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granddaughter of the Namgoong family RAW novel - Chapter 5
5화
* * *
일화와 섭무광은 빠른 속도로 안휘성 일대에 도착했다.
일화가 내공을 몰아내면, 경공을 쓰지 못하게 되니 먼저 합비 근처로 이동한 후 운기조식을 하기로 한 것이다.
두 사람이 멈춰 선 곳은 안휘성 동쪽, 황산의 한 골짜기였다.
섭무광은 일화를 한 동굴 앞으로 데려왔다.
“여기가 바로 이 몸이 수련해 오던 장소다. 길이 없어 다니기 힘들고 수풀이 우거져 쉽게 찾아올 수 없으니, 이만한 곳도 없지!”
일화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확실히 자신이 찾으려 했던 장소의 여건을 전부 갖춘 곳이었다. 근처에 동물의 발자국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동물들도 접근하지 않는 듯했다.
“자, 꼬맹아. 다시 태어날 때다.”
일화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요 며칠 지내보니 섭무광은 생각보다 세심한 사람이었다.
잠자리가 편한지, 힘들지는 않은지, 아픈 곳은 없는지.
조금 툴툴거리긴 해도 그는 그녀의 안위를 매사 챙겼고, 식사 역시 매번 어딘가에서 짐승을 사냥해 와서는 불을 피워 구워 주었다.
안휘로 향하는 지름길도 잘 알고 있었기에 일화는 예상보다 빠르고 편하게 안휘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일화는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그 진심을 섭무광 역시 느낀 것인지, 그의 눈이 동그랗게 올라갔다. 그가 픽 웃으며 일화의 머리를 툭툭, 쓰다듬었다.
“죽지 마라, 꼬맹아. 쉽지 않겠지만 운기에만 집중하고.”
일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섭무광이 그런 일화를 빤히 바라보았다.
“도와주랴?”
일화가 고개를 저었다.
“혼자 할 수 있어요.”
섭무광이 어깨를 으쓱이며 손을 내렸다.
“그래. 어련히 잘할 것 같다만….”
말은 그렇게 해도 그의 시선엔 여전히 걱정이 가득했다.
죽을지도 모르는 일을 앞두고도 태연한 아이의 모습에 짧은 한숨을 내쉰 그는 이내 동굴 근처 바위로 다가가 털푸덕, 주저앉았다.
“새로 태어나면 그 딱딱한 말투 좀 어떻게 해 봐라. 생긴 건 영락없는 열세 살 꼬맹인데 영 귀여운 맛이 없단 말이지.”
근처에 있는 강아지풀을 하나 뽑아 이 사이에 끼워 넣고 질겅거리며 이어 말했다.
“고향에 돌아가면 부모님도 만날 거 아니냐? 오랜만에 만난 자식이 딱딱하게 굴면 네 녀석 걱정이나 하게 될 거다.”
섭무광의 말이 맞다.
이립(而立_30세)의 나이에 돌연 어린아이로 돌아온 탓에 저도 모르게 내뱉은 말들은 확실히 열세 살짜리 아이의 말투는 아니었다.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으니 고치는 게 낫겠다.’
일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알겠어요.”
섭무광이 만족스럽게 웃음을 흘렸다.
“그래. 살아서 보자, 꼬맹아.”
일화는 강아지풀을 질겅거리며 다리를 흔드는 그에게 정중히 인사한 뒤, 동굴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모습이 어둠 속으로 반쯤 사라졌을 때였다.
“좋아하는 음식 있냐?”
그림자 아래로 드러난 그녀의 입술이 잠시간의 침묵 끝에 열렸다.
“…탕후루요.”
작은 목소리였지만, 섭무광은 분명하게 들었다. 섭무광이 이제 가 보라는 듯 손을 휘저었다.
일화의 모습은 이내 동굴 안 그림자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아이의 기척이 완전히 멀어진 직후.
섭무광의 웃음기 어린 표정은 순식간에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의 뒤로 검은 무복을 입고, 푸른 띠를 머리에 두른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남궁세가의 숨겨진 무력대, 비풍검대였다.
“쥐새끼들은 전부 처리했느냐?”
“예. 대주님.”
그가 섭무광에게 찢긴 두건을 내밀었다.
붉은 까마귀가 수놓아진 두건이었다.
“너는 이것을 가지고 돌아가 가주께 아이가 안휘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알리거라.”
“충!”
남자가 경공을 펼치려던 순간이었다.
“아 참, 돌아올 때 탕후루 좀 사 오고.”
“…탕후루를 말입니까?”
“그래.”
섭무광의 표정에 다시금 웃음기가 돌았다.
“기왕 사 오는 김에 저잣거리에 있는 것들, 종류별로 싹 다 긁어 와라.”
* * *
동굴로 들어가자 안쪽에 한 사람이 앉을 수 있는 크기의 멍석이 깔려 있었다.
섭무광이 이곳에서 종종 내공을 단련했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 모양이었다.
일화는 멍석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품속에서 주머니를 꺼내 열자 숨이 턱, 막힐 정도로 강렬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찬란한 황금빛이 쏘아져 나오는 듯한 착각이 일 정도였다.
‘이게… 대환단.’
섭취하기만 해도 죽음에 이르는 상처를 즉시 치료하고 어마어마한 내공을 얻을 수 있다는 환상의 영약.
소림사 내에서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사용하지 않을 정도로 귀한 것이다.
그런 약이 자신의 손에 있는 데에는 물밑에서 움직이는 혈마의 영향이 있겠지만, 그런 것들은 나중에 생각하도록 하고.
텁.
일화는 대환단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대환단은 그녀의 입에 들어가자마자 순식간에 녹아 자취를 감췄다.
솨아아―
크기를 알 수 없는 심후한 공력이 마치 거대한 바다처럼, 끝없는 바람처럼 그녀에게로 쏟아져 들어왔다.
입 안에 넣는 것만으로도 내세의 일부를 엿본 기분이었다.
‘집중하자….’
대환단의 기운에 휩쓸려 버리면 돌이킬 수 없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때에 따라선 독이 될 수도 있는 법.
섭무광의 경고와 같이 지금의 일화에겐 특히 그러했기에, 대환단의 기운에 취해 넋을 놓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일화는 눈을 감고 서서히 몸 안을 지배하는 공력을 느꼈다.
대환단의 맑은 공력은 그녀의 혈도를 타고 막을 새 없이 몸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일화의 몸이 움찔거렸다.
순식간에 쏟아지는 공력에, 그녀의 혈도에 흐르고 있던 혈기가 위협을 느낀 것인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뿌리가 다른 내공은 하나가 될 수 없는 법.’
혈(血)에 뿌리를 둔 혈기는 탐욕스럽기 그지없어, 다른 뿌리의 내공을 마구잡이로 삼켜 몸집을 불린다.
그러나 그건 잡아먹히는 힘이 상대적으로 약하거나 적어도 비등할 때의 얘기.
쿠구궁―
혈도를 차지하고 있던 혈기는 거인의 발걸음에 힘도 못 써 보고 서서히 밀려나기 시작했다.
‘혈기가 강줄기라면 대환단의 정순한 공력은 대양(大洋)이다.’
잡아먹히기는커녕 뒤덮어 버릴 정도로 막강한.
그러니 이대로 흐르도록 두어도 혈기는 자연스레 밀려날 테지만.
‘몰아내는 것만으론 부족해.’
일화가 하려는 것은 자신이 혈공을 익혔다는 것조차 모르도록 혈맥과 육신을 정순한 상태로 돌려놓는 것.
그러기 위해선 혈맥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는 혈기의 흔적들 역시 전부 뜯어내야 한다.
‘더 빠르고, 거세게 움직이자. 폭풍을 일으키듯이 거침없이…!’
일화가 대환단의 공력을 더욱 거칠게 운용하자, 자연스레 영역을 넓혀 가던 공력이 그녀의 혈맥을 타고 일순,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일화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이 관자놀이를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후욱, 콰콰콰과―!
마치 거대한 폭풍이 몰아치듯 공력이 파도치며 그녀의 몸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혈맥에 붙어 있던 혈기의 찌꺼기들은 거칠게 운용되는 대환단의 기세를 이기지 못하고 쓸려 나가기 시작했다.
수세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고 하였던가.
꿈틀!
일화의 단전으로 몰린 혈기가 단전을 깨부수기라도 할 것처럼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혈기의 저항 역시 거세지고 있었다.
‘흡…!’
일화가 일순, 숨을 들이켰다.
그녀의 입에서 검붉은 핏줄기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함락시키고자 하는 대환단의 공성과 쫓겨나지 않으려는 혈기의 수성.
치열하게 부딪치는 두 힘에 일화의 단전이 금방이라도 깨어질 듯 위험하게 요동쳤다.
자칫하다가는 단전이 파괴되거나 주화입마에 빠질 수도 있는 상황.
‘절대… 안 진다…!’
일화가 주먹을 콱, 말아 쥐었다.
* * *
어두운 밤. 동굴의 입구 앞 바위.
남궁의 비풍검대주 섭무광이 팔짱을 낀 채 지그시 눈을 감고 있다.
차분하고 여유로워 보이는 표정과는 다르게 그는 연신 다리를 흔들고 있었다.
‘나올 때가 됐는데 말이지.’
설마, 잘못된 것은 아니겠지?
내공을 운기하는 중에 혈도가 갑작스레 뒤틀렸다거나, 대환단의 공력을 버텨 내지 못하고 주화입마에 빠졌다거나?
그런 생각이 이어질수록 그의 다리는 더 빠르게 떨렸다.
그러던 어느 순간, 섭무광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눈을 떴다.
어두워 안이 보이지 않는 동굴을 응시하던 그는 이내 낮은 웃음을 흘렸다.
“정말 대단한 꼬맹이구만.”
섭무광이 바위 위에서 훌쩍 뛰어내려 동굴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의 손에는 어린아이의 옷가지와 탕후루가 가득 담긴 종이봉투가 들려 있었다.
“살아서 보니 좋구나? 꼬맹아.”
자박, 하는 발걸음 소리와 함께 동굴의 어둠 속에서 작은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섭무광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눈썹을 휘었다.
그녀의 몸에서는 이전과는 다른 정순한 기운이 풍겨 나오고 있었다.
‘호오? 더러운 기운을 내보낸 걸로도 모자라 내공을 쌓은 건가.’
고작해야 이류 정도의 기운이었지만, 그녀의 나이를 생각하면 놀라운 성과였다.
주화입마에 빠지지나 않으면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남은 내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으니.
“수고했다.”
섭무광이 옷가지와 탕후루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물건을 받아 든 일화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은색 달빛이 그녀의 검은 눈동자 안에서 맑게 반짝였다.
몸 안의 탁기를 몰아내며 눈빛마저 맑아진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내가 해야지.”
죽지 않고 살아 줬으니.
일화가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기울이자, 섭무광이 그녀의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가자, 사흘이나 못 씻었으니 우선 따뜻한 물에 몸부터 담그자꾸나. 너한테서 악취가 진동을 한다.”
내공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일화의 몸속에 쌓인 노폐물이 함께 빠져나왔다.
검은 액체가 끈적하게 흘러나온 그녀의 몸에선 끔찍할 정도의 악취가 풍기고 있었다.
“사흘이요?”
“그래. 네가 동굴에 들어간 지 벌써 사흘이나 지났다. 몰랐냐?”
일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로지 기의 운용에 정신이 팔려 있었으니,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나저나 사흘이라.
‘사흘이나 호법을 서 주었다는 건가?’
이 적막한 곳에서 사흘간을 가만히 있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
섭무광에겐 빚을 진 셈이었다.
일화의 배에서 꼬르륵, 작게 울리는 소리가 났다.
제 배를 쓰다듬는 그녀의 모습에 섭무광이 크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주릴 만도 하지!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왔으니, 내 특별히 합비의 명물을 소개해 주도록 하마!”
섭무광이 일화를 돌연 번쩍 들어 안았다.
무려 사흘간이나 먹지도, 자지도 못한 아이의 몸은 깃털처럼 가볍기만 했다.
“…!”
순식간에 그의 품에 안긴 일화가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꽉 잡거라. 꼬맹아. 떨어져도 모른다.”
크큭, 웃음을 흘린 섭무광이 이내 경공을 펼쳐 빠르게 이동했다.
그의 품에 안긴 일화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저 멀리 달빛 아래 거세게 흐르는 장강의 물결을 바라보았다.
그 너머로 도심의 불빛이 그녀를 반기듯 환하게 반짝였다.
‘드디어… 합비다.’
달짝지근한 탕후루의 향이 코끝을 간질이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