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granddaughter of the Namgoong family RAW novel - Chapter 15
15화
남궁무천이 천객원에 도착하니 시비들이 바쁘게 객원의 내부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기척도 없이 객원의 뜰에 나타난 남궁무천을 어린 시비가 우연히 발견하곤 화들짝 놀랐다.
“가, 가주님을 뵙습니다!”
시비가 후다닥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의 품에 안겨 있던 피 묻은 천이 흘러내려 바닥에 툭, 떨어졌다.
남궁무천의 시선이 그 천에 닿는 것과 동시에 그의 뒤로 섭무광이 도착했다.
“그 피는 누구의 것이냐.”
남궁무천의 물음에 시비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개, 객원 귀빈의 혈이옵니다.”
그 순간, 섭무광은 주위의 공기가 얼어붙은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더 큰 일이 벌어지기 전에 섭무광이 한 걸음 앞으로 나가 시비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소상히 말하거라.”
시비가 허리를 더 깊이 숙이며 말을 이었다.
“귀, 귀빈의 전각에서 큰 소리가 들려 가 보았더니 귀빈께서 팔에 큰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고 계셨습니다. 서둘러 의원을 부르고 상처를 처치하느라 어찌 된 일인지는 여쭈어보지 못하였습니다.”
“귀빈께선 지금 어디 계시냐.”
“천객원의 본각에 계십니다.”
시비의 대답이 끝남과 동시에 남궁무천과 섭무광은 곧장 본각으로 향했다.
본각이 가까워질수록 두 사람의 낯빛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 가주님. 무언가 이상합니다. 분명 한 사람의 혈향이 아니었습니다.
― 안다. 하나, 지금은 아니지.
분명 수십의 혈향이 퍼지는 것을 느끼고 왔건만, 지금은 시비의 말처럼 아이의 상처로 인한 미세한 혈향만이 느껴질 뿐.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천객원에서 끔찍한 살육이라도 일어난 줄 알았건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흐르는 피를 닦은 후 지혈을 위해 시비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가운데, 일화는 덤덤한 표정으로 시비들의 처치를 받았다.
아파하는 기색도, 피를 두려워하는 내색도 없이 태연한 모습에 시비들은 되레 그녀의 눈치를 보았다.
‘아이 맞아? 울지도 않네.’
‘근데 왜 다친 거지? 갑자기? 왜 아무 말이 없어? 누가 좀 물어봐.’
‘나도 몰라. 네가 물어봐. 왠지 무섭단 말이야….’
누구 하나 쉬이 그녀에게 말을 붙이는 시비가 없었다.
아이에게서 흘러나오는 스산한 분위기가 방의 공기를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무어라 말 한마디 하지 않았음에도, 시비들은 긴장하고 있었다.
피가 거의 멎었을 때 일화가 시선을 들어 문 너머를 응시했다.
온 신경을 그녀에게 쏟고 있던 시비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의 시선이 향하는 문가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며 가주인 남궁무천과 비풍대주 섭무광이 나타났다.
시비들이 일제히 일어나 뒤로 물러나며 두 사람을 맞았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남궁무천은 시선은 오로지 일화에게 고정된 채였다. 그가 방에 들어섰다.
일화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가주님을 뵈어요.”
“다들 나가라.”
섭무광이 시비들을 향해 고갯짓하자, 시비들은 순식간에 방을 나갔다.
시비들이 나가고 일화의 상처를 잠시간 바라보던 섭무광 역시 남궁무천에게 짧게 고개를 숙인 후 방을 나갔다.
방 안엔 일화와 남궁무천만이 남았다.
방 주위로 두꺼운 기막이 둘렸다.
“….”
“….”
남궁무천이 일화의 상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느낀 일화가 먼저 입을 뗐다.
“잠이 오지 않아 수련을 하다가 실수로 다쳤어요. 큰 상처는 아니에요. 걱정을 끼쳐서 죄송해요.”
“나는 너를 도울 수 있다. 그러니 숨기지 말고 말하거라. 무슨 일이 있었느냐.”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제가 검을 잘못 다루었을 뿐이에요.”
남궁무천이 탁자 곁에 세워진 일화의 검을 보았다.
평범한 철방에서도 쉬이 구할 수 있는 싸구려 철제 검.
그 검의 날에 아이의 핏자국이 옅게 묻어 있었다.
남궁무천은 가슴이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듯 답답하게 저며 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싸구려 검을 들고 다니는 아이 때문인지, 그 형편없는 검을 들고 수련하다가 다친 아이의 상처 때문인지, 그 모든 것에 덤덤한 아이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아이의 팔에서는 충분히 지혈되지 못한 피가 다시금 흘러 아이의 손등을 타고 손가락 끝에 막 맺히려 하고 있었다.
남궁무천은 아이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어앉았다.
그러곤 혈도를 짚어 출혈을 더디게 한 뒤 깨끗한 천으로 피를 닦아 주었다.
일화는 가만히 그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네 말을 믿을 것이다.”
슥, 스윽 닦는 소리가 두 사람 사이를 채웠다.
“그러니 너도 나를 믿거라.”
“….”
피를 전부 닦아 낸 남궁무천은 아이의 손에 상처를 누른 천을 쥐여 준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네가 남궁에 있는 한 나는 너를 지킬 것이다. 혹여 다른 뜻을 품고 있다 하여도 너를 믿을 것이다. 알겠느냐?”
일화는 시선을 살짝 내렸다.
무언가를 짧게 고민하던 그녀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명심할게요.”
그 대답이 원하던 것이 아니었는지 남궁무천의 눈썹이 살풋 찌푸려졌다.
그러나 낮은 한숨을 내쉰 그는 고개를 끄덕인 뒤 몸을 돌렸다.
“그래. 의약당주가 도착했으니 치료를 받거라. 내일 저녁에 보자.”
남궁무천은 그 말을 남기고는 방을 나갔다.
곧이어 기막이 사라지고 문밖에서 여러 명의 기척이 느껴졌다.
막 도착한 의약당주와 외당주 남궁염이 남궁무천과 대화를 나누는 소리였다.
‘역시 알아차렸구나.’
일화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까 잠을 청하던 도중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었다.
저 멀리서부터 아득하게 들리던 목소리는 점차 가까워지더니 또렷이 일화에게 명령했다.
‘죽여라. 전부 죽이거라. 남궁의 모든 이들을 도륙 내고 그 피를 네 발치에 흩뿌리거라.’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제 손엔 검이 들려 있었다.
문밖에선 시비가 무슨 일이냐고 묻고 있었고, 자신은 이미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일화가 그 순간 선택한 것은 그 휘두른 검으로 제 팔을 베는 것이었다.
날카로운 검날의 감촉과 함께 정신이 돌아왔고, 검을 떨어트리는 소리에 시비가 들어와 그 뒤로는 지금 이 상황.
‘남궁무천과 섭무광은 어떻게 알았지?’
두 사람이 어떻게 의원보다 먼저 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두 사람은 이미 이 상황이 그저 사고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남궁무천의 말과 섭무광의 행동이 그것을 대변하고 있었다.
‘조금 더 조심하는 게 좋겠어.’
고수들의 기감은 쉽게 속일 수 없는 법.
이번엔 쉬이 넘어갔지만, 언제까지나 추궁 없이 넘어가 줄 리는 없을 테니까.
그나저나.
‘뭐였지? 그건.’
일화는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무의식중에 들려온 목소리는 분명 혈마의 목소리였다.
누군가 자신의 몸을 조종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혈마의 명에 따라 자신의 몸이 스스로 움직였다.
‘설마 피의 종속에 묶여 있었나?’
혈마는 쉬이 사람을 믿지 않는다. 그 때문에 쉬이 배신할 수 없도록 혈공을 전수해 주기 전 반드시 피의 종속을 맺었다.
피의 종속을 맺은 이들은 혈마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시 고통을 받고 절대로 혈마를 죽일 수 없었다.
다만, 혈마 역시 제 손으로 피의 종속에 얽힌 이들을 죽일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지난 생에 나는 분명 혈마의 손에 죽었어.’
그 말은 즉, 자신은 혈마와 종속관계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니 피의 종속은 아닐 텐데.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이어서 ‘들어갑니다아―’하는 의약당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화는 문가에 비친 의약당주의 그림자를 응시했다.
‘내 몸의 이상이 있다면, 그 이상을 가장 먼저 아는 건 내가 되어야 해.’
자신의 몸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인지, 그것이 남궁에 해가 되는지, 무작정 남궁으로 돌아온 것이 잘못된 선택인지.
알아야 대비하든 남궁을 떠나든 선택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의약당주.’
그녀가 필요하다.
* * *
“이런… 아프겠다.”
눈썹을 한껏 내리깐 의약당주가 일화의 상처를 치료했다.
혹여 위험할 일이 벌어질까, 섭무광이 팔짱을 끼고 기둥에 기댄 채 지켜보고 있었다.
구태여 말을 덧붙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섭무광 역시 이 상처가 실수가 아님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생각이 많아 보이는 얼굴이었다.
“조금 아플 수도 있단다. 고통을 줄여 주는 향을 피우긴 했지만, 아예 안 아프진 않을 거야. 많이 아프면 얘기해야 해?”
“네.”
“이만한 상처에도 울지도 않고, 씩씩한 고양이시군요?”
의약당주는 가벼운 농담으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며 치료를 이어 갔다.
“다친 곳이 또 있는데. 봐주실 수 있나요?”
섬세한 손길로 치료를 이어 가던 의약당주가 놀란 눈으로 일화를 바라보았다.
뒤편에 서 있던 섭무광 역시 인상을 찌푸렸다.
“어머, 다친 곳이 또 있어? 어디?”
일화는 흘낏 섭무광의 눈치를 보았다.
그 시선을 느낀 섭무광이 인상을 더 찌푸렸다.
“뭔데? 어딜 또 다쳤어? 앙?”
“복부 쪽이요.”
“뭐? 복부? 어디 한번 봐 봐!”
“가슴부터 복부인데요.”
다가오던 섭무광이 걸음을 멈추며 와락, 표정을 구겼다.
“보시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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