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granddaughter of the Namgoong family RAW novel - Chapter 52
52화
“허, 참, 허, 이것 참. 허…!”
섭무광은 설화를 보고 또 보고 또 봤다.
그래도 믿기지 않았다.
절정이라니. 고작 열셋의 나이에 절정 고수라니.
“허 참! 허!”
“설화야….”
남궁청운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또 눈물을 흘리기 전에 설화가 선수를 쳤다.
“운이 좋았어요. 할아버지께서 세맥까지 전부 뚫어 주신 덕분에 가능했어요. 그 탓에 할아버지께선 조금 무리하셨지만요.”
“그래. 그렇구나.”
남궁청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 딸이 절정의 고수가 된 것은 반가우나 아버지의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은 걱정이었다.
“그래도 큰 문제는 없다고 하셨으니 괜찮으실 거예요.”
“그래. 다행이구나. 다행이야.”
남궁청운이 설화를 끌어안았다.
언제 안겨도 참 따뜻한 품이었다.
섭무광은 그런 부녀를 보며 ‘허, 참!’만 연신 내뱉었다.
“아 참, 손님이 오셨단다.”
“손님이요?”
“화산에서 말이다.”
“아.”
설화는 며칠 전 마주쳤던 유강을 떠올렸다.
합비의 산에서 그를 마주쳤을 때부터 화산이 남궁을 찾아오리라는 것은 예상했던 바였다.
아니, 사실 그 전부터 알고 있었다.
화산에 자신의 소문을 퍼트리도록 한 것이 바로 설화였으니까.
‘흑운방주가 지시를 잘 따라 주었나 보네.’
흑운방주에게 마지막으로 주고 온 주머니에 소문을 퍼트리라는 조언을 적어 두었다.
흑운방을 향한 화산과 소림의 관심을 자신에게 돌리고 화산이 남궁을 찾아오도록 유도하기 위함이었다.
화산이 지금 남궁의 객원에 있는 것이 그 결과였다. 다만 문제는.
‘내가 암시에 걸려 있는 것까진 계산하지 못했어.’
화산이 찾아올 것을 대비해야 했는데, 미처 준비를 마치지 못했다.
‘어쩌나. 우선 만나 볼까?’
“너를 만나겠다고 닷새를 기다린다는 것을 혹시 몰라 그러라고 해 두었다. 하나, 혹여 네가 만나고 싶지 않다면….”
“닷새요?”
“그래. 닷새. 최소 닷새가 걸릴 것이라 하지 않았느냐.”
설화의 눈이 반짝였다.
닷새가 걸린다고 하였지만, 설화는 사흘 만에 수련동에서 나왔다. 그러니 화산에게 말해 둔 시간에서 이틀이나 먼저 나온 셈이 아닌가?
‘이틀이면 충분해.’
설화가 섭무광에게 물었다.
“제가 수련동에서 나온 걸 누가 알고 있나요?”
“당연히 나와 네 아비밖에 모르지. 내 수하들이랑.”
보이지는 않지만 비풍검대원들 몇몇이 주위에 있었다.
절정의 경지에 오른 설화 역시 그들의 기운을 이미 느끼고 있었다.
이전에는 기척과 감각으로 알았다면, 지금은 기운을 통해 모습을 숨긴 이들을 감지하게 된 것이었다.
‘두 명.’
“혹시 제가 나온 걸 비밀로 해 주실 수 있나요?”
섭무광의 눈썹이 비뚜름하게 휘어졌다.
“왜 그래야 하는데?”
“잠시 다녀올 곳이 있어서요.”
그가 무어라 말하려고 살짝 입을 열었다가 도로 닫았다.
잠시간 찌푸린 눈매로 그녀를 바라보던 그가 고개를 휙, 돌리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래라. 그럼.”
“대환단을 대신할 물건을 찾으러 가려는 거예요.”
“…?”
섭무광이 다시 그녀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비뚜름하던 눈썹이 꿈틀댔다.
“뭐?”
“제가 흑운방에서 빼앗은 대환단은 화산의 것이었어요. 화산은 제가 대환단을 가져갔다는 걸 알고, 찾으려고 찾아온 거고요.”
“그걸 왜 내게 일일이 말하고 있냐? 난 관심 없다.”
“아시다시피 대환단은 제가 먹었으니 대환단을 대신할 물건이 필요해요. 그래서….”
“아 글쎄, 관심 없대도! 네가 나온 건 비밀로 해 줄 테니…!”
“서운하시잖아요.”
섭무광이 우뚝, 굳었다.
비뚤어졌던 그의 눈썹이 낮게 가라앉았다.
“뭐라고?”
“제게 서운하시잖아요.”
“….”
그는 조금 화가 나 보였다.
드러내지 않았을 뿐, 섭무광은 사실 서운했다. 조금이 아니라 아주 많이.
아이를 믿을 수 있겠느냐는 말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고, 조금은 친해졌다 생각한 아이가 보란 듯이 자신을 속인 것에 배신감이 들었다.
“서운하긴 개뿔이.”
진짜 많이 서운하다.
신뢰도 주었고, 검도 주었고, 맛집도 알려 주었는데.
“됐다. 시간 없는데 이만 가 봐라. 얼른.”
그런 그를 빤히 바라보던 설화는 양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천천히 허리를 굽혔다.
“죄송해요. 그때 그렇게 속이고 나가서요. 수면약을 드시게 한 것도 죄송해요.”
다시 자세를 바로 했을 땐 섭무광은 놀라서 굳은 채였다.
“사과를 드리고 싶었어요.”
“…뭐….”
진심 어린 사과가 듣기 민망했던 것인지, 섭무광이 휙, 고개를 돌려 버렸다.
“…안 섭섭했다니까 그러네. 내 이해심이 고작 그딴 일로 섭섭해할 정도로 코딱지만 한 줄 아나?”
코를 쓱, 쓱 문지르며 하는 말은 잘 들리지 않았다.
섭무광이 고개를 돌린 채로 손을 휘저었다.
“길 바쁜데 어서 가 봐라. 이틀 뒤까지는 꼭 돌아오고.”
어쨌든 화는 풀린 것 같았다.
“네. 다녀올게요.”
설화는 남궁청운의 손을 붙잡았다.
“가요. 아버지.”
두 사람의 모습은 이내 수련동의 길목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두 사람이 멀어진 곳을 바라보던 섭무광의 입꼬리가 남몰래 히죽, 휘어졌다.
* * *
달그락, 달그락.
찻잔을 들고 후릅, 마신 후 다시 내려놓는 소리만이 고요를 울렸다.
남궁청해는 제 앞에 앉은 이를 바로 마주했다.
“좋은 차구려.”
“아무렴 귀한 손님께 싸구려 찻잎을 내어 놓을 수 있겠습니까.”
허허, 웃은 노문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래. 이 공자의 아드님이 우리 아이에게 말실수를 하였다고 들었소.”
“다시 한번 무례를 사과드립니다.”
포권을 취하는 남궁청해의 자세는 올곧았다.
참으로 남궁의 공자다운 올곧음이라고 노문은 생각했다.
“그 사과를 하려고 날 찾아온 것이오?”
아님을 알면서 묻는 물음이었다.
본격적인 대화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남궁청해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바로 했다.
“제가 아주 재미있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무엇이오?”
“화오루의 소루주였던 아이가 흑도 방파에서 대환단을 훔쳐 남궁으로 도망쳤다 하더군요.”
노문과 일행이 남궁에 도착한 날, 남궁청해는 섬서 분가의 수하들을 시켜 화산이 움직인 이유를 알아보도록 했다.
그러고 오늘 가문 회의 중 당도한 소식이 바로 이것이었다.
“혹, 들어 보지 못하셨습니까?”
노문의 표정은 미동도 없었다.
그러나 짧은 침묵이, 그 침묵 사이에 흔들린 호흡이 그의 심정을 대변하였다.
“…참으로 기이한 소문이구려. 소림의 기물을 흑도 방파가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오?”
“그 흑도 방파가 섬서에 있지요.”
“그게 어떻다는 말이오?”
“저는 그것이 매화신검씩이나 되시는 분께서 이 남궁까지 오신 이유라 생각합니다만.”
날카로운 그의 지적에 노문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노문은 탄식을 삼켰다.
‘보통이 아니군.’
소문만으로 정확하게 상황을 꿰뚫는 현안도 현안이지만, 이 자리를 만들기까지의 과정도 치밀하기 그지없다.
자신들이 남궁을 방문한 진짜 이유를 알아낼 동안 시간을 벌기 위해 아이들끼리 비무를 제안했고, 아들이 져서 분을 내자 기다렸다는 듯이 유강을 이용해 자리를 만들었다.
처음 저녁 식사를 제안했을 때부터 마치 쇠사슬이 엮여 있는 것처럼 필연적으로 이 순간이 도래하였다.
이런 자들이 무서운 이유는 하나다.
‘확신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부류.’
그 말은 곧, 겉으로는 묻는 모습이지만 상대는 이미 확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첫째는 무공이 뛰어나고 둘째는 머리가 뛰어나다는 말이 사실이었군.’
초조한 마음에 남궁청해의 식사에 응한 것이 실수였다. 이리 빌미를 주고 말았으니.
이리된 이상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얻을 것은 얻어 내야 한다.
계산을 마친 노문이 지그시 감았던 눈을 떴다.
그의 눈빛은 감기 전과는 전혀 다른 예기를 띠고 있었다.
“맞소.”
“…!”
“이리된 이상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소. 대환단의 행방을 아시오?”
“모릅니다.”
“남궁에서 돌아왔다 기뻐하는 그 아이가 가져갔소. 이 공자께는 조카일 터인데?”
“대환단의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그 정도 되는 물건이라면 숨기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도 언급조차 없는 것을 보니 아이가 가진 것이 맞나 의심스럽군요.”
“흠….”
전혀 모른다는 것이지.
노문은 실망하며 턱을 쓸었다.
“대환단이 어찌하여 필요하신 것인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그건 말해 줄 수 없소.”
“하면, 반드시 대환단이어야 합니까?”
“무슨 소리요?”
“대환단에 비견되는 것이라면 어떠하시겠습니까.”
노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있소?”
“구해 볼 수는 있겠지요. 남궁이지 않습니까.”
“이 공자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오?”
“…!”
남궁청해의 표정이 밝아졌다.
서로가 원하는 바를 들어주는 것. 그것이 바로 협력이 아니겠는가.
“화산과 남궁의 교류를 원합니다.”
“교류라.”
역시나 예상했던 바였다.
세가는 문파와 줄곧 교류를 원했으니 말이다.
‘못 들어줄 것은 아니지.’
세가가 원하는 것은 문파와 세가가 교류한다는 ‘모습’일 뿐, 실제 교류가 필요한 것은 아닐 테니.
적당히 맞추어 주고 시간이 지나 자연스레 흐지부지 없애 버리면 될 것이다.
노문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것이면 되겠소?”
“하나가 빠졌습니다.”
빠지다니?
남궁청해의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누구를 통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