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granddaughter of the Namgoong family RAW novel - Chapter 17
17화
“하… 하아….”
적룡 11단의 조장 남궁지평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눈을 감으면 아이와의 대련에서 형편없이 패배한 것이 떠올라 가슴이 답답해서 도무지 잠을 잘 수 없었다.
남궁지평은 결국 침상을 털고 일어나 검을 집어 들고 연무장으로 향했다.
검이라도 휘두르면 잡생각이 사라질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훙― 후웅―
‘공격은 보였다. 하지만 막을 수 없었어. 왜지?’
그는 저도 모르게 어제의 비무를 홀로 반복하고 있었다.
아이의 움직임, 검로, 자신의 약점까지 고스란히 떠올리며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어제의 비무를 반복했다.
으직! 쿵!
목검이 부서지고 남궁지평은 그 자리에 털퍼덕 주저앉았다.
“하… 하아….”
밤새 휘두른 목검이 부서지고 나서야 남궁지평은 검을 멈출 수 있었다.
그즈음 되어서야 그는 받아들였다.
‘나는 그 아이를 절대 이기지 못한다.’
느껴지는 기운으로 보아 자신이 내공의 양은 앞설지 몰라도 자신은 아이를 절대 이기지 못한다.
설사 내공을 사용한 비무라 할지라도.
아이와의 격차가 내공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경험. 경험의 차이다.’
남궁지평은 밤새 검을 휘둘러 짓무르고 터진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남궁의 먼 방계인 그는 남궁의 본가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저 남궁이라는 성씨를 믿고 합비로 찾아와 남궁의 검을 익히고 겨우겨우 무사의 문턱을 넘었다.
그러나 남궁의 성씨를 가졌다 하여 다 같은 남궁은 아니었다.
뒷배 하나 없는 먼 방계인 그는 아무리 노력해도 만년 단원의 띠를 벗어날 수 없었다.
분명 검술에선 한 걸음 앞섬에도 내당 무사로 승급하는 것은 언제나 다른 사람이었다.
그 이유를 깨닫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고, 현실을 받아들이기까지 또다시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남궁으로서 높은 자리에 오르고자 하였던 그의 꿈은 시간이 지날수록 나날이 시들어 가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아이의 말이 전부 옳다.’
점차 수련을 게을리한 것이 어제의 패배를 가져왔다.
고작 아이 하나 이기지 못하고 몇 번이나 무릎을 꿇어야 했던 처참한 패배를.
어제의 패배는 아이가 대단한 것도 있지만, 자신이 나약해진 탓이 더 컸다.
“나도 참 한심해졌군.”
언제부터인가 외당 무사 자리에 그저 안주하였다.
검술이야 외당 무사들보다만 뛰어나면 된다 생각하였다.
그것이 결국은 자신을 패배자로 만들었다.
“끙.”
남궁지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 동이 터 올 시간이었다.
이미 잠을 청하기엔 늦은 시간. 오전 점호까지 검이나 더 휘두를 작정이었다.
그가 부서진 목검을 버리고 새로운 목검을 가지러 비무대를 내려가던 때였다.
“엇…?”
남궁지평은 우뚝 멈춰 섰다.
비무대의 계단 아래 어제 검을 나누었던 아이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 왔는지 기척을 느끼지도 못하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에 잠시간 멍하니 서 있던 남궁지평이 황급히 포권을 취했다.
“소협을 뵙습니다.”
지나치리만큼 예의를 다한 인사에 일화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게 예의 차리실 필요 없어요. 어제처럼 편하게 대해 주세요.”
“어제는… 죄송했습니다. 새로 들어온 시비 아이라 착각하여 결례를 범했습니다.”
“결례를 범한 쪽은 제 쪽인 것 같은데.”
오해를 풀어 주기는커녕 검을 맞대었으니.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무릎까지 꿇린 것은 자신이니 굳이 따지자면 피해를 본 건 그였다.
“전 일화라고 해요. 남궁 무사님의 이름을 알 수 있을까요?”
“남궁지평이라 합니다.”
“수련하고 계셨나요?”
일화가 비무대 위를 흘낏 바라보며 물었다.
“예. 소협과 나눈 검이 머릿속에 맴돌아 검을 잡지 않고는 못 참겠더군요.”
“머릿속에 맴돌아요?”
남궁지평이 머쓱한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분해서 말입니다. 소협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나, 어린아이에게 손도 못 써 보고 졌다는 것이 꽤 분하더군요.”
그의 말에 일화는 내심 놀랐다.
어색하게 웃으며 말하고 있지만, 처참히 깨진 상대 앞에서 패배를 인정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자신은 고작 열셋의 아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남궁의 무사가 아이에게 졌다는 것을 그는 당당하게 인정하고 있었다.
“하여 생각이나 털어 볼 겸 검을 휘두르고 있었습니다. 소협께선 이 이른 아침에 어쩐 일이십니까? 수련을 하시려고요?”
“그냥 산책 중이었어요. 연무장을 지나다가 우연히 소리가 들려서 와 봤고요. 본의 아니게 무사님의 수련을 보았네요. 무례를 사과드려요.”
“아닙니다. 저보다 뛰어나신 분께서 봐 주신다면 영광입니다. 어디… 어제보다 나아진 부분이 있었습니까?”
“어제는 검을 휘두르기 위해 휘두르는 느낌이었다면, 오늘은 적을 상대하는 검이던데요? 생각한 상대가 있으셨던 건가요?”
정곡을 찌르는 말에 남궁지평이 움찔, 몸을 떨었다.
일화는 그 작은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그게 저였군요?”
“그, 게… 면목 없습니다.”
남궁지평이 고개를 푹 숙였다.
진 것도 모자라 분하다고 말하고 적이라 상상하며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니.
쥐구멍이 있다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게 뭐 어때서요? 죽은 검보다야 낫죠.”
“…!”
“앞으로도 적을 두고 검을 수련하세요. 그게 제가 되었든 다른 누군가가 되었든요. 멋 부리려고 검을 배운 게 아닌 이상, 검은 누군가를 상대하기 위한 도구니까요.”
어제 본 남궁지평의 검은 적을 염두에 둔 검이 아니었다. 그저 남궁의 검법을 동작으로 익혔을 뿐이지.
그에 비해 오늘의 검은 적을 베는 검이었다.
다소 다급하고 여전히 힘이 과하게 실렸다는 문제가 있긴 했어도, 어제보다는 훨씬 나았다.
“이리 만난 김에 소협께 감히 비무를 청해도 되겠습니까?”
“저도 그러고 싶지만, 팔이 이래서요.”
일화는 소매를 걷어 붕대가 감겨 있는 팔을 보여 주었다.
다친 팔은 검을 잡지 않는 왼팔이어서 하고자 한다면 비무가 가능하겠지만, 길길이 날뛸 의약당주를 떠올리면 자제하는 것이 나았다.
남궁지평이 화들짝 놀랐다.
“다치셨습니까?”
“실수로요.”
“괜찮으신 겁니까? 치료는 받으셨고요?”
“남궁의 의약당주께서 봐주셨어요.”
“아….”
남궁지평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평범한 어린아이가 아니었구나.’
의약당 의원도 아닌 의약당주가 직접 봐줄 정도면, 필시 가문에 중요한 분이시리라.
“아쉽게 되었습니다.”
가능하다면 다시 한번 검을 맞대고 싶었던 그는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소협의 가르침이 제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다행이에요. 팔이 다 나으면 또 한 번 검을 맞댈 기회가 있을 거예요.”
“남궁에 오래… 계십니까?”
“글쎄요… 가능하다면요.”
남궁의 아이로 인정받고 암시가 해결된다면 앞으로도 남궁에 남아 있겠지.
두 가지 모두 해결되지 않는다면 당장 오늘이고 떠날 수도 있는 일이고.
남궁지평의 표정이 밝아졌다.
비록 어린아이일지라도 자신보다 고수에게 검을 배울 기회는 많지 않다.
모두가 같은 훈련을 받는 곳에서 남들보다 한 걸음 더 앞설 수 있는 가르침을 귀히 여기는 것은 당연한 일.
“하면, 계시는 동안만이라도 가르침을 청해도 되겠습니까?”
검을 한 번 맞댄 것만으로도 검에 실리는 기운의 결이 달라졌다.
이 아이에게 검을 배운다면 필시 한 단계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으리라.
남궁지평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건 무인의 인생에 둘도 없는 기회라는 것을.
“제 수련을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계시는 동안만이라도 괜찮으시다면…!”
“네. 좋아요.”
흔쾌한 대답에 남궁지평의 표정이 도리어 얼떨떨하게 풀어졌다.
“저, 정말입니까?”
“네. 봐 드리는 것 정도야 얼마든지요. 다만, 수련 장소는 제가 정해도 괜찮을까요?”
남궁지평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하면 어디서….”
“내일 묘시(卯時_5~7시)에 천객원 연무장으로 오세요.”
“처, 천객원…!”
남궁지평이 숨을 헉, 들이켰다.
심상찮은 아이라곤 생각했지만 천객원이라니…!
하면 이 아이가 가문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그 천객원의 귀빈이란 말인가!
가문의 어르신들이 그렇게도 알아내고 싶어 하는 그 귀빈!
무인으로서의 성취에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 싶었던 아이는 제 인생을 뒤바꿀 수도 있는 존재였다.
제 앞에 내려온 황금 동아줄의 정체에 남궁지평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그를 향해 아이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