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granddaughter of the Namgoong family RAW novel - Chapter 36
36화
* * *
해가 막 지기 시작하던 무렵, 검은 도복을 입은 세 명의 죽립인이 합비의 거리에 들어섰다.
도복의 가슴엔 화산파를 상징하는 매화 문양이 떡하니 그려져 있었다.
“사부님, 이곳이 합비입니까?”
세 사람 중 가장 나이가 어려 보이는 남아가 죽립을 들어 올리며 거리를 바라보았다.
화산파의 일대제자 유강이었다.
유강의 곁에 서 있던 또 다른 죽립인 역시 죽립을 추켜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곳이 중원의 최대 도시 중 하나인 합비다.”
“이곳에 그 유명한 남궁세가가 있는 겁니까?”
“그래. 천하 10대 고수 중 하나인 천룡검황께서 계신 도시이지. 그러니 우리는 혹여 남궁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행실을 조심, 또 조심하며….”
“검황을 만날 수 있는 겁니까?”
유강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반면, 그런 유강을 바라보는 죽립인의 눈은 흐려졌다.
“유강아, 미리 말하지만….”
“남궁의 검을 볼 수 있겠지요?”
“우리는 이곳에 놀러 온 것이 아니라….”
“혹 검을 맞대 볼 일도 생기겠습니까?”
“우린 남궁의 경사를 축하하러….”
“똥 싸러 간 김에 물도 마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스승님!”
“아니다.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느냐.”
당당하게 가슴을 펴는 유강의 어깨를 스승이라 불린 죽립인이 꾹 내리눌렀다.
‘장문인께선 왜 하필 유강이를 데려가라 하신 것인지….’
잃어버린 대환단을 되찾아 오라는 것까진 좋았다. 대환단을 남궁의 아이가 가지고 가문으로 돌아갔다는 것도 알겠다.
대환단의 행방을 알아보겠다는 목적을 대놓고 드러낼 순 없으니 남궁의 경사를 축하하는 목적으로 남궁에 방문하는 것까지도 좋았다.
한데.
왜. 어째서.
‘유강이를 데려가 보거라. 혹시 아느냐? 남궁의 아이와 친우가 되어 대환단의 행방을 쉽게 알아낼 수 있을지.’
‘남궁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유강이를 데려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유강은 강호 초출이었다.
매화검수에 입단한 것은 오래되었지만, 나이가 어려 제대로 된 임무를 받아 본 적은 없었다.
그러니 이번 강호행이 그에겐 첫 하산이자 첫 임무인 셈.
그래서일까, 들떠도 너무 들떴다.
한숨을 푹 내쉰 스승이 이내 더없이 진지해진 시선으로 유강의 어깨를 붙잡았다.
“기억하거라, 유강아. 우리의 목적은 남궁의 경사를 축하하는 것이다. 소란을 피워선 아니 된다.”
“예, 스승님! 저만 믿으십시오!”
네가 제일 걱정이다.
한숨으로 대답을 대신한 죽립인은 시선을 돌려 활기찬 합비의 거리를 바라보았다.
합비의 거리는 날이 저물고 있음에도 여전히 활기차고 생기가 가득했다.
어딘가 어수선한 기분도 드는 것이, 역시나 중원의 남과 북을 잇는 요지다웠다.
“가자. 날이 곧 저물겠다. 오늘은 근처 객잔에서 묵어야 하니 서두르자꾸나.”
그들은 이내 합비의 인파 속으로 섞여 들어갔다.
* * *
검은색의 무복으로 옷을 갈아입은 설화가 밖으로 나갔다.
“어쩜! 우리 아가씨 어두운 색도 잘 어울리시네요!”
초련이 환하게 웃으며 설화에게 검은 천을 내밀었다.
설화는 머리를 질끈 동여맨 뒤 검은 천을 둘러 묶어 하관을 가렸다.
그녀의 모습은 어둠 속에 스며들어 은밀하게 움직이는 완연한 살수의 것이었다.
검은 천 위로 날카롭게 번득이는 눈동자를 마주하며 초련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녀의 눈빛 속엔 살기가 가득했다.
마치 먹잇감을 절대 놓치지 않는 맹수의 눈빛이었다.
“…약속하신 대로 전 이번 일에서 빼 주셔야 해요? 전 이대로 잠들게요?”
섭무광의 눈을 속이기 위해 쓰러진 척했던 초련이었다.
제 정체를 들킬 위험에 설화를 도왔지만, 이 일이 알려지는 것 역시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설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태어나 과거를 없애지 않는 이상 혈왕독은 제 말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기왕 이용하는 거, 아무도 몰라야 오래 써먹을 수 있었다.
“몸조심하세요. 아가씨.”
초련이 설화를 향해 허리를 깊이 숙였다.
설화는 그런 그녀를 뒤로하고 창을 통해 방을 빠져나왔다.
탓, 타닷!
남궁세가의 내당, 기울어진 햇빛이 닿지 못한 그늘을 타고 한 인영이 빠르게 움직인다.
순찰하는 무사들의 말소리에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긴 인영은 무사들이 지나간 후 다시 빠르게 이동했다.
타닥! 탓!
침입자를 대비하여 가문 내에 설치된 기관진식은 그녀에겐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익숙하게 기관진식을 피해 가며 순식간에 남궁의 담을 넘어갔다.
파삭, 파사삭!
남궁을 빠져나온 설화는 북적이는 길을 피해 도시를 벗어났다.
남궁청운의 일행이 빠져나간 성문과는 반대되는 방향이었다.
설화가 향하는 곳은 합비의 거리와 남쪽의 거대 호수인 소호(巢湖)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산.
수풀이 스치고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만이 그녀의 움직임을 알렸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닿지 않는 길을 택해 달리는 와중에도 설화는 계속해서 뒤를 살폈다.
‘그’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내달리기를 한참, 마침내 설화는 도심에서 떨어진 숲속에 다다라서야 멈춰 섰다.
파삭, 파사삭….
수풀이 바람에 흔들렸다.
아니, 바람은 어디에서도 불어오지 않았다.
설화는 검자루에 손을 얹었다.
‘하나… 둘….’
검자루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셋.’
카앙―!
정확히 3초의 시간이 흐름과 동시에 설화의 뒤편에서 비수가 날아왔다.
쉭― 쉬쉭―
첫 비수를 시작으로 약속이나 한 듯 그녀의 주위에서 비수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캉! 카캉!
설화는 그 자리에서 돌며 날아오는 순서대로 비수들을 쳐 냈다.
어떤 것은 검으로, 어떤 것은 발을 휘둘러 비수의 면을 정확하게 차 냈다.
쉬쉭! 쉭!
카캉! 캉!
그렇게 비수를 쳐 내기를 한참, 설화의 눈빛이 한순간 검을 휘두르는 사이에서 번득였다.
카앙―!
설화가 검에 공력을 실어 비수 중 하나를 비스듬히 쳐 냈다.
그러자 비수는 날아온 속도보다도 빠른 속도로 날아온 방향을 향해 되돌아 날아갔다.
쉐에엑― 캉!
“큭….”
어둠 속에서 미미한 신음이 들려왔다.
설화가 그곳을 검 끝으로 겨누었다.
“나와.”
잠시 후,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의 손가락 사이에는 손바닥 길이의 날 선 비수가 쥐여 있었다.
“안녕. 파월아.”
파월이라 불린 남자가 손등으로 볼을 슥, 쓸었다. 비수에 스친 것인지, 그의 얼굴에 난 긴 상처에서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제 손등에 묻은 피를 확인한 그의 입꼬리가 깊게 휘어졌다.
“무식한 건 여전하시군요. 소루주님.”
“뭘 배웅까지 나왔어. 어련히 잘 갈 텐데.”
“무얼 그리 인사도 없이 급히 가셨습니까?”
“우리가 인사하고 다닐 사이는 아니잖아.”
“…설마 그런 인사겠습니까?”
파월이 웃음을 흘리며 비수를 집어넣고 품에서 단도를 꺼내 들었다.
달빛이 반사되어 번쩍이는 은빛 단도를 보며 설화는 여유롭게 검을 다잡았다.
그녀의 눈가가 선연한 빛을 내며 휘어졌다.
“아직도 주제 파악을 못 한 모양이구나, 네가 나한테 덤빌 생각을 다 하네.”
파월의 입매가 씨익, 휘어졌다. 덩달아 그의 입가에 그어진 흉터 역시 비뚜름하게 휘어졌다.
“당신이 루주님을 배신하고 도망쳤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기쁘던지.”
그의 얼굴에 벅찬 감격이 떠올랐다.
“왜인지 아십니까?”
“안 궁금한데.”
“드디어 네놈을 죽일 수 있으니까.”
파월의 말투가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그를 바라보는 설화의 시선이 낮게 가라앉았다.
파월은 그 반응이 재미있는지 실실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난 처음부터 네놈이 맘에 안 들었다. 별것도 아닌 게 소루주라니. 루주님이 널 예뻐하지만 않았어도 넌 아무것도 아닌 주제에 말이야?”
그가 단검의 끝으로 제 관자놀이를 위태로이 긁었다.
“그래서 한 번쯤은 제대로 붙어 보고 싶었지. 궁금하기도 했고. 저 어린 소루주를 죽이면… 내가 소루주가 될 수 있을까, 하고.”
어둠 속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은 음침하기 그지없었다. 휘어진 입술 새로 드러난 잇새 역시 소름 돋을 정도로 검붉었다.
파월이 크큭, 웃으며 단검을 추켜들고는 허공을 가로로 그었다. 그의 시야 속에서 단검은 설화의 목을 베었다.
“어떠냐? 네 목을 가져가면 교주님께서 나를 예뻐해 주실까?”
파월의 몸에서 짙은 살기가 서서히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당장에라도 그녀에게 달려들어 검을 휘두를 것만 같은 섬뜩함이었다.
자신을 향해 짓쳐들어오듯 쏘아지는 기운에도 설화의 표정은 무감했다.
그것을 두려움이라 생각한 것인지, 파월의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늙은이 발바닥이나 핥을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검은 천 아래로 설화의 입술이 부드럽게 호선을 그렸다.
“역시 넌 개만도 못한 놈이구나. 파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