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granddaughter of the Namgoong family RAW novel - Chapter 21
21화
* * *
‘아가씨께선 지금, 단단한 알 속에 잠들어 계신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고통과 감정이 무뎌진 것은 어쩌면 아가씨 스스로 선택한 것일 수도 있어요.’
고통의 크기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감정을 없애지 않으면 살 수 없을 정도로 삶이 치열했기 때문에.
‘아가씨를 가두고 있는 알이 깨지려면 노력이 필요해요. 예쁜 것을 보여 주고, 좋은 말을 많이 들려주세요.’
아이의 마음을 두드리는 것이다.
제 속에 꽁꽁 숨어 있는 아이가 제 소리를 듣고 알을 깨고 나올 수 있도록.
‘사랑해 주세요. 많이요.’
그 자리에서 의약당주의 말을 들은 모두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8년.
8년을 돌아 아이는 스스로 돌아왔다.
그렇게 해맑고 밝았던 아이가, 너무나 섬세해서 툭하면 울고 웃던 아이가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왔다.
그렇다 하여 설화가 설화가 아닌 것은 아니잖은가.
어떤 모습이든, 어떤 성격이든 설화는 제 딸이다.
자신이 너무나도 사랑하고 보고 싶었던 딸.
“설화야.”
설화는 제 앞에 무릎 꿇고 앉아 미소 짓는 남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남궁청운이 원래 이렇게 울보였나?’
툭하면 울고 툭하면 웃네.
그 웃음과 울음의 간극을 이해할 수 없어서 설화는 조금은 혼란스러웠다.
제 손으로 죽인 아버지다.
이번 생에서만큼은 그가 원하는 것을 전부 수용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이렇게 어렵다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지?’
남궁청운이 설화의 손등을 부드럽게 쓸었다.
입은 웃고 있는데, 눈은 슬퍼 보였다.
“설화야. 네 이름이 왜 설화인지 아느냐?”
설화가 고개를 저었다.
“눈은 하늘이 내려 주는 가장 아름다운 꽃이지. 너는 새하얀 꽃이 온 세상을 뒤덮는 날 우리에게 찾아왔단다.”
그가 손을 들어 설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남궁무천과는 다르게 썩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저를 바라보며 눈만 깜박일 뿐 손을 피하지 않는 아이를 보며 청운이 픽, 웃음을 흘렸다.
“설화라는 이름은 네 어머니가 지어 준 이름이다. 널 많이, 아주 많이 사랑해 주던 여인이었지.”
“어머니는 어떻게 되셨나요?”
청운의 손이 우뚝 멈췄다.
그의 미소가 조금은 옅어졌다.
“설화를 보내 준 하늘로 올라갔단다. 설화가 우리에겐 너무 큰 선물이라 하늘이 어머니를 데려가셨지.”
‘어머니는 돌아가셨구나.’
그것은 처음 안 사실이었다.
이전 생에 남궁청운의 부인이 없었기에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죽은 여인이 자신의 어머니라는 걸 알게 된 것은 생소한 기분이었다.
‘…?’
또다시 심장이 쿡쿡 쑤시듯 아파 왔다.
아무래도 남궁의 심법을 하루라도 빨리 배우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남궁청운의 말이 이어졌다.
“어머니를 기억하지 못할 테지만….”
무언가를 꾹, 누르듯 잠시 말을 멈추었던 그가 이내 맑은 미소와 함께 설화를 바라보았다.
“네 어머니도 나도 너를 정말 많이 사랑한다. 8년 전에도, 지금도 여전히. 그 사실을 잊지 말거라.”
툭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그를 마주 보며 설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돌아와서 좋아요.”
“…그래.”
그의 손이 다시 조심스럽게, 천천히 움직였다.
잠시간 슬픈 얼굴로 설화를 바라보던 그는 이내 감정을 떨쳐 내듯 짧게 고개를 흔들고는 밝은 미소를 지었다.
그가 설화의 양손을 붙잡았다.
“내일은 아버지랑 거리 구경 갈까?”
“내일이요?”
“너를 찾았다는 공표를 하려면 하루 정도 시간이 걸릴 거다. 기왕 이리 된 김에 네가 어릴 적 앞마당처럼 뛰어다니던 합비의 거리를 보여 주고 싶구나.”
설화는 대답을 망설였다.
‘내일은 남궁의 심법을 배우고 싶은데.’
남궁의 아이로 인정받았으니 이제야 남궁의 무공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공표가 늦어지면 무공을 배우는 것도 늦어지는 게 아닐까?
“네가 어릴 적에 좋아하던 탕후루 집이 있었지. 거기에 가 볼까 하는데.”
하루 정도는 괜찮겠지.
남궁청운이 일찍 도착한 덕분에 생각보다 이르게 남궁의 아이임을 인정받았으니, 하루 정도는.
‘나는 남궁청운의 딸이니까.’
이번 생엔 딸의 역할을 다하기로 했으니까.
* * *
어두운 밤, 남궁가의 그림자 아래 누군가 바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내당으로 들어선 그는 세 개로 갈라지는 길 앞에서 멈춰 섰다.
정면으로 저 높이 천호전이 보였다.
천호전을 잠시간 바라보던 그는 이내 발걸음을 틀어 왼쪽 길로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늦은 밤까지 가문의 업무를 보던 남궁청해가 시선을 들었다.
“들어오십시오.”
누군지 밝히지 않았지만, 문 너머의 기운만으로도 찾아온 이를 알 수 있었다.
“이 공자님을 뵙습니다.”
“황룡대주. 이 늦은 시간엔 어쩐 일이십니까.”
남궁청해를 찾은 이는 남궁의 다섯 무력대 중 하나인 황룡대의 대주 남궁호락.
“천객원 귀빈의 정보를 알아내었기에 보고하러 잠시 들렀습니다.”
황룡대주의 말에 남궁청해의 얼굴에 흥미가 돋았다.
남궁청해는 들고 있던 붓을 가지런히 내려놓고 의자에 등을 기대어 앉았다.
“말해 보십시오.”
“천객원의 귀빈은 어린 여아라 합니다.”
“여아…? 세가의 자식이나 대문파의 후계라도 된다는 말입니까?”
그렇대도 천객원을 열지는 않을 터인데.
“그것이 아니라면 아버님 정도의 고수라던가?”
“그건 아닌 듯합니다. 시비의 말에 의하면 귀빈에게선 세가나 문파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고, 심지어 가진 내력 역시 일류에 미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건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렇긴 하지요.”
시비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의 고수일 수도 있는 일이니.
“한데….”
황룡대주의 입꼬리가 옅게 휘어졌다.
“오늘 아주 재미있는 소식을 들었지 뭡니까.”
“재미있는 소식이라면?”
“일 공자께서 아이와 함께 천객원에 계신다고 하더군요.”
“형님께서 돌아오셨단 말입니까?”
남궁청운은 얼마 전 표행을 떠나 돌아오려면 사흘은 걸리는 먼 거리에 있다고 들었다.
한데, 지금 형님이 이곳에 계시다고? 그것도 천객원의 귀빈과 함께?
‘좋지 않군.’
천객원의 귀빈이라 하면 중원에서도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 이가 형님과 가까이 지낸다면, 필시 형님의 영향력 또한 커질 터.
지금이야 가문을 버리다시피 하고 밖으로 나돌고 있으니 장로회가 자신을 지지하고 있지만, 형님께서 세력을 키우기로 작정했다면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다.
‘아버지께선 형님을 소가주로 세우고 싶어 하시니, 장로회가 언제 마음을 돌릴지 모를 일이지.’
“믿을 만한 소식이 맞습니까?”
알아내기 힘든 소식을 가져와도 별것 아니라는 듯 태연하던 남궁청해가 불안한 내색을 비쳤다.
황룡대주 남궁호락은 그 작은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너무 걱정하진 마십시오. 이 공자께서 생각하시는 그런 만남이 아닌 듯하오니.”
남궁청해의 얼굴이 굳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시비의 말에 의하면 일 공자께서 귀빈을 아주 싸고돈다더군요. 귀빈을 안고 천객원의 정원을 거닐기까지 하였다 합니다.”
귀빈을… 안아…?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남궁청해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황룡대주는 그 모습에 히죽이며 웃었다.
“설마… 설화를 찾았다는 말입니까?”
“곧 알게 되겠지요.”
남궁청해가 혼란스러운 시선을 내렸다.
8년간 머리털 하나 찾지 못한 아이를, 가문의 대부분이 포기한 그 아이를, 정말 찾았다?
설화가 돌아왔어?
그 말은 곧….
‘형님께서 가문으로 돌아오신다.’
“이 공자님.”
남궁청해가 시선을 들어 황룡대주를 바라보았다.
“언제까지고 태평하게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겠습니까?”
가문의 일을 도맡아 하고 묵묵히 힘을 기른다 하여도, 남궁무천은 그에게 소가주의 자리를 허락하지 않았다.
“움직일 때가 된 것이지요.”
자의든 타의든. 때는 있는 법.
마차는 굴러가야 마차다. 앞에서 끌든 뒤에서 밀든, 굴러가는 마차는 쓰임새가 있다.
그 마차에 올라탄 이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마차가 굴러가기를 원하고 있었다.
이제는 그때가 된 것이다.
“일 공자께서 자리를 잡기 전에 서두르십시오. 저희 세 무력대가 이 공자님의 뒤를 받쳐 드리겠습니다.”
* * *
쿵―!
갑작스러운 소리가 천객원의 연무장을 울렸다.
마치 바위가 쓰러지는 듯한 소리였지만, 실상은 적룡 11단의 조장 남궁지평이 쓰러지는 소리였다.
“더, 더는 모, 못 합니다…!”
말 그대로 대자로 뻗은 남궁지평의 얼굴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남궁지평이 눈을 떠 자신을 내려다보는 아이를 올려다보았다.
아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고작 오십 근(五十 斤_30kg)이 힘드신 거예요?”
악의 없는 천진한 말에 남궁지평이 발끈했다.
“고작이라뇨! 팔다리 합쳐서 도합 이백 근입니다! 이백 근이요! 이백 근을 사지에 묶고 내공도 못 쓰게 하면서 검법을 시키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예?”
“남궁에선 이런 걸 안 시키나 보죠?”
“외공을 단련하는 훈련은 있어도 이런 건…!”
설화가 심각한 표정으로 턱을 쓸며 남궁지평의 몸을 훑었다.
‘그래서 하체가….’
“어, 어딜 보시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