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남궁문이 어느새 서 있는 섭무광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오?”
“피 냄새요.”
“…!”
“천객원으로 오시오. 검대 하나는 끌고 와야 할 거요.”
“천객원…!”
남궁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순간, 섭무광 역시 그의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활짝 열린 창문의 창사만이 밤바람에 휘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