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granddaughter of the Namgoong family RAW novel - Chapter 38
38화
살의(殺意).
사람을 죽이려는 마음. 의도. 생각.
그것은 오랜 시간을 살수로 살아온 설화에게 있어 더없이 자연스러운 본능이었다.
상대를 죽인다. 그리고 살아남는다.
살아남기 위해서 그녀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오로지 죽음뿐이었다.
혈마에게 그렇게 배웠다.
그 오랜 시간의 학습은 습관이 되었고, 본능이 되었다. 이제는 결코 지울 수 없는 설화의 일부가 된 것이다.
‘붉은 기운.’
파월과 싸우며 제 기운이 붉은색으로 변해 갈 때 설화 역시 어렴풋이 느꼈다.
남궁의 심법을 익혔지만, 자신의 기운은 결코 푸르지 못하리라는 것을.
기운의 색은 무인의 마음가짐을 대변하는 것이라 하였다.
자신은 푸른 하늘을 동경하지 않는다. 미래를 아는 이상 결코 그럴 수 없다.
“핏빛 하늘을 반기는 이는 없지. 크크크… 네 손에 묻은 피가, 네 그 잔혹한 심성이 결국 네 발목을 잡는구나!”
푸욱―!
광기 어린 웃음을 흘리던 파월의 안색이 일순간 하얗게 질렸다. 파월의 홉뜬 눈동자가 도르륵 굴러 느리게 제 옆을 향했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얼굴이 어느새 제 옆으로 다가와 있었다.
“개면 개답게 시키는 일만 했어야지.”
콰득.
다친 어깨를 또 한 번 관통한 그녀의 검이 박힌 채로 비틀어졌다.
“끄으윽…!”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면….”
“자, 잠까…!”
파월이 다급히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죽는 거야.”
촤아악―
날카로운 검날이 파월의 팔을 갈랐다.
그녀의 검엔 어느새 붉은 기운이 가득했다.
“끄아아아악!”
파월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며 무너졌다.
“내, 내 팔…! 아아아악!”
고통과 함께 허전함이 밀려왔다.
제 몸과 분리되어 떨어져 있는 팔을 본 그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이, 이런 미친…! 크아악!”
파월이 핏발 선 시선을 들어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는 이내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녀의 주위를 둘러싼 기운은 어느새 타오르는 듯한 붉은빛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몸에 난 잔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마치 기운에 뒤섞이는 듯한 기묘한 느낌. 그럼에도 감정의 동요조차 없는 표정.
그 모습은 마치 지옥도 속의 악마였다.
‘죽는다!’
죽을 거야!
저 악마는 분명 자신을 도륙 내고 말 것이다!
‘그 전에…!’
파월이 황급히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러나.
푸욱―
“크아악!”
순식간에 날아온 비수가 그의 손을 관통했다. 파월이 설화에게 날리던 그 비수였다.
잘그락.
설화는 파월의 손에서 떨어진 물건을 집어 들었다.
그가 꺼낸 것은 붉은 줄이 묶인 방울이었다.
짤랑―
“…!”
맑은 방울 소리가 울리자, 설화는 순간적으로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현실과 동떨어져 귀가 먹먹해지고 눈앞이 어두워지는 감각이었다.
이성이 완전히 끊어지기 직전, 설화는 가까스로 정신을 다잡았다.
혹여 방울이 울리지 않도록 방울을 손에 쥐는 순간.
“…!”
퍼펑―!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새하얀 연기가 두 사람을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콜록, 콜록!”
반사적으로 두어 걸음 물러나며 입과 코를 가렸지만, 그 짧은 순간 들이마신 연기에 기침이 터져 나왔다.
부연 연기 너머로 파월이 도망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콜록…!”
눈앞이 붕, 뜨듯 부옇게 일어나는 것으로 보아 그저 평범한 연막탄이 아닌 모양이었다.
설화가 연기 너머로 멀어지는 파월의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타다닷!
‘괴물 같은 자식!’
분명 내공을 전부 몰아냈으면서 대체 어떻게…!
젠장,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독연막탄이라도 가져오는 건데! 꼴사납게 수면탄이나 던지고 도망가는 꼴이라니.
‘소루주의 무위가 이토록 강했다는 말인가?’
고작 열 몇 살이라고 들었는데?
거기다 루주께서 내리신 내공마저 버렸으니, 분명 자신이 압도하여야 정상인데!
‘젠장!’
이마에 맺힌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고 잘린 팔에서 끔찍한 고통이 온몸을 헤집었다.
그러나 그의 다리는 멈추지 않았다. 달리는 것을 멈추는 순간, 날카로운 검날이 제 목을 파고들 것만 같았다.
마치 굶주린 맹수에게 쫓기는 감각.
죽음이 제 뒷덜미를 금방이라도 낚아챌 것만 같은 두려움.
흐르는 땀이 눈 속으로 흘러들어왔다. 그 탓에 눈앞이 흐려져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던 그때였다.
푸욱―
“…!”
오른팔에 날카로운 고통이 느껴졌다.
파월이 공포에 질린 눈으로 제 오른팔을 돌아보았다. 그와 동시에.
촤아악―!
“크아악!”
은빛 검날이 그의 팔을 갈랐다.
제게 남은 한 팔마저 이질적으로 힘없이 나가떨어지는 것을 마지막으로, 파월은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컥! 으윽…!”
속도를 이기지 못한 몸이 한참을 굴러 커다란 나무에 큰 소리를 내며 충돌했다.
“커헉!”
검붉은 핏줄기가 입술 새로 터져 나왔다.
눈앞이 어질어질해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몸을 세우고 싶었지만, 땅을 짚을 팔이 없어서 그대로 엎어져 있어야만 했다.
볼품없이 스러진 그의 앞에 작은 발이 저벅저벅 다가왔다.
공포에 질린 시선을 든 파월은 저도 모르게 흠칫, 몸을 떨었다.
살기를 머금은 검은 눈동자가 여전히 고요한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분명 수면탄을 들이마셨을 것이 분명함에도 눈빛은 조금도 흐릿해지지 않았다.
파월은 공포에 질려 무작정 목숨을 구했다.
“사, 살려 줘… 아니, 살려, 살려 주십시오. 소루주님….”
설화가 무릎을 굽혀 그의 앞에 앉았다.
그녀의 손이 다가오자 파월이 질끈 눈을 감았다.
‘죽는다!’
탓. 타탓.
“?”
파월의 예상과는 다르게 설화는 그를 죽이지 않았다.
파월의 몸을 일으켜 세운 설화는 그의 혈도를 짚어 출혈을 더디게 했다.
그러곤 파월의 상의를 찢어 그의 절단된 양팔을 꽉 묶어 지혈했다.
“…?”
파월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누가 보면 자른 사람이 아닌 것처럼 정성스러운 손길이었다.
파월이 울컥해서 소리쳤다.
“뭐 하는 짓이냐! 이럴 거면 그냥 죽여!”
설화가 고개를 기울였다.
“방금은 살려 달라며?”
“윽…!”
“그리고 난 애초에 죽일 생각 없었어.”
“…뭐?”
처치를 끝낸 설화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털었다.
그녀의 눈매가 살짝 휘어졌다.
“내가 왜 그 사람이 원하는 일을 해 주겠어.”
혈마가 파월을 자신에게 보낸 것은 파월과의 싸움에서 자신이 파월을 죽이기를 바라서일 터다.
오로지 살인(殺人)으로 존재를 증명하는 살수. 그 살수의 본능을 끌어내어 각인시키려는 것이다.
‘어디를 가든 살수로 길러진 너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설화의 표정이 더없이 차가워졌다.
혈마는 그런 자다.
마치 모든 상황을 제 손 위에 올려놓고 모든 사람을 장기 말처럼 사용하여 스스로 판을 주도하려 하는 자.
그리고 불과 얼마 전까지, 자신은 혈마의 가장 다루기 쉬운 말이었다.
“난 너를 죽이지 않을 거야.”
그렇다고 살려 두기엔 위험하니 양팔을 잘랐다.
양팔이 잘렸으니 사실상 쓸모없어진 파월은 화오루로 돌아가는 즉시 혈마의 손에 죽임을 당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넌 반드시 살아야 해. 그 사람에게 전할 말이 있거든.”
“말을… 전하라고?”
정말 살 수 있다는 희망에 파월의 얼굴이 밝아졌다.
“뭐, 뭐라고 전하면 되지?”
“난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뭐?”
“난 이제부터 당신이 아닌 남궁의 검으로 살 거라고. 그러니 당신과 나는 적이라고.”
파월이 멍하니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내내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던 그녀에게서 처음으로 분노라는 감정이 느껴졌다.
“가서 똑똑히 전해.”
“너….”
눈물을 쏟지만 않을 뿐 그녀에게선 들끓어 오르는 울분이 느껴졌다. 단지 지난 8년 만이 아닌 그보다도 깊은 분노와 슬픔의 감정이.
파월은 그녀를 처음 만난 날을 떠올렸다.
어느 날 갑자기, 그분이 데려온 아이를.
‘흐아아앙―! 엄마하아아아! 아빠아아아!’
그곳은 지옥이었다.
그분은 강한 아이들에게 음식과 입을 옷, 돈을 주면서도 약한 아이들이 철저하게 짓밟히는 것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살아남기 위해선 친구를, 형제를 죽여야 하고, 먹을 것이 없어서 때로는 쥐와 죽은 시체마저 뜯어 먹으며 살아야 하는 곳이었다.
도망이라도 치려 하면 다음 날 시체로 발견되기 일쑤인 곳에 사는 아이들이 바라는 것은 오직 한가지였다.
‘그분의 눈에 들어 더 많은 음식과 옷을 받는 것.’
아이는 처음부터 그곳에 어울리지 않았다.
귀한 집안의 자식인 것이 분명한 아이는 사흘이고 이레고, 떼쓰며 울기만 했다.
밥을 제대로 먹지도 않고 엄마와 아빠만 찾으며 울고 또 울었다.
아이를 돌보는 건 귀찮은 일이었지만, 파월은 다른 아이들이 아이를 건드리지 못하도록 지켜 주었다.
이 임무를 잘 수행하면 그분의 눈에 들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파월에게 일화는 출세의 길이자 자신을 좁고 더러운 움막에서 구해 줄 동아줄이었기에, 성의껏 아이를 돌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이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어느 날, 그분이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가 돌아온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