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granddaughter of the Namgoong family RAW novel - Chapter 27
27화
* * *
식사는 어제와는 다르게 가주전의 내부에서 이루어졌다.
건물 안에 들어서기도 전에 웃음소리와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설화는 전각에 들어서기 전에 입구에 서서 잠시간 그 소리를 들었다.
‘그놈들을 내가 아주 혼쭐을 내주었지! 저 잘하지 않았습니까, 아버지?’
‘너는 성질을 죽일 필요가 있다. 청산아.’
‘아, 형님께 안 물어봤소! 청해 형님은 꼭 나한테 딴죽을 걸더라?’
이어서 들려오는 하하, 깔깔, 웃는 소리들.
화기애애한 가족의 소리였다.
“….”
설화는 저 목소리의 주인들을 전부 알았다. 저들 중 절반 이상을 제 손으로 죽였으니까.
문득문득 그 사실을 상기할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콕콕 찔리듯 고통이 느껴졌다.
설화는 이 감정 역시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죄책감.’
제 손으로 죽인 이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다가가고, 그들의 가족으로 섞인다는 것에서 오는 죄스러운 마음.
설화는 생각했다.
감정을 느낀다는 건 역시 번거로운 일이라고.
“왔냐.”
기척도 없이 들려온 목소리에 설화가 고개를 돌려 다가온 이를 바라보았다.
비풍검대주 섭무광이었다.
섭무광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잘 어울리네. 자주 그리 입어라. 곱다.”
“….”
“왔으면 들어가지, 왜 그러고 서 있어?”
섭무광이 안쪽으로 고갯짓했다.
“네가 안 들어오니까 가주님께서 너 데려오라시잖냐.”
“그냥, 듣기 좋아서요.”
“뭐가?”
“웃음소리요.”
안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
“전 한 번도 가족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들과 밥을 같이 먹어 본 적이 없어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말이다.
이전 생에는 혈마를 아버지처럼, 혈교인들을 형제처럼 여기기는 했지만, 그들을 진심으로 가족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가족이라기엔 서로를 죽일 기회만 호시탐탐 엿보았고, 누군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어도 허전하거나 공허하지 않았으니까.
“가족이 죽으면 슬플까요?”
뜬금없는 물음에 섭무광의 표정이 굳었다.
아이답지 않은 물음을 던져 놓은 아이의 눈빛은 덤덤하기만 했다.
아이가 감정에 무딘 것도 그것이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식이라는 것도 의약당주에게 들어 알고 있었기에 더 씁쓸했다.
짧은 한숨을 내쉰 그는 이내 표정을 와락, 구기며 설화의 정수리에 딱밤을 때렸다.
“꼬맹이가 무슨 애늙은이 같은 질문을 하고 있어? 그런 쓰잘머리 없는 가정은 하는 게 아니다!”
“생각해 볼 순 있잖아요.”
섭무광이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나라면 그런 생각 할 시간에 무공 수련을 더 하겠다. 내 힘을 길러서 내 가족을 지키면 그만이니까.”
“아….”
설화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 낮게 탄식했다.
그러면 되는구나.
힘을 길러서 모두를 지키면 되는 거야.
그러기 위해 남궁으로 돌아온 건데, 어느새 초연함에 젖어 본분을 망각하고 있었다.
‘정신 차리자.’
갑작스러운 깨달음에 제 볼을 찹, 찹, 때리던 중이었다.
섭무광이 돌연 설화의 팔을 잡아챘다.
“너…!”
그의 눈이 설화의 손에 감긴 천을 보곤 크게 올라갔다.
“또 다친 거냐? 왜?”
“실수로 화병을 깼어요. 깨진 조각을 치우려다가 조금 찢어졌을 뿐이에요. 괜찮아요.”
“넌…!”
순간적으로 발끈하려던 그가 차분히 숨을 골랐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 어린 노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건 괜찮은 게 아니다. 전혀 괜찮은 게 아니야. 알겠냐? 특히 칼잡이한테 손이 얼마나 중요한데…!”
차분히 가라앉힌 노기는 말을 이으며 결국 터지고야 말았다.
“네 몸이잖냐! 네 몸이면 네가 소중하게 아끼란 말이다! 이렇게 어릴 때 다쳐서 생긴 흉은 커서도 안 사라진다고! 네가 아닌 다른 꼬맹이들은 울고불고 난리를 쳤을 거다!”
흉 같은 건 상관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설화는 속으로만 삼켰다.
어쩐지 여기서 더 말했다간 섭무광의 입에서 불이라도 뿜어 나올 것만 같았다.
“…조심할게요.”
설화의 순순한 대답에 섭무광은 그제야 노기를 가라앉혔다.
“앞으로 지켜볼 거니 그리 알아!”
“네.”
“들어가 봐라! 어서!”
설화는 그제야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덕분인지, 때문인지 심란했던 기분은 조금도 기억나지 않았지만, 조금 혼란스러웠다.
식사가 차려진 전각의 방 안에는 설화를 제외한 모두가 이미 모여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문이 열리자, 도란도란 이어지던 얘기 소리가 일순 멎었다.
모여 있던 이들이 멍하니 설화를 바라보았다. 가장 놀란 반응을 보인 것은 설화의 아버지 남궁청운이었다.
“어서 오거라.”
남궁무천이 가장 먼저 그녀를 반겼다.
“문 앞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나더구나.”
설화는 제 뒤를 따라온 섭무광을 슬쩍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여전히 콧김을 뿜어내고 있었다.
“별일은 아니었어요.”
그러나 남궁무천의 시선은 이미 설화의 다친 손을 향해 있었다. 밖의 소란을 전부 들은 것이었다.
섭무광이 이미 그녀를 호되게 혼냈음을 알고 있었기에 남궁무천은 긴 한숨으로 많은 말을 대신했다.
“앉거라.”
남궁청운이 그녀를 향해 다가오라 손짓했다.
설화는 모인 이들의 시선을 받으며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 정말, 정말 예쁘구나. 못 알아볼 뻔하였다.
남궁청운이 그녀의 다친 손을 탁자 아래로 감싸 쥐었다.
― 손은 괜찮은 것이냐? 어찌 된 것인지 얘기는 이따 들으마.
― 네.
“네 소개를 하거라.”
설화는 탁자에 둘러앉은 이들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오기 전에 미리 모여 남궁무천에게 이야기를 들었는지 자신을 보고도 놀란 기색은 없었다.
“안녕하세요.”
“크흡….”
남궁청산이 고개를 홱 돌렸다.
“설화예요.”
누군가의 탄식이 이어서 흘러나왔다.
찾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아이를 찾았다.
남궁청운과 청해, 청산은 소가주의 자리를 놓고 다투는 경쟁자이기 이전에 형제였다.
처음으로 얻은 조카가 살아 돌아왔는데, 기쁘지 않을 수 있을까.
“잘 돌아왔다. 설화야. 어릴 때의 얼굴이 보이는구나. 그간 고생 많았다. 이리 무사하여 다행이야.”
둘째 남궁청해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의 곁에 그의 부인인 연소란과 두 아들 소룡, 웅이 앉아 있었다.
“인사하거라, 소룡아. 너와 같은 해에 태어났지만, 너보다 여섯 달이나 먼저 태어났으니 네 누이다.”
소룡이 표정을 찌푸렸다.
남궁의 장손으로 줄곧 대접받아 온 그였다.
영영 나타나지 않을 것 같던 사촌의 등장이 썩 반갑지도 않은데, 누이라니.
“소룡아.”
“…반갑다.”
분명 누이임을 짚어 줬음에도 그녀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인사였다.
남궁청해가 조금 당황해서 나무라려 했지만, 연소란의 말이 조금 더 빨랐다.
“웅아, 너도 인사해야지.”
설화의 시선이 자연스레 둘째 웅이에게 돌아갔다.
“네. 어머니. 설화 누님 안녕하세요. 누님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전 웅이라고 해요.”
조심스러운 목소리 속엔 반가움이 섞여 있었다. 소룡과는 다르게 진심으로 그녀를 반기는 인사였다.
“나도 반가워.”
“돌아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동글동글한 얼굴에 동글동글한 눈이 참 귀여운 사촌이라고 생각하며 설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남궁청해의 가족과 인사가 끝난 후 다음은 셋째 남궁청산의 차례였다.
청산을 바라보았다.
세 사람 중 가장 큰 덩치의 그는 몸집으로는 남궁무천보다도 컸다.
남궁청산이 훌쩍이던 코를 대충 문지르고 큰 소리로 인사했다.
“천객원의 손님이 너였다니! 아주 놀랐다! 너 어릴 때 이 숙부가 목말 많이 태워 줬던 건 기억하느냐?”
그의 부인 모용연화가 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녀는 거구의 남궁청산과는 달리 몸집이 작고 여리여리한 체격의 여인이었다.
힘을 조금도 쓰지 못할 것같이 가녀려 보이는데, 웃는 얼굴로 살짝 찌른 것치곤 남궁청산은 억, 하며 고통에 몸을 떨었다.
그런 그를 대신하여 모용연화가 인사를 이어 갔다.
“이리 건강하게 만나 천만다행이다, 설화야. 네 스스로 돌아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정말 놀랐단다. 그새 예쁜 숙녀가 다 되었네?”
예쁘게 꾸며 입은 모습에서 과거의 설화를 비추어 본 것인지, 그녀의 입가에 쓸쓸한 미소가 떠올랐다가 금세 사라졌다.
“언제 한번 시간 내서 우리 처소에 놀러 오렴. 네게 주고 싶은 것이 많아.”
그녀가 제 곁에 앉아 있는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소개했다.
“이 아이는 화린이란다. 너는 아마 처음 볼 거야. 화린아, 언니한테 인사해야지?”
모인 이들 중 가장 나이가 어린 남궁화린의 나이는 다섯 살. 설화가 사라진 것이 8년 전의 일이니 두 사람은 처음 만나는 셈이었다.
‘이전 생에는 만난 적이 있지만.’
그때도 만남은 길지 않았던 터라 남궁화린에 대해선 잘 알지 못했다.
화린이 쭈뼛거리며 제 엄마의 팔에 달라붙었다. 시선은 설화에게 고정한 채였다.
“어서 인사하지 않고 뭐 해? 어서.”
모용연화가 짐짓 엄한 목소리로 타일렀지만, 화린은 부끄러운지 엄마의 옷자락에 얼굴을 파묻을 뿐이었다.
모용연화가 난감해하며 말했다.
“얘가 낯을 좀 많이 가려서. 미안하구나. 설화야.”
“괜찮아요.”
어차피 이제는 한 지붕 아래 살게 될 텐데. 굳이 이 자리에서 친해질 필요는 없지.
그때, 남궁화린이 탁자 위에 차려져 있던 음식 중 탕후루 하나를 집어 설화에게 건네었다.
시비들이 부러 어린 화린의 근처에 놓아주었던 것이었다.
“어머나. 언니 주는 거니? 설화야, 화린이가 네게 주는 거래.”
자리가 떨어져 있어 팔이 닿지 않는 설화를 대신해 모용연화가 탕후루를 받아 설화에게 건넸다.
설화는 얼결에 탕후루를 받아 들었다.
조금 당혹스러웠다.
아무런 이유 없는 선의를 받아 본 것은 이전 생을 통틀어 몇십 년 만이었다.
‘….’
설화는 탕후루를 쥔 채 남궁화린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제 엄마의 옷자락 뒤에 숨어서 설화를 훔쳐보고 있던 화린은 설화와 눈이 마주치자 배시시 웃으며 옷자락 뒤로 숨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