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granddaughter of the Namgoong family RAW novel - Chapter 22
22화
* * *
“끄으응….”
남궁지평은 죽을 맛이었다.
어쩐지 무시당하는 기분에 호기롭게 할 수 있다 외친 것까지는 좋았으나, 거기까지.
검법을 펼치던 도중 검을 내지르는 자세에서 아이는 돌연 움직임을 멈추게 했다.
도합 이백 근을 팔다리에 짊어진 채로 멈춰 있으려니, 팔과 다리가 후들거리며 떨려 왔다.
“끄으으응….”
입에선 절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소리를 아이가 들어 주길 바랐으나.
‘왜… 왜 내리라고 하질 않는 거지?’
아이는 턱을 쓰다듬는 채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뿐, 움직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더, 더는 한계야…!’
끝까지 버티려 했지만, 한계가 찾아왔다.
덜덜 떨리는 팔을 이제 그만 늘어트리려던 찰나.
톡.
“…?”
일순간 팔을 부담스럽게 끌어 내리는 힘이 사라졌다.
놀란 눈을 떠서 바라본 정면엔 검 끝에 손을 대고 있는 아이가 보였다.
남궁지평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어떻게 하신 겁니까?”
무게가 사라졌다.
고작 검 끝에 손가락 하나 댄 것으로 오십 근의 힘을 사라지게 하다니?
“사라진 게 아니에요. 추의 무게를 몸 전체로 분산시킨 거죠.”
“그게… 가능한 겁니까?”
추의 무게는 아래로 짓누르는 힘.
짓누르는 힘을 버티기 위해선 팔에 힘을 주어 위로 끌어 올리는 방법밖엔 없을 텐데?
“무사님은 강해요. 정확하게는 힘이 센 편이죠. 다만, 그 힘을 단번에 쓰려는 경향이 있어요.”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렇게 하면 한순간은 위력적인 공격을 할 수 있겠지만, 전투가 길어지면 불리할 수밖에 없어요.”
모든 전투가 일격 필살로 끝나면 좋겠지만, 전투라는 게 마음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호각을 다투어야 할 때도 있고, 때로는 상대가 월등히 강해 버티는 것이 고작일 때도 있다.
지금의 남궁지평이라면 그러한 경우가 더 많을 것이고.
“나보다 강한 상대에게 온 힘을 다해 달려드는 건 죽여 달라는 것밖엔 되지 않아요. 어려운 상대일수록 신중해야 하고, 반격할 기회가 오기를 기다려야 하죠.”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그 기회를 잡기 위해선 기회가 올 때까지 상대를 버텨 내는 힘과 힘의 손실을 줄여 주는 균형 잡힌 육체가 필요하다.
그것이 외공 수련을 하는 이유였다.
“넘치는 힘을 한곳에 쏟아붓는 것이 아닌, 몸 전체에 골고루 싣는 연습을 하세요. 어느 한 곳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팔 하나가 그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9할의 힘이 필요하지만, 몸 전체를 이용하면 1할도 필요하지 않게 된다.
“지금처럼요.”
“하지만… 소협께서 닿으신 곳은 제 몸이 아니지 않습니까? 검 끝에 닿는 것만으로 어떻게 제 힘을 다루신 겁니까?”
“그걸 깨달으시면 보다 높은 경지에 오르실 수 있을 거예요.”
남궁지평의 눈빛이 일순, 반짝였다.
‘신검합일(身劍合一)!’
몸과 검이 하나라는 의미로 절정의 경지에 오른 이들이 깨닫게 되는 경지였다.
‘이 아이가… 절정의 고수라고!’
일리 있는 추측이었지만, 틀렸다.
지금의 설화는 가진 내공만으론 고작 이류에 불과했다. 다만, 내공이 적어졌다 하여 깨달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지만.
‘이 정도 보여 주는 건 가능하지.’
쿵―!
설화가 검에서 손을 떼자마자 남궁지평의 팔이 힘없이 늘어졌다.
온 힘을 소진하고 철퍼덕 늘어진 그였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이전과 다른 빛을 띠고 있었다.
설화는 그의 눈동자 속에서 보다 높은 곳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요?”
남궁지평이 후다닥 일어나 포권을 취했다.
여전히 이백 근의 무게가 버거워 손발이 달달 떨리고 있었지만, 자세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소협의 가르침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소협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깨달음은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힘들진 않으셨나요?”
“힘들었습니다. 아주 많이. 하지만, 필요한 훈련임을 깨달았으니 앞으로도 추를 차고 훈련할 생각입니다.”
“좋아요. 힘을 쓰는 법이 익숙해지시면 차차 무게도 늘려가 봐요.”
“지금보다 더… 말입니까?”
“적어도 한 팔에 오백 근은 가뿐히 들 수 있어야죠.”
“예에?”
남궁지평이 입을 쩍, 벌렸다.
이 훈련이 왜 필요한지 이젠 알겠다.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생각이기도 하고.
그런데 뭐라?
오십 근도 죽겠는데 오백 근?
‘지금보다 열 배는 더 무거운 추를 달아야 한다고? 내공도 안 쓰는데?’
움직이는 게 가능하긴 한 건가?
이쯤 되니 불신이 피어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외람되지만… 소협께선… 얼마나 드십니까…?”
흘낏거리는 지평의 물음에 설화가 한쪽 팔을 걷었다. 아이의 가는 팔엔 지평이 찬 것의 2배 되는 크기의 추 3개가 나란히 채워져 있었다.
“지금은 삼백 근 정도 차고 있어요. 저도 갈 길이 머네요. 같이 열심히 노력해 봐요.”
천진하기 그지없는 설화의 대답에 지평의 입이 더욱 쩍, 벌어졌다.
삼백 근 4개 도합 천이백 근.
훈련 내내 함께 있었으니 아이 역시 그 무게를 계속 차고 있었다는 건데.
‘난… 고작 오십 근으로 죽겠다고 징징댄 건가…?’
이 쓸모없이 덩치만 큰 몸뚱이 같으니라고.
불신을 담아 던진 물음에 자괴감만 남은 남궁지평은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아 참, 내일부턴 수련하고 싶어 하는 무사님들이 있으면 같이 오세요.”
“예…?”
“기왕 하는 거, 다 같이 하면 힘도 나고, 서로 격려도 하고. 좋지 않겠어요?”
“괜찮으시겠습니까?”
“얼마든지요.”
남궁의 뿌리를 튼튼하게 세우는 일인데 괜찮지 않을 리가 없지.
오히려 강해지고자 하는 무사가 많을수록 설화에겐 좋은 일이었다.
남궁지평은 감탄했다.
‘절정 고수가 가르침을 아끼지 않는다니!’
가르치는 것 또한 시간과 노력이 드는 일. 절정 고수나 되는 이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가르침을 준다는 건 둘도 없을 기회다.
그의 머릿속에 11단 조원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 역시 오십 근은커녕 삼십 근도 들지 못할 게 뻔했다.
이 훈련을 같이한다면, 다 같이 강해질 수 있을 터!
“반드시 데려오겠습니다!”
“기왕 데려오는 거 많이.”
“예! 많이요!”
남궁지평의 눈동자 속에 불길이 타올랐다.
* * *
새벽 수련을 마친 후 설화는 씻고 곧장 남궁청운과 함께 거리로 나왔다.
남궁에 들어온 이후 첫 외출이었다.
“사람이 많으니 아버지 손 꼭 잡고 있어야 한다.”
죽립을 눌러쓴 남궁청운이 죽립 아래로 선선한 미소를 지으며 설화의 손을 꼭 붙잡았다.
그는 공식적으로 표행길을 떠나 있는 상태.
합비에서 남궁의 일 공자를 알아보지 못할 사람은 없었다. 굳이 소란을 일으킬 필요는 없으니 정체를 숨기고 다니기로 했다.
편한 외출이라지만 호위는 다섯이나 붙었다.
남궁의 일 공자와 그 자식의 외출이니 과한 보호는 아니었다.
“탕후루 집은 식사 후에 가자꾸나.”
설화는 자신들의 뒤를 따르는 인기척의 숫자를 세어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혹시, 먹고 싶은 게 있느냐?”
설화가 남궁청운을 올려다보았다.
맑게 반짝이는 눈동자에 남궁청운이 쿡쿡, 웃음을 흘렸다.
“뭐든 말해 보거라. 나는 네가 좋아하는 건 다 좋으니.”
“그럼, 제가 맛집을 알아요.”
“맛집을?”
고개를 끄덕인 설화는 청운의 손을 이끌었다.
그녀가 향한 곳은 처음 합비에 도착했을 때 섭무광과 함께 간 객잔이었다.
“만두랑 소면이구나. 나도 정말 좋아하는 음식이란다.”
설화와 청운은 만두와 소면을 잔뜩 시켜서 나누어 먹었다.
청운이 설화의 그릇에 음식을 담아 주자, 설화 역시 그의 그릇에 만두를 덜어 주었다.
그 탓에 청운의 눈시울이 다시 붉어졌지만.
만두와 소면은 다시 먹어도 맛있었다. 남궁의 음식들도 맛이 아주 좋았지만, 이 객잔의 맛을 따라올 순 없었다.
‘풍뢰신이 이 집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겠어.’
남궁의 산해진미를 먹어도 생각나는 만두와 소면은 이 집이 유일할 것이다.
‘이전 생에는 왜 이 집을 몰랐을까?’
이전 생에도 합비에는 자주 왔지만, 이 집은 없었다.
이렇게 음식이 맛있으면 합비를 제집처럼 드나들던 자신이 모를 리가 없었을 텐데.
‘돈을 많이 벌어서 장사를 접었나?’
“잘 먹으니 좋구나. 많이 먹고 많이 커야 한다.”
어느새 감정을 갈무리한 남궁청운이 설화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주던 때였다.
“우리가 언제 돈을 안 내겠다고 했어? 엉? 다음에 같이 쳐서 준다니까! 깜빡 잊고 전낭을 안 가져왔다고!”
두 사람이 앉은 자리에서 두어 탁자 떨어진 곳에서 소란이 일었다.
남궁청운은 죽립 아래로 상황을 살폈다.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면 아이를 데리고 객잔을 나갈 생각이었다.
“아이고, 그렇게 말씀하신 게 벌써 몇 번째인 줄 아십니까… 오늘은 정말 밀린 외상값을 주셔야 저희도 장사를….”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탁자가 부서졌다.
탁자 위에 놓인 그릇들이 떨어지며 큰 소란이 일었다.
“이 주인장이 노망이 났나!”
탁자를 부순 남자가 객잔 주인으로 보이는 노년 남자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아이고오! 살려 주십시오, 나으리!”
“우리가 누군지 몰라서 이래? 엉?”
“압니다! 잘 압니다요! 남궁의 무사님들을 어찌 모르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