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granddaughter of the Namgoong family RAW novel - Chapter 42
42화
* * *
설화가 남궁무천을 바라보았다.
잘못은 했으나, 후회는 하지 않았다. 십이 월은 자신이 움직이지 않는 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테니까.
그건, 남궁무천이 못 미덥기 때문이 아니었다.
“제가 끌어들인 문제이니 제가 해결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가문의 어른들을 속일 정도의 책임감이더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절 보내 주시지 않으셨을 거잖아요.”
“너를 가두려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보호하려 한 것이지.”
“할아버지.”
설화가 고개를 들어 그의 시선을 마주했다.
흔들림 없는, 더없이 강직한 시선이었다.
“굶으라고 하시면 굶고, 매를 맞으라 하시면 맞을게요. 사흘이 되어도 좋고 일주일이 되어도 좋아요.”
“…뭐?”
“내리시는 벌은 달게 받을게요. 원하시면 전부 받을게요. 그렇게 해서 할아버지와 가문 어른들의 화가 풀리실 수만 있다면요. 그러니….”
섭무광을 속이고 담을 넘을 때부터 벌을 받는 것은 각오한 바다.
그러니 어떤 벌도 두렵지 않다.
다만, 설화가 두려운 건 다른 것이었다.
“제 손발을 묶지만 말아 주세요.”
아이라는 이유로 보호라는 명분 아래 통제받고, 감시받는 것.
그리하여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
미래를 알면서도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채 이전 생과 똑같은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이, 설화에겐 가장 두려운 일이었다.
“전 보호받기 위해 돌아온 게 아니에요. 저들이 두려웠다면 아무도 없는 산속으로 들어가 숨어 버렸을 거예요.”
회귀 후 잠깐은 혈마가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숨어들어 죽을 때까지 조용히 사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남궁을 대적할 일도, 이용당할 일도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내가 사라진다고 남궁이 무사할까?’
‘아니.’
자신이 사라지면 혈마는 남궁의 또 다른 아이를 데려와 천멸검으로 키울 것이다. 직계가 아니더라도 방계에서 적당한 아이를 찾아내 남궁의 손으로 남궁을 무너트렸을 것이다.
혈마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는 것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사람이니까.
그럴 바에는 혈마의 관심을 제게 묶어 두는 것이 나았다. 그러면 적어도 남궁의 다른 아이들은 안전할 테니.
“저는 싸우기 위해 돌아왔어요. 싸우기 위해 돌아왔는데, 싸우지 못하게 하시면 전 더 이상 이곳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어요. 할아버지.”
“너….”
무어라 말하려던 남궁무천의 입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도로 닫혔다.
아이의 시선은 당당했다.
아이는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스스로의 선택을 부끄러이 여기지 않았다.
남궁무천은 깨달았다.
‘이 아이의 신념은 꺾을 수 없겠구나.’
어젯밤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아이는 같은 선택을 하고, 스스로 싸우기를 선택했을 것이다.
설화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이 복잡했다.
제 선택에 당당함에도 벌을 내려 달라 하는 아이에게 무어라 할 수 있을까. 그 벌이 당연하다는 듯 체벌이라 생각하는 아이에게 말이다.
하나, 그렇다 하여 어찌 할아비 된 자로서 아이를 위험에 내버려 둘 수 있단 말인가.
“쉽게 죽지 않을게요.”
“….”
설화의 마지막 말은 남궁무천의 복잡한 심중을 더욱 뒤흔들었다.
죽지 않겠다는 말.
그것은 남궁무천이 진정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에 할 수 있는, 설화로선 최선의 약속이었으니까.
“최선을 다해 살아남을게요. 다치지 않으려 노력할게요. 그러니….”
“….”
“제가 죽지 않도록 지켜 주시면 안 될까요?”
남궁무천이 낮은 한숨을 내쉬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감정도, 감각도 무딘 아이다.
역설적이게도, 그렇기에 아이는 제 감정을 숨기는 법을 몰랐다.
아이의 올곧은 태도는 언제나 진심이었고, 진실이었다.
그러니 가두어 놓으면 집을 나가겠다는 말 역시, 한낱 어린아이의 투정이 아니리라.
‘힘겨운 삶을 살아왔으니 이제는 그만 예쁘게만 자라 주길 바랐건만.’
아이는 기어이 가시밭길을 가려 한다.
피 튀기는 전쟁 속에 뛰어들려 하고 있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으랴. 그 자식을 이겨 먹는 손녀 자식이니, 처음부터 이것은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채삼꾼에게 범이 무서우니 산을 오르지 말라 할 수는 없는 법이지.”
무거운 한숨이 뒤섞인 목소리가 그의 입에서 나직이 흘러나왔다.
“네가 싸워야겠다면 더는 너를 막지 않으마.”
“…!”
“단.”
남궁무천이 눈을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이 한층 진중해졌다.
“너도 나의 뜻을 따라 주거라. 나는 가주로서, 네 할아버지로서 너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몸이다.”
설화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무천이 손가락 하나를 펴 들었다.
“첫째. 다시는 이번처럼 나를 속이지 말아라. 나뿐 아니라 가문의 어른들을 속이고 혼자 행동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네가 무엇을 하려거든 적어도 내게는 알리거라.”
“네. 할아버지.”
남궁무천이 두 번째 손가락을 폈다.
“둘째. 네게 호위를 붙여 줄 것이다. 네가 아무리 어른스럽다 하나, 넌 아직 열세 살이다. 네가 방년(芳年_20세)의 나이가 될 때까진 가문의 보호를 받거라. 다만, 네 경지가 초절정의 극에 이른다면 그 또한 강제하지 않으마.”
초절정의 극은 일평생을 무학에 바쳐도 이루지 못할 수도 있는 경지.
그러나 남궁무천은 설화가 머지않아 그 경지에 도달할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설화 역시 이전 생에서 이미 그 이상의 경지에 올라 보았기에 그리 부당한 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스물, 초절정의 극. 비슷한 시기가 되긴 하겠지만….’
더 노력하면 그보다 이른 나이에 성취를 이룰 수도 있을 것이다.
설화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할게요.”
말도 안 되는 조건이라며 반발할 것을 예상한 것은 아니지만, 아이의 대답은 지나치게 자신 있었다.
마치 자신이 초절정의 극에 다다를 것을 확신하고 있는 투였다.
설화를 가만히 바라보던 남궁무천은 결국, 헛웃음을 흘렸다.
“이 안쓰러운 것을 어찌하면 좋을꼬.”
“…?”
“설화야.”
남궁무천의 두툼한 손이 설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여전히 바위 같은 손이었다.
“혼자 너무 애쓰지는 말거라.”
“….”
“너와 나는 가족이 아니냐. 네가 남궁을 생각하는 만큼, 나 또한 너를 생각한다. 그러니 필요할 땐 이 할아버지에게 도와 달라 말하여도 괜찮다.”
‘가족….’
설화는 저도 모르게 그 단어를 입 안에서 읊조렸다.
가족이라는 개념은 머리로는 알지만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가족이 무엇이기에 필요할 땐 자유로이 도움을 청할 수 있단 말인가.
아니, 도움뿐이랴?
이전 생에 남궁의 사람들은 서로를 위해 목숨을 내어 놓고 서로를 위해 기꺼이 고통을 감내했다.
심지어는 남궁청운조차도 20년이 넘는 시간을 원수로 지냈던 자신을 위해 목숨을 버리지 않았는가.
대체 가족이 무엇이기에.
“….”
설화가 상념에 젖어 있는 사이, 제 손 아래에서 가만히 머리를 숙이고 있는 손녀를 바라보던 남궁무천은 씁쓸한 웃음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설화가 그런 그를 올려다보았다.
“네 아비가 돌아올 때가 되었으니 나는 이만 가 보마.”
설화의 눈이 동그래졌다.
놀란 기색으로 깜박이는 눈을 보던 남궁무천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내게 할 말이 있느냐?”
설핏 찌푸려진 얼굴로 잠시 망설이던 설화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어 왔다.
“벌을 내리지 않으시나요?”
남궁무천의 미간이 꿈틀, 떨렸다.
그가 또다시 피곤한 한숨과 함께 눈가를 쓸어내렸다.
“설화야.”
남궁무천이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의자에 앉아 있던 설화와 눈높이가 같아진 그가 설화의 어깨를 붙잡고 시선을 맞추었다.
“약속하마.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때리지도, 굶기지도 않을 것이다.”
“…왜요?”
그것보다 더 확실한 벌이 있다는 말일까?
“네가 8년간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모르지만, 남궁에선 잘못한 아이에게 체벌을 내리지 않는다.”
어깨를 붙든 손에 힘이 실렸다.
“벌이란 잘못한 아이가 깨달을 수 있도록 어른으로서 지도해 주는 방법의 하나일 뿐, 결코 그 아이에게 해를 가할 이유가 될 순 없다.”
설화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무천의 말이 전부 이해되는 건 아니었지만, 벌을 주지 않는다는 말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네가 어른들을 속인 것은 잘못하였지만, 무사히 돌아와 주었으니 이번은 넘어가 주마.”
남궁무천은 설화의 머리를 다시금 쓰다듬어 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만 쉬거라.”
그가 인사를 한 후에 몸을 돌려 설 때였다.
제 손을 꽉 쥐어 잡는 아이의 힘에 남궁무천은 반쯤 돌아간 몸을 돌려 아이를 보았다.
“할아버지.”
여전히 양손으로도 잡히지 않는 남궁무천의 크고 두툼한 손을 꼭 붙잡은 채로, 설화가 말했다.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