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granddaughter of the Namgoong family RAW novel - Chapter 35
35화
* * *
기경팔맥(奇經八脈)을 통한 임맥과 독맥을 아우르는 소주천을 한 뒤 십이경맥(十二經脈)을 따라 육체의 곳곳을 따라 흐른다.
청아한 기운은 남궁무천의 거침없던 기운과는 달리 아주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설화의 몸 곳곳으로 흘렀다.
설화가 내공의 운기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세밀하게 움직이는 청운의 배려였다.
‘아직 부족해.’
청운의 인도가 거의 다 끝나 갈 무렵, 설화는 스스로 기운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창궁대연신공(蒼穹大衍神功)의 구결이야 이전 생에 가장 먼저 익힌 남궁의 무공이니 이미 통달했다.
중요한 것은 그 물꼬를 터 주는 것.
‘한 번 본 것으로 배운 셈이 되었으니 마음껏 날뛰어도 되겠지.’
후우우웅….
“…!”
기운을 이끌던 남궁청운이 놀란 눈을 부릅떴다.
인도가 거의 끝나서 기운을 갈무리하려는데, 설화의 기운이 꿈틀거리더니 돌연 폭주하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 돼…!’
심법의 구결과 운기 경로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내공을 운기하면 주화입마에 빠지기 십상.
“설화야, 안 된…!”
화아악―
황급히 설화를 말리려 했던 그의 얼굴이 일순 경악으로 물들었다.
“…!”
그녀의 기운이 성난 황소처럼 거칠고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데.
‘이건… 내가 인도해 준 경로가 아닌가…!’
설화의 기운이 정확하게 자신이 인도해 주었던 경로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이미 이 경로를 알고 있었다는 듯이 내공의 운기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크윽…!’
갈무리하던 제 기운이 설화의 기운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감각에 청운은 황급히 그녀의 몸에서 손을 뗐다.
그러나 설화의 기운은 멈추지 않았다.
더 거칠게, 더 빠르게.
그녀의 기운이 거침없이 날뛰었다.
* * *
후우우우우….
서서히 기운이 잦아들며 설화는 눈을 떴다.
오랜만에 운기를 해서 그런지 몸이 가볍고 상쾌했다.
‘역시 남궁의 심법이야.’
이전 생에도 남궁의 심법이 뛰어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검황을 배출해 낸 무공이다.
기본만 탄탄히 세우면 천하 제일인이 될 수 있을 정도의 상위 무공일뿐더러, 수련을 놓지 않는 이상 끝도 없이 강해질 수 있는 극 상승무공이다.
성장 속도가 다소 더딜 뿐 그만큼 기본이 튼튼하고 무한한 무공이 바로 남궁의 무공이었다.
‘이전 생에도 남궁을 몰락시킬 게 아니었다면 남궁의 무공을 익혀 보고 싶었지.’
머리로는 알되 실제로 익히지 못한 이유는 바로 혈기 때문이었다.
남궁의 정순한 무공과는 상반되는 혈기를 이미 익혔고, 혈공을 익혔기에 내공이 충돌할 위험이 있었다.
하지만 남궁의 무학을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설화는 남궁의 무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절대 무공을 이제야 익히게 되었구나.’
머리로 알던 것을 실제로 깨우칠 때 효과가 있을까, 하였는데. 효과가 있어 다행이야.
“끝났구나.”
설화는 고개를 돌려 의자에 앉아 있는 남궁청운을 바라보았다.
그는 덤덤한 표정을 애써 유지하고 있었지만,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남궁의 심법을 본래 알고 있었느냐?”
“아버지께서 알려 주셨잖아요.”
“내가 한 번 보여 준 것을 그대로 따라 했다고?”
설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의 무공을 전부 알고 있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무공들을 모르는 척하며 엉성한 척을 할 생각도 없었다.
‘연기를 해야 한다면 차라리 천재인 쪽이 낫겠지.’
실제로 이전 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한 자신은 또래보다 뛰어날 수밖에 없으니.
“고작 한 번 보여 주었을 뿐인 심법을 네가 지금 몇 성까지 끌어 올렸는지 아느냐?”
“3성이요.”
무공은 1성부터 12성까지 성취 단계가 있다.
10성을 이루면 무공을 완벽히 익혔다는 의미로 극성(極成)을 이루었다 하고, 12성을 이루어 그 무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 비로소 대성(大成)을 이루었다고 말한다.
“평범한 사람은 3성을 이루기까지 적어도 1, 2년을 할애한다. 그렇게 이루어도 천재라 불리지.”
“그런가요?”
“너는 그걸 불과 두 시진 만에 해내었구나.”
“그렇군요.”
“허….”
남궁청운의 표정이 더없이 황당해졌다.
불가능한 일을 해냈다고 말하는데도 저리도 덤덤한 반응이라니.
좋다고 방방 뛰어도 모자랄 일에 아이는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이 또한 감정이 무디기 때문이겠지.’
놀라움과 동시에 씁쓸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제 자식이 천재라는데, 아니, 천재를 뛰어넘는 만재라는데 싫어할 부모가 있을까.
“네가 이리 뛰어난 무재(武才)였다니. 솔직한 심정으론 지금 당장 뛰쳐나가 온 천하에 소문내고 싶구나.”
“참아 주세요.”
“그럴 생각이다. 네가 싫어할 것 같거든.”
남궁청운이 설화를 마주 보며 선선하게 웃었다.
그의 상기된 표정과 목소리에선 그가 얼마나 놀랐고, 얼마나 감격했는지가 느껴졌다.
천재가 아니라 이전 생의 기억 덕분인데도 자신의 재능에 기뻐하는 남궁청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께가 또다시 간질거렸다.
설화의 입가도 부드럽게 휘어졌다.
* * *
은은한 노을빛이 서서히 산등성이 너머로 사라지고,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 초저녁.
남궁무천은 흑룡대주 남궁혁과 함께 화음현의 가장 높은 전각에서 화음의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아, 저기 오는군요.”
그들이 바라보는 시선의 끝.
화려하기 그지없는 마차 한 대가 거리를 가로질러 성문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마차가 지나가는 길 양옆으로 비켜서며 신기한 눈으로 마차와 그를 호위하는 일행을 구경했다.
“남궁의 마차 아니여?”
“그 있잖아, 이번에 찾았다는 아기씨가 타고 있다던데?”
“그럼 저 마차에 타 계신 분이 8년 만에 찾았다는 남궁의 아기씨인가 보네.”
가려진 장막 너머로 어린 여아의 윤곽이 보였다.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윤곽만은 어린 여아가 확실했다.
“저기 봐요! 남궁 일 공자님이에요!”
“허허, 남궁의 아기씨께서 돌아왔다는 말이 사실인가 보구만!”
근래, 남궁이 잃어버린 아이를 찾았다는 소문은 중원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 소문의 주인공이 나타나자 거리는 더욱 술렁였다.
마차를 이끌고 있는 선두에 남궁청운의 모습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이윽고 마차는 합비의 성문을 넘어 인적이 드문 성의 외곽을 향해 내달렸다.
* * *
한편, 그 시각 남궁 세가의 내당, 운휴각.
설화의 처소엔 세 사람이 둥그런 탁자에 앉아 여유롭게 다과를 즐기고 있었다.
차를 홀짝이는 이는 의약당주 초련. 뚱한 표정으로 설화를 뚫어지게 보는 이는 비풍대주 섭무광.
그리고 탕후루를 바삭거리며 오물거리는 아이, 설화였다.
“너로 위장한다고 그치들이 나올까? 괜히 가주님이나 네 아버지나 헛걸음하는 것 아니냐?”
설화가 입을 오물거리며 동그랗게 뜬 눈을 깜박였다.
섭무광이 흐, 웃음을 흘렸다.
“그리 순진한 표정 지어도 나한텐 안 먹힌다, 요놈아.”
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제 앞에 놓인 찻잔을 단숨에 들이켜곤 본격적으로 묻기 시작했다.
“솔직하게 말해 봐라. 그놈들이랑 너만 아는 신호가 있는 게지? 그러니 그리 확신하는 것이 아니냐? 네가 성 밖으로 나오면 그치들이 나타날 거라고?”
탕후루를 꼴딱 삼킨 설화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렇게 추측할 뿐이에요.”
“고작 추측이라고? 가주님을 움직여 놓고?”
“네.”
설화가 탕후루 하나를 바삭, 씹었다.
입 안을 달콤한 과즙이 순식간에 점령해 갔다.
“허….”
섭무광이 턱을 쓸며 눈썹을 휘었다.
무려 남궁의 가주이자 검황을 말 몇 마디로 움직여 놓고 태연한 모습이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아이의 말에 움직인 가주님도 대단하지만….
“그래. 너 가주님께….”
그때였다.
“…!”
눈앞이 핑글, 휘감겼다.
저도 모르게 덜컹, 일어난 섭무광은 황급히 혈도를 짚어 독이 퍼져 나가는 것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순식간에 어마어마한 수마가 그를 덮쳐 왔다.
“크윽….”
섭무광이 비틀거리며 탁자를 짚었다.
핑글핑글 도는 눈앞에 조금 전 마시고 남은 빈 찻잔이 보였다.
‘차…!’
누군가 차에 독을 탔다.
대체 누가?
그의 맞은편엔 의약당주 초련이 같은 독을 마신 것인지, 탁자 위에 엎어져 있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설화만은 덤덤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설화가 다 먹은 탕후루 막대기를 탁자 위에 가지런히 내려놓았다.
“꼬맹이… 너…!”
“죄송해요.”
섭무광이 눈을 홉떴다.
그녀를 바라보는 눈동자 속에 충격과 배신감, 필사적인 반대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설화가 하려는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만, 그것이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본능적으로 내비치는 감정.
섭무광이 설화에게 무어라 말하려 입을 열었다. 그러나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탁자 위로 쓰러졌다.
설화는 그가 혹여나 바닥으로 넘어지지 않도록 틀어진 의자를 툭, 쳐서 그의 몸을 받치도록 했다.
그러곤 섭무광이 정말 정신을 잃은 것이 맞는지 확인하려 그에게 다가갔다.
설화가 그의 맥을 짚을 때였다.
“어머나, 절 못 믿으시는 건가요?”
간드러지는 목소리가 귓가로 흘러 들어왔다.
시선을 돌려 바라본 곳엔, 의약당주 초련이 턱을 괸 채 멀쩡하게 앉아 있었다.
“약 하나는 확실하다니까요?”
그녀가 설화를 향해 싱긋, 눈꼬리를 휘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