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granddaughter of the Namgoong family RAW novel - Chapter 30
30화
남궁지평이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꺾어 제 앞에 다가온 아이를 바라보았다.
“다 하셨어요?”
“예… 천 개… 다 했습니다….”
“역시 천 개 정도는 쉽게 하시네요.”
“…예…?”
남궁지평과 숨을 고르는 단원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지금 되게 어렵게 한 거 안 보이나?
거의 죽으려는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아?
아무리 어린애라지만!
“다음부턴 추를 등에 올려놓는 게 좋겠어요. 이대로는 근골이 단련되기 어려워 보여요.”
심각한 표정으로 내뱉는 그녀의 말에 남궁지평과 단원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추, 추를… 등에… 말입니까…? 오십 근을…?”
그게… 된다고…?
“팔굽혀펴기할 때 팔다리에 차는 건 의미가 없으니까요.”
설화가 널브러져 있는 단원들에게 말했다.
“마보 역시 다리에 차는 건 의미가 없으니 다음부턴 허벅지에 올려놓는 게 좋겠어요.”
단원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죽을 것 같은 마보를 한 시진이나 버틴 것도 다리에 찬 추가 중심을 잡아 준 덕분인데. 뭐?
다리를 빼고 허벅지에 올려?
“그, 그러다가 죽지 않을까요…?”
용기 내어 한 마디 반항을 해 보았지만.
“그 정도론 안 죽어요.”
설화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 말을 하는 표정이 해맑기 그지없어서 더욱 억울했다.
‘악마구나.’
‘조장을 때려눕힐 때부터 알아봤어.’
‘우릴 전부 죽일 셈이야!’
‘때려치워…!’
때려치울 거다!
근육이 전부 파열되어 죽는 것보단 낫겠지!
단원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내일부터 나오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한데.
“이렇게만 하면 여러분도 금방 내당 무사가 되실 수 있겠어요.”
“…!”
“…!”
단원들의 눈이 반짝, 빛났다.
외당 무사들의 꿈은 내당 무사가 되는 것.
남궁의 정예라 불리는 내당 무사가 되어 내당 무사들에게만 전수되는 무공을 익히고 더욱 강해져서 강호에 제 이름을 알리는 것이다.
“정말 이렇게만 하면 내당 무사가 될 수 있습니까?”
아이가 하는 말이지만 천객원의 귀빈이 아닌가?
그러니 믿어도 되지 않을까?
“그럼요. 충분히 가능하죠.”
설화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사들의 안색이 한층 더 밝아졌다.
그들은 이내 내당 무사라도 된 듯이 한층 들떠서 얘기를 나누었다.
수련 도중에도 종종 확인하듯 설화에게 정말인지 물었고, 그때마다 설화는 확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마다 단원들은 더욱 힘내서 수련을 이어 갔다.
다만 한 사람, 조장 남궁지평만 빼고.
수련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힘들지만 한 줄기 희망을 품게 된 단원들은 밝은 얼굴로 숙소로 돌아갔다.
그런 그들을 보내고 설화는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남궁지평에게 말했다.
“내일부턴 적룡단 연무장에서 뵈어요.”
남궁지평이 조금 놀라며 되물었다.
“저희 연무장 말입니까?”
“네. 이제 이곳에 머물지 않을 것 같아서요.”
“떠나시는 겁니까…?”
“떠나는 건 아니에요. 천객원을 나갈 뿐이에요.”
오늘이면 남궁의 아이로 공표되고 천객원을 떠나 내당 전각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천객원의 연무장을 쓸 수 없을 터였다.
“수련은 꾸준히 해야 성과가 있어요. 그러니 게을리할 수 있나요. 내일부턴 적룡단 연무장에서 봬요.”
“예. 알겠습니다.”
“다른 무사님들께도 전해 주시고요.”
“…예.”
전할 말은 전했으니 이만 돌아서려는데, 남궁지평은 어쩐 일인지 움직이지 않았다.
무언가 할 말이 많은 표정이었다.
“하실 말씀 있으시면 하세요.”
설화의 말에 조금 망설이던 그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마 안 될 겁니다.”
“안 되다뇨?”
“내당 무사 말입니다. 저희는 아무리 강해져도 못 될 겁니다.”
남궁지평은 이에 대해 말할까 말까, 많이 고민했다.
내당 무사라는 말에 한껏 들떠서 수련할 의지를 되찾은 조원들을 위해서라도 말하지 않을까도 했다. 하지만.
‘희망이 클수록 절망도 큰 법.’
훗날을 위해서라도 말해야 했다.
고수의 말에 휘둘려 조원들이 헛된 꿈을 품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왜요?”
아이는 천진하게 물었다.
아무리 강한 고수라지만 아직은 어린아이. 모를 수도 있다. 아니,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남궁지평은 차분하게 제 이야기를 꺼냈다.
“저 역시 내당 무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노력한 지 십여 년이 흘렀습니다. 외당에선 나름 실력자라고 평가받고 있지요.”
설화는 잠자코 들었다.
“다른 이들보다 빠르게 조장의 자리에 올랐고, 금세 내당 무사가 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함께 무사 시험을 치르고 올라온 동기들은 한목소리로 그에게 금세 내당 무사가 될 거라고 추켜세웠다.
“저보다 실력이 없는 후배가 발탁되었을 때, 처음엔 무언가 잘못된 줄 알았습니다. 두 번째는 제가 자만하였던 것이라 생각했고, 세 번째는 무언가를 실수하고 있다 생각했습니다.”
검법을 펼칠 때의 자세에 무언가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심법의 구결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부족한 부분을 찾아 고치려 노력하고 더욱 수련에 매진했다.
그러나 승급 시험을 거듭할수록 남궁지평뿐만 아니라 그를 추켜세웠던 이들은 깨달았다.
“열 번의 승급 시험에서 떨어지고 난 후에야 깨달았습니다. 제가 떨어지는 이유는 실력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요. 그것도 누군가 말해 주어서 알게 되었지요.”
‘남궁지평은 아무리 노력해도 내당 무사는 되지 못할 거야.’
‘그의 차례가 오는 날이 있겠어?’
‘외당에서 썩히기엔 아까운 실력이지만… 어쩌겠나. 배경이 없는걸.’
남궁지평은 달관한 표정으로 힘없이 웃음을 흘렸다.
제 상황을 직시하고 나니 그제야 편해졌다.
“전 그저 우물을 벗어날 수 없는 개구리였을 뿐이지요.”
하늘을 바라보고 우물 벽을 오르고 오르지만, 제 힘으로 우물을 벗어나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개구리로 태어난 이상 누군가가 건져 주지 않고는 우물을 벗어나지 못할 신세인 것이다.
“그러니 조원들에게 너무 큰 희망을 주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 아이들은 입단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남궁의 사정을 잘 모르거든요.”
남궁지평이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은 듯 하하, 웃었다.
어린아이에게 남궁의 사정이니, 힘이니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어서 민망했다.
“이제 달라질 거예요.”
“…예?”
“제가 있잖아요.”
남궁지평이 멍한 눈을 깜박였다.
가문의 이해관계에 대해 이야기한 것인데 외부 사람인 그녀만 믿으라니.
절정 고수가 수련을 봐주는 것은 확실히 더할 나위 없는 기회다. 하지만.
‘고작 수련 강도 좀 올렸다고 없던 권력이 생기고, 내당 무사가 될 수 있을 리가….’
역시 아이라 모르는 거구나.
워낙 어른스러워 간과한 모양이었다. 이런 어른들의 이야기는 이해하기 어려울 것인데.
남궁지평은 선선히 웃으며 그녀의 말에 장단을 맞추어 주었다.
“예.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런 그를 설화가 가만히 바라보았다.
“하나만 약속해 주실래요?”
“무슨 약속 말씀이십니까?”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요.”
아무리 힘이 들어도,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을 거라는 막막함이 밀려와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 주시겠다고요.”
너무나도 결연한 눈빛이었다.
장난기 하나 없는 굳은 시선에 남궁지평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예. 알겠습니다. 그거야말로 제 전문이 아니겠습니까.”
십수 년을 해 온 일인데 몇 년 더 못할까.
이미 절정 고수를 만나 가르침을 받으며 잃어버린 열정을 되찾은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몇 년을 놀았는데 이제라도 열심히 해야지요. 혹시라도 기회가 오면 꽉 붙들 수라도 있도록 말입니다.”
설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분명 찾아올 거예요.”
기회. 인생을 바꿀 기회.
놓쳐서는 안 될 일생일대의 기회.
누군가는 그 기회를 잡아 더 높이 도약하는 이들에게 ‘운이 좋았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운이나 우연으로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준비되지 않은 자는 자신의 손에 들어온 기회조차 잡지 못하는 것이니, 기회란 곧 스스로의 노력과 실력으로 만들어 낸 필연인 셈이다.
설화가 그를 보며 마주 미소 지었다.
“제가 도와 드릴게요.”
필연(必然)이 그를 향해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