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granddaughter of the Namgoong family RAW novel - Chapter 48
48화
* * *
‘할부지! 할부지! 이거 봐요! 나 오늘 흑뇽 아찌하테 검쥴 배어떠!’
아이가 목검을 처음 잡은 건 네 살 무렵이었다.
검을 제대로 잡을 줄도 몰라서 검과 함께 핑그르르 돌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어쩌다 넘어져 상처라도 나면 울음을 터트리기 일쑤였다.
그래도 좋다며 달려와 제게 검술 대련을 해 달라고 조르곤 했는데.
8년 만에 돌아온 아이는 살수가 되어 있다.
그것도, 남궁을 무너트리기 위한 살수가.
“이 할아버지가 너를 더 일찍 찾아 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제 품에서 고요히 잠든 손녀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남궁무천의 표정이 씁쓸했다.
아이의 무위는 제 예상보다도 뛰어났다. 그만큼 아이가 고생했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남궁에 돌아와서도 제가 가진 검법을 숨기느라 얼마나 애가 탔을꼬.
이제야 남궁에 돌아와서도 불안해하였던 아이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남궁의 살수로 길러진 만큼 남궁을 노리는 세력이 있다는 걸 아는 아이는 얼마나 초조했겠는가.
“으음….”
아이가 제 품에서 미간을 찌푸리며 뒤척였다.
어떤 꿈을 꾸는지, 잔뜩 찌푸린 표정이었다.
남궁무천은 아이의 몸에 제 기운을 조금 더 불어넣어 주었다.
그러자 아이의 표정이 거짓말처럼 편안해졌다.
이윽고, 아이가 부스스 눈을 떴다.
잠시 멍한 표정으로 눈을 깜박이던 아이는 남궁무천을 보고는 눈을 부릅떴다.
툭.
아이가 내지른 주먹을 남궁무천은 손바닥으로 가볍게 막았다.
“잘 잤느냐?”
아이의 눈이 다시 크게 올라갔다.
“죄송해요.”
“괜찮다.”
설화는 몸을 일으켰다.
자신이 누워 있던 곳이 남궁무천의 품속이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조금 놀랐다.
‘청룡(靑龍).’
꿈속에서 설화는 피로 뒤덮인 들판에서 사람을 죽이고 또 죽였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얼굴 없는 이들은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었고, 죽은 이들은 제 발목을 잡고 늘어졌다.
그때 어디선가 푸른 용 한 마리가 나타났다.
하늘을 뒤덮을 정도의 커다란 용이 제 머리 위에서 포효하는 순간, 끝없이 몰려들던 사람들도, 제 발목을 붙잡던 혼들도 지면을 뒤덮은 핏물조차도 완전히 사라졌다.
빠져나갈 수 없던 지옥에서 일순간 자유로워진 설화는 청룡을 올려다보았다.
그 순간, 누군가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죽여라.’
‘네가 죽여야 할 목표이다.’
‘죽이거라! 어서!’
그 잔혹한 목소리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설화는 반사적으로 주먹을 내질렀다.
그리고 지금.
남궁무천을 보는 순간 그녀를 괴롭히던 목소리들은 일제히 안개처럼 사라졌다.
‘몸이 개운해.’
마치 청룡이 나타나 모든 것을 없애 버린 꿈처럼, 몸이 개운하다.
“암시는 완전히 끊어 냈다.”
설화가 남궁무천을 돌아보았다.
“운기를 해 보거라. 내상을 치료한다고 하였는데, 네가 직접 확인하는 것이 낫겠지.”
설화는 고개를 끄덕이곤 자리에 앉았다.
그런 후 남궁의 심법으로 운기조식을 하려는 찰나.
‘…아버지께 심법을 배웠다는 걸 말하는 게 좋겠지?’
그런 생각이 들어 고개를 드는데, 남궁무천의 목소리가 한 박자 빨랐다.
“남궁의 무공을 잘 아는 모양이더구나.”
“…!”
설화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결국… 썼구나.’
남궁 파훼 무공은 이전 생에 설화가 남궁의 무공을 연구하여 만든 무공.
이번 생에는 익히지 않은 것이지만, 역시나 무의식은 이전 생의 무공마저 꺼내 들고야 말았다.
“남궁의 대적자로 키워졌던 것이냐.”
설화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무공을 배운 이들이 많더냐.”
“이 무공은 제가 직접 남궁의 무공을 연구해서 창안한 것이에요. 누구에게 알려 준 적 없어요.”
이전 생에서 자신의 별호가 괜히 천멸검(天滅劍)이었겠는가.
하늘을 멸하는 검.
남궁 무공의 파훼 무공을 만들어 냈기에 얻을 수 있는 별호였다.
“그건 다행이구나.”
남궁무천이 턱을 쓸었다.
그가 허허, 웃음을 터트렸다.
“…?”
“그들이 너를 쫓는 이유를 알겠다. 이리 뛰어난 인재를 잃었으니 얼마나 분할꼬.”
허허허허.
통쾌하기도, 대견하기도 한 웃음이었다.
“네 무공으로 남궁에 도움을 줄 수 있겠느냐?”
“도움이요?”
“네 무공은 남궁의 무공들이 가진 허점들을 꿰뚫고 있더구나. 남궁의 무공을 대성한 이들에겐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하나의 무공을 대성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
설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공 하나를 대성하려고 일평생을 바치는 이들도 있었으니.
“너의 무공은 그러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 좋은 자극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
“…!”
남궁의 무공을 파훼하는 무공. 그 파훼 무공을 반면교사 삼아 남궁 무공의 허점을 보완한다면?
“하면, 남궁의 무공도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 터.”
남궁무천이 기특하다는 시선으로 설화를 바라보았다.
“네가 말한 남궁의 뿌리가 어쩌면 더욱 단단하게 잡힐지도 모르겠구나.”
설화는 스스로에게 놀랐다.
이전 생의 기억을 이용하여 남궁을 강하게 하려 했으면서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파훼 무공을 숨기려는 것에 급급한 탓에 이 무공을 남궁의 무공을 보완하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였다.
혈마가 자신에게 걸어 놓은 암시 때문에 남궁무천에게 제 무공을 내보인 것이 도리어 호재가 된 셈이다.
“좋아요.”
설화는 연신 고개를 주억였다.
“좋아요. 할 수 있어요.”
“그래. 내 무학당주에게 말해 놓으마. 독특한 이이긴 하지만… 무학에 있어선 진심이니 좋아할 것이다.”
‘무학당주. 남궁무강.’
설화는 이전 생에 보았던 남궁무강을 떠올렸다.
그는 남궁무천의 셋째인 남궁청산과 같은 거구의 남자로, 남궁무천의 동생이었다.
호탕하고 호전적인 것 역시 남궁청산과 비슷했는데, 하나 다른 것이 있다면 술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볼 때마다 코가 빨갰던 기억이 있어.’
그의 무위는 초절정 고수인 섭무광과 비슷하거나 살짝 높다.
경지는 같으나 같은 경지라 해도 실력은 천차만별. 남궁무강은 초절정의 고수들 중에서도 강하기로 유명했다.
‘이전 생에서도 술만 아니었다면 화경의 경지에 올랐을 거라고 평가받는 인물이었지.’
그는 자신의 손에 죽었다.
남궁무천이 혈마의 손에 죽은 날, 그의 술에 기혈을 흩트리는 산공독을 탔다.
슬픔에 취한 그는 술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제 힘을 다하지 못하는 그를 처리하는 것은 설화에겐 쉬운 일이었다.
‘이번 생엔 술을 조심하라고 말해 줘야지.’
고수 하나하나가 남궁의 전력인데, 남궁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이를 쉬이 죽게 할 순 없으니까.
“그리고 그 무공은 남궁에 온 후에 연구한 것으로 하거라.”
남궁무천의 말에 설화가 고개를 갸웃했다.
“사람들이 믿을까요?”
그 짧은 시간에 무공을 연구하고 파훼했다는 걸?
“내 손녀니까.”
“그러네요.”
남궁무천의 손녀라는 건 여러모로 편한 위치다.
“이제 운기하거라.”
“네.”
설화는 자세를 바로 하고 곧바로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후우우….
그녀의 주위로 수련동에 가득한 맑은 기운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남궁무천은 정면에 앉아 손녀가 운기조식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아이의 몸 주위로 피어오르는 기운의 색을 본 남궁무천의 표정이 설핏, 굳었다.
‘붉은 기운.’
분명 남궁의 심법으로 운기하고 있음에도 아이의 주위를 둘러싼 기운은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핏빛 하늘인가.’
수많은 남궁인들이 같은 심법을 배웠지만, 지금까지 단 한 명도 기운의 색이 붉은색이었던 적은 없다.
아이의 기운이 붉은색을 띠는 것은 아이의 심중에 죽음이 깃들었기 때문일 터.
‘불길한 색이군. 하나, 그 어떤 하늘보다 두려움을 자아내는 하늘이지 않은가.’
푸르른 창공도 흐린 하늘도 노을 진 하늘도 전부 같은 하늘이다.
중요한 것은 아이의 기운이 하늘의 기운을 따른다는 것뿐이다.
‘창궁대연신공이 5성이라.’
남궁무천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고삐를 풀어 주었을 뿐인데, 아이의 성취는 경악할 정도로 놀라웠다.
아무리 이미 남궁의 무공을 알고 있었다 하여도, 단번에 5성이라니.
기운의 색만 붉을 뿐, 아이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운 역시 더없이 맑고 정순했다.
후우우우….
잠시 후 운기를 마친 설화가 눈을 떴다.
그녀가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저는 푸른 하늘은 될 수 없나 봐요.”
“기운의 색은 중요하지 않다. 그 힘으로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지. 네 뜻은 이미 하늘에 있으니 괘념치 말거라. 몸은 어떠하더냐.”
“나쁘지 않아요.”
“하면 곧바로 벌모세수에 들어가자꾸나.”
“네.”
“눕거라.”
설화가 눈을 깜박였다.
“눕나요?”
앉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벌모세수는 몸에 무리가 많이 가는 대법이다. 가장 편한 자세로 받는 것이 좋지.”
근골이 뒤틀리고 혈도가 강제로 열린다.
본래라면 고통을 못 이겨 벌모세수 중에 기절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위험하니 쉬이 시도하지 않는 대법이기도 하지만.
‘고통에 둔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겠군.’
남궁무천은 바닥에 누운 제 손녀의 곁에 앉았다.
누워서 또랑또랑한 시선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손녀를 보며 그가 웃음을 흘렸다.
“눈은 감되 잠들진 말거라.”
“네.”
설화가 눈을 감았다.
남궁무천의 두툼한 손이 그녀의 단전 위에 올려졌다.
“아프면 참지 말고 내지르거라. 가능하다면 기의 흐름을 느끼는 것이 좋다.”
남궁무천의 손바닥으로 기운이 빠르게 모여들었다.
곧이어, 설화의 단전과 그의 손이 맞닿은 곳에서 짙푸른 기운이 폭발하듯 퍼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