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granddaughter of the Namgoong family RAW novel - Chapter 54
54화
* * *
촤악―
설화의 검이 마지막 원숭이 마물을 베었다.
사실 처음부터 이 싸움은 원숭이들의 필패일 수밖에 없었다.
원(願)으로도, 원(怨)으로도 설화의 원은 결코 원숭이 마물 따위에게 밀리는 것이 아니었으니.
“…이게 마지막이구나.”
검에 흐르는 원숭이 마물의 피를 털어 내며 남궁청운이 긴 숨을 토해 냈다.
그와 설화의 몸은 이미 원숭이 마물의 피로 흥건했다.
“이렇게까지 하였으니 천궁귀두가 대체 어떤 물건인지 궁금해지는구나.”
대체 어떤 물건이기에 길목을 이러한 마물들이 지키고 있는 것인지.
“갈까요?”
“그래.”
두 사람은 원숭이들이 쏟아져 나온 더 깊은 숲의 방향으로 들어갔다.
숲의 깊은 곳은 지금보다 훨씬 위험해 보였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돌아갈 순 없었다.
청운은 검을 넣지 않았다. 기운 역시 예민하게 끌어 올린 상태였다.
그렇게 긴장 속에 나아가던 두 사람이 어느 한 곳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남궁청운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건….”
“….”
시신. 아니, 백골(白骨).
수백의 백골이, 구덩이 가득 쌓여 있었다.
백골은 하나같이 두개골이 둔기에 맞은 듯 부서져 있었고, 백골의 팔과 다리에는 녹슬고 찌그러진 종이 묶여 있었다.
그저 산길을 지나다 원숭이 마물에게 당한 이들의 시신이었다.
“이 어찌… 고작 미물 따위가 어찌….”
어찌 이리 악할 수 있단 말인가.
어찌 이리 잔혹할 수 있단 말인가. 어찌….
남궁청운은 차마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전부, 사람이, 그 고작 천하디천한 미물에게 한 짓이었기에.
남궁청운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이 죄를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가.
선과 악의 구별은 누구보다 명확히 한다 자부할 수 있던 그였지만, 지금은 그저 혼란스러웠다.
“사람들을 데려와 이들의 유해를 수습해 주어야겠구나.”
설화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가요. 아버지.”
“…그래.”
두 사람은 백골의 구덩이를 넘어 조금 더 깊은 곳으로, 조금 더 높은 곳으로 향했다.
어느새 중천으로 기울어졌던 해가 그 너머로 옮겨 가고 있었다.
그렇게 나아가던 두 사람은 어느 넓은 봉우리에서 멈춰 섰다.
“후우….”
그리 높은 봉이 아니건만, 널따란 봉우리에는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게 구름이 끼어 있었다.
마치 구름 위에 서 있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이곳에 천궁귀두가 있는 것이냐?”
구름 너머로, 낭떠러지 너머로 황산의 낮은 봉우리들이 보였다.
한참 높은 봉우리도 보였고 나무 하나 없는 민둥산도, 녹음이 가득한 산도 보였다.
하나같이 모습이 다른 산들을 내려다보던 설화는 시선을 돌려 남궁청운을 바라보았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절경이건만, 청운의 표정은 한없이 어둡기만 했다.
“무슨 생각 하세요?”
청운이 설화를 돌아보았다. 그림자 속에서 애써 미소가 피어났다.
“절경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 슬픈 미소를 바라보며 설화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께 들었어요. 8년 전, 아버지께서 저를 어떻게 잃어버리셨는지요.”
애써 피어난 미소는 금세 사라졌다.
“궁금했거든요. 제가 남궁을 떠나게 된 사정이요.”
누군가 자신을 납치했던 것일까.
제 발로 나와 돌아다니다 길을 잃어버린 것일까.
원한을 산 이들이 자신을 습격하였나.
사고로 부모님과 떨어진 것일까.
버려진 것일까.
“…설화야. 그땐….”
“들려주세요. 아버지의 입으로 듣고 싶어요.”
아이가 말해 왔다.
8년 전 제가 지키지 못한 아이가 물어 왔다.
비난도, 원망도 아닌 순수한 궁금증을 품은 시선으로 제게 물어 왔다.
“8년 전,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손끝이 파르르, 떨려 왔다.
청운은 8년 전의 그날을 떠올렸다.
* * *
챙― 채챙!
“으아악!”
“사, 살려 줘!”
병장기들이 부딪치는 소리와 사람들의 비명.
이윽고 상황을 알아보러 앞서갔던 황룡대주가 돌아왔다.
“이 앞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산적들이 상단을 습격한 모양이던데…. 어찌하시겠습니까? 공자님.”
청운은 마차의 창사를 살짝 들추어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바라보았다.
“으아아악!”
숨이 끊어질 듯한 비명이 들려왔다.
청운은 눈살을 찌푸렸다.
“다녀오세요.”
청운이 창 너머를 보던 시선을 돌려 마차 안에 함께 타고 있던 제 아내를 바라보았다.
연꽃처럼 가녀리고 아름다운 여인의 품 안에는 설기처럼 하얀 아이가 잠들어 있었다.
“으으응….”
아이가 제 어미의 품에 얼굴을 비비며 칭얼댔다.
시끄러운 소란이 아이의 잠에 훼방을 놓은 모양이었다.
여인이 그런 아이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품에 끌어안으며 말했다.
“설화도 잠들어 있으니 말릴 사람이 없네요. 도와주고 싶으시잖아요. 어서 다녀오세요.”
“도적 무리가 저들이 다가 아닐 수도 있소.”
“앞선 일행을 습격했으니 남아 있어 봤자 쭉정이들이겠죠. 여긴 황룡대주님께서 계시니 괜찮을 거예요.”
“하나….”
“어서요.”
여인이 꽃 같은 미소로 청운을 재촉했다.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제 남편의 성품을 잘 알기에 여인은 남편의 등을 떠밀었다.
“하면, 다녀오겠소. 최대한 빨리 오겠소.”
“무사히 돌아오세요.”
청운은 아내와 딸을 두고 마차를 나섰다.
동행하였던 황룡대주에게 가족을 맡기고 서둘러 비명이 들려오는 곳으로 향했다.
촤악―
“커흑!”
“으억!”
고작해야 이류들로 이루어진 산적들은 청운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청운은 순식간에 산적들을 제압하고 상단을 구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남궁의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목숨을 구한 상단의 사람들은 눈물을 쏟으며 청운에게 감사를 표했다.
가지고 있던 물건들로 사례하려는 것을 극구 사양하며 청운은 발길을 돌렸다.
서둘러 제 아내와 딸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약속했던 대로 빠른 귀환이었다. 그러나.
쿵.
“…!”
돌아온 청운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엉망이 되어 산산이 조각난 마차와 피가 낭자한 광경이었다.
일행을 호위하던 황룡대원들은 이미 시체가 되어 땅을 구르고 있었고 부서진 잔해들이 그들의 피 웅덩이 속에서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그 어디에도, 제 아내와 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황룡대주!”
그나마 숨이 붙어 있는 것은 황룡대주 하나뿐이었다.
그조차도 숨만 가까스로 부여잡고 있었다.
“고, 공자님… 어서….”
황룡대주가 한 곳을 가리켰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그의 손이 툭, 떨어졌다.
고작 그 말을 전하기 위해서, 그는 제 마지막 숨을 아끼고 아꼈던 것이었다.
청운은 황룡대주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그의 손이 가리킨 방향으로 달려갔다.
나무를 지나치고 수풀을 헤치고.
오로지 그 방향으로 내달렸다.
‘제발… 제발….’
부디 늦지 않았기를. 부디 살아 있기를.
살아만 있다면 무슨 수를 쓰든 구할 터이니. 부디….
그리고 마침내 숲의 끝이 보였다.
나무들의 사이로 여러 사람의 인영이 보였다. 검은 옷을 입은 복면인들이었다.
검을 쥔 청운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청운과 복면인들의 거리는 빠르게 가까워졌다.
3장(丈)
2장(丈)
1장(丈)―
마침내 청운이 그들을 향해 검을 휘두르려는 찰나.
“꺄아아악!”
연꽃이 바스러지는 소리에 청운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촤아악―
“크아악!”
선혈이 튀고 복면인 중 한 사람이 쓰러졌다. 그들은 일제히 청운을 향해 돌아섰다.
그 순간, 청운은 보았다.
한 복면인의 웃음을.
저 낭떠러지 아래로 사라지는 연꽃잎의 자락을.
“아빠! 아빠아! 흐아아아아앙―!”
빠르게 추락하는 아이의 울음을.
촥― 촤악―!
시선은 오로지 그것에 고정된 채로, 청운은 검을 휘둘렀다.
“퇴각한다!”
한 복면인이 제 동료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나 청운의 귓가에 그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날카로운 이명이 그의 머릿속을 울렸다.
복면인들이 공격을 멈추고 쓰러진 동료들까지 챙겨 달아나는 동안, 청운은 앞으로 나아갔다.
검을 휘두르고, 가로막는 것을 베어 내고.
마침내 낭떠러지 끝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을 때.
탱그랑―
청운은 검을 떨군 채 무릎을 꿇었다.
삐이이이―
온 세상이 하나의 선으로 모아졌다. 모든 소리가 아득히 멀어졌다.
청운의 턱 끝에 모여든 핏물 섞인 한 방울의 땀이 소리 없이 툭, 떨어졌다.
붉은 물방울은 하염없이 추락했고.
그 물방울이 거센 물길에 휩쓸리기도 전에, 청운의 몸이 무너졌다.
청운의 세상이 무너지는 비명이었다.
* * *
“내가 그때 마차를 벗어나지만 않았어도 네 어미와 너를 그곳에서 잃는 일은 없었겠지.”
그의 눈물이 흘러내려 구름 속에 자취를 감췄다.
“알량한 의협심을 부리지만 않았어도…. 네가 8년이나 고통받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남궁은 내외당의 무력대를 전부 동원해 낭떠러지 아래와 강물이 흐르는 곳 일대를 샅샅이 수색했다.
며칠 뒤 찾은 것은 여인의 시신이었다.
그러나 어디에도 아이의 시신은 없었다.
“그때의 일은 오로지 나의 잘못이었다. 나의 불찰이었고, 나의 오만이었다. 내가 부족하여….”
스릉―
검을 뽑는 소리가 들려왔다.
청운이 흔들리는 시선을 돌려 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았다.
설화가 검을 들고 있었다.
그 검은, 자신을 겨누고 있었다.