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granddaughter of the Namgoong family RAW novel - Chapter 50
50화
“천무지체(天武肢體).”
남궁무천의 목소리가 낮게 굴을 울렸다.
“넌 천무지체의 몸을 타고난 듯하다.”
“천무지체…요…?”
내가?
‘천무지체라고?’
천무지체(天武肢體).
문자 뜻 그대로 하늘이 내려 준 무인의 몸.
즉, 무공을 익히기에 더없이 완벽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몸을 말했다.
균형 잡힌 근골, 기를 깨우치는 능력, 막힘없이 뚫려 있는 혈맥, 무공을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뛰어난 오성(悟性_깨닫는 능력)까지.
그 덕에 조금만 수련해도 내공이 비약적으로 늘고 무공의 성취가 뛰어나며 기의 순환이 저절로 조화를 이룬다.
무공을 익히는 데에 필요한 모든 것을 태어날 때부터 모조리 가지고 태어나는 셈이니 가히 하늘이 내려 준 축복이었다.
“천무지체는 특히 상승무공을 익히기에 적합한 신체이다. 그리고 남궁의 무공은 그 어떤 무공보다 보다 높은 경지를 추구하지.”
하늘이 저변에 깔려 있다지만, 하늘의 무공은 아득히 높은 곳을 추구하는 무공이라는 게 정설이다.
본디 가장 높은 곳에 군림하는 것을 좇는 무공이다 보니, 남궁의 무공은 끝없이 높은 경지를 탐하는 극(極)상승 무공이었다.
‘하지만, 이전 생의 나는 그 정도로 강하진 못했는데?’
수백 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면, 천하 제일인이 되었어야 하지 않은가?
이전 생의 자신은 무공을 게을리하지도, 자신의 경지에 머물러 있지도 않았다.
남궁을 무너트리기 위해 끝없이 강해지려 노력했는데?
“네 세맥은 내가 뚫어 준 것이 아니다. 이미 열려 있었지. 네게 맞지 않은 내공 탓에 쌓인 탁기가 경로를 틀어막고 있었을 뿐. 네 혈도는 이미 내력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 말은 즉, 혈마가 불어넣은 혈기가 그녀의 재능을 가로막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혈공은 본디 높은 경지를 추구하는 무공이 아닌, 누군가를 죽이고, 할퀴고, 파멸시키기 위한 패도의 무공이다.
그러니 설화의 신체와 상극일 수밖에.
그럼에도 이전 생에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그 타고난 신체 덕이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렇구나. 내가 천무지체였어.’
천무지체….
남궁으로 돌아오기 전만 해도 자신이 돌아온 것이 남궁에게 기연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막상 돌아오고 보니 알겠다.
‘기연(奇緣).’
이 남궁이, 남궁으로 돌아온 선택이.
자신의 삶에 있어 다시없을 기연이었음을.
우우웅….
단전에 모여든 기운이 그녀에게 화답하듯 울부짖었다.
비록 기운의 색은 붉지만, 그녀의 몸은 그 누구보다 남궁의 기운을 빠르게 제 것으로 만들고 있었다.
누군가는 핏빛 하늘을 불길하다 말할 것이다. 붉은 하늘도 하늘이냐고 비웃을 것이다.
얼마나 커다란 살심(殺心)을 품고 있으면 하늘조차 살기로 뒤덮였느냐고 비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남궁무천은 말했다.
‘기운의 색은 중요하지 않다. 그 힘으로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지.’
핏빛 하늘이든, 청명한 하늘이든.
그 뜻을 하늘에 둔 자라면 그것이 곧 남궁이라고.
설화의 뜻은 이미 하늘에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이제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하늘일 뿐이었다.
* * *
천호전에선 가문 회의가 한창이었다.
부재한 가주를 제외하고 다섯 세력이 전부 모인 대회의였다.
급히 회의를 연 이유는 단 하나.
“매화신검이 온 지도 벌써 사흘째요! 매화신검은 무려 화산 제일검이 아니오! 만나고 싶다고 만날 수 있는 이도 아니고! 한데, 이런 박대라니! 남궁의 이름에 먹칠이라도 할 셈이오?”
“동의합니다. 화산이면 대문파 중의 대문파가 아닙니까. 이번 기회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화산과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아니, 남궁의 경사를 축하하러 왔다 하지 않았소이까? 대체 가주님과 아가씨는 언제 천오동에서 나온단 말이오?”
총관 남궁문은 난처했다.
장로들의 반발이 극에 달했다.
가주가 말도 없이 수련동에 들어가 버린 것부터 아슬아슬했는데, 그사이 화산씩이나 되는 곳에서 손님이 찾아오다니.
다행히 가주의 부재를 양해하고 기다리겠다 하여 닷새라는 유예기간을 얻었지만, 장로들의 말처럼 귀한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물론 다른 목적이 있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때였다.
“흠, 흠!”
누군가 크게 목을 풀어 좌중을 사로잡았다.
‘장로회주?’
인자한 인상의 장로회주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입을 열었다.
“그리 걱정하실 필요 없소이다. 어제저녁에도 이 공자께서 매화신검과 식사를 함께하지 않았소이까.”
모두의 시선은 자연스레 잠자코 자리를 지키고 있던 남궁청해를 향했다.
장로회주가 보란 듯이 그에게 물었다.
“이 공자. 내 듣기론 매화신검께서 데려온 화산의 어린 검수가 소룡 공자와 비무를 나눈다고 하던데. 사실이오?”
“뭐라? 소룡공자와 화산의 아이가?”
“사실인가? 화산에서 그걸 받아들였단 말이야?”
술렁이는 회의장 속에서 남궁청해가 부드러이 미소 지었다.
“그리 놀라실 것 없습니다. 그저 어린아이들의 가벼운 어울림일 뿐입니다.”
“가벼운 어울림이라니! 문파는 세가의 무공을 천시한다던데 비무를 받아들였다는 건 우리 남궁을 인정한다는 뜻이 아니오!”
“어르신들께서 생각하시는 만큼 매화신검께선 남궁의 무공을 경시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매화신검께서 데려온 분들 역시 그렇고요.”
‘한 사람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남궁청해는 화산에서 온 유표라는 이를 떠올렸다.
저녁 식사를 청할 때 매화신검에게 여쭙겠다고 대답하던 시선엔 분명한 멸시가 담겨 있었다.
마치 귀찮은 벌레가 달라붙는다는 듯이, 오만하고 건방진 그 시선.
‘저녁 식사 때도 내내 말이 없었지.’
그 자리에 있는 것조차 귀찮다는 듯한 느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어, 모를 수가 없었다.
‘그 어린 녀석도 그리 예의를 차리진 않았고.’
그러니 사실상 생각보다 순순한 태도였던 것은 매화신검 혼자뿐이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본심을 숨길 줄 아는 건 매화신검 하나뿐이다.
“애초에 남궁의 기쁜 일을 축하하기 위해 오신 분들이 아니십니까. 남궁을 경시하였다면 어찌 먼저 찾아와 손을 내밀겠습니까.”
그때였다.
― 이 공자님. 알아냈습니다.
나직한 전음이 소란을 뚫고 남궁청해의 귓가에 들려왔다.
남궁청해의 눈빛이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남궁청해는 재차 미소 지으며 모인 이들을 둘러보았다.
“마침 소룡이와 화산의 소도장이 비무를 나눌 시간이 되었군요. 송구하지만 저는 이만 일어나 보아야겠습니다.”
그가 좌중을 향해 절도 있게 포권을 취한 뒤 자리를 빠져나갔다.
회의가 채 파하지 않았지만, 천호전을 나가는 그를 붙잡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천호전의 문을 넘어서는 남궁청해의 모습 뒤로 장로회주의 나직한 말이 들려왔다.
“허허. 정작 일 공자는 화산의 손님들께 관심도 없는데, 이 공자는 역시 가문을 위한 마음이 깊습니다, 그려.”
남궁문이 장로회주를 매섭게 바라보며 반박했다.
“일 공자는 가주님과 아가씨를 맞으러 수련동에 있지 않은가.”
“가주님께서 최소 닷새라 하지 않으셨소? 오늘로 고작 사흘째인데 벌써부터 가 있을 필요가 있소이까? 안 그렇습니까?”
장로회주가 장로들에게 되묻자, 몇몇 장로들이 그의 뜻을 거들고 나섰다.
“그건 그렇지.”
“일 공자야 본래 딸을 아끼는 이가 아닌가.”
“하나, 아무리 그래도 화산인데… 가주님도 안 계신 마당에 자리를 지키는 것이 맞지 않소.”
“쯧쯧. 일 공자 눈엔 딸만 보이는 걸 어쩌겠소. 이 공자야 본래부터 가문을 생각하는 마음이 깊었으니….”
여론은 자연스레 남궁청해를 추켜세우고 남궁청운을 몰아가는 추세로 흘러갔다.
총관과 당주들이 무어라 거들 새도 없었다.
따지고자 한다면 장로들의 의견이 사실이기도 하였기에 말을 보탤 수 없었다.
‘가주님께서 계시면 한 마디도 못 할 이들이… 용이 없으니 이무기가 왕 노릇 한다더니 딱 그 짝이구나.’
남궁문은 답답한 마음을 삭이며 주먹을 말아 쥘 뿐이었다.
* * *
카가각―!
목검이 하늘에서 훙― 훙― 휘돌아 땅에 떨어졌다.
남궁소룡은 경악한 표정으로 저 멀리 날아간 제 목검을 돌아보았다.
“앗! 이런! 죄송합니다! 힘 조절을 한다는 것이 그만….”
으득.
남궁소룡이 이를 갈았다.
돌아가지 않는 목을 애써 돌려 뒤통수를 긁적이는 유강을 돌아보았다.
목검을 날린 것이 벌써 세 번째다. 저 실수라는 말도 세 번째.
이쯤 되니 실수라는 말 뒤에 숨긴 악의가 다분했다.
“이 기본적인 예의도 모르는 놈이!”
남궁소룡이 더는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쳤다.
미안함으로 가득하던 유강 역시 얼굴을 설핏 굳혔다.
“…예? 그게 무슨….”
“힘 조절은 무슨! 네놈은 그냥 처음부터 나를 비웃고 싶었던 거잖아!”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제가 왜 공자와 남궁을 비웃어요?”
“자만심만 가득 찬 문파 놈들 머릿속이야 뻔하지! 세가의 무공을 무시하고 비웃지 못해 안달인 것을 이런 식으로 이용하다니!”
유강의 얼굴은 더욱 차갑게 굳어졌다.
“소룡 공자께서 무슨 말을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나, 지금 제 사문을 무시하신 건 공자님이지 않아요?”
자만심만 가득 찬 문파 놈들.
유강은 소룡의 낮은 무공에도 그를 비웃는 말을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유강과 그의 사문을 비웃은 것은 소룡이었다.
“제가 무언가 잘못을 하였다면 그건 사과드리겠지만, 사문의 이름에 먹칠할 일을 한 기억은 없습니다만.”
“이이… 멍청한 놈이! 조금 전에 네가 일부러 내 검을 내쳤잖아…!”
그때였다.
“이게 무슨 소란이냐!”
연무장 입구 쪽에서 호통치는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